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말과 같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글을 쓰는 모든 이는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공직을 담당한다는 각오로 표절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스스로 각별히 주의하고 노력하여야 한다.”(법조신문, 최창호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법정단상]국외훈련검사 논문심사>, 2014. 1. 20.)

검사 ‘국외훈련’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은 검찰 내부에도 이미 존재했다. 최 검사의 말대로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공직을 담당한다는 각오”로 검사들이 국외훈련 제도에 임했다면 좋았건만,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취재 결과, 검사들의 논문 표절 문제는 사실로 드러났다.

법무부는 외국의 선진 법을 배우기 위해 검사들을 대상으로 국외훈련 제도를 운영한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7년 동안 매해 평균 71명이 훈련대상 검사로 선발됐다. 훈련 기간은 단기 6개월에서 장기 1년(최대 1년 6개월). 2010년부터 ‘검사 국외훈련 운영규정’에 따라 시행되고 있는 원칙이다.

국외훈련 기간 동안 국외훈련비도 세금으로 지원된다. 주요 지원금은 체재비(항공료, 의료보험료, 생활준비금 등 포함)와 학자금이다. 최근 7년간 검사 497명에게 지원된 세금은 303억 원으로, 검사 한 명당 평균 6100만 원을 지원받았다. 같은 기간 검사에게 급여와 직무성과금도 지급된다.

최근 7년간 국외훈련 검사 497명에게 항공료, 체재비, 학자금 등을 포함해 303억 원이 지원됐다. 자료사진 ⓒpixabay

국외훈련을 떠난 검사들의 성과를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이 바로 ‘연구논문’이다.

법무연수원 홈페이지(www.ioj.go.kr)는 심사를 거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원본을 공개하고 있다. 셜록은 공개된 논문 중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발행된 84건을 조사했다. 이 중에서 5건의 부정·부실 의심 논문을 확인했다. 셜록은 해당 검사들이 쓴 연구논문과 국외훈련비를 하나씩 뜯어봤다.

박건영 검사(사법연수원 37기)가 쓴 연구논문의 표절률은 93%에 달한다. 표절로 의심되는 연구논문 5건 중 표절률 1위다. 박 검사는 타인의 논문을 무단으로 인용한 문장으로 거의 논문 전체를 채웠다. 박 검사가 1년간 미국에서 머물면서 쓴 국외훈련비(체재비+학자금)는 약 4894만 원이다.(관련기사 : 미국에서 혈세 5천만원 쓴 검사님, 논문은 ‘표절률 93%’)

김형걸 검사(사법연수원 37기)는 같은 대학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온 선배 검사의 논문을 베낀 걸로 보인다. 연구논문 총 61쪽 중 26쪽에서 표절 정황이 발견됐다. 표절률로는 42%다. 김 검사가 중국에서 6개월 동안 사용한 국외훈련비는 약 3132만 원이다.(관련기사 : 동료 논문까지 표절… 검사님, 유학은 뭐하러 갔나요)

진현일 전 검사(사법연수원 32기)는 세금을 들여 다녀온 국외훈련 ‘스펙’을, 이직한 로펌 홈페이지에 홍보해놓았다. 그의 프로필 ‘주요저서 및 논문’란에는 표절로 의심되는 연구논문이 쓰여 있다. 진 전 검사는 현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다. 진 전 검사가 6개월 동안 미국에서 국외훈련을 받으면서 쓴 세금은 총 3092만 원이다.(관련기사 : ‘공짜유학’ 다녀와 로펌 간 부장검사… 논문은 80% 표절)

최지현 전 검사(사법연수원 36기)는 국외훈련 복귀 이후 약 1년 만에 대형 로펌 변호사로 이직했다. 그는 현재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다. 최 전 검사가 표절한 걸로 보이는 저작물은 본인의 석사학위 논문이다. 표절률은 86%에 이른다. 최 전 검사는 6개월 동안 미국에서 국외훈련비로 3058만 원을 썼다.(관련기사 : ‘재탕 논문’에 세금 3천만원 쓴 검사님, 지금은 ‘김앤장’ 근무)

