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소송 하고 싶다고요? 돈 천만 원 있으신가요?’

사법개혁위원회는 2005년 자료집에서 공익소송을 아래와 같이 정의했습니다.

‘약자 및 소수자의 권익 보호, 국가권력으로부터 침해된 시민의 권리구제 등을 통하여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송.’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 제기하는 공익소송. 그런데 공익소송에 나서려면 일단 돈부터 있어야 합니다.

왜 이럴까요? 주보배 기자가 영상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화. MB는 지고도 웃었고, 김종익은 이기고도 울었다
2화. ‘불법사찰’ 가해자가 김종익에게 청구서를 보냈다
3화. 약속 어긴 건 미군인데, ‘천만원’ 청구서는 용산 주민에게?
4화. 나는 설악산 ‘산양‘… 대한민국 법원은 내가 안 보입니까
5화. 차별은 맞지만 1000만원도 내라니… 인정 못하겠습니다
6화. 돈 없어서 소송 포기한 염전노예… 이런 일 없으려면
7화. 돈 없으면 덤비지 마! ‘올인’ 소송법이 한국을 망친다

■ 유튜브 방송 : 진실탐사그룹 셜록 ‘가보자고’
■ 진행 및 촬영 : 김보경 기자, 김연정 기자
■ 출연 : 주보배 취재기자

○주보배 기자: 안녕하세요 진실 탐사그룹 셜록의 주보배 기자입니다

◎김연정 기자: 이번에 한 아이템은 뭘까요?

○주보배 기자: 이번에 제가 취재한 아이템은 제가 서 있는 이곳, 법원과 관련이 깊은 아이템인데요. 공익소송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김연정 기자: 공익소송? 공익소송이 뭔가요?

○주보배 기자: 네, 혹시 작년에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 2022)를 기억하시나요? ‘우영우‘에 등장했던 대사 중에 이런 문장이 있는데요. ‘그깟 공익사건이 뭐라고 수십억짜리 고객을 놓쳐!’ 이 대사 속 ‘공익사건‘이 이번에 제가 취재한 아이템이에요. 공익소송은 ‘약자 및 소수자의 권익 보호, 국가권력으로부터 침해된 시민의 권리구제 등을 통하여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송‘입니다.

◎김연정 기자: 공익소송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주보배 기자: 네, 돈이 한 천 만원쯤 있어야 공익소송을 할 수 있습니다.

◎김연정 기자: 천만 원이요?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주보배 기자: 사실 이 ‘천만 원‘도 제가 대표적으로 제시한 숫자고, 이보다 더 많이 들 수 있습니다. 소송비용은 항소심, 대법원으로 가면 더더욱 불어나거든요.

◎김연정 기자: 왜 그렇게 돈이 많이 드나요?

○주보배 기자: 우리나라는 패소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고 있는데요. 내가 소송에서 졌을 때 즉, 패소자가 되면 승소한 상대편 변호사 비용까지 다 물어줘야 하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이 공익소송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이번 기획에서 다뤘습니다.

◎김연정 기자: 그렇군요. 그런데, 원래 소송할 때는 돈이 들지 않나요?

○주보배 기자: 그렇죠, 돈이 다 들죠. 다만 보통 소송은 원래 개인의 권리 구제나 개인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서, 즉 개인만을 위해서 제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익소송은 그게 아닙니다. 공익이라는 말 자체가 사회 전체의 이익이라는 뜻이거든요.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 제기한 소송인데, 졌다는 이유로 나 혼자서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되는 것은 부당하지 않나’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기획입니다.

◎김연정 기자: 오호, 그런 사례가 있나요?

○주보배 기자: 네, 첫 번째 사례가 산양 소송인데요. 최근에 환경부에서 설악산의 오색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사실상 허가해서 많은 논란이 됐었죠. 이 사업을 일찌감치 막아보려는 시도가 있었어요. 오색 케이블카 설치로 인해서 설악산 생태가 망가진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하기 위해서 사냥 28마리와 같이 공동 원고로 소송을 제기하셨던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인데요. 이분을 인터뷰하고 왔어요. 이 사건은 (특이한 점이) 법원이 재판을 시작하기 전부터 소송비용 담보 제공 명령을 내린 점인데요. 법원이 원고에게 ’930만 원을 법원에 맡겨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가 각하될 수도 있다‘고 한 거예요. 사실상 돈 930만 원이 없으면 재판을 받을 수조차 없었던 거예요.

두 번째 사례는 서울시 용산에 사는 주민 33명이 국방부를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인데요. 용산에는 미군기지가 있잖아요. 그 미군기지의 가장 중심이 한미연합군사령부(이하 한미연합사)인데요. 주민 소송단은 국방부에 ‘한미연합사를 원래 계획대로 이전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래 한미연합사를 평택으로 (2008년까지) 이전했어야 했는데 (자꾸 미뤄지다가) 결국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잔류시키기로 결정했어요. 용산 주민들은 2015년에 “한미연합사 이전은 국회 비준을 받아서 처리한 건데 이 결정을 대통령이 미군의 요구대로 손바닥 뒤집듯이 바꿔도 되는 거냐” 이런 의문을 제기하려고 소를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주민소송단이 패소해서 1000만 원 정도를 국방부 측에 물어줘야 하는 사건이었어요. 국방부가 주민 소송단 측에 “소송비용을 안 내면 강제 집행이 이뤄질 수 있다“는 공문서를 보내서 주민소송단이 모금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사실 공익소송에 공익소송을 좀 넓게 보시는 분들은 국가나 지자체, 정부 이런 국가 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은 모두 다 공익소송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있어요. 실제로 국가로부터 입은 내 피해를 보상받으려고 국가에 소를 제기했다가 되레 국가에 돈을 지불하게 되었던 사건이 있어요.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있었던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 사찰의 피해자 김종익 씨인데요. 민사 소송은 동전 뒤집기처럼 승패가 갈리지 않아요. ‘일부 승소’ 이런 표현을 쓰는데, 그분 같은 경우는 일부만 승소를 했다는 이유로 국무총리실에 오히려 소송비용 2500만 원을 내야 하는 처지에 지금 놓여 있습니다.

