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억원 가치의 땅을 가진 아내가 있음에도 현직 제주도의원은 기자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너무 어려워요. 지금 우리 대출로 살고 있습니다. 까딱하다가 다 부도나겠어요. 지금 대출 빚도, 이자도 못 갚고 미치겠습니다.”
2019년 기준, 그의 아내가 소유한 제주도 농지 가격은 약 30억 원. 그 땅은 제주 제2공항 예정지 인근에 있다. 도의원의 한탄은 이상한 말로 이어졌다.
“좀 도와주세요. 기자가 기사만 쓰지 말고, 현금으로 좀 도와주세요. (농지 담보 대출금) 이자라도 좀 내게.”
선거법 위반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을 한 사람은 고용호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정말 힘들면 땅을 팔면 될 텐데, 그는 왜 기자에게 하소연일까.
<셜록>은 지난 5월 12일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위치한 고 의원 배우자 A씨 소유 밭을 찾았다. 성산읍은 고 의원의 지역구다.
내비게이션은 섭지코지를 지나, 승마장과 호텔 사이의 밭을 가리켰다. 밭은 도로와 붙어 있어 접근이 쉽다. 갓길을 따라 밭으로 들어갔다. 뒤엎어진 흙 사이로, 썩은 무가 보였다. 밭 가장자리에는 수확하지 않은 무가 많았다.
고 의원 배우자 A 씨는 지인 B 씨와 함께 성산읍 고성리에 위치한 농지와 임야 9751㎡를 12억5000만 원에 2014년 11월 5일 매입했다. 이중 농지와 임야 4876㎡가 A씨 몫이다. 그는 농업경영계획서에 자기노동력으로 감자를 기르겠다고 기재했다. ‘취득자 및 세대원의 농업경영능력‘에는 본인의 영농경력을 10년으로 적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2015년 <관보>에 따르면, A씨의 농지 매입 실거래가는 6억 5000만 원. 이중 5억 원은 대출로 충당한 것으로 보인다. A씨는 2017년 10월, 도로와 맞닿은 인근 임야 87㎡를 6000만 원에 추가 매입했다.
지인 B씨 농지는 낮은 돌담을 사이에 두고 A 씨 땅과 맞닿아 있었다. B씨 밭엔 시든 유채꽃이 누워 있었다. 농지에 들어선 컨테이너에는 이런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유채꽃 사진 촬영 1인 1000원(개인농지)
농협 ***********”
농지 한가운데 자리한 하트 모양 의자가 포토존을 알렸다.
고 의원 배우자 농지는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광치기해변과 가깝다. 걸어서 15분 거리다. 세계자연유산부터 해수욕장까지, 이전 농지 소유주가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인 이유를 알 듯했다.
해당 농지는 읍 중심지와도 가깝다. 차로 1분이면 농협마트, 우체국, 신협에 갈 수 있다. 6.1지방선거에 출마한 고 의원 선거사무소도 근방에 있다.
헌법에는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이 명시돼 있다. 농지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이용돼야 한다는 원칙이다.
정부는 2015년 11월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을 알리며 성산읍 일대로 입지를 발표했다. 고 의원 배우자 A씨는 정부 발표 1년 전 성산읍의 농지를 매입했다. 당시에도 고영호는 성산읍이 지역구인 제주도의원이었다.
제주 제2공항 예정지는 고 의원 배우자 농지에서 직선거리로 3.8km 떨어져있다. 차로 약 10분 거리다. 성산읍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C 씨는 2022년 현재 해당 농지의 시세는 평당 약 250만 원~300만 원이라고 밝혔다. 고 의원 배우자가 농지를 매입했을 때보다(평당 약 45만원) 약 6배 오른 가격이다.
“정부에서 2015년에 제주 제2공항 부지를 성산읍으로 발표하면서, 인근 농지 가격이 많이 올랐어요. 그 당시에 오른 가격이 (7년이 지난) 지금도 내려가지 않은 상태로 매물이 나와요. 도로(대로 의미)랑 맞닿은 농지는 현재 (평당) 500만 원에서 600만 원도 해요.”
C씨의 말이다. 국토교통부에서 운영하는 ‘토지이음’ 사이트에 따르면, A씨 소유 농지의 공시지가는 2022년 1월 기준 1㎡당 27만 원이다. 2015년 1월 공시지가(6만 3000원)와 비교해도 4.3배 올랐다.
고 의원은 “지난 2019년 임야와 농지를 담보로 대출받기 위해 확인한 감정평가액은 약 30억원“이라고 밝혔다.
현재 해당 농지는 제주 ‘제2공항 개발사업 예정지역 및 주변지역‘으로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분류됐다. 토지거래허가제는 투기가 나타나거나 우려되는 지역을 정부가 거래규제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제도를 말한다.
