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 보고서의 제목은 ‘새로운 시작.’ 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이하 한농대) 현장실습생 김태영(가명) 군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새로운 농장으로 와서 다시 적응한다는 것이 쉬울 거 같으면서도 어렵다고 느꼈다. (…) 그리고 자만심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해봤다고 흐트러지는 모습에 반성을 했다. 한번 들었던 것을 까먹지 않게 리마인드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현장실습일지 4월 월말 보고서 중)
축산학부 양돈전공 2학년인 태영 군은 올해 3월 경남 합천군 율곡면에 있는 A 돼지농장으로 장기현장실습을 나갔다. 2018년 지어진 1만 890㎡ 크기의 3층(도면상 2층)짜리 신식 돈사. 돼지 1만 3000두를 사육하는 큰 규모의 양돈장이다. 학과 동기도 이곳에서 장기현장실습을 같이 수행했다.
현장실습을 시작한 지 약 두 달이 지난 5월 19일. 일이 터졌다. 돈사에 불이 났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화재 당일 사고상황보고서를 입수했다. 전종덕 국회의원실(진보당, 비례대표)의 도움을 받았다.
5월 19일 오후 5시. 시커먼 연기가 돼지농장 지붕 위로 솟아올랐다. 농장 관계자는, 지붕 보수 공사를 하던 직원이 토치 용접을 시도하다 바람에 불씨가 날린 걸로 의심했다.
119 최초 신고자(A 돼지농장 직원) : “여기 불났는데, 빨리요!”
같은 시각, 태영 군은 3층 임신사 내 ‘종부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교배 대기 중인 돼지들이 들어 있는 돈사. 같은 층에는 현장실습생 2명을 포함해 총 4명이 일하고 있었다. 또 다른 현장실습생은 임신사 맞은 편 분만사에 있었다.
관리자의 대피 명령에 따라 직원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출입구 쪽으로 뛰어갔다. 다른 층에서 일하던 직원들도 대피했다. 당일 일하던 직원 21명 중 20명이 양돈장 밖으로 대피했다. 당시 농장 대표 B는 외부 교육 일정으로 현장에 없었다.
이때 단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태영 군이었다.

“그날 경상남도 소방헬기고, 특수차고, 총출동했지. 만약에 겨울에 불이 났으면 산 양쪽으로 불이 다 났겠지. 바람 불고 했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니까.”(마을주민 C)
“그날 나는 (돼지농장) 입구까지밖에 못 갔지. 소방차가 너무 많이 와갖고. 일반 사람들은 그쪽 근처로 가지도 못했지. 연기가 계속 나오고 하니까는.”(마을주민 D)
양돈장으로 출동한 소방차는 무려 26대. 오후 5시 10분경이었다.
옥상에선 화염이 계속 분출됐다. 시커먼 연기만 속절없이 솟아올랐다. 소방헬기는 지붕 위에서 계속 물을 쏟아부었다. 소방대원들은 창이 없는 돼지농장을 향해 하염없이 물줄기를 쏴댔다. 창이 없는 ‘무창돈사’는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 용이한 구조가 아니었다.
짙은 연기는 소방대원들의 돈사 내 진입을 가로막았다. 소방대원들이 인명구조를 위해 돈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시각은 오후 6시 29분경. 현장 도착 약 1시간 20분 만이었다.
내부에 들어가서도 수색에 난항을 겪었다. 태영 군이 일하던 3층(도면상 2층)은 돼지기름으로 화재 진압 자체가 쉽지 않았다. 특수구조대까지 투입됐지만, 1차 수색 때는 태영 군을 찾아내지 못했다.

[화재 사고상황보고서]
– 17:52 (상황실) 합천지휘, 도 임차헬기 건물 방수 어려움 및 소방헬기 출동사항 안내
– 17:55 (합천지휘) 농연으로 인해 2층 건물 진입 어려움, 옥상에서 계속 화염분출 중
– 18:56 (합천지휘) 2층 돼지기름으로 인해 내부 진입 및 화재진압 어려움
– 19:08 (특수구조대) 2개조 편성하여 1개조 1,2층 내부 수색한 바 구조대상자 확인 안 됨, 2층 재수색 예정
돈사 내부 진입 이후로도 약 1시간 20분이 더 흘렀다. 최초 신고로부터는 3시간 가까이 흐른 오후 7시 50분경. 소방대원들은 3층 종부사에서 이미 숨이 끊어진 한 사람을 발견했다.
태영 군이었다.
태영 군은 짙은 연기를 피하지 못하고 질식한 걸로 추정된다. 돼지농장 3층은 전소됐다. 완진 시각은 오후 9시 35분. 불이 완전히 꺼지기까지 약 4시간 30분이 걸렸다.

