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어느 날, 점심을 먹고 회사 근처 산책로에 늘어진 가을 햇살 사이를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취재하고 싶은 게 있나요?”

오후의 나른함을 뚫고 최규화 진실탐사그룹 셜록 콘텐츠총괄매니저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우-우우우 망설일 시간은 우-우우우 3초면 되는걸’ 아이돌 그룹 IVE(아이브)의 노래 가사처럼 3초 동안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다. 하지만 세상을 뒤집을 아이템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마음 한 켠에 2019년부터 꼬깃꼬깃 구겨져 있던 ‘빚’을 하나 펼쳤다. ‘숨 참고 Love dive-’ 숨을 한번 참고, 답했다.

“저… 하나 있는데요, 그, 자유로를 청소하는 사람들 이야기예요.”

자유로 청소 노동자가 도로에 떨어진 낙하물을 치우고 있다 ⓒ윤재남

부채감이 처음 마음에 자리 잡은 때는 다른 언론사 인턴 기자 시절인 2019년이었다.

그때 자유로 안전 문제를 처음 보도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하지만 정작 청소노동자들은 안전하지 못하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당시 고양시는 “안전수칙이 잘 지켜지는지 하청업체 측에 확인하고, 근로자 안전이 확보될 수 있도록 조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 오래된 부채감은 청소노동자와의 전화 통화로 다시 소환됐다. 지난해 5월, 다른 취재에 도움을 받기 위해 제1자유로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윤재남 씨와 통화를 했다. 전화를 끊기 전,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기자님. 자유로 상황 여전한데, 여긴 관심 없으세요? 그 뒤로 아직 아무도 안 죽어서인지, 아무도 기사를 안 써주네요.”

보통 산재 이야기는 누군가 죽어야 시작된다. 고(故) 김용균 씨가 5년 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사망한 뒤에야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다. 비슷한 일은 최근에도 있었다. 지난해 경기 평택 제빵공장에서 노동자가 기계에 몸이 끼어 죽고 난 뒤에 SPC 불매운동이 확산됐다.

자유로에서도 누군가 일하다 죽었다. 다만 사망사고가 오래전에 발생했을 뿐이다. 8년 전인 2015년 10월, 경기 고양시가 관할하는 제1자유로에선 약 2주 사이에 두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했다. 둘 다 아침에 혼자 갓길을 청소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과 그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2015년 당시엔 언론의 시선이 미치지 못한 탓이고, 시간이 흘렀을 땐 오래된 죽음이 된 탓이다. 또 누군가가 죽기 전에, 누군가는 자유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아, (다음 아이템으로) 그거 하면 되겠네요.”

최규화 매니저의 허락이 떨어졌다. 2022년 11월, 다시 자유로로 향했다.

또 누군가가 죽기 전에, 누군가는 자유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다시 자유로로 향했다. ⓒ셜록

자유로는 3년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차들은 쌩쌩 달렸고, 매연과 먼지 섞인 바람은 거세게 불었고, 굉음이 귀를 때렸다. 결정적으로, 위험이 여전했다.

자유로의 최고 제한 속도 시속 90km. 감시 카메라가 없는 곳에선 차들이 100km 이상으로 달린다. 노동자들은 동물 사체, 종이 더미, 타이어 등 낙하물을 주우러, 신호체계도, 횡단보도도 없는 직접 도로에 들어간다. 이때 이들을 뒤에서 지켜주는 건 1톤짜리 트럭이 전부다.

‘트럭이 지켜주는데 뭐가 문제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로 위엔 10t 이상의 화물차가 많다. 대형 차량이 트럭을 들이받는다면 트럭을 운전하는 노동자는 물론, 그 앞에서 맨몸으로 작업 중인 노동자도 위험하다.

바로 이 때문에 보통 고속도로 유지 및 관리 업종에서는 안전 매뉴얼이 필수적으로 마련돼 있다. 노동자가 도로 한가운데서 작업할 때는 ‘충격흡수장치를 장착한 대형 트럭’을 두 대 이상 배치한다. 사망사고 등 대형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땐 관리주체가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러나 경기 고양시가 관할하는 자유로에는 이 모든 것이 지켜지지 않았다. 고양시는 자유로 청소 업무를 민간 업체에 위탁한 채 안전 문제를 외면했다.

