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2월 의료법인 백제병원의 ‘입막음용 소송전’에서 최종 승소했다.

충남 논산에 있는 백제병원은 병원의 비리 의혹을 보도한 셜록 소속 기자를 대상으로 2020년 약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법원 모두 원고 백제병원의 요구를 기각했다. 백제병원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이 원심의 판결을 확정하면서 최종 패소했다.

이 소식이 전해졌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던 사람이 있다.

소식 듣고 너무 좋아서 기쁜 마음을 속으로 달랬습니다! 너무 축하드려요.”

그는 바로 백제병원의 비리를 세상에 알린 공익신고자, 김인규 씨.

셜록은 지난 2020년 프로젝트 ‘논산의 자랑, 백제병원의 배신’을 통해 백제병원의 각종 비리 의혹을 보도했다. 이때 백제병원의 각종 비리를 직접 제보하고, 또 다른 제보자를 연결해준 이가 김인규 씨다.(관련기사 : <“나는 백제병원 수술실의 불법 유령이었다”>)

우리나라는 패소자에게 상대편 변호사비용까지 부담하는 ‘패소자 부담주의’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공익소송을 제기했을 때도, 패소하면 막대한 소송비용을 물어야 한다 ⓒpixabay

김인규 씨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백제병원과의 소송전에서 셜록을 법률 대리한 변호사가 말했다.

“아, 이분 민사소송에서 패해서 많이 힘들어했던 걸로 아는데..”

김인규 씨는 2019년 백제병원이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셜록의 승소에 누구보다 기뻐했지만 정작 자신은 백제병원과의 소송전을 겪으며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백제병원과 소송전을 시작하고 나서 밤에 누웠는데, 심장이 떨리고, ‘이대로 다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황장애였어요.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건 큰 문제더라고요. 제가 하는 일이 출장이 잦거든요? 운전 중에 졸다가 사고가 날까 봐 너무 불안한 거예요.”

김인규 씨가 셜록에 백제병원의 불법 행위를 제보해서 보도가 이뤄진 건 2020년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도 김인규 씨는 공익신고와 공익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는 왜 백제병원을 향한 감시를 계속하고 있을까.

“따뜻한 물만 제대로 나왔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예요.”

싸움의 시작은 ‘온수’였다. 김인규 씨는 2017년 낙상사고로 백제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가 따뜻한 물로 씻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분명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데 어머니의 상태는 날로 악화했다. 이를 의심한 김인규 씨는 의무기록지를 확인했다. 이때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의료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심이 생겼고, 그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백제병원의 불법 행위를 알게 됐다. 

‘논산 백제병원의 비리를 제보받습니다.’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 백제병원에 관련된 제보를 받는다는 글을 올리자 환자와 가족들, 그리고 병원 내부 관계자들로부터 연락이 쏟아진 것.

지난 3월 27일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서 김인규 씨를 만났다 ⓒ셜록

김인규 씨는 제보를 모으고, 자체적으로 검증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국민권익위원회, 경찰서 등 감독기관에 신고했다. 셜록을 비롯한 언론사에 제보를 넣는 역할도 수행했다. 그 결과 ▲무자격자(PA, 진료보조인력) 수술 ▲주치의 조작 ▲의료비 과다 청구 ▲가짜 현금계산서 발행 등 백제병원의 불법 행위가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어머니는 2019년 11월 사망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백제병원의 불법 행위를 찾아 감독기관에 신고하는 공익신고를 이어가고 있다. 직접 고소 및 고발을 해서 재판도 진행하고 있다.

“백제병원이 의료법을 위반한 행위를 지금도 제보받고 있어요. 진료기록부 허위 작성, 진료비 부당 청구 건으로 제가 직접 공익소송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최근에 많이 지쳐 있었는데. 이렇게 기자님께서 찾아와 주시니 힘이 나네요. 이제는 제 말을 들어주려는 언론사가 많지 않거든요. 아직도 제보할 게 많이 남았는데도요.”

지난 3월 27일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인규 씨는 분명 미소 짓고 있었지만 힘에 부쳐 보였다. 그의 자조 섞인 웃음을 보고 왜 지금도 공익신고와 소송을 이어가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역시나 웃으면서 말했다. 