사고 이후 한농대는 A 돼지농장의 실습장 선정을 취소하고 농장 대표 B를 ‘현장교수’ 직에서 해촉했다.
그리고 전국 실습장 171개를 대상으로 긴급 점검을 진행했다. 점검은 단 3일 만에 끝났다. 축산학부에 한정해 현장실습을 중단하기도 했다. 5월 20일부터 딱 21일 동안 현장실습이 멈췄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현장실습은 또 다시 ‘가동’되고 있다.
한농대의 장기현장실습 제도는 두 학기에 거쳐 최소 8개월 동안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2학년 교과과정이다. 태영 군의 실습기간은 올해 3월부터 10월까지 예정돼 있었다.
하루 8시간씩 주 5일, 총 40시간을 일하는 조건. 그가 매달 받기로 한 실습수당은 약 80만 원으로, 최저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올해 최저시급(10,030원)을 월급으로 환산한 최저임금은 약 209만 원이다.
한농대 학생들에게 현장실습은 의무다. 한 달에 80만 원을 받으면서 ‘의무적으로’ 실습을 하다 학생이 죽었다. 태영 군이 목숨을 잃은 지 두 달째. 재발 방지 대책은 마련됐을까. 셜록의 질의에 한농대는 “장기현장실습협의체를 구성하여 실습 개선방안을 검토 중”이란 답변을 보내왔다.(관련기사 : <불탄 양돈장에서 숨진 대학생… 실습일지엔 “열심 열심”>)

한농대 측은 민·형사상 책임 문제에 대해서도 “조사 결과에 따라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 등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경찰 등 관계기관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한농대가 ‘기다리지 않고’ 시급히 손봐야 할 것이 있다. 한농대는 ‘한국농수산대학교 설치법’에 근거해 설치된 국립대학이다. 그런데 그 법에 장기현장실습과 관련한 내용이 전혀 없다.
한농대는 현재 ‘한국농수산대학교 장기현장실습 운영규정’과 학칙에 근거해 장기현장실습을 운영하고 있다. 규정상 실습기관의 ‘산재보험 가입’은 의무가 아니다. 학교 차원에서 상해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내용 정도만 명시해놨다.
교육부의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과도 대조되는 대목. 교육부 규정은 “실습기관에서는 현장실습학기제에 참여하는 학생에 대하여 산재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의무를 못 박아뒀다. 휴게시간과 유급휴일 등 현장실습생의 노동권 보장 조항도 명시했다.
한농대 장기현장실습 운영규정에는 안전점검 조항이 있긴 하다. “매분기 1회 이상 실습장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한다”는 내용. 이 또한 2022년 스무 살 현장실습생이 화훼농장 기계에 빨려 들어가 사망한 사건 이후 만들어진 규정이다. 이외에도 현장교수 및 실습생의 안전교육 이수 등 안전조치 조항의 대부분의 내용이 2022년 사고 이후 만들어졌다.
하지만 새로 만들어진 안전점검 조항 또한 태영 군의 사고를 막지 못했다. A 돼지농장에 대한 1차 안전점검은 5월 29일 예정돼 있었다. 안전점검을 불과 열흘 앞두고 태영 군이 화재로 사망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소속 박공식 공인노무사(이팝노동법률사무소)는 특수대학교 현장실습과 관련해 미흡한 법 체계를 지적했다.
“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 국립한국해양대학교와 같이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대학교들은 현재 실습장 산재보험 가입이 의무가 아닙니다.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에서 예외를 둬서 ‘사각지대’에 있는 겁니다. 한농대 자체 운영규정이 잘못됐다고도 지적할 수 있지만, 상위법령 자체가 사각지대를 만든 중대한 요인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교육부의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도 완벽한 건 아니다. 2021년 현장실습의 표준화를 위해 규정의 내용을 전부 개정했으나, 대학생 현장실습생의 산업재해 사고를 모두 막진 못하고 있다. 강제력 있는 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