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힙니다.”
지난달 10일 우촌초 공익제보자 최은석 전 교장(56)은 기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기가 막힌다는 말과 함께 문서 파일 하나가 도착했다. 파일명 ‘탄원서’. 파일을 클릭해 열었다.
“저는 우촌초등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회 임원들입니다.”
탄원서 내용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공익제보자 유현주(47) 씨를 엄벌해달라고 재판부에 간곡히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학교법인 일광학원이 공익제보자 최은석, 유현주를 업무상 횡령으로 고소한 사건. 학부모들이 ‘엄벌’을 요청한 유현주 씨는 공익제보 이후 6년째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촌초(서울 돈암동)는 대한민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초등학교다. 학교법인 일광학원이 운영한다. 2019년 5월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은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서울시교육청에 제보했다. 이규태 전 이사장이 스마트스쿨 사업 예산을 부풀려 교비를 횡령하려 했다는 의혹과, 전임 이사회와 일부 교직원들이 이를 돕거나 방임했다는 내용이다.
교육청은 ‘통상 3억 원이면 충분한 사업 예산이 약 24억 원으로 부풀려졌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공익제보자들은 학교에서 쫓겨났다. 일부 공익제보자들은 오랜 시간 복직 투쟁 끝에 복직했지만, 최은석 전 교장, 행정실 직원 유현주 씨는 아직도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학교에는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 10월 서울시교육청은 일광학원 구 재단 이사회를 전부 쫓아냈다. 그 자리는 임시이사회로 채워졌다.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주도한 이규태 전 이사장과 일부 교직원들은 재판을 받는 중이다. 공익제보자들이 교육청에 비리를 제보한 덕분이다.
임시이사회가 선임된 지 약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임시이사회는 ‘구 재단 이사회’가 할 법한 결정을 연거푸 내렸다. 공익제보자 복직을 ‘보류’하기로 의결했다. 구 재단이 공익제보자들, 또는 진실탐사그룹 셜록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취하하지 않고 상급심으로 끌고 갔다.

임시이사회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 2월 셜록은, 당시 임시이사장이던 한혜빈 서울신학대 명예교수와 그의 남편이 이규태 전 이사장의 ‘측근’이란 점을 밝혔다.
셜록의 보도로 임시이사장은 교체됐다.(관련기사 : <[해결] 셜록 보도 11일 만에 ‘이규태 측근’ 이사장 사퇴>) 하지만 학교 정상화 과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다. 아직도 최은석 전 교장과 유현주 씨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으니.
우촌초 정상화의 첫 번째 과제는 공익제보자 복직이다. 구 재단 이사회가 교장 임기를 단축해 쫓아낸 최은석. 임시이사회는 그를 ‘복직 대상’에서 제외했다. 지난 6월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최은석의 재임용 심사를 재개하라고 결정했지만, 임시이사회는 아직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유현주 씨는 지난 6월 구 재단 이사회의 해고가 ‘무효’라는 법원의 1심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임시이사회가 항소해 재판을 2심으로 끌고 갔다. 구 재단이 유현주 씨를 해고한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법원의 판단에도, 임시이사회는 공익제보자의 복직을 가로막고 있다.

유현주 씨를 포함한 공익제보자들은 2019년부터 현재까지 20여 건의 고소·고발·소송 등을 당했다. 고소인은 이규태 전 이사장(75)과 일광학원, 우촌초였다. 공익제보의 대가로 약 6년째 법적 대응에 시달리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유현주 씨에 대한 ‘업무상 횡령’ 고소 사건이다. 구 재단은 2012년부터 영수증 처리가 부족한 지출내역을 모아 유현주 씨를 횡령 등으로 고소했다. 유현주 씨가 교비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유일한 형사재판. 민형사 사건은 대부분 무혐의 또는 공익제보자들의 승소로 끝났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유현주 씨는 “교비를 사적으로 사용한 적 없고 야근 식대, 회식비 등으로 사용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2023년 시작한 업무상 횡령 재판은 1심 선고를 앞둔 상태다. 이 시점에서 학부모회 등 학교 구성원들이 ‘공익제보자’ 유현주 씨가 학교로 복직할 수 없도록 엄벌해달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

탄원서 작성자는 학부모회뿐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새로 부임한 학교장과 학교운영위원회 소속 학부모 그리고 일부 교직원들 역시 유현주 씨 복직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냈다.
우촌초 구성원들은 왜 공익제보자들의 복직을 반대하고 있는 걸까. 탄원서에는 유현주 씨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학교로 다시 돌아온다면 더 이상 학교를 신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만 반복됐다.
공익제보 덕분에, 이사회를 엉망으로 운영하던 구 재단 이사들이 전부 물러났다.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주도한 이규태 전 이사장과 일부 교직원들은 1심 재판을 받는 중이다.
“유현주 씨는 복직하면 행정실로 가야 해요. 공익제보자가 다시 행정실로 가는 걸 ‘누군가’는 바라지 않겠죠.”(우촌초 공익제보자 박선유)
유현주 씨 소송대리인 정진아 변호사는 탄원서의 배경에 관해 의문을 제기했다. 정 변호사는 “공소사실 중 구체적 내역, 증인신문 과정에서 드러난 내용이 그대로 기재돼 있어 재판을 지켜본 사람의 전달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이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학교 구성원들의 ‘이구동성’ 탄원서가 누군가의 주도에 의해 작성됐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이유다.

과거에도 우촌초 학부모들은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2020년 8월 서울시교육청이 일광학원 구 재단 이사회의 취임승인을 전부 취소하기로 결정했을 때다. 당시 구 재단 이사회는 교육청의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때 학부모들은 지금과는 반대로 공익제보자들의 편에 섰다. 탄원서를 제출한 인원은 무려 366명. 구 재단 이사회를 엄벌하고, 공익제보자들을 보호해달라는 취지였다.
“사학이라는 이름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학교법인 일광학원에 엄중한 책임을 묻고 더는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들에게 피해를 행하는 행위를 할 수 없기를 바랍니다.”(우촌초 학부모 등 탄원서)
당시 학부모들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집회도 열었다. 2019년 10월 일광학원이 공익제보자들을 쫓아내자, 등록금 납부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벌어졌다.

“충격이죠. 이제 누가 죽어야 이슈가 될 것 같아요.”
지난 15일 유현주 씨를 만났다. 2023년 12월 취재 초기에 만났을 때 보다 눈에 띄게 왜소해졌다. 최근 유현주 씨는 주 7일 식당 두 곳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유현주 씨는 자신을 엄벌해달라는 우촌초 구성원들의 엄벌탄원서를 전부 읽었다면서, 한숨 쉬듯 힘 없는 목소리로 “충격 받았다”고 말했다.
유현주 씨는 6년째 공익제보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온몸이 부서지는 것만 같아도, 마음이 무너지는 것만 같아도 포기하지 않는다. 학교로 돌아가는 길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을 묵묵히 걸어나갈 뿐이다.
“우촌초는 제가 20년 동안 근무했던 학교예요. 공익제보 한 이유도, 돌아가려고 싸우는 이유도 제가 교직원으로서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계속 하는 거예요.”
지난 21일과 22일 우촌초 행정실에 두 차례 전화를 걸었다. 학교장, 교직원, 학부모회 임원, 학교운영위원회 소속 학부모가 엄벌탄원서를 제출하게 된 경위 등 입장을 물었다. 학부모회장의 연락처도 문의했다. 행정실 관계자는 “메모를 전달하겠다”고만 답변했다. 메모를 남긴 지 5일이 지났지만, 탄원서를 제출한 이들에게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