다른 사람에게 욕설을 해 모욕죄로 기소된 피고인을 국선으로 변론하게 되었다. 상담을 위해 전화하면 그는 “나는 죄가 없다”는 말을 두서없이 늘어 놓았다. 사무실 방문 날짜를 잡자고 하면 그는 “스케줄을 살펴 보겠다”고 하면서 만남을 회피했다.
내가 “바쁘면 전화로 사건 상담해도 좋다”고 제안했지만, 그는 “꼭 방문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러고선 나의 의뢰인은 또 약속을 정하지 않고 상담을 계속 미루기만 했다. 이런 일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오래 이어졌다.
오늘은 꼭 상담 날짜를 잡겠다는 결심으로 피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상담 가능한 날짜를 몇 개 전하면서 시간을 맞춰 보자고 했다. 그러자 그는 또 “상담 날짜는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면서 만남을 회피했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재판 날짜가 다가오고 있는데, 빨리 만나서 상담을 해야 재판부에 변론요지서도 내고 재판 준비를 할 수 있잖아요.”
변호인의 애원에 가까운 말도 소용 없었다. 사실 그는 재판 날에도 법원에 나오지 않을 요량이었다. 내가 선임되기 전에도 그는 법원 문서 송달을 피한 채 재판에 출석하지 않은 전력이 있었다. 결국 재판부가 경찰에 그의 소재탐지를 촉탁하기도 했다.
이 연재에서 몇 번 말한 대로, 국선전담변호인은 사건을 선택할 수 없다. 법원이 나의 의뢰인을 정해준다. 의뢰인이 누구든 그를 위해 일하는 건 국선전담변호인의 당연한 의무이다.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상담을 시도했을 뿐인데, 피고인은 언성을 높이며 나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대로 옮길 수 없는 그의 욕설은 “신발뇬” “믿힌뇬”과 유사발음이 대부분이었다.

욕은 내가 더 잘한다. 안 할 뿐이다. 내가 ‘법 떼고’ 작고 소중한 나의 명예도 버린 채 상대방이 녹음을 하든 말든 욕설을 한다면, 나는 정말이지 모욕죄로 법정 최고형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욕을 잘할 자신이 있다. 국선전담변호사으로 일하며 많은 모욕죄 사건을 맡으면서 이 세상의 신기하고 신박한 욕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욕죄로 기소된 피고인을 변호하다가, 고객(?)인 그에게 봉변에 가까운 모욕을 당하는 변호사라니. 번아웃이 오는 느낌이 들었다. 변호사 생활 20년 하면서 별별 사람을 다 만나보았지만 이번 일로는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그가 전화를 끊으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 때문이었다.
“국선 주제에…”
그날 이후 ‘주제’라는 글자만 보아도 그날의 그 음성이 천천히 재생되는 듯했다.
“국선 주제에…”
“국선 주제에에…”
“국선주제에에에에…”
나는 국선전담으로서 보람을 느끼며 덕을 쌓는다는 생각도 해왔다. 물론 국선이라고 무시하듯 대하는 피고인도 있었지만, 대놓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가 “국선 주제에”라는 말을 하자 충격이 상당히 컸다.
‘아, 내가 국선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는 마치 인생이 잘못 풀리거나 변호사로서 실패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것이구나.’
생각이 이렇게 이어지자 나의 멘탈은 설탕껍데기처럼 ‘바샤샥’ 무너지고 말았다. 나는 내 일상을 구하기 위해 신뢰관계가 있는 정신과 원장님을 찾았다. 원장님은 나를 무척 반겼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욕설을 들었고, 위협도 느꼈다고. 그가 찾아오거나, 마주칠까 봐 두렵고 불안해 이렇게 찾아왔다고 말이다.
그러자 원장님은 당신도 위협을 느낄 때가 있다면서 “그래서 가스분사기와 가스총을 가지고 있다”며 책상 서랍을 열어 내게 보여줬다. 나는 원장님이 “가스총이 있다”고 말씀하신 다음 서랍을 열기까지의 시간을 몸으로 느끼며 ‘역시 가스총 소지는 의미 없구나’ 생각했다.
서랍을 여는 사이 공격이 들어오면 무엇으로 막을 텐가. 사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는 가스총, 전기충격기 등의 호신용품 공동구매를 추진한 적 있다. 나는 호신용품 공동구매 이메일을 받고 내가 직접적인 위험상황에 처한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가스분사기 어디 있지.. 하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 공격을 당하는 상황. 전기충격기를 상대방에게 내미는 순간, 그가 나의 팔을 꺾어 내가 전기충격을 받는 장면. 아, 삼단봉이 있었지 하고 들이미는 순간, 빼앗겨서 되레 내가 두들겨 맞는 모습….
그 어떤 것도 나의 방패와 창이 될 순 없었다. 결국 나는 대한변호사협회의 호신용품 공동구매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정신과 원장님은 립스틱처럼 생긴 가스분사기와 가스총을 내게 보여 주었다. 이어 원장님은 책상 옆 작은 문을 가리키며 “탈출용 비상문”이라고 말했다.
원장님의 대비책은 또 있었다. 진료실 책상 아래에는 경찰을 부르는 버튼이 설치돼 있어 그걸 누르면 경찰이 3~5분 내에 온다고 했다. 근데, 3분이면 공격을 당해 쓰러지고도 남을 시간이 아닌가. 나는 원장님에게 물었다.
“가스총을 빼앗기면요?”
“가스를 분사했다가 저까지 헤롱헤롱 정신을 잃으면요?”
“경찰이 도착하는 사이렌 소리에 자극 받은 상대방이 더 큰 공격을 감행하면요?”
원장님은 그럼 별 수 없다는 듯 시무룩하게 손으로 비상 탈출문을 가리켰다.
“그럼 도망가야지 뭐.”
내 사무실에는 그런 비상문을 만들 만한 공간 자체가 없다. 정신과 상담이 아무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만 사바세계(갖가지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하는 세상)를 사는 게 아니구나.’