◎김연정 기자: 말씀하신 세 가지 중에서 인상 깊었던 사례나 사람이 있나요?

○주보배 기자: 저는 인터뷰한 모든 분이 인상 깊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 두 분이 계세요.

첫 번째 분은 용산 주민소송단 33명 중에 가장 첫 번째로 원고 이름을 올리셨던 권오창 씨인데요. 그분이 나이가 내년에 아마 아흔이세요. 용산 미군 기지가 철수하면 그 부지에 생태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 있었어요. 권오창 씨가 원래는 이태원 초등학교 근처에 사셨거든요. 거기가 이제 용산 기지 바로 근처인데 공원 조성 소식이 들리니까 땅값이 막 올라서 쫓겨나듯이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가셨거든요. 그러니까 이분이 소송에서 주장한 대로 미군 기지가 빨리 다 빠져나가고 거기가 공원이 되면 오히려 손해인 거예요. 그런데도 거의 80대 후반의 나이에 이 소송에 뛰어드신 점이 좀 인상이 깊었습니다.

두 번째로 아까 말씀드렸던 김종익 씨 인터뷰도 굉장히 기억에 남습니다. 국무총리실에서 민간인을 사찰한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더라고요. 그분이 대형 금융권 기업의 자회사에 다녔는데 (국무총리실에서) 모기업에 압박을 넣어서 그분이 직장을 잃게 됐고, 또 가족들까지 언론의 지나친 관심도 받았고. 경찰뿐만 아니라 검찰 조사도 다니면서 모욕도 겪었는데도 그 일을 굉장히 담담하게 말하셨어요. 인상 깊었던 문장을 적어왔는데요.

“그 사건 속에서 제 나름대로 성찰과 배움을 얻었어요. 권력에 의해 개인이 비참하게 휘둘렸지만 인간에 대한 제 믿음은 약해지지 않았어요”

이 말에서 분노에 잠식되지 않고 삶을 잘 꾸려나가겠다라는 의지가 보여서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김연정 기자: 혹시 돈이 없어서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나요?

○주보배 기자: 네, 실제로 있죠. 사실 재판 청구권은 헌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권리예요. 내가 억울한 일이 있거나 뭔가 내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을 때 재판을 누구든지 차별받지 않고 청구할 수 있어야 해요.

염전노예 피해자 중에 한 분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를 하셨어요. “국가가 제대로 관리 감독을 하지 않아서 내가 신안군이라는 섬에서 제대로 된 보수를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을 했다“고 책임을 묻는 소송이었는데 1심에서 패소했어요. 이분이 항소심을 포기하셨습니다. 소송비용은 항소심 그리고 대법원까지 올라가면 더더욱 늘어나는데 염전노예 피해자분들은 짐작할 수 있겠다시피 재정적으로 여유롭지가 않은 분들이 많아서 그분이 울며 겨자 먹기로 항소심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김연정 기자: 우리나라만 이런 건가요? 다른 나라는 공익소송이라고 하는 비용을 좀 감면해 주나요?

○주보배 기자: 사실 소송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달라요. 우리나라처럼 “네가 졌어? 그럼, 네가 소송비용 상대편 거까지 다 내!” 하는 나라도 있고, 소송의 결과와 상관없이 변호사 비용은 각자 부담하자 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패소자 부담 원칙을 택한 나라에서도 공익소송이 위축되지 않도록 보완책을 두고 있어요. 실제로 영국에서는 보호적 비용 명령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이게 뭐냐면 법원이 사건의 성격을 좀 고려해서 원고가 물어야 할 소송비용의 상한을 설정하거나 아니면 면제해 주기도 하는 명령인데요. 법원이 보호적 비용 명령을 내릴 때 좀 중요하게 고려하는 게 바로 사건의 공익성입니다.

◎김연정 기자: 그럼 우리나라도 제도를 좀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주보배 기자: 네,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되게 꾸준히 표출돼 왔어요. 이제 공익소송에는 패소자 부담 원칙에 예외를 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64개 시민사회단체가 대법원에 공동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고요. 관련한 국회 토론회를 두 차례나 열기도 했고요. 실제로 법 개정을 위해서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어요. 또 법무부에서도 공익소송에는 좀 별도의 예외가 좀 필요하지 않겠느냐 하는 권고를 내린 적도 있어요.

◎김연정 기자: 방법은 다 있는데 추진이 안 되는 상황이네요

○주보배 기자: 네 맞아요. 그래서 사실 셜록이 한 번 더 이 이슈를 좀 밀어보기 위해서 오는 7월 초에 다시 한번 국회 토론회를 같이 다른 단체랑 준비를 하고 있어요. 이 자리에서 실제로 공익을 위해서 소송을 제기했지만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안아야 했던 사례자분들이 직접 나와서 발언도 하시고 어떻게 이 제도를 바꿀 수 있을까 하고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주보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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