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분. 손미영(가명) 씨가 모은 녹음파일의 총 재생시간. 언젠가 딸 고연서(가명, 24) 씨가 당한 아동학대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하나씩 모아온 파일이 모두 21개다. 녹음파일 안에는 피해자에게 끔찍한 악몽으로 남은 사건의 증거가 들어 있었다.

연서 씨는 지난해 12월, 무려 13년 만에 입을 열었다. 초등학생 때인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대구빙상경기연맹 소속 김아영(38) 코치로부터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피해자는 김 코치를 아동학대 등 혐의로 고소했다. 아동학대처벌법 제34조에 따르면, 아동학대 범죄의 공소시효는 피해 아동이 성인이 된 날부터 시작된다. 대구빙상경기연맹에 김 코치에 대한 징계요구서도 제출했다.

어머니 손미영 씨가 모은 녹음파일에는 김아영 코치가 폭행 사실을 시인하는 말들이 담겨 있다.

어머니 : “캐나다 가기 전에도 그래요. 엄마들 다 보고 있었어요. (스케이트화) 날집으로 때리는 거.
김 코치 : “그렇게 해야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 ”(2016. 2. 22.)

피해자 고연서(가명) 씨가 신었던 피겨스케이트화. 그는 김아영 코치로부터 스케이트화 날집 등으로 폭행당했다. ⓒ셜록

최악의 사건은 2013년 여름, 캐나다 전지훈련 기간에 발생했다. 당시 12살이었던 피해자는 가족과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폭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렸다. 주먹과 발이 날아오는 건 다반사였다. 이유는 “점프를 성공하지 못해서”.

어머니 : “그러면 때린 거는 맞아요?”
김 코치 : “때린 건 맞아요.”
어머니 : “발로 차고 그런 거는 맞아요?”
김 코치 : “네.”(2016. 2. 22.)

피해자는 얼굴이 “피떡”이 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캐나다 전지훈련 어느 날, 김 코치는 피해자에게 줄넘기 2단뛰기 1000개를 지시했다. 이번에도 이유는 “점프를 뛰지 못해서”. 줄에 걸리거나 넘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훈련이 아니라 체벌에 가까운 거였다.

피해자가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말하자, 김 코치는 피해자를 그대로 차에 태웠다. 그리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고 피해자는 증언했다. 코피가 쏟아지고, 입술이 터졌다.

입술 양옆이 찢어진 적도 있었다. 피해자는 김 코치가 자신의 입 안에 양쪽으로 손가락 두 개를 집어넣고 입이 찢어질 듯 잡아당겼다고 말했다. 점프를 성공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게 이유였다.

어머니 : “나는 선생님(김 코치)한테 직접 듣고 싶어요. 나 우리 딸(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 너무 많이 의심했어.”
김 코치 : “입 꼬집은 것도 맞고, 배 꼬집은 것도 맞고, 발로 찬 것도 맞고, 맞아요.”
어머니 : “그건 다 봤잖아. 다른 애들도.”
김 코치 : “맞아.”(2016. 2. 22.)

뱃살이 잡아뜯길 정도로 손톱으로 꼬집기도 했다. 이후 김 코치가 “빨리 나아서 (한국) 가자”며 상처 부위에 ‘상어기름’을 발라줬다고 피해자는 주장했다. 그리고 김 코치는 한 가지를 당부했다.

선생님이 사랑해서 그런 건 줄 알지? 이건 우리끼리 비밀이다. 얘기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피해자는 천식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 따르면, 김 코치가 약을 제한하기도 하고 치료기(네블라이저) 사용을 막은 적도 있다. “정신력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이유로.

캐나다 전지훈련장 ‘화장실’은 피해자에게 공포의 공간으로 남았다. 피해자는 화장실에서 김 코치에게 목이 졸리며 들은 말을 기억한다.

“그냥 죽어. 니가 죽으면 엄마한테 천식으로 죽었다고 말하면 돼.”

2013년 캐나다 전지훈련에서 연서 씨는 가혹행위를 당했다. 사진은 캐나다 스케이팅클럽. ⓒ셜록

화장실은 아무도 보는 눈이 없는 장소. 학대 수위는 더 높아졌다.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김 코치는 피해자의 입 안에 가위 한 쪽 날을 집어넣고 “입을 자르겠다”고도 말했다. 피해자는 그때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

어머니 : “캐나다 갔다 와서 얘가 화장실을 돌아서 갔다고!”(기자 주 –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서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입구 앞을 빙빙 돌며 망설이다가 들어갔다는 뜻)
김 코치 : “거기 데리고 들어가서 혼내고 때리고 한 거 맞아요. 밖에서 못 혼내고 밖에서 못 때리니까.”(2016. 2. 29.)

