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쓰지 않으려 했다. 문제가 바로잡히면, 그러니까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이 살인미수 피해자에게 잘못 징수한 돈만 돌려주면 되는 일이라 여겼다. 

내가 순진했다. 사건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사람을 죽여본 사람. 경찰을 속여, 살인사건으로는 하루도 처벌받지 않은 그가 건보공단 하나 농락하는 건 쌀로 밥 짓기만큼 쉬웠다. 

인신매매, 노예노동, 폭행, 임금체불, 살인, 살인미수…. 나쁜 짓만 골라 한 듯한 그는 문제를 복잡하게 꼬아놨다. 

이번 이야기는 A4 용지 한 장 남짓한 ‘납부 독촉장’에서 출발한다. 

천일염으로 유명한 섬에서 노예로 20년을 산 이근만(가명, 1961년생)은 광주 북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국가는 기초생활수급자인 그에게 매달 약 55만 원을 준다. 이게 이근만 수입의 전부다. 

이근만의 임대아파트에 지난해 11월 18일 건보공단이 보낸 ‘기타징수금 납부 독촉장’이 도착했다. 그가 납부할 금액은 297만 8500원. 이근만이 기초생활수급비를 한 푼도 쓰지 않고 6개월을 모아야 납부할 수 있는 거금이다.

염전노예 피해자 이근만(가명)에게 날아온 건보공단의 독촉장 ⓒ셜록

독촉장을 보낸 건보공단 무안신안지사에 바로 전화를 했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이근만 씨, 2010년 3월 21일 ○○도 섬에 있는 ○○식당 주방에서 넘어져 칼에 찔렸죠? 그 식당은 산재보험 미가입 사업장이었습니다. 지난 2019년 9월 30일, 이근만 씨가 식당 사장님이랑 저희 지사에 오셔서 각서 쓰고 가셨는데요. 병원비 본인이 납부하신다고….”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서칭 포 솔트맨’ 프로젝트 3화 기사를 통해 밝힌 대로다.(관련기사 : <당신들이 숨긴 소금밭 살인사건… “내가 다 봤습니다”>) 이근만은 넘어져 다친 게 아니다. 식당 주인이자, 염전주였던 박대성(가명)이 자기 ‘노예’를 칼로 찌른 것이다. 박대성의 거짓과 조작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이근만이 입은 부상의 심각성은 판결문에 잘 담겨 있다. 

박대성은 피해자(이근만)을 살해할 의도로 흉기인 부엌칼로 이근만의 복부를 깊이 찔렀고 이로 인하여 피해자는 소장이 복부 밖으로 나오고 간과 콩팥까지 손상되어 대수술을 받게 되었고, 수술 이후에도 약 6주간의 안정가료를 필요할 정도로 중한 상해를 입은 점”

박대성은 이 사건을 ‘이근만의 실수’로 둔갑시켜버렸다. 앞서 말한 대로, 식당에서 넘어진 걸로 말이다. 섬의 경찰과 육지의 대형병원 의사는 ‘이 뻔한 거짓말’에 속았다. 

박대성에게 살인미수 혐의로 유죄를 선고한 판결문의 한 대목. ⓒ판결문 캡처

사건의 진상은 염전노예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2014년 4월에 밝혀졌다. 박대성은 뒤늦게 법정에 섰고, 살인미수 혐의로 5년을 교도소에서 살았다. 

박대성은 출소 직후 이근만을 찾아갔다. 그는 이근만을 건보공단으로 데려가 ‘진료비 변제각서’를 쓰게 했다. 염전노예 이근만이 ‘칼에 찔린 대가’로 스스로 지불하기로 약속한 돈은 약 500만 원.

박대성은 살인미수로 5년을 만기복역 했지만, 건보공단은 이런 사실을 몰랐다. 건보공단은 2022년 11월까지 이근만을 “식당에서 넘어져 다친 노동자”, 박대성을 “산재보험 가입하지 않은 사업주”로 알고 있었다. 

건보공단은 이근만이 칼에 찔린 2010년 3월의 병원비 중 ‘공단부담금 약 500만 원’을 박대성에게 청구했다. 박대성은 이를 다시 이근만에게 떠넘겼다. 결국, 건보공단은 이를 다시 이근만에게 청구했다. 

발달장애 진단은 받지 않았지만 자기주장과 사회성이 부족한 이근만은 이 돈을 2019년 10월부터 월 10만 원씩 변재하고 있었다. 남은 돈이 297만 8500원이다.

지난해 12월 2일, 이근만은 건보공단 무안신안지사를 찾아 “그때는 염전주인 박대성이 무서워 각서를 썼을 뿐”이라며, “이제라도 문제를 바로잡고 내가 그동안 납부한 돈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이근만은 박대성의 살인미수 판결문 등 관련 자료도 건보공단에 제출했다. 