누군가는 알려야 하잖아요. 병원에서 불법이 일어나고 있다고.”

백제병원과의 소송에서 이겨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낮엔 생계를 위해 일하고 밤엔 제보를 바탕으로 증거 자료를 만들어서 공익신고를 한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김인규 씨는 2020년 호루라기재단에서 주는 호루라기상을 수상했다. 호루라기상은 개인적 불이익을 무릅쓰고 부정과 비리를 고발한 공익제보자에게 수여한다.

“상금을 함께 받았지만 저를 위해 쓰진 않았어요. 백제병원 불법 행위를 제보해주셨거나 소송에 나선 분들께 작은 사례를 돌리고 여러 의료 시민단체에 후원을 하고 나니까 오히려 상금보다 많이 썼더라고요. 소송하느라 쓴 돈은 제가 다 부담했어요. 사실 저는 저도 지금 종종 그런 생각을 해요. 이걸 내가 해봤자 나한테 이득이 없는데 내가 이걸 왜 할까. 그나마 찾은 정답은,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단지 그게 나일 뿐이라는 거예요.”

‘찾아와 주는 언론사가 없다’는 그의 말에서 외로움이 느껴졌다. ‘내가 이걸 왜 할까’라는 말에는 일종의 무력감이 깔려 있었다.

김인규 씨는 의료법인 백제병원의 비리를 제보한 공을 인정받아 2020년 ‘올해의 호루라기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인규

공익소송의 가장 큰 특징은, 승소하면 그 영향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거다. 공공기관, 지자체, 대기업 등이 잘못된 행위를 바로잡으면 이로 인한 이익은 소송을 제기한 사람에게만 가지 않는다. 하지만 변화를 위해 나서는 데는 너무 많은 기회비용이 필요하다. 혹시나 소송에서 지게 되면 상대편 변호사 비용까지 물어줘야 한다.  

“소송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한다.”

민사소송법 제98조에 명시된 패소자 부담 원칙 탓에 생긴 ‘정의 비용’이다.

민사소송법, 대법원 규칙 등 현행법에는 공익소송에서 패소한 이에게 소송비용 부담에 예외를 두는 규정이 없다. 패소했다면 상대편 변호사비용을 포함해 수백 혹은 수천만 원의 소송비용을 모두 책임지라는 ‘올인(all-in)’ 소송법인 셈이다. 

프로젝트 ‘정의 비용 : 법원의 이상한 계산법’을 연재하면서 만난 사람들 역시 김인규 씨처럼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섰지만 패소 후 막대한 소송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용산기지를 원래 계획대로 이전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용산 주민들에게 국방부는 약 1000만 원의 소송비용을 내지 않으면 압류 등 강제집행을 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관련기사 : <약속 어긴 건 미군인데, ‘천만원’ 청구서는 용산 주민에게?>)

산양 28마리와 행정소송에 나선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는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법원에 소송비용을 담보로 맡겨둬야 했다. 소송비용 930만 원을 법원에 미리 맡겨두지 않으면 소 자체가 기각될 수 있는 ‘소송비용 담보제공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산하 대표가 소송에 나선 이유는 강원도와 양양군이 추진 중인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이 생태를 해친다는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였다.(관련기사 : <나는 설악산 ‘산양’… 대한민국 법원은 내가 안 보입니까>)

국가로부터 억울한 피해를 보고도 국가와의 소송전에서 지거나 혹은 ‘일부만’ 승리했다는 이유로 막대한 소송비용을 청구받은 사례도 있었다. 2008년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 사찰의 피해자 김종익 씨는 총리실 관계자와 더불어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이 김종익 씨가 겪은 피해 중 일부만 인정했기 때문에 국무총리실로부터 소송비용 약 2500만 원을 청구받았다.(관련기사 : <‘불법사찰’ 가해자가 김종익에게 청구서를 보냈다>)

김종익 씨의 소송은 개인 사정에서 출발한 소송일지라도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고, 다음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성격이었다. 이런 소송에서조차도 법원은 패소자 부담 원칙을 들이밀었다.

