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현장실습생이 죽었다. 올해 봄 경남 합천군 돼지농장에서. 3년 전 경기 고양시 화훼농장에서.
사고가 이뿐이었을까. 아니다. 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한농대) 현장실습생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는 최근 10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일어났다. 1년에 무려 8건의 사고가 발생한 해도 있었다.
열아홉, 스무 살의 꽃다운 목숨을 잃은 사망 사고가 아니면 신문에도 잘 나지 않았다. 그렇게 ‘조용히’ 묻히고 잊혀간 사고가 10년간 50건에 육박한다.

지난 5월 19일, 한농대 현장실습생 김태영(가명) 군이 숨졌다. 향년 19세. 김 군은 축산학부 양돈전공 2학년이었다. 경남 합천군에 있는 한 돼지농장으로 장기현장실습을 나갔다가 농장 화재로 사망했다. 김 군은 하루 8시간씩 주 5일 일했다. 그가 받은 실습수당은 월 80만 원.(관련기사 : <불탄 양돈장에서 숨진 대학생… 실습일지엔 “열심 열심”>)
한농대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의 3년제 국립 전문대다. 1학년과 3학년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2학년은 두 학기 동안 외부에서 장기현장실습을 받는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최근 10년간 한농대에서 발생한 장기현장실습 사고 내역 자료를 입수했다. 전종덕 국회의원실(진보당, 비례대표)이 최근 한농대로부터 받아낸 자료(2016~2025년)와 농림축산식품부가 2022년 국회에 제출한 자료(2018~2022년)를 통해 파악했다.
2016년부터 2025년까지 한농대 장기현장실습 중 발생한 사고는 총 48건. 10년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매년 현장실습생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한 해에 적게는 4건(2017·2018·2020·2023·2024년)에서 많게는 8건(2021년)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밖에도 학교 측이 파악하지 못한 작은 사고들은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다.
사고 유형은 근골격계 부상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골절, 인대 부상, 디스크(요추 추간판 탈출증)와 같은 부상이 절반 이상(41건)을 차지했다.
소에 부딪혀 팔이 골절되거나, 우유탱크 냉각기에 껴서 발 피부를 봉합한 사례도 있었다. 이외에도 뇌수막염, 손가락 신경 파열과 같은 신경계 질환도 있었고, 화상 피해도 발생했다. 10년간 사망 사고는 2022년과 2025년에 각 1건씩, 총 2건이다.
전공별로는 원예학부 현장실습생들이 당한 사고가 11건으로 가장 많았고, 축산학부(9건), 작물·산림학부(8건), 농수산융합학부(2건) 순으로 사고가 많이 발생했다.(2018~2022년 한농대 현장실습생 안전사고 현황 기준)


한농대 현장실습 문제는 3년 전 사망 사고를 계기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22년 3월, 스무 살의 한농대 현장실습생 A는 경기 고양시에 있는 화훼농장으로 장기현장실습을 나갔다. 주 5일 총 40시간을 일하는 조건으로 A가 받은 실습수당은 월 90만 원이었다.
사고는 한순간에 일어났다. 같은 해 6월 20일 오전 11시 25분경, A는 상토혼합분배기에 상토를 넣다가, 그만 기계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현장실습을 나간 지 세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A는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당시 농장주는 상토혼합분배기에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덮개도 설치하지 않았다. 기계를 가동하기 전 작업방법과 방호장치도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 현장실습생 A를 상대로 안전교육도 진행하지 않았다.
농장주는 재판장에 서야 했다.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재판 결과는 ‘유죄’였다.
“사용자는 근로자가 위험에 처할 우려가 있는 부위에 덮개 등 설치하여 기계 작동으로 인한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근로자의 부주의에 의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기계 운전을 시작할 때 근로자의 교육, 작업방법(흙을 투입할 경우 전원 차단), 방호장치 등을 미리 확인한 후 위험 방지를 위한 필요한 조치를 한 후 작업을 하게 함으로써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23고단514)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판사 황보승혁)은 2023년 7월 11일 농장주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농장에서 현장실습생이 죽었고, 농장주의 법적 책임이 인정됐다. 하지만 농장주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
처벌의 ‘무게’에 대한 논란이 뒤따랐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는 적용조차 되지 않았다. 사고가 난 화훼농장은 ‘1인 사업장’이었기 때문.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근로자가 5명 미만인 사업장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같은 이유로 해당 화훼농장은 산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당연히(?) 산재보험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 한농대는 사업장으로 현장실습생을 보내면서도, 사업장 측에 실습생 대상 산재보험 가입을 권고할 뿐 의무화하지 않았다.

