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악마였습니다.”
어린 시절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꿈꿨던 이효민(23, 여, 가명) 씨의 말이다. 효민 씨는 대구빙상경기연맹 소속 김아영(38, 여) 코치에게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고백한 ‘추가 피해자’다.
지난 25일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어린 시절 김 코치로부터 학대당한 고연서(24, 여, 가명) 씨의 증언을 보도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연서 씨는 김 코치를 아동학대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대구빙상경기연맹에 징계요구서도 제출했다.(관련기사 : <‘김연아의 꿈’은 사라지고… 학대의 악몽만 남았다>)
효민 씨는 과거 김아영 코치 팀에서 함께 훈련받은 고연서 씨의 고소 소식을 뒤늦게 알았다. 학대 트라우마 때문에 연서 씨가 아직도 힘들게 지낸다는 말을 듣고 고소를 도와주기로 마음 먹었다. 이제 빙상계를 떠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서 언니가 거짓말쟁이 취급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아영 코치가) 나쁜 사람인 걸 아는데, 눈 뜨고 볼 수가 없더라고요.”
효민 씨도 김연아 선수를 동경했다. 얼음 위를 질주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피겨스케이팅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김연아 선수가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그해, 초등학교 2학년 때 얼음 위에 첫발을 디뎠다. 2년 뒤 선수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취미반일 때는 김아영 코치가 정말 잘해줬어요. 예쁘고 착한 선생님이었죠. 그런데 본격적으로 선수 훈련을 시작하면서 달라졌어요.”
10살이었던 효민 씨의 첫 선수 훈련은 ‘여름합숙’이었다. 2012년 7월 31일부터 8월 20일까지, 3주간 선수반 동료들과 “눈을 뜨고 감기 전까지” 훈련했다. 이때 함께 훈련한 동료가 고연서 씨였다.
여름합숙 훈련은 대구의 한 초등학교 강당과 빙상장을 오가면서 진행됐다. 토요일에 집에 갔다가 일요일에 훈련장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을 소화했다.
“선수들 표정이 항상 안 좋았어요. 그런데 하루이틀 지나고 나니 저도 똑같은 표정을 짓게 됐어요.”

효민 씨 어머니가 경찰에 제출한 사실확인서에 따르면, 초등학교 강당에서 진행된 지상훈련은 ‘커튼’을 치고 시작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 때문이었다.
“지상훈련 트레이너들에게 확인한 바 있습니다. 해당 지도자들은 학대 여부에 대해서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 행위 자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학대로 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이효민 어머니 사실확인서)
효민 씨는 스케이트화 날집으로 300대를 맞은 적 있다고 회상했다. 점프 하나를 실패하면 날집으로 100대를 맞았고, 하루에 300대까지 맞았다. 맞을 때마다 숫자를 셌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잘못 세면 처음부터 다시. 날집이 부러지면 다른 날집으로 맞았다.
“추운 빙상장에서 얼어 있는 고무 날집으로 숫자를 세면서 하체를 맞았어요.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피멍이 들었어요. 하지만 부모님께는 말할 수 없었죠.”
폭행의 이유는 가지각색이었다. 점프에 실패해서, 지상훈련에서 뒤처져서, 훈련 도중 다리에 힘이 풀려서.
“단 하루도 안 맞은 날이 없었어요. 도구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나무막대기, 플라스틱 막대기, 날집, 주먹, 귀싸대기…. 매일 반복됐어요.”

훈련 일과를 마치고 아이들이 숙소 내 김 코치 방에 끌려가면, 비명소리와 함께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효민 씨는 말했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효민 씨 증언에 따르면, 김 코치는 아이들에게 10초 안에 볼일을 보라고 지시했다. 화장실 문도 닫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옷에 실수한 날도 있었다.
학대는 얼음 위에서도 이어졌다. 효민 씨는 상의가 벌거벗겨진 여아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 아이는 민소매 속옷 한 장 걸칠 수 없었다. 김 코치는 점프에 실패하면 옷을 하나씩 벗게 했다. 이후 점프에 성공하면 김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니가 벗으니까 (점프가) 잘 되지.”
드디어 집에 가는 토요일. 저 멀리서 엄마가 효민 씨를 데리러 다가오고 있었다. 김 코치는 엄마를 보고 손을 흔드는 효민 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 아빠한테 말하면 손가락 발가락 하나씩 가위로 잘라버린다.”
소름이 돋았다. 정말 그런 짓을 할 것만 같았다. 효민 씨는 반복적인 김 코치의 협박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당시 지상훈련 장소였던 초등학교는 효민 씨가 살던 집과 불과 50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가혹행위를 당할 때마다 집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피겨를 그만두거나 도망치면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 죽여버린다.”
김 코치가 효민 씨에게 늘 무서운 말만 했던 건 아니었다.
“막 때리다가도, 바로 따라와서 ‘내가 (너를) 좋아해서 이러는 알지?’, ‘다 너를 위한 거야’라면서 다독여줬어요. 지금 생각하면 가스라이팅이죠.”

