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비가 온 뒤엔 계절이 변하듯, 어떤 소송은 그 결과로 온 세상을 바꿔놓는다.

광장은 차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인 2009 5~6, 경찰은 집회는 물론 시민들의 통행을 저지하기 위해 전경 버스를 줄 세워 서울광장을 에워쌌다. 시민단체 참여연대 활동가 9명은 경찰의 차벽 통행 제지는 위헌이라며 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활동가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 이후 광장에 차벽이 세워질 때마다 시민들은 헌재의 판결을 근거로 공권력 과잉 진압을 비판했다.

이처럼 개인이 제기했지만 승소하면 그 영향이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미치는 소송을 공익소송이라고 한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경찰이 서울광장을 전경버스로 둘러싸 시민들의 통행을 제지한 행위는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결정했다 ⓒ셜록

사례는 더 있다. 지체장애인인 A 씨가 2012년 제기한 공익소송 결과로, 법원은 해당 지하철역에장애인 화장실을 남녀 구분하여 설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해당 판결을 초석으로 다른 공공시설에도 문제가 제기됐고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성별 구분 없는 장애인 화장실 설치를 차별 행위로 규정하며 한 행정복지센터에 시정을 권고했다.

정보공개 청구 소송도 대표적인 공익소송이다. 지난해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한 정보공개 청구 행정소송에서 이겼다. 그 결과 ▲스쿨미투 발생 학교명 ▲가해교사 직위해제 여부 등이 담긴 정보가 공개됐다.

공익소송은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 등 국가기관으로부터 받은 피해를 보상받는 수단이기도 하다. 지난 12일 납북귀환어부 11명은 재심을 통해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평생 간첩이란 낙인과 함께 살아온 어부들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봄을 맞을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사례는 모두 승소한 사례다. 하지만 반대로 공익소송에서 패소하면 상대편 변호사 비용까지 포함된 막대한 소송비용을 물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패소자에게 상대편 소송비용까지 부담하는 제도를 택했는데 소송비용 관련법 중 어디에서도 공익소송을 감면이나 면제 사유로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사소송법 제98조에는소송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한다고 명시돼 있다. 같은 법 제99조 및 제100조에는 법원이 재량으로 소송비용 전부 혹은 일부를 승소한 쪽에 부담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법원이 재량을 발휘해도 되는 범위에공익소송인 경우는 없다.

대법원 규칙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등에는 소송비용에 산입하는 것이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법원이 상당한 정도까지 감액 산정할 수 있도록 한다. “현저히 부당한 사례”에 공익소송은 포함되지 않는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아예 소송비용을 회수해야 한다는 의무만 명시되고 회수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내용이 없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사무실에서 만난 조미연 변호사는 “소송비용 감액 기준에 공익소송인 경우를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셜록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소송을 주로 수행한 조미연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법원이 재량으로 소송의 공익성을 고려해 소송비용을 감면해 준 사례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감면 결정을 해준 사례 중에 경제적 사정을 반영해준 경우는 봤어요. 하지만 적어도 제가 아는 사건 중에서는 법원이 공익소송이란 이유로 소송비용을 감면해준 사례는 없습니다.”

공익소송이란 이유로 소송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법이 없으니 돈 때문에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긴다.

전남 신안군 신의도에서 이른바 ‘염전노예’로 일하며 강제노동에 시달린 김주찬 씨(가명, 1973년생) 2014년 어머니에게 몰래 편지를 보내 탈출에 성공했다.(관련기사 : <염전노예를 ‘삼촌’이라 불렀던 청년의 오래된 비밀>)

김 씨를 비롯한 염전노예 피해자 7명은 국가가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을 묻기 위해 2015년부터 대한민국 정부, 전남 신안군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고 김주찬 씨를 비롯한 4명의 염전노예 피해자는 항소심을 포기했다. 소송비용이 너무 큰 부담이었다.

염전노예 피해자들을 법률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심에서 이긴 신안군 측에서 총 약 700만 원의 소송비용을 피해자들에게 청구했어요. 이 비용이 (피해자들을) 되게 위축시킨 거예요. 결국 김주찬 씨를 포함한 4명의 피해자는 항소를 포기했죠. 2심에서 결과가 뒤집어졌지만 항소하지 않은 피해자분들은 손해배상금을 받지 못했어요.”