김 코치는 피해자 어머니와 2016년 2월에 한 대화에서, 구체적인 학대 사실 각각을 모두 인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대화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 “저 충분히 많이 물어봤고 대답할 수 있는 기회 드렸지 싶어요.”
김 코치 : “사실. 연서(가명)가 말한 거 사실이에요.”(2016. 2. 29.)

하지만 김 코치는 피해자를 자신의 팀에서 방출하겠다고 통보했다. 피해자는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팀을 찾았다. 원래는 그때 김 코치를 고소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 코치를 고소하면 새 팀에도 못 받아준다’는 조건 앞에서 고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가 김 코치를 고소한 건 그로부터도 8년이 더 지난 뒤였다. 피해자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피켜스케이팅 선수 생활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지금도 트라우마 속에서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의식 속에서 학대 당시로 되돌아가는 ‘플래시백’ 현상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겪는다. 피해자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김 코치에게 ‘인정’과 ‘사과’를 받고 싶었다.(관련기사 : <‘김연아의 꿈’은 사라지고… 학대의 악몽만 남았다>)

고연서(가명) 씨는 13년 만에 김아영 코치를 아동학대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2013년 캐나다 전지훈련 당시 찍은 사진. ⓒ셜록

지난해 12월 김 코치를 아동학대로 고소한 뒤, 어머니 손미영 씨는 김 코치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이번에도 구체적인 사실을 인정하진 않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김 코치 : “(흐느끼며) 너무 죄송해요. 이런 전화 해서도 너무 죄송해요.”
어머니 : “아니요. 나한테는 죄송할 거 없고….”
김 코치 : “너무 이기적이다. (자신이) 전화한 게 너무 이기적이다. (흐느끼며) 죄송해요, 어머님. (…) (경찰) 조사 잘 받을게요.”(2025. 1. 27.)

지난 2월에는 김상윤 대구빙상경기연맹 회장의 주선으로 피해자 모녀와 김 코치가 한 자리에 모였다. 김 코치는 그날도 포괄적인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구체적인 학대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답답한 마음에 직접 따졌다.

피해자 : “뭘 잘못했는지 선생님(김 코치)은 모르시잖아요(인정 안 하시잖아요)?”
김 코치 : “(내가) 잘못한 건 맞잖아.”
피해자 : “기억 안 난다면서요! 입 안에 가위 집어넣은 것도, 목 조르면서 말한 것도! 선생님, 기억 안 나요?”
김 코치 : “아니.”(2025. 2. 13.)

김 코치는 어떻게든 법적 책임을 피하려 했다. 피해자 측에 ‘이면합의’를 제안한 것. 구체적인 학대 사실들을 인정하는 취지의 합의서를 한 장, 그리고 ‘민․형사상 합의했다’는 “담백한” 내용으로 또 한 장. 그렇게 두 장을 쓰되 경찰에는 후자만 제출하자는 말이었다.

13년 동안 피해자는 ‘악몽’ 속에 가라앉고, 김 코치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김 코치는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입상한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2023년 대구시장상을 받기도 했다.

2024년 김아영 코치(오른쪽)가 운영하는 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그가 지도하는 선수가 주니어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며 명성을 얻게 됐다. ⓒ팀A+인스타그램

대구빙상경기연맹은 김 코치에 대한 징계 절차를 8개월째 보류 중이다. 지난 18일 연맹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 징계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상윤 대구빙상연맹 회장도 “법으로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면 된다”며, “고소 결과가 나와야 징계할 것 아니냐”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김 회장은 지난 2월 피해자와 김 코치의 만남을 주선한 자리에서, 피해자에게 “무릎 꿇고 ‘봐줄래’ 이렇게 (부탁)할 생각을 하고 왔다”, “(나를) 회장 아빠라고 불러라”라고 말한 바 있다. 기자가 해당 발언을 한 이유를 묻자, “잘해주려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코치에게 지난 18일부터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반론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답변은 없었다. 지난 22일 그를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그날 김 코치는 문자메시지로, “출산 후 회복 중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에 있다”며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현재 아동학대 고소 사건은 대구 수성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다. 추가 피해자 두 명과 목격자가 경찰에 사실확인서와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 4월 대구가정법원은 김 코치에게 임시조치를 결정했다. 2개월간 대구아동보호전문기관에 상담과 교육을 위탁한다는 내용. 임시조치는 아동보호사건의 원활환 조사·심리 및 피해아동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된다고 판단될 때 내려지는 조치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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