건보공단은 “사실확인 후 문제가 있으면 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쉽게 해결될 듯한 일은 해를 넘겨서도 깜깜무소식이다. 

건보공단 무안신안지사 관계자는 3일 전화통화에서 기자에게 이렇게 밝혔다. 

“저희도 문제를 바로잡으려 하는데,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이런 형사사건의 경우는 가해자에게 구상금을 청구하는데, 여기에도 소멸시효가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법 58조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제3자의 행위로 보험급여사유가 생겨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에게 보험급여를 한 경우에는 그 급여에 들어간 비용 한도에서 그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문제는 건보공단 직원의 말대로 ‘소멸시효’다. 법에 따르면 “피해자가 범죄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내”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살인미수 사건은 2010년 3월에 발생했고, 박대성이 이근만에게 책임을 떠넘긴 건 2019년 9월이다. 그 어떤 걸 적용해도 ‘소멸시효’가 이미 지났다.

집으로 날아온 건보공단의 독촉장을 보고 있는 염전노예 피해자 이근만(가명) 씨 ⓒ셜록

건보공단은 문제 해결을 약속했지만, 해법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살인미수 범죄자의 말과, 그에게 협박당한 피해자가 쓴 ‘진료비 변제각서’를 쉽게 믿은 대가다. 

사건을 전해 들은 박공식 이팝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3일 셜록과의 전화통화에서 “건보공단은 누구에게든 공단부담금만 받으면 된다는 문화와 정서가 있기 때문에 사건의 실체까지는 자세히 살피지 않는다”며, “산재, 살인미수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문제를 바로잡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박 노무사는 “산재 인정 등을 소송으로 다퉈볼 수 있겠지만, 이것 역시 시간이 많이 지난 탓에 원하는 결론을 얻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염전노예 사건이 터진 이후 가해자 박대성과 피해자 이근만이 작성한 ‘합의문’도 변수다. 보통 합의문에는 일정 금액을 받고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다. 박대성은 병원비를 이근만에게 떠넘길 때 합의문을 건보공단에 냈다. 

한 변호사는 “민·형사상 책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합의금에 피해자의 병원비까지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등 해석과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의견을 3일 셜록에 밝혔다. 

국가배상소송에서 이근만을 대리해 2018년 최종 승소를 이끌어낸 최정규 변호사는 가해자인 박대성의 불법 기망행위(허위의 사실을 말하거나 진실을 은폐하는 행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4일 셜록과의 통화에서 밝혔다.

사업주가 고의로 노동자에게 상해를 입힌 건 명백한 산재다. 그럼에도 박대성이 2019년 9월 건보공단을 찾아가 ‘온전히 노동자 이근만의 실수로 다친 것’이란 취지의 말로 건보공단을 속여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면, 이는 불법 기망행위다. 건보공단은 이 불법행위, 그리고 자신들의 잘못에 집중해 문제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현재로선 최후 승자는 박대성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박대성은 늘 이런 식으로 버티고, 생존하고, 힘을 키웠다. 

그는 1998년 자기 염전에서 일하는 노동자 염태성(가명)의 살인을 교사해 죽였다. 당시 목포경찰서 형사들은 “염전노동자가 염전에 빠져 죽었다”는 그의 주장을 쉽게 믿었다. 박대성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2010년 3월, 이근만을 칼로 찔렀을 때도 경찰은 “자기가 식당에서 넘어진 것”이란 박대성의 말을 믿었다. 목포와 광주의 대형병원 의사들도 속았다. 여기엔 박대성의 악행에 눈을 감아준 섬 주민들의 침묵과 거짓말도 한몫했다. 여러 목격자는 수사기관에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자기 집에서 살던 염전노예를 죽이고, 칼로 찌르고, 장애를 입힌 박대성(가명) 집에 해가 지자 알록달록 불이 들어왔다. 군청 홈페이지에는 박대성의 집이 ‘쉴곳’으로 소개돼 있다. ⓒ셜록

박대성은 지금 천일염으로 유명한 섬에서 가장 화려해 보이는 집에 산다. 밤이 되면 그의 집은 화려한 전등이 켜진다. 

박대성에게 20년 착취당하고 칼에 찔려 죽은 뻔한 이근만은 10평 남짓한 임대아파트에 산다. 휴대전화 요금을 못 내 2023년 1월 현재 이용정지 상태다. 생활비가 없고 전화통화도 불가한 그는 종일 집에서만 지낸다.

기초생활수급비 월 55만 원으로 사는 이근만에게 건보공단은 ‘기타징수금 납부 독촉장’을 최근 또 보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이 글은 <얼룩소>(https://alook.so/posts/ZktOjOD)와 동시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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