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을) 딱 한 번 봤는데, 가끔 그 장면이 저를 때리듯이 눈앞에 떠올라요.”

은지(가명, 34) 씨가 CCTV 영상을 직접 본 건, 딱 한 번이었다. 애인 준원(가명, 32)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모습. 20년지기 친구 A(32)가 한 손에 흉기를 들고 준원을 쫓아가던 장면. 3개월이 지난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지난 8월 6일 밤 준원은 친구라고 믿었던 A의 손에 살해됐다. 다음 날 언론은 ‘마포구 흉기난동 사건’, ‘마포구 흉기 살해 사건’ 등의 이름을 붙여 보도했다. 그중 일부 기사에는 CCTV 영상이 공개됐다.

은지 씨가 영상을 본 장소는 장례식장이었다. 준원의 가족이 보여준 기사에는 끔찍한 장면이 담겨 있었다.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됐지만 단번에 알아봤다.

“이 일을 겪고 유서를 썼어요. 장례를 치르고 8월 한 달 동안은 언론사에 불 지르고 저도 죽고 싶었어요. 언론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알리고 싶었어요..”

준원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보도한 언론 매체 중, 유족의 동의를 얻은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CCTV 영상은 걷잡을 수 없이 인터넷에 퍼졌다. 영상 캡처 사진을 활용한 후속 기사들이 쏟아졌다. SNS에는 영상과 캡처 사진을 2차 가공한 콘텐츠가 올라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족과 지인들은 언론과 게시물 작성자에게 일일이 연락해, 영상을 삭제하라고 요청했다.

가급적 영상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만약 필요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희생자의 존엄성, 피해자의 유족이 당하는 물리적・정신적 고통을 고려하여 해당 영상 활용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한국영상기자협회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중)

한국영상기자협회가 발간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에는 살인 사건 관련 영상 자료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자세히 적혀 있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에도 “사망자와 유가족의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언론은 희생자인 준원의 존엄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족들의 고통도 헤아리지 않았다.

준원은 자신의 마지막이 이렇게 기억되길 바랐을까. 유족은 준원의 마지막 기억을 “훼손”당했다. 언론이 스스로 만든 규칙마저 지키지 않은 결과다.

언론의 무책임은 종종 ‘공익성’과 ‘알 권리’로 포장된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 앞에서 발버둥치던 한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공개하는 게, 정말 우리 국민 다수에게 이로운 ‘공익’인가. 대체 그 어떤 국민이, 타인의 최후를 훔쳐보는 게 자신의 ‘권리’라 주장하나.

누군가의 생과 사를 가른 ‘비극’조차, 언론에겐 그저 하나의 ‘이슈’에 불과했나. 비극은 무책임하게 유출됐고, 고통은 값싸게 소비됐다. 은지 씨는 ‘준원’의 이름으로 묻는다. 그 영상 속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느냐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CCTV를 ‘따러’ 다니고 있을 언론이 답해야 할 차례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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