셜록은 공개된 검사 국외훈련 논문 84건 중 5건의 부정·부실 의심 논문을 확인했다 ⓒ남궁현

A 검사는 2019년부터 이듬해까지 1년간 미국 골든게이트대학(Golden Gate University)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왔다. A 검사의 국외훈련 논문은 전체 50쪽 중 29쪽만 새로 작성됐다. 표절률 42%. 과거 학술대회에서 자신이 작성한 발표문을 ‘재활용’했다. 하지만 연구논문 그 어디에도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A 검사는 기자에게 “기존에 썼던 발표문은 정식 논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버전 업’ 차원으로 (국외훈련 연구논문을) 작성했다”고 적극 반론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A 검사에게 지원된 국외훈련비는 4864만 원이다. 급여와 직무성과금도 지급됐다. 그의 말대로 ‘버전 업’ 수준의 논문이라면, 굳이 5000만 원에 육박하는 세금을 들여서 미국까지 가서 써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표절’ 논문 사례로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위의 사례처럼 ‘부실’ 의심을 떨칠 수 없는 논문도 있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부정·부실 논문은 더 많을 걸로 보인다.

애초에 법무연수원은 국외훈련을 다녀온 검사들이 작성한 연구논문 전체를 자체 사이트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2023년 1월 2일 기준, 2019년부터 2022년 진행된 국외훈련 총 266건 중 84개의 논문만 법무연수원 사이트에 공개돼 있다. 비율로 계산하면, 약 30%만 공개된 셈이다.

법무연수원은 지난해 12월 27일 “국외훈련검사 연구논문 특성상 수사에 관련된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전체 공개를 하게 될 경우 수사 관련 직무수행을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어 부득이하게 연구논문 중 일부만 선별하여 공개하고 있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4년 치 국외훈련 연구논문 총 266건 중 약 30%만 원본이 공개된 상황을 고려하면, 부정·부실 논문으로 낭비되고 있는 세금의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4년 치 검사 국외훈련 연구논문 중 약 30%만 원본이 공개된 상황을 고려하면, 셜록이 확인한 표절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자료사진 ⓒpixabay

“검찰의 발전과 훈련대상 검사의 자기계발을 도모”하겠다는 국외훈련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부정·부실 논문들.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우선 표절 논문에 대한 훈련비 ‘환수’ 규정은 이미 존재한다. 공무원 인재개발법 시행령 제39조(국외훈련비의 지급)에 따르면, 다른 연구보고서와 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 지급받은 훈련비의 100분의 20을 환수할 수 있다.

셜록은 지난해 11월 16일 법무부에 “‘검사 국외훈련 운영규정’이 시행된 2010년 1월 1일부터 2022년 11월까지 위 규정에 따라 국외훈련비를 환수한 사례가 몇 건이 있는지, 있다면 환수금액은 얼마인지” 질의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5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현재까지 연구보고서, 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 해당하여 훈련비를 환수한 사례는 없다”고 답했다. 지난 12년 동안 표절 논문을 썼다는 이유로 환수된 검사 국외훈련비는 ‘0원’이다.

환수 액수가 적어 비판을 받긴 했지만, 일반 공무원의 경우 국외훈련비를 환수하고 있다. 김영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성북구갑)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국외위탁훈련 환수내역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14명의 공무원이 ’학위미취득‘ 사유로 체재비 일부를 반납했다. 환수 조치를 받은 공무원의 소속은 기획재정부, 관세청, 문화재청, 여성가족부, 교육부 등 다양하다. 이들 공무원 14명의 환수액은 총 1245만 원이다.

지난 12년 동안 표절 논문을 썼다는 이유로 환수된 검사 국외훈련비는 ‘0원’이다. 자료사진 ⓒpixabay

환수액 ‘0원’이라는 결과 이전에는 ‘부실 심사’라는 원인이 있다. 심사 제도 역시 이미 존재한다. 법무연수원은 국외훈련 연구과제로 제출된 논문을 심사하기 위해 ‘검사 국외훈련 연구결과 심사위원회’(이하 심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심사위원회는 법무·검찰 공무원이 아닌 사람으로서, 법률학, 법무·검찰 업무에 식견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포함한다.

