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언유착’을 끊어낼 절호의 기회가 단 한 줄의 판결로 공중분해됐다. 헌법재판소가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주문, 이 사건 심판 청구를 모두 각하한다.”

헌재는 지난달 27일, 진실탐사그룹 셜록·뉴스타파·미디어오늘이 제기한 법조기자단 개방화를 위한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각하했다.

 

‘검언유착’을 끊어낼 절호의 기회가 단 한 줄의 판결로 공중분해됐다. ⓒ주용성

지난 2020년 셜록·뉴스타파·미디어오늘은 서울고등검찰청과 서울고등법원에 출입증 발급 및 기자실 사용 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결과는 ‘거부’. 셜록 등은 이러한 거부 행위와 관련 내규에 대해 2021년 3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상 평등권과 언론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 그 이유.(관련기사 : <‘특혜 논란’ 법조기자단 문 열어라! 헌재의 판단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회 소속 변호사들(김성순, 신미용, 최용문)이 법조기자단 개방화를 위한 헌법소원과 행정소송을 대리했다. 최용문 변호사(법무법인 예율)는 4년 8개월 만에 헌재의 결정에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사건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법원과 검찰에서 다수의 기자 및 언론사들이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법조기자단 소속 기자와 언론사에 비하여 차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헌재의 결정이 나온 오늘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인권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온 곳입니다. 법조기자단 소속이 아닌 기자나 언론사들 입장에서는 검찰과 법원의 출입거부 통지에 대해 ‘직접적인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헌재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권력관계에 눈을 감은 것입니다.

최 변호사의 지적대로, 법조 출입기자단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폐쇄적인 공보 시스템 문제는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문제의식의 출발은 ‘법조기자단의 권한 남용’이었다. 현재 법조기자단에 소속되지 않은 기자들이 기자실을 이용하려면 기존 법조기자단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사조직에 불과한 법조기자단이 공공시설 출입 여부를 결정하는 꼴이다. 검찰과 법원이 기자들의 출입 결정 권한을 법조기자단에 사실상 위임한 모양새.

사조직에 불과한 법조기자단이 검찰과 법원과 같은 공공시설 출입 여부를 사실상 결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셜록·뉴스타파·미디어오늘은 2021년 3월, 서울고등법원과 서울고등검찰청을 상대로 행정소송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희망도 봤다. 1심은 세 언론사의 승리였다. 당시 1심 재판부(서울고검 행정소송)는 “서울고검은 별다른 이유 없이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대상을 법조기자단에 가입된 언론사 소속 기자들로 한정함으로써 그들에게만 사실상 특혜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관련기사 : <셜록, ‘출입증 발급 거부’ 검찰 상대 행정소송 승소>)

“피고가 별다른 법령상 근거도 없이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권한이라는 공물관리권(공공시설물 관리 권한)을 제3자인 법조기자단에게 사실상 위임한 것과 마찬가지로서 법치행정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1심 판결문 일부)

하지만 세 언론사는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헌법소원심판 청구 역시 각하됐다.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변화들도 일어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2월,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등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대우를 하지 않도록 관행이나 제도를 개선하라는 의견을 밝혔다. 셜록이 직접 법조기자단 폐쇄적 운영 문제에 대한 진정을 넣어 인권위의 의견표명을 이끌어냈다.

당시 인권위는 “언론사 간 차별적 대우로 인한 평등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특정 언론사의 취재에만 편의를 제공하고 중소 및 신생 언론사의 취재는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언론사는 공공영역에서의 중요한 결정이나 사건 등을 취재하여 이를 보도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사가 자유롭게 취재원에 접근하여 취재하고 이를 보도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인권위 결정문 일부)

국가인권위원회는 법조기자단의 폐쇄적 운영 문제를 두고 서울고검과 서울고법에 의견표명을 했다. ⓒ연합뉴스

법조기자단 개방화 소송은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주요한 주제로 다뤄졌다. 2022년 10월 당시 권인숙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은 “특정 기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건 (형평성에) 안 맞다”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검언유착’도 (법조기자단 운영에서) 나온 이야기이고, ‘특정 언론에서만 검찰발 단독 보도가 나왔다’는 비판도 제기된 바 있다”고 꼬집었다.

당시 조정훈 국회의원(시대전환, 비례대표)도 “검찰이 을과 을의 싸움을 부추긴다”며, “출입기자단이라는 권한 없는 단체에 (출입 여부 결정을) 맡김으로 인해서 검찰이 기자들 길들이기를 하는 게 아니냐”고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법조계도 직접 나섰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2023년 4월 폐쇄적인 법조기자단 출입처 제도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법원과 검찰이 법조기자단에 정보와 편의를 제공해주는 대신 이를 도구로 언론을 길들이는 행태.”

