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이 버리지 않고 오래 간직한 낡은 스마트폰이 알려준 진실은 놀랍다. 세상에 충격을 준 엽기적인 남자의 탄생, 그가 휘두른 주먹과 집단 폭행, 코뼈가 주저 앉은 여성.. 퍼즐을 맞춰 보니, 모든 일의 시발점은 이 스마트폰이었다.

벌써 5년 전 일이다. 여자는 많은 게 의심스러워 이 전화기를 경찰에 넘겼다. 철저히 수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뒤 경찰은 전화기를 돌려줬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자는 이 스마트폰을 최근 한 업체에 맡겼다. 경찰이 은폐한 진실, 혹은 무능의 증거가 과거로부터 날아왔다. 스마트폰에는 중요한 내용이 있었다. 그녀가 그토록 알고 싶어 했지만, 양진호 회장이 끝내 숨기려 했던 진실.

오래된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건, 경찰과 양진호 회장의 끈끈한 유착일까, 아니면 양진호 앞에만 서면 바짝 쪼그라드는 그들의 능력일까.

양진호 회장 전 부인이 경찰에 제출했던 스마트폰. 해킹 프로그램이 깔려 있었지만, 경찰은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었다.

<셜록><프레시안> 취재팀은 최근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전화 음성 파일도 대량 입수했다. 거기에는 양 회장이 경찰과 직접 통화하는 것도 있다. 양 회장의 이런 멘트도 나온다.

“수서니, 분당이니, 서초니, 강남경찰서 다 제 영향권에 있어서 제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거든요. 저희가 경찰에 돈 많이 갖다 부었잖아요. 벌써 10억 원은 갖다 부은 거 같은데…”

여자는 스마트폰의 진실을 알고 펑펑 울었다. 자기 삶이 경찰-법원, 그 유능하다는 최유정 변호사에게 짓밟힌 듯했다. 스마트폰의 주인은 양진호 회장의 전 부인 A씨다.

퍼즐의 조각을 들고, 잠시 과거로 가보자.

부인을 그토록 의심하지 않았다면, 양 회장은 지금처럼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거다. 일은 거기서부터 꼬였다. 양 회장이 부인 A씨와의 불륜을 의심해 대학교수를 집단 폭행하도록 교사한 때는 2013년 12월 2일.

“나는 당신의 모든 전화 내역을 도청, 감청했고 모든 내용을 다 볼 수 있어.”

그날 양 회장은 대학교수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그의 과도한 자신감과 폭행은 날이 저물어도 끝나지 않았다. 귀가한 그는 부인 A씨를 욕하고 때렸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위치추적과 회사 법무팀 사람을 시켜 몇 시간 이내에 찾아낼 수 있다.”

A씨가 “아이들이 보니 얼굴은 때리지 말아 달라”고 사정해도 양 회장은 멈추지 않았다. A씨는 경기도 과천경찰서에 양 회장을 폭행죄로 고소하면서, 도청 여부도 조사해 달라며 스마트폰을 제출했다.

폭행이 벌어지기 2주 전인 2013년 11월 20일 양 회장이 준 전화기였다.

“당신 폰 오래됐으니까, 이거 써.”

A씨는 의심 없이 이 전화기를 사용했다. 그 후 2주 만에, 양 회장은 사소한 문자메시지를 문제 삼아 부인을 폭행했다.

A씨가 양 회장의 도청을 의심한 건 당연한 일이다. 양 회장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과천경찰서는 약 1개월여 만에 전화기를 돌려줬다.

“도청 흔적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상했지만, 그래도 경찰을 믿었다. A씨는 그해 2월 이혼소송을 냈다. 폭행 혐의는 명확했다. 폭행으로 코가 주저앉고, 손가락이 골절된 상해를 사진으로 입증했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문제는 스마트폰 도청이었다. 양 회장은 A씨과 타인과 나눈 카카오톡 내용까지 상세히 알았으면서도 도청 혐의를 부인했다. 업무상 단순 실수라고 주장했다. 법원에 대략 이런 취지로 말했다.