“지금도 눈에 선하죠 뭘. 일 끝나면 같이 소주 한잔 하러 갔던 사람들인데. 사고가 나는 장면은 못 봤고, 현장은 봤어요. 피 묻은 신발이랑 철조망에 걸쳐 있던 옷가지랑, 그런 거를…. 한동안 도로에 못 나갔어요. 무서워서. 저도 걸어다니던 도로거든요.”

20년 넘게 이 일을 해온 박주만(가명) 씨는 자신이 2015년 산재 사고로 숨진 동료처럼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말했다.

자유로에서 보고 느낀 것과 노동자들의 불안함을 담아 르포 기사를 썼다.(관련기사 : <죽어야 시작되는 이야기… 우리는 자유로의 ‘유령’입니다>) 자유로의 다른 구역을 관리하는 파주시, 서울지방국토관리청과 고양시 관할 자유로의 상황을 비교했다.(관련기사 : <같은 ‘자유로’인데… 파주에는 있고 고양에는 없는 것>) 2015년 산재 사망사고 이후 국토교통부가 안전 매뉴얼 마련을 지시했지만, 고양시에서 이를 무시했다는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관련기사 : <‘자유로 안전매뉴얼 만들라’ 국토부 공문도 무시한 고양시>).

셜록의 주보배 기자가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셜록

지난 1월 12일 첫 기사를 공개한 뒤로, 모두 8편의 기사로 보도를 이어갔다. 고백하자면 사실 나도 ‘아무도‘의 장벽에 자주 갇혔다. 기사가 하나둘씩 공개될 때 자주 생각했다.

‘아무도 이 문제에 관심 없으면 어떡하지….’

이 생각은 때때로 의심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면 어떡하지….’

다행히도, 내 생각은 틀렸다. 보도 후, 자유로 안전 문제를 향한 크고 작은 관심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셜록의 친구(유료 구독자)인 왓슨들부터 공감을 보내줬다.

“사람이 로드킬당하는 상황을 언제까지 방관해야 하는가?“

“저분들의 안전이 중요한 건데 답답하네. 저분들의 노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도로를 이용하는 건데 말이지.”

왓슨들이 SNS에 남겨준 댓글, 기사를 공유하면서 남긴 문장을 보면서 불안과 의심을 잠재웠다.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취재에 도움을 준 고양시민 왓슨도 있었다.

이 관심을 바탕으로 셜록은 지난달 16일, 자유로 청소노동자,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고양지부,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와 함께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노동자도 시민이다. 안전문제, 고양시가 해결하라!” 노동자들은 고양시청 앞에서 직접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들의 관심은 고양시의 입장 변화도 이끌어냈다. 고양시 자원순환과는 지난 2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안전 매뉴얼을 시가 직접 만들 순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난 16일, 이동환 고양시장은 제272회 고양시의회 임시회에서 ▲시 자체 안전 매뉴얼 마련 ▲노동자 후방 보호를 위한 노면 차량 상시 배치 등을 약속했다.(관련기사 : <셜록이 해냈다… 고양시장, “자유로 안전매뉴얼 마련” 약속>)

지난달 31일 셜록은 <로드킬: 남겨진 안전모>로 2023년 3월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했다 ⓒ셜록

그리고 지난달 31일, 셜록은 민주언론시민연합으로부터 2023년 3월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받았다. 역시, 기사를 읽고 퍼뜨려준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아무도’라는 장벽은, ‘누군가’가 하나둘씩 보내는 관심이 깨부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달의 좋은 보도상 주인공은 나만이 아니다. 연말이면 시상식에서 늘 등장하는 이 뻔한 말을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 상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아무도‘라는 막막한 단어를 깨는 ‘누군가’가 돼준 바로 당신과 말이다.

셜록은 계속해서 고양시 관할 자유로가 청소노동자, 시민 모두 안전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하는지 지켜볼 계획이다. 이동환 고양시장이 약속을 이행하는지 살필 것이다.

셜록이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더 있다. ‘누군가’의 시선이 필요하지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곳,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곳, 그곳을 찾아서 여러분과 함께 변화를 만드는 일이다.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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