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치킨, 탕수육이 올라간 미니어처 생일상. 콜라와 사이다도 빠지지 않았다. 생일상 옆에는 미니어처 컴퓨터와 축구공이 ‘에어팟’ 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친구들이 남긴 애틋한 손편지와 가족사진, 그리고 그의 헌혈증서도 함께 있었다.

산 사람들이 남긴 그리움의 흔적들이 그의 유골함을 지켰다.

“잠시 긴 여행을 떠난 것뿐, 우리는 꼭 다시 만날 거야.”

7월의 어느 날, 기자는 고(故) 김태영(가명) 군의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을 찾았다. 향년 19세. 그날은 태영 군의 생일이었다.

산 사람들이 남긴 그리움의 흔적들이 대학생 현장실습생 고(故) 김태영(가명) 군의 유골함을 지켰다. 실제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GPT를 통해 일러스트로 제작했다. ⓒ셜록

태영 군은 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한농대) 축산학부 양돈전공 2학년이었다. 경남 합천군 율곡면에 위치한 A 돼지농장으로 장기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지난 5월 19일 사망했다.

부검 결과 그의 사인은 “화재사”. 그날 돼지농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태영 군뿐이다.

학생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현장실습생. 실습이라는 이유로 고된 노동을 했지만, 교육이라는 이유로 월급은 최저임금의 절반도 받지 못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전종덕 국회의원실(진보당, 비례대표)과 협력해, 태영 군이 직접 작성한 ‘현장실습일지’를 입수했다. 태영 군의 심정이 일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3월 4일 첫 출근. 이날 합천엔 눈이 내렸다.

“임신사에 일하기로 함. 임신사 스톨(금속툴)은 4라인으로 이루어짐. 거의 400개의 스톨이 있음. 이제 요일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알려주셨다. (…) 아직 처음이라 미숙하지만 얼른 익숙해져야겠다.”(3월 4일자 현장실습일지 중)

다음 날 일지의 제목은 “바쁘지 않은 날”. 태영 군은 “스톨에 모돈(암퇘지) 넣기를 처음 해봤는데 긴장이 됐”다고 썼다. 그리고 ‘내일의 계획’에는 이렇게 적었다.

“열심 열심.”

태영 군은 현장실습일지에서 내일의 계획에 “열심 열심”을 적었다. ⓒ셜록

태영 군은 하루하루 ‘일 배우기’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면서도, “농장에 해를 끼치지는 않아야” 한다며 매일같이 “빨리 익숙해지기”를 다짐했다.

“얼른 나도 많이 노하우가 생겨서 조금이라도 도와드려야겠다.”(3월 7일자 현장실습일지 중)

“어렵다.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 배우는 것이 어렵다. 아무리 실습생이라는 자리에 있다고 해도 농장에 해를 끼치지는 않아야 하기 때문에 (…) 몸으로 익히는 것이 아직은 어렵다. 칭찬 하나씩 받을 때마다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됨.“(3월 월말 보고서 중)

매달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80만 원의 실습수당을 받으며 “열심 열심”을 다짐한 열아홉 살 태영 군. 실습은 10월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그의 실습은 두 달 만에 끝났다.

불은 건물 지붕에서 시작했다. 농장 관계자에 따르면, 지붕에서 토치 용접을 하다 불똥이 튄 것 아닐까 의심됐다. 아파트형 돈사의 꼭대기 한 층이 전소될 정도로 큰 불이었다. 불이 완전히 꺼지는 데 약 4시간 30분이 걸렸다.

그날 돈사에는 21명이 일하고 있었다. 그중 태영 군만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또 흘렀다. 기자는 화재가 발생한 A 돼지농장을 지난 11일 직접 찾아갔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소속 박공식 공인노무사(이팝노동법률사무소)도 동행했다.

태영 군이 현장실습을 나갔던 합천 돼지농장. 저 멀리서도 붉은색 벽돌로 진어진 돼지농장이 한눈에 보였다. ⓒ셜록
지난 5월 19일 A 돼지농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일 3층에서 일하고 있던 태영 군은 결국 대피하지 못했다. ⓒ합천소방서, 전종덕 진보당 의원실 제공

저 멀리서도 붉은색의 벽돌로 지어진 돼지농장이 한눈에 보였다. 3층짜리 건물(도면상 2층)은 위세가 남달랐다. 괜히 ‘아파트형 돈사’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다. 창이 없는 ‘무창돈사’로, 외벽에는 환풍구만 뚫려 있었다.

철제 담벼락에는 이런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재해복구 현장 내 안전장비 필수착용. 관계자 외 출입금지.”

돼지농장은 아직도 화재 복구로 분주했다. 인부들이 외벽을 고치고 있었다. 폐기물을 실은 화물차들도 여러 번 현장을 오갔다. 농장 대표 B는 자리를 비웠다. 그 역시 한농대 출신. 현장 관리자의 연결로 B 대표와 통화할 수 있었지만, 그는 셜록의 취재를 거부했다.

“오늘도 노동부에 조사받으러 창원(지청)에 와 있습니다. 저희가 (카메라에) 얼굴을 비추고 할 입장은 아닙니다. 지금은 인터뷰할 정신이 없습니다.”

농장 대표 B와 현장에서 통화할 수 있었지만, 그는 셜록의 취재를 거부했다. ⓒ셜록
돼지농장은 아직도 화재 복구로 분주했다. 폐기물을 실은 화물차들도 여러 번 현장을 오갔다. ⓒ셜록

기자는 돼지농장 내부라도 살펴볼 수 있을지 농장 관계자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방역을 이유로 거절했다. 박공식 노무사는 사고 현장을 둘러보지 못해 아쉬워했다.