최정규 변호사는 국가를 상대로 한 공익소송의 의미를 ‘진실의 판을 뒤집어 까보자는 것이라 표현했다.

국가를 상대로 한 공익소송이 중요한 이유는, 소송이 아니고서는 받아볼 수 없는 답을 받아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법원이 재판에 필요한 문서를 제출하라고 명령을 할 수 있잖아요. 국가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료를 확보할 수 있죠. 일단은 다 까뒤집어서 이 판에서 잘잘못을 가려보자는 거예요.

염전노예 피해자 분들의 소송도 일차적으로는 피해 구제가 목적이었지만 ‘다음 피해 예방’이라는 또 다른 목적도 있었어요. 피해자는 계속 나타나는데 국가 손배소를 해서 책임을 명확히 해야 선례가 남는 거라고 봤거든요. 소송이 잘못된 행정 시스템을 복구하고 다음 피해를 예방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어요.”

2014년 염전노예 사건이 터졌던 섬 내부의 염전 모습 ⓒ셜록

재판청구권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공익소송 패소자 부담 제도개선TF 위원으로 활동했던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는 이런 상황이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봤다.

억울한 점이 있다면 누구든지 그걸 재판에서 다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사법부의 존재 이유예요. 비유하자면, 공익소송은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의 울타리에 대한 문제제기입니다. 울타리가 개선되면 그 안의 모두가 이익을 보는 구조인 거죠. 하지만 그 일에 큰 돈이 든다면 누가 쉽게 나설 수 있을까요?

공익소송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표출되고 반영되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조미연 변호사는 국가기관, 대기업 등 힘의 차이가 큰 피고를 상대하는 공익소송의 특성상 재정적 부담을 덜어주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너무 작아서 우리가 인식조차 못하는 목소리를 사회에 반영시키는 수단이 공익소송이라고 생각해요. 공익소송을 주로 하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이이것도 인권이야?‘라고 물을 만한 사건을 많이 맡았어요. 저는 그 질문이 재판정에 표출될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하는 거죠. 근데 돈이 없으면 이 질문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국가기관이 소송비용을 미회수하는 경우도 있다. 승소한 국가기관 및 지자체가 소송비용확정신청만 진행하고 추심 등 이후 절차는 밟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오로지 국가기관의 마음에 달려 있다.

실제로 국민권익위원회는 2021년에 351개 공공기관에 소송비용 관련 내부규정이 있는지 살펴보고기관별 상세 규정이 미흡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351개 기관 중 14%(48)는 규정 자체가 없고, 17%(59)는 소송비용 회수 근거가 없었다.

권익위는 2021년 보고서공공기관 소송비용 업무처리 개선에서미회수를 위한 예외 사유로는 상대방의 경제적 무자력 등 불가피한 경우도 있으나 회수 실익 없음, 기관의 이미지 훼손 등 실무상 자의적 해석이나 주관이 개입된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관련법이 없으니 당연히 기관 내 규정도 없고 주관적인 판단하에 소송비용 회수가 이뤄지고 있는 것.

국가기관에 소송비용 회수 기준에 대한 규정은 없지만 회수를 의무화하는 제도는 있다. 한마디로 ‘사건의 공익성 여부와 관계 없이, 소송비용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거둬들이라는 거다. 감사원, 권익위 등은 국가기관에 소송비용 회수를 요구한 바 있다.

감사원은소송비용 미회수를 국가기관 지적사항에 포함했다. 2018 4월 통일부 등 7개 기관에 대한 재무감사 보고서에서소송비용 회수 업무 처리 부적정을 들어 지적이 이뤄졌다. 감사원은 공익소송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 없이 국가기관에 소송비용 회수를 요구하고 있다.

권익위 역시 2021 351개 공공기관을 상대로 소송비용 회수업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소송비용 회수를 권고했다. 권익위는승소한 후 소송비용을 회수하지 않고 방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예산 누수 및 공직자의 직무유기 의혹 등 문제제기가 지속됐다는 점을 실태조사 배경으로 설명했다.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를 대리해 판사의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소송을 진행한 최정규 변호사 ⓒ주용성

검찰 내부에는 소송비용 감면에 공익성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규정이 있어도 상위법이 없어 힘이 약하다.