“아내에게 준 법인폰이 ‘아이지기’(회사에서 개발중인 어린이 보호 앱)를 테스트하는 전화기였습니다. 이걸 사전에 알지 못했습니다.”

양 회장은 거짓말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내 A씨가 부정한 관계로 가정을 파탄냈다며 반소장(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을 냈다. 이 소송은 최유정 변호사가 맡았다.

결과는? 법원은 양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모든 걸 빼앗겼다. 양 회장은 1000억 원대 자산가지만, 부인에겐 살던 집 판 돈만 일부 줬다. 세 아이 양육권도 양 회장이 가졌고, 부인은 양육비를 매달 지급해야 했다.

부인 폭행으로 양진호가 받은 처벌은 벌금 300만 원이 다였다.

<프레시안><셜록> 최근 A씨 전화기를 포렌식 업체에 맡겨 분석했다. 중요한 사실이 드러났다. 양진호의 거짓말, 경찰의 은폐 혹은 무능, 법원의 오판.

양 회장은 “아이지기 앱 때문에 본의 아니게 도청이 됐다”고 주장했지만, A씨 전화기에는 해당 앱을 깔거나 지운 흔적이 없었다. 다른 무서운 게 나왔다.

양 회장이 부인에게 전화기를 주기 직전인 2013년 11월 18일, 해당 폰에는 ‘supersu’라는 해킹툴이 깔렸다. 안드로이드폰 사용자들이 보안상 문제로 설치가 허용되지 않는 앱 등을 사용하기 위해 슈퍼 유저 권한을 가져오도록 하는 이른바 ‘루팅’ 기법이다. 아이폰 사용자들이 흔히 말하는 ‘탈옥’과 같은 개념이다.

20년 경력의 보안 전문가는 “타인의 서버의 접근 권한을 가져간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루팅한 후 바로 건넸다면 도청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누가 A씨가 사용할 스마트폰에 해킹툴을 심었을까. 양 회장 사건의 참고인이자 위디스크 당시 직원인 C씨는 최근 이런 진술서를 썼다.

“2013년 11월 경으로 기억합니다. 양진호가 판교 사무실의 고○○ 자리로 찾아와서 ‘카카오톡 화면을 볼 수 있느냐’고 물어보자 고○○이 ‘그건 루팅으로만 할 수 있다’고 대답하니까 양진호가 ‘빨리 좀 부탁한다’고 말하며 휴대폰 하나를 주고 갔습니다. (중략) 양진호가 고○○에게 준 휴대폰은 삼성 갤럭시 S 시리즈 모델이었고 색상은 흰색이었습니다.”

정확히 ‘루팅’이라는 용어를 언급한다. 포렌식 분석 결과와 같다. 해킹을 시도한 시기, 휴대폰 기종과 색상 등은 A씨 진술과 일치한다.

자, 그럼 “도청 흔적이 없다”던 과천경찰서 쪽의 답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경찰은 양진호의 범죄를 알고도 은폐한 걸까, 아니면 양 회장을 돕고자 수사 자체를 안 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무능?

이쯤에서, <셜록><프레시안>이 입수한 양진호 회장의 전화 음성파일을 들어보자. 양 회장은 회사 법무담당 임OO씨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임OO : 휴대폰 관련해서는 (경찰이) 조사하지 않기로 했고, 잘만 되면 무혐의 처리를 하겠다고 했고. 일단 조사는 형식적인 조사는 받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넘기지는 않겠다고 이야기가 되어서. 가능하면 4일 날…

양진호 : 그러면 뭐 하죠 뭐. 폭행 건만 (조사)한다고요?

임OO : 예. 휴대폰 관련해서는 이야기를 안 하기로 했고요. 한 변호사를 선임을 해놨거든요. 그러한 것들이 있고 그러면 같이 이렇게 받으셔도 되고요. 혼자 가도 되고요.

양진호 : 어차피 조사관이 삐졌을 거 아니에요.

임OO : 아녜요. 다 저희 편입니다.