민변은 3가지 개선 촉구 사항으로 ▲법조출입처제도의 법적·사회적 문제점을 인식할 것 ▲법령상 근거 없는, 기자단 외 언론사의 취재 제한을 중단할 것 ▲조직의 편의에 안주함이 없이 법언유착, 검언유착의 여지를 끊어내는 제도적 보완에 힘쓸 것을 지적했다.

법조기자단 개방화 소송은 공고한 법조기자단 ‘카르텔’에 작지만 사소하지 않은 균열을 냈다.

“‘출입거부 처분 권한을 법조기자단에 위임했는지 여부’는 이번 소송을 통해 한 차례 매듭 지어진 걸로 보입니다. 서울고검과 서울고법이 행정소송을 통해 법조기자단에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사적 조직인 법조기자단의 의견이 기관의 출입을 결정하는 데에 결정적이진 않다’는 취지로 말했거든요.

한마디로, 법조기자단의 권위를 흔드는 법적 근거들이 마련된 겁니다.“(김성순 변호사, 법무법인 한일)

출입처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언론이 ‘카르텔 형성’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연합뉴스

출입처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언론이 ‘카르텔’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언론 길들이기’다. 기관은 출입기자단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면서 소수의 언론에게 특혜를 보장하고, ‘특종’을 매개로 해당 언론과 유착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특혜를 빼앗기도 하면서 언론을 감시견(Watchdog)이 아닌 슬리핑독(Sleeping dog)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이미 학계에선,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법조기자단에 대해 우려 섞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출입처로서의 법조는 취재원 네트워크를 구축해놓은 주류 매체가 아니면 사실확인조차 어려울 만큼 ‘거의 취재가 안 되는’ 곳이고, 법조인들은 ‘차 마시는 사이, 밥 먹는 사이, 술 마시는 사이가 다 다르고’ 단계를 뛰어넘을 때마다 제공되는 정보의 질이 달라질 만큼 특유의 폐쇄적 분위기가 있으며, 유능한 법조기자는 ‘신뢰가 쌓인 취재원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자’이며, ‘검사 집에 숟가락 몇 개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기사를 쓸 수 있는 곳’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조 뉴스 생산 관행 연구 : 관행의 형성 요인과 실천적 해법> 박영흠, 한국언론정보학회 한국언론정보학보 101, 2020. 6.)

해외 언론의 시각으로 보면, 한국의 출입기자단 문제는 더 눈에 띄게 드러난다.

“해외 주요 언론사는 좋은 기사를 쓰는 경쟁을 거쳐 소수의 기자에게만 정치 등 전문 분야를 배정했으며, 이런 전문기자들도 특정한 출입처에 상주하거나 의존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기자는 출입처 기자실에 있는 한국 기자들을 ‘세입자’에 비유했다. 가디언 기자는 ‘정부 건물 안에서 취재하다 보면 그 거품에 갇혀버릴 것’이라고 했다. 아사히 기자는 ‘일본에도 출입처 제도가 있지만, 한국 기자들처럼 출입처 자료에 의존하지 않는다. 보도자료를 ‘복붙’한 것과 진배없는 한국 기사를 보고 놀랐다’라고 했다.”(<언론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 박재영·허만섭·안수찬,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정주제 연구보고서, 2020. 10.)

헌재는 브리핑룸에서 법조 출입기자들만을 대상으로 매체별 전용 좌석을 지정해두면서 특정 언론사에 편의를 봐줬다. ⓒ셜록

이번 헌재 각하 결정을 두고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개인 페이스북에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윤석열 탄핵으로 잠깐 망각했지만, 헌재는 대체로 비겁하다. 행정법상 처분에 해당되지 않은 문제도 확대해 판단하다가 돌연 다시 행정법상 처분 개념에 묶여 본인들의 역할을 포기한다.”

행정소송부터 헌법소원까지 장장 4년 8개월이 걸린 법조기자단 개방화 소송. 셜록의 싸움은 아직 남아 있다. 헌재의 브리핑룸 ‘전용좌석제’ 문제.

헌재는 윤석열 탄핵심판 당시 브리핑룸 ‘전용좌석제’를 운영하면서, 법조기자단 중심의 폐쇄적인 공보 시스템을 확대 재생산 하는 데 앞장선 바 있다. 헌재가 법조 출입기자들만을 대상으로 매체별 전용 좌석을 지정해두면서 특정 언론사(42개)에 편의를 봐준 것.

이에 셜록은 지난 2월 인권위에 헌재의 브리핑룸 좌석지정제 운영에 대한 진정을 제출했다. 셜록이 진정을 제기한 지 어느덧 10개월. 인권위가 또 한 번 ‘차별대우를 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라’는 의견을 내놓을 수 있을지, 셜록은 계속 지켜보고 있다.(관련기사 : <탄핵심판 취재도 차별… “앞자리는 법조기자단 전용”>)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