효민 씨는 훈련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 어머니는 피멍이 든 다리를 보고, 피겨스케이팅이 부상이 잦은 운동이라, 얼음 위에서 넘어져 생긴 상처들이라고 생각했다.
효민 씨가 훈련장에 가기 싫다고 말해도, 어머니는 그저 아이가 힘들어서 떼쓰는 거라고 여겼다. 김 코치가 어머니에게 “애가 힘들면 포기할 수 있다. (어머니께서) 잘 이끌어주셔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효민 씨는 어머니가 (학대 사실을) 다 알면서도 자신을 다시 훈련장으로 보내는 거라고 오해했다. 인터뷰 내내 씩씩하게 말하려고 애쓰던 효민 씨의 두 눈이 빨개졌다.
2014년 캐나다 전지훈련. 화장실로 끌려가 아이패드로 뺨을 맞았다. 광대뼈 쪽에 큰 멍이 들었다. 그래도 여름합숙훈련 때보다 폭행 수위는 낮아졌다. 다른 아이가 자신보다 더 맞았을 거라고 말했다. 김 코치가 다른 아이를 화장실이나 라커룸으로 끌고 들어갔다고 증언했다.
“그 애는 샤워를 하고 오면 눈이 부어 있었어요. 제가 힘든 일이 있으면 (저한테) 말하라고 했는데, 쉽게 말하지 못했죠.”
효민 씨 어머니는 캐나다 전지훈련 이후 학대 사실을 알았다. 다른 학부모의 귀띔을 듣고, 딸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효민 씨는 자신이 당한 학대 사실을 전부 털어놨다. 효민 씨 어머니는 김 코치를 찾아가 따져물었다.
“김아영은 고개 숙이고 울면서 ‘죄송하다’고 말하며 모든 학대 행위를 시인하였고, ‘효민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이효민 어머니 사실확인서)
하지만 효민 씨는 김 코치를 다시 만나지 않았다. 다른 코치 팀으로 이동하고 싶었지만, 역시나 ‘친분 있는 코치끼리 선수를 주고 받지 않는다’는 이해할 수 없는 불문율(?)에 한 번 가로막혔다. 고연서 씨도 그랬듯이.
우여곡절 끝에 효민 씨는 새로운 코치를 찾아 김 코치 팀을 떠났다. 이후 1년 남짓 선수생활을 더 하고,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피겨스케이팅을 그만뒀다.

1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까지 효민 씨가 김 코치를 직접 고소하지 않은 이유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증거자료도 별로 없고, 말해봤자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어요. 상처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온몸에 피멍이 들어 변기에도 못 앉았거든요.”
그저 잊고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고연서 씨가 김 코치를 고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3년 만에 효민 씨는 학대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빈 종이에 어린 시절 자신이 당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써내려갔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는데, 다 기억하지 못해서 속상했어요. 그래도 어렸을 때 충격적이었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최대한 노력했어요.”
효민 씨에게 물었다. 김 코치에게 사과받고 싶냐고.
“김아영 코치가 사과한다면 기꺼이 받겠지만, 벌은 받으면 좋겠어요.”
김연아 선수처럼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꿈을 품었던 열 살의 효민. 하지만 그는 지금 피겨스케이팅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을 하고 있다. 만약 학대의 기억이 없었다면, 효민 씨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피겨스케이팅을 그만둔 뒤, 효민 씨는 딱 한 번 빙상장에 갔다. 친구들과 어울려 우연히 간 빙상장. 날이 짧은 아이스하키용 스케이트를 빌려 신고 얼음 위를 달렸다. 오랜만에 코끝에 전해지는 차가운 공기.

효민 씨는 아직도 어린 시절 신던 피겨용 스케이트화를 간직하고 있다. 이제 너무 작아져서 신을 수도 없지만. 가끔 효민 씨는 피겨스케이트화를 신고 얼음 위를 미끄러지던 그 느낌이 그립다고 했다.
“피겨는 제 인생에 처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현재 고연서 씨가 제기한 아동학대 고소 사건은 대구 수성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다. 효민 씨는 김 코치의 학대 사실을 쓴 ‘사실확인서’와 ‘엄벌탄원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지난 4월 대구가정법원은 김 코치에게 임시조치를 결정했다. 2개월간 대구아동보호전문기관에 상담과 교육을 위탁한다는 내용이다.
김아영 코치에게 지난 18일부터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반론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답변은 없었다. 지난 22일 그를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그날 김 코치는 문자메시지로, “출산 후 회복 중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에 있다”며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대구빙상경기연맹은 김 코치에 대한 징계 절차를 8개월째 보류 중이다. 지난 18일 연맹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 징계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