훈련대상자는 귀국 직후 법무연수원에서 1주일간 국외훈련 지도관과의 토론 등을 통해 제출한 논문을 최종 수정 및 보완하고, 심사위원회에서 논문 발표 및 토론을 진행한 다음 소속 청으로 복귀할 수 있다.

하지만 심사위원회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든다. 심사위원회는 셜록이 확인한 부정·부실 의심 논문들을 걸러내지 못했다.

셜록은 지난해 11월 16일 “표절로 의심되는 논문 5건을 인지하고 있었냐”고 질의했지만, 법무연수원은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법무연수원은 “검사 국외훈련 연구결과 심의위원회(외부위원 포함)에서 연구 내용의 독창성, 완성도 부분에 대한 심사를 충실하게 진행하고 있고, 향후에도 관련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만 답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이미 검증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바 있다. 앞서 언급한 칼럼에서 최창호 당시 서울고검 검사는 이런 비판을 했다.

“국외에 체류하면서 공부를 하였다고 논문을 작성해 왔는데, 그 내용이 모두 국내 논문을 인용한 것이고 이미 다루어진 내용을 정리한 것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라면 ‘그냥 우리나라에서 작성하면 되는 것이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국외훈련검사 연구논문이 아니라, 그냥 외국의 제도 등에 대한 논문에 불과한 것이다.”

심사위원회가 존재하지만, 국내에서 충분히 작성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한 ‘품질 저하’ 논문 등을 걸러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 기자는 심사위원회 운영 실태를 확인하고자, 기동민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서울 성북구을)을 통해 문제의 논문 5건을 심사한 심사위원회의 구성원과 평가표 자료를 요구했다.

하지만 법무연수원은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해당 자료의 비공개 처리를 결정했다. 이렇듯 심사위원회 구성조차 불투명하게 운영하면서, 외부 감시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청렴세상” ⓒ남궁현

대검찰청 감찰위원회는 중요 감찰 사건의 감찰개시를 심의할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표절로 의심되는 국외훈련 연구논문을 작성한 검사들의 비위 사건은 셜록 보도 이후에도 대검찰청 감찰위원회에 회부되지 않고 있다.

대검찰청 감찰부장은 중요 감찰사건에 대해서는 위원회 또는 소위원회에 사건 심의를 의무적으로 회부해야 한다. 다만, 예외가 있다. 비위의 내용과 정도, 사회적 관심도 등에 비추어 징계청구 또는 의결 요구하지 않을 게 명백한 경우에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대검찰청 감찰위원회는 예외 조항에 숨어, 세금 수천만 원을 낭비한 검사들의 비위를 손 놓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대검찰청 감찰부는 ▲감찰위원회 심의 계획과 ▲징계위원회 청구 계획에 대해 “프로그램(‘카피킬러’ 지칭) 결과만으로는 표절이라 단정할 수 없으므로, 법무부 관련 부서 등과 협의 후 업무에 참고할 예정”이라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대검찰청 감찰위원회에서 감찰을 진행하지 않으니, 표절로 의심되는 국외훈련 연구논문을 작성한 검사들에 대한 징계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결국, 국외훈련비 환수 조치도, 연구논문 검증 시스템도, 비위 검사에 대한 징계 절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셜록의 취재로 확인됐다.

셜록이 직접 확인한 다섯 건의 부정·부실 논문에 사용된 혈세만 총 1억 9040만 원에 달한다. 지역아동센터 등 1904곳의 아동시설에 한 달치 난방비(보건복지부 겨울철 취약계층 지원대책 기준 월 10만 원)를 지원할 수 있는 돈이자, 저소득 어르신 4만 7600명에게 한 끼 식사를 지원할 수 있는 금액(서울시 저소득 어르신 급식지원사업 4000원 기준)이다.

국민의 혈세 수천만 원을 써가며 ‘공짜 유학’을 다녀와서는 표절로 의심되는 국외훈련 연구논문을 작성한 ‘비위’ 검사들. 셜록은 그들에 대한 환수와 징계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음 단계를 밟을 계획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글은 <얼룩소>(https://alook.so/posts/Djt6Jeo)와 동시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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