이런 생각으로 일상을 버티고 있을 때, 나처럼 ‘마지막 말’에 상처받은 피고인을 만났다. 서른을 앞둔 그녀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을 때 ”왜 나랑 헤어지려고 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남자친구가 말했다.
”살이 쪄서 싫어.“
피고인이 살 찐 상태에서도 잘 사귀었던 커플이었다. 남자친구에게 다른 여자친구가 생겼는지 마음이 식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남자친구와 헤어져 슬픔에 잠긴 나의 피고인은 “살을 없애겠다”고 다짐했다. 사랑했던 사람이 싫어하는 자신의 살을 증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음식을 먹지 않거나, 조금만 먹고는 다시 토해버렸다.
음식을 먹지 않으니 위가 줄었고, 그녀는 위에 음식물이 있는 상태를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위 안에 음식물이 있는 상태를 견딜 수 없게 되었고, 또 다시 먹지 않는 날이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거식증이 심해지자 키 165cm의 20대 여성 몸무게가 25kg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의 피고인은 안 먹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남들처럼 음식이 먹고 싶었지만 살이 찔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자기 힘으로 걷지 못하게 된 그녀는 유모차에 의지해서 걸어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유모차를 끌고 마트로 가서 먹고 싶은 음식을 잔뜩 실어서 계산하지 않고 그냥 나왔다.
그녀는 훔친 음식물도 먹지 못했다. 그녀는 훔친 음식물 가격보다 큰 금액의 합의금을 마트에 물어줬다. 그러다 또 마트에서 음식물을 보면 충동적으로 유모차에 실고 나와버렸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그녀는 절도사건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나의 피고인은 대학병원 의사로부터 “영양분이 너무 공급되지 않아 뇌기능 저하가 심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기 전에는 절도를 하지 않던 그녀였다.
나의 피고인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로 법원에 나타났는데, 정말이지 해골처럼 보였다. 그녀는 휠체어를 타야 할 정도로 몸에 힘이 없었다. 딸이 탄 휠체어를 밀면서 법원까지 온 그녀의 어머니는 나를 보자 흐느끼며 울었다. “재판도 걱정이지만 딸이 결국 죽고 말 것”이란 말도 했다. 나의 피고인도 휠체어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재판을 무탈하게 마친 그날, 나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 (다음) 재판날까지 밥 먹을 때마다 서로 밥 사진 보낼까요? 저는 저녁에 김치찌개 먹으려고요.”

나의 피고인에게 어떻게든 밥을 먹이고 싶었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마지막 말에 자신의 몸을 미워하게 된 그녀가 스스로를 사랑하길 바랐다. 10분 쯤 뒤에 나의 피고인에게 답장이 왔다.
“네 오늘 (엄마가) 고기 구워 주신다 해서 먹을려고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 나는 김치찌개 사진을 보냈고, 나의 피고인은 삼겹살 사진을 찍어서 대화창에 올렸다. 우리는 한동안 각자 먹은 음식을 인증샷 찍어 서로에게 보냈다. 나는 “재판을 잘 준비하겠다”고 다짐했고, 나의 피고인은 “건강을 잘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피해자인 마트 주인들에게 합의서를 받을 때마다 나의 사무실로 왔다. 조금씩 살이 붙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살이 좀 붙으니까 건강해 보이고 예쁘다고 말했다. 그녀는 쑥스러워하며 ”정말요?“하고 되물었다. 나는 그때마다 ”그럼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의 피고인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고, 그대로 확정됐다. 얼마 전 그녀가 생각나 연락해보니 “열심히 먹어서 이제 곧 30kg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아직 다른 사람처럼 정상적인 식사는 어렵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나는 그동안 가슴에 담아둔 ‘거칠지만 솔직한’ 말을 그녀에게 전했다.
“○○씨한테 살 쪘다고 헤어지자고 한 그 X끼는 밥 잘 처먹고 있을 텐데, 누구 좋으라고 굶어요. ○○씨 잘 먹어야죠. 잘 살아야죠.”
전화기 너머에서 그녀가 웃었다. 나는 의뢰인의 말 한마디에 정신과를 찾았고, 그녀는 죽기 직전까지 굶었다. 어떤 관계에서든, 누구에게든 마지막 말 만큼은 참아야 한다.
몬스테라 작가 monstera0930@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