제주 제2공항은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위는 지난 12일 제주를 찾아 “항공수요 분산과 항공안전 강화를 위해 제주 제2공항을 조속히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제주 제2공항 찬성을 주도해온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도 윤석열 정부 초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기자는 5월 12일 고 의원 배우자 A씨와 전화통화를 했다. A씨는 자신있게 자경을 강조했다.
“직접 밭에 가보시면 아실 텐데, 저희 5월 초에 무 수확 끝냈어요.”
A씨는 “1년 수확물이 어떻게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제주도에서 무 농사가 2년째 다 안되는 상황이에요. 저희는 인건비도 안 나올 정도로 적자가 났어요. 올해 (농작물재해보험) 보험료 90만 원 탔어요.”
농업경영을 목적으로 약 6억5000만 원을 투자해 농지를 매입했지만, 정작 수확물은 적자 수준에 머무는 상황. 혹시 다른 목적으로 성산읍 일대 농지를 매입한 건 아닐까?
“저희는 제주 제2공항이 성산읍으로 들어올 줄 전혀 몰랐어요. 투기로 농지를 매입한 것도 아니고요. 저희가 농지를 팔아 (시세차익을) 남겼다면 투기 의혹이 제기되는 게 이해되지만, 저희는 아니에요. 단 시간에 이익을 남겨야 투기 아닌가요?”
A씨는 웃으며 이런 말을 남겼다.
“계속 지켜보세요. 저희가 (성산읍) 땅을 팔 리가 없어요.”
고용호 제주도의원에게는 16일 전화를 걸었다. 그는 농업 수확물에 대해 “2018년 정도 때는 거의 본전치기를 했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한 2019년부터 3년 동안 적자가 났다“고 설명했다.
고 의원은 “농지 매입 가격 대비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는 기자의 말에 달관한 태도를 보였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 안 했습니다. (땅을) 사고 나면은 그렇게 (수확물이 안나오는) 거를 갖고 우리가 후회한들 뭐 합니까. 계속 (농지) 갖고 있을 예정이고요. 또 굳이 땅을 팔아야 하는 이유도 없고요.”
농업으로 수익을 추구하지 않을 거면 왜 약 5억 원이나 대출받아 농지를 구입했을까?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요. 지금 우리 대출로 살고 있습니다. 까딱하다가 다 부도나겠어요. 지금 대출 빚도, 이자도 못 갚고 미치겠습니다.”
고 의원의 한탄은 부적절한 말로 이어졌다.
“좀 도와주세요. 기자가 기사만 쓰지 말고, 현금으로 좀 도와주세요. (농지 담보 대출금) 이자라도 좀 내게.”
고 의원은 당당한 목소리로 기자에게 되물었다.
“저희는 제주 제2공항 발표 이후에는 땅 하나도 안 샀어요. 그럼 된 거죠?”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관계자 D씨는 “고 의원 가족 소유 농지가 경치 좋은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걸로 알고 있다“면서 “제주도에서 무 농사를 하면서 농지 매입 가격 6억 원 벌기는 무척 힘들다“고 설명했다.
고 의원이 직접 밝힌 대로, 해당 농지 가격은 2019년 기준 약 30억원으로 매입 시점 대비 이미 5배 가까이 뛰었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이 현실화 되면 가격은 더 올라갈 수 있다. 이미 고 의원 가족은 소유 농지와 임야를 담보로 지금까지 총 20억 원 상당을 대출 받았다.
고 의원 배우자 A 씨가 농지를 구입할 때 약 1억5000만 원(대출금 제외) 들인 걸 감안하면, 돌이 황금이 된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는 이미 현실이 된 셈이다.
고용호 의원은 지난 12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서귀포시 성산읍선거구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후보자 등록을 마쳤다. 그는 부동산, 예금, 채무 등을 포함해 약 22억 원을 재산으로 신고했다.
한편, 고용호 의원은 작년 8월 보도자료를 통해 오영훈 국회의원(제주시 을)의 정석비행장 활용론을 비판했다. 오 의원은 제주 제2공항 예정지 대안으로 서귀포시 표면선에 위치한 정석비행장을 제시한 바 있다.
정석비행장은 고 의원 배우자 농지에서 직선거리로 19.3km 떨어져 있다. 차로 약 40분 거리다.
고 의원은 “오영훈 의원은 이해할 수 없는 정석비행장 활용론을 제시하면서 도민사회에 분란과 갈등을 유발시키지 말고, 본인의 농지법 위반에 대한 입장을 도민들에게 먼저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주경찰청은 부친으로부터 농지를 증여받은 오영훈 의원의 ‘농지법 위반’ 의혹 수사와 관련해 최종 불송치 결정을 작년 10월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