양진호 : 그니까요. 애엄마(ㄱ씨)한테 삐졌을 거 아니에요.

임OO : 그렇죠.

이 통화 시기는 2014년 2월 1일로 A씨가 과천경찰서에 전화기를 맡긴 지 사나흘밖에 안 됐을 때다. 통화 내용이 사실이라면, 경찰은 피해자가 제출한 양진호 범죄 증거를 고의적으로 은폐한 것이다.

이미 수차례 보도한 대로, 양 회장은 검경에 숱하게 로비를 시도했다고 한다. 과천경찰서에 로비가 통한 걸까?

취재팀은 양 회장의 로비를 의심케 하는 또 다른 단서들도 찾았다. 입수한 전화 통화 음성파일에 따르면, 양 회장은 부인 폭행 사건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경찰서로 사건을 이관하려 했다. 2014년 1월 14일 자 통화 내용이다.

양진호 : 전입신고 마쳤습니다.

임OO : 어디로요? 도곡동으로요? 일단은 이전만 되면, 그쪽에서 도곡이나 수서쪽이니까. 분당이든 어느 쪽으로 그건 다 세팅을 제가 해놨어요.

사건 이관을 위해 양 회장이 강남구로 전입신고를 하고, 양 회장의 뜻대로 수사 결과가 나올 수 있게끔 강남구 관할 경찰서는 임 씨가 손을 써놓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등본 주소 변동’을 확인해본 결과, 세대주 양진호는 실제 2014년 1월 14일에 강남구 타워팰리스로 전입했다.

임 씨는 경찰 로비 창구로 앞서 언급된 △△경사를 지목했다. 그는 “일단은 △△ 경사한테 해서 이전을 하려고, 이리저리 만나고 있다”면서 “이 친구는 조사관이기 때문에 누가 위에서 압력을 해도 안 통한다. 과장이랑 서장이랑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그걸 지금 한 번은 이제 해줬다”고 말한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경찰 로비가 단순히 △△경사에서 그친 것이 아닌, 그 윗선인 과장과 서장까지도 연관되어 있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양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경찰에게) 용돈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빨리 (이관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양 회장은 과천경찰서에서 강남구 관할로 사건 이관을 시도할 정도로 경찰을 상시 관리했던 걸까? 이번엔 양 회장이 평소 ‘멘토’로 여긴 한 목사와 2014년 1월 16일 통화한 내용을 들어보자.

“오늘(2014년 1월 16일) 조서 쓰는 날이었는데, 다른 경찰서로 이관시켜 버렸어요. 수서니, 분당이니, 서초니, 강남 경찰서 다 제 영향권에 있어서 제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거든요. 저희가 경찰에 돈 많이 갖다 부었잖아요. 벌써 10억 원은 갖다 부은 거 같은데…그걸 엉뚱한 데 써먹은 것 같아서….”

이에 대해 과천서 △△ 경사는 지난 4일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혔다.

“사건 서류를 살펴보니 양 회장이 (사건) 이송을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양 회장한테) 출석 요구를 해서 피고소인 조사를 받았고, 이후 (안양지청으로) 송치했다. 담당 형사 입장에서는 문제가 된다고 보이지 않는다. (양 회장) 로비는 나와 아무 연관이 없다.”

결과적으로 5년 전 양 회장의 도청 혐의는 경찰 단계에서 묻혀버렸다. 경찰은 수사를 했지만 능력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양 회장에게 로비를 받아 고의로 범죄 사실을 은폐한 것일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A씨는 이혼소송에서 진 뒤, 양육권을 빼앗기고 혼자 생활했다. 양진호 회장과 경찰은 별 탈 없이 지냈고, 한 여자의 삶만 무너졌다. 경찰이 제대로 수사했다면 모든 건 달라질 수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공익신고자로부터 ‘양진호-경찰 유착 의혹’ 제보를 받아 의결을 거쳐 지난 2일 대검찰청으로 제보 내용을 이첩했다.

지긋지긋한 ‘경찰-양진호 유착설’ 진실이 이번엔 밝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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