문제는 3년이 지난 지금도 한농대 현장실습장의 산재보험 가입이 법적 의무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농대의 경우 ‘한국농수산대학교 설치법’에 근거해 설치됐다. 그런데 그 법에 장기현장실습과 관련한 내용이 전혀 없다.(관련기사 : <월급 80만 원… 19세 실습생은 죽기 직전까지 일했다>)
한농대는 현재 ‘한국농수산대학교 장기현장실습 운영규정’과 학칙에 근거해 장기현장실습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에서도 실습기관의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해놓지 않았다. 학교 차원에서 상해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내용 정도만 명시해놨다.
실습장 안전점검과 안전교육 이수 등 안전과 관련한 일부 조항들도 2022년 화훼농장 현장실습생 사망 사고 이후 만들어졌다.
“한농대 자체 운영규정이 잘못됐다고도 지적할 수 있지만, 상위법령 자체가 사각지대를 만든 중대한 요인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박공식 노무사)
법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제기됐다. 화훼농장 현장실습생 사망 사고 이후 개정안이 실제로 발의됐다.
2022년 7월 김홍걸 당시 국회의원(무소속, 비례대표)은 한국농수산대학교 설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장실습 활동 안전사고관리 규정을 제정하고, 현장실습 전 학생들에게 별도의 안전교육을 시행하자는 등의 내용이었다.
해당 법안은 약 한 달 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한 마디의 토론도 오가지 않고, 80개가 넘는 법안들과 함께 한꺼번에 처리됐다. 거기서 끝이었다. 이후 21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개정안 발의는 또 있었다. 윤미향 국회의원(무소속, 비례대표)은 2024년 2월 한국농수산대학교 설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장실습협약 체결과 실습장의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단 한 번도 상정되거나 논의되지 못했다. 세 달 만에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법안도 휴지조각이 됐다.
그리고 2025년 5월, 또 한 명의 한농대 현장실습생이 숨졌다.

돼지농장 화재 사고로 목숨을 잃은 열아홉 살 김태영 군. 또 한 번의 사망 사고를 계기로 법 개정안이 또 발의됐다. 전종덕 의원은 지난 6월 25일 한국농수산대학교 설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핵심 내용은 실습장의 산재보험 가입 법제화와 안전점검 의무화다.
▲실습장의 대표는 현장실습 학생의 보호를 위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산업재해보상보험 또는 「농어업인의 안전보험 및 안전재해예방에 관한 법률」에 따른 농어업인안전보험에 가입하도록 함.
▲한국농수산대학교의 장은 현장실습 수업 진행 전에 실습장의 대표와 현장실습 학생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현장실습장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하도록 함.
전 의원은 “한농대는 매년 현장실습 중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고 사망에까지 이르고 있어 전면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현장실습이 한농대 학생들의 필수 과정인 만큼, 현장실습 환경 개선과 안전에 중점을 뒀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지난 29일 화제가 된 ‘생중계’ 국무회의. 주요 안건은 ‘산재’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반복되는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두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표현했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산재 사망 근절을 위해 “(장관) 직을 걸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직을 걸어서라도’ 산업재해를 막아야 하는 사람은 또 있다. 바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최근 5년간 연평균 농업인 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125명이나 된다(2019~2023년 기준, 농기계 및 농기계 교통사고). 3일에 한 명 꼴로 목숨을 잃는 셈. 산재 사망사고 1위 업종인 건설업 산재 사망자 수 328명(2024년 기준)에는 미치지 않지만, 결코 적지 않은 수다.
한농대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교육기관이다. 하지만 이날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불과 두 달 전 돼지농장에서 열아홉 현장실습생 태영 군이 산업재해로 사망했음에도.

“한국 농수산업을 이끌어갈 정예인력 양성”
‘현장실습 특화 대학교’라 자부하는 한농대의 교육 목표.
인력이 아니라 사람이다. ‘인력’을 키우는 동안 ‘사람’이 죽고 다쳤다. 확인된 것만 10년간 48건.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사고는 일어났다. 한농대는 과연 ‘현장실습 특화 대학교’라 자부할 자격이 있는 걸까.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