“저도 이렇게 창이 없는 형태의 돈사는 처음 봅니다. 여전히 의문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건장한 대학생 청년이 왜 혼자서만 불을 피하지 못했을까요. 내부 구조를 보고 싶어서 합천까지 왔는데, 답답하네요.”

A 돼지농장을 나와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C 돼지농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태영 군의 첫 번째 실습장으로, A 돼지농장의 계열사다. 농장 입구 간판석 안쪽으로 마치 작은 마을이 있는 듯 느껴질 정도로 큰 농장이었다.

그곳에서 또 다른 계열사 D 대표를 만났다. 그는 본인을 “A 돼지농장 B 대표의 누나”라 소개했다. 이들 남매는 가업을 물려받은 영농후계자들이었다.

농장 입구 간판석 안쪽으로 마치 작은 마을이 있는 듯 느껴질 정도로 큰 농장이었다. ⓒ셜록

D 대표는 먼저 이번 화재 사고로 사망한 태영 군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뜻을 표했다. 그는 “사십구재에 맞춰 태영 군의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도 다녀왔다”고 밝혔다. 그는 태영 군만 화재를 피하지 못한 사정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불이 나자마자) 팀장님이 바로 직원들에게 대피 안내를 했습니다. 태영이만 안타깝게도 결국 대피를 못했습니다. 저희가 CCTV도 다 확인했습니다. 태영이 혼자 근무했거나 방치됐던 상황은 아닙니다.”

그는 “5월 초 전 직원 대상 화재 안전교육도 했다”고 덧붙였다. 실습생을 대상으로 산재보험도 가입한 사업장이었다. 한편으로 그는 ‘억울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저희도 재산 손실이 어마어마하고요. 무너진 경력도 억울합니다. (…) 저희 양돈장에서 배출한 학생이 웬만한 학교 수준으로 많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사업주이기 때문에 책임을 지려 합니다. 다 감수하려고 합니다.”

한마디로 ‘불운한 사고’를 겪게 돼 억울하지만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입장. 그럼 한농대의 생각은 어떨까. 기자는 지난 10일 전북 전주시에 있는 한농대로 직접 찾아갔다.

현장실습생이 화재로 사망했는데도, 한농대 측은 사과와 애도보다는 회피하기 바빴다.  ⓒ셜록

교무처 소속 대학생 현장실습 담당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담당자는 기획조정실의 홍보 담당자에게 전화를 넘겼다. 이 정도의 ‘핑퐁’은 예상 가능한 수준. 하지만 이후의 일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건물 밖에서 한농대의 답변을 기다리길 약 한 시간. 한농대 홍보 담당자는 또 다른 담당자에게 기자의 전화를 넘겼다. 황당하게도 그곳은 농림축산식품부 대변인실. 한농대가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기관이라는 이유에서다. 결국 그날은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며칠이 지나, 농림축산식품부는 또 다시 기자의 전화를 한농대로 넘겼다. 총 8번의 ‘전화 돌리기’ 끝에 원점으로 돌아왔다. 기자는 14일에야 서면질의서라도 전달할 수 있었다.

한농대는 기자의 반론 요청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17일에야 답변서를 보내왔다. 장기현장실습 제도 폐지에 대한 질의에, 한농대는 자못 자부심(?)이 묻어나는 답변을 했다.

“장기현장실습은 농어업 현장실무역량 배양을 위한 한농대의 핵심 교육과정으로, (…) 고령화 및 인구감소 등으로 어려운 농어업·농어촌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유족에 대한 보상 및 예우에 관해서는 “경찰 등 관계기관의 조사가 진행 중이며, 조사결과가 나오면 유족 측과 협의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실습보험 청구 등 후속 조치를 위한 행정적 지원을 할 예정”이라 답했다.

사고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해서는 “개선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전문가와 재학생 및 졸업생, 현장교수 등이 참여하는 장기현장실습협의체를 구성하여 실습 개선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전문기관과 전공 지도교수의 실습장 안전점검을 강화하는 등 안전한 실습환경 조성을 위해 가능한 최선의 방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한농대의 답변서에서 눈에 띄는 표현들. “진행 중”이며 “검토 중”이라, 앞으로 뭔가 할 “계획”이며 “예정”이라는 말. 아직도 뭔가 ‘결정’하거나 ‘실행’했다는 말은 없었다. 태영 군이 숨진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매달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80만 원의 실습수당을 받으며 “열심 열심”을 다짐한 열아홉 살 태영 군. ⓒ셜록

한농대를 관리·감독해야 할 농림축산식품부는 태영 군 사망에 대해 애도 입장조차 별도로 낸 적이 없다. 지난 5월 20일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한농대 보도자료를 농림부 홈페이지에 게시한 게 끝이다.

한농대 총학생회도 기자의 취재 요청을 거부했다. 총학생회는 사고 다음 날, 현장실습 중단과 면담 등을 요청하는 성명을 낸 적 있다. 하지만 기자에게는 “좋은 소식으로 연락드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태영 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거절했다.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연락이 닿은 한농대 재학생과 졸업생들도 태영 군에 대해서나 현장실습 경험에 대해서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모두 이대로 ‘가만히’ 지켜보고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걸까. 취재 과정에서 가장 안타깝고 답답하게 느낀 지점이었다.

태영 군의 죽음이 이렇게 ‘조용히’ 잊혀도 괜찮은 걸까? 불과 3년 전에도 한농대 현장실습생이 기계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그동안 ‘조용히’ 지나간 사건들은 얼마나 더 있을까.

셜록은 지난 10년간 한농대 현장실습생들의 산재사고 기록을 입수했다. 새로운 기사로 보도할 예정이다.

취재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