공익소송 인포그래픽 해외사례 비교
세계 각국의 공익소송 비용 부담 완화 제도 비교 ⓒ진실탐사그룹셜록

다른 나라는 어떨까. 세계 각국에서는 공익소송의 경우, 패소하더라도 소송비용에 대한 부담을 경감해주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변호사 보수를 각자 부담한다. 다만 인권, 소비자보호, 고용관계, 환경보호 등에 관한 소송에 대해서는 ‘편면적 패소자 부담주의’를 택하고 있다. 편면적 패소자 부담주의는 원고가 승소하면 상대방에게 변호사비용을 청구할 수 있지만 반대로 패소하면 상대방의 변호사 보수를 부담하지 않는 것이다.

영국은 우리나라처럼 패소자 부담 원칙을 채택했지만 공익소송이 위축되지 않도록 보완책을 뒀다. 바로 ‘보호적 비용명령(Protective Cost Order, PCO)’ 제도다. 이는 법원이 사건의 성격을 고려해 원고가 물어야 할 소송비용을 면제하거나 상한을 설정하는 제도다. 법원이 보호적 비용명령을 내릴 때 중요하게 살피는 것이 바로 사건의 공익성이다.

(영국) 법원은 ①사건의 쟁점이 공익적인 중요성을 가지거나, ②사건에서 문제 되는 쟁점과 공익적 문제가 관련된 경우 또는 ③보호적 비용명령을 신청한 자가 사건의 결과와는 아무런 사적인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는 경우, ④신청인의 재정상황을 고려할 때 보호적 비용명령을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⑤보호적 비용명령이 인정되지 아니할 경우 신청인이 절차 진행을 중단할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 보호적 비용명령을 내릴 수 있다.(<공익소송 소송비용 패소자부담의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 제도개선 방향> 송상교, 2020. 1. 8.)

캐나다 역시 소송의 공익성을 고려해 법원이 소송비용을 면제할 수 있다. 캐나다 ’연방 법원 규칙(Federal Courts Rules)’ 중 소송비용에 관한 내용은 400번째 규칙에 나와 있다. 그 중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법원은 소송비용의 금액, 할당, 비용을 지불할 사람을 결정하는 재량권을 가진다.”

이처럼 소송비용에 대한 전적인 재량권을 가진 법원이 비용을 결정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가 바로 공익성이다. 법원이 비용부담 명령을 할 때 “소송을 제기하는 데 따른 공익이 특정 (소송)비용 지급 명령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따지고 있다(400번째 규칙 – h항).

셜록은 지난 1일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을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했다 ⓒ셜록

“신기한 것들에 한눈팔지 말고, 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세요. 중요한지 아닌지 생각도 안 해본 것들에 대해 쓰세요. 질문 자체가 답이에요. 어떤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에요.”(≪무한화서≫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2015년)

이성복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공익소송은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는’ 방법의 하나다.

셜록은 김인규 씨처럼 공익소송을 수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하고, 때로는 직접 소송에 나서기도 했다. 당연해 보이는 제도나 현상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서였다.

대표적으로 셜록은 뉴스타파, 미디어오늘과 함께 2021년 법조기자단 개방화를 위해 직접 행정소송에 나섰다. “법조기자단에 속하지 못한다면 법원 기자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출입증 발급도 받지 못하는 게 당연한가?”라는 질문을 법원에 던지기 위해서였다.

또 검사들이 세금을 지원받아 ‘공짜유학’을 다녀와 놓고 국외훈련 논문을 표절하는 행태를 뿌리뽑기 위해, 지난 1일 법무부와 법원연수원을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범죄 사건을 수사하고 법원의 심판을 구하는 검사가 표절이라는 범죄를 저질러도 묵인하는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다.

민주주의 사회는 누군가 앞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해 구성원들끼리 토론하고 고민하는 과정 가운데서 발전한다. 질문을 먼저 하는 데 너무 큰 돈이 필요하다면 누가 쉽게 나설 수 있을까. 김인규 씨처럼 괴로움과 무력감에 시달리게 된다면, 누가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까.

오는 7월 초, 국회에서는 패소자 부담 원칙의 폐해를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셜록은 이 자리를 참여연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과 함께 꾸리고 있다. 앞으로도 셜록은 지는 쪽이 모든 것을 잃는 ‘올인’ 소송법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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