서울고등검찰청 예규인 소송비용 회수 등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국가의 승소가 확정된 사건의 주임검사로 하여금 상대방에게 경제적 자력이 없는 경우, 과거사 손해배상사건·집단소송 등 상대방에게 소송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판단한 경우 등에서 소송비용 회수를 포기할 수 있다(위 지침 제6).

그러나 상위법령에서 명확한 근거를 규정하고 있지 않아 구속력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공익소송의 활성화를 위해 법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다.

송상교 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위원은 대한변호사협회가 2020년 주최한 토론회공익소송 패소자부담, 공평한가?’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이렇게 서술했다.

이미 서울고등검찰청소송비용 회수 등에 관한 지침에서는 공익소송 등에 대한 소송비용 회수 포기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대외적 구속력이 떨어지는 위와 같은 지침으로 이를 두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 상위법령, 구체적으로 대통령령 수준에서 공익소송 등에 대한 환수 제한의 근거 규정을 두는 것이 타당하다.”(<공익소송 소송비용 패소자부담의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 제도개선 방향> 송상교, 2020. 1. 8.)

개선안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민사소송법 개정이다. 패소자 부담 원칙을 명시한 민사소송법에 공익소송을 포함하는 예외 조항을 만들자는 것이다박주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은평구갑)이 지난해 6월 대표발의한 민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대표적이다.

이 개정안은 민사소송법 제99조의2를 신설하자는 게 주요 내용이다. 여기에 패소자 부담 원칙의 예외를 명시해인권,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등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한 사건인 경우, 법원이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해야 할 소송비용의 전부 혹은 일부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다.

박주민 의원은 동시에,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하는 안도 내놨다. 공익소송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국가의 소송비용 회수를 제한하도록 하는 기준을 마련하자는 내용이다.

대법원 규칙을 개정하잔 목소리도 있다. 법원은 소송비용을 산정할 때 대법원이 정한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을 감액의 근거로 삼는다. 이 규정엔 예외가 있는데, 법원이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상당한 정도까지 감액 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현저히 부당한 사유”에 공익소송을 추가하자는 의견이다.

하지만 예상되는 반박도 있다. 공익소송을 패소자 부담 원칙의 예외로 하는 법 조항을 만들자는 의견에 많이 제기되는 반박은 ‘공익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공익소송은 패소자 부담 주의에서 예외로 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 의견을 메신저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셜록

이에 박호균 변호사는법에는 다른 추상적 개념이 많다고 답했다.

우리 법에는 추상적 개념이 많아요. 민법에는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신의와 성실 모두 추상적인 개념이죠. ‘과실역시 그렇습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과실이라고 볼지 굉장히 어렵잖아요. 법에서 추상적으로 다루는 개념은 대부분 중요한 개념이에요. 칼로 무 자르듯 정의할 수 있으면 좋은데 어려운 거예요.

중요하다는 건 그만큼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는 의미죠. 공익도 다른 불확정 개념처럼 법에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가 또 공익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아예 안 한 게 아니잖아요. 연구 자료, 토론회에서 발제된 의견 등이 굉장히 많으니 참고하면 되지요.”

조미연 변호사 역시왜 유독 이 사안(공익소송)에만 개념을 딱 정해야 한다는 판단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재반박했다.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결정을 내리면서 공익의 개념을 언급한 적이 여러 차례 있어요. 이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패소자 부담주의에 공익소송이란 예외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공익소송을 정의하려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이를 참고해서 명문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판례가 쌓여가면서 공익소송의 성격 역시 차츰 자리 잡아 가리라 봅니다.”

또 다른 반박은, 공익소송에 소송비용 면죄부를 주면 소송이 남용된다, 즉 남소(濫訴) 현상이 일어날 것이란 의견이다. 하지만 박호균 변호사는남소는 사회적 약자의 재판청구권부터 보장하고 나서 걱정할 일이란 입장이다.

재판청구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소를 지적하면 모순 아닌가요? 재판청구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고, 사법부의 존재 이유 자체가 권리 구제인데 말입니다.”

사회가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공익소송이 패소자 부담 원칙에 갇혀 있다우리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변화의 물결이 패소자 부담 원칙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진 않은지.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