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소송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보통 ‘돈 없고, 힘없고, 빽(배경) 없는’ 사람들이잖아요.”(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

‘돈, 힘, 빽(배경)’은 없지만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공익소송에 나섰던 사람들이 국회에 모였다.

사법개혁위원회는 2005년 공익소송을 ‘약자 및 소수자의 권익 보호, 국가권력으로부터 침해된 시민의 권리구제 등을 통하여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송’으로 정의했다. 이처럼 공익소송은 개인이 아닌 사회 모두를 위해 제기하는 소송으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반영하거나 부당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제기돼왔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4월부터 프로젝트 ‘정의 비용 : 법원의 이상한 계산법’을 통해 소송에서 진 사람이 상대편 변호사 비용까지 부담하는 ‘패소자 부담 원칙’으로 인해 공익소송이 위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첫 기사 : <MB는 지고도 웃었고, 김종익은 이기고도 울었다>)

셜록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민사회 단체들과 함께 토론회를 개최했다. ‘패소자부담주의 일률적용, 공평한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는 지난 5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열렸다.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패소자부담주의 일률적용, 공평한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셜록

“용기, 노고, 그리고 비용을 들여 공익소송을 했는데 패소 시 상대방 소송비용까지 내야 한다면 과연 어느 누가 (공익소송을) 하겠습니까?”(백제병원 불법 행위 공익제보자 김인규 씨)

“안 그래도 동물권 관련 소송에 나서는 사람이 없는 상황인데, 패소자 부담주의까지 바뀌지 않는다면 소송할 사람은 없습니다.”(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패소자 부담주의로 인해 공기업, 대기업 등을 한 싸움에 접근하기 쉽지 않습니다.”(권재현 한국장애인총연맹 사무국장)

“소송비용 때문에 시민단체 활동, 특히 정보공개 청구 소송이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최용문 변호사)

토론회 전반부는 공익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 후 경제적 부담에 시달려야 했던 이들의 증언으로 꾸려졌다. 증언에는 ▲의료 소비자 권리(백제병원 불법 행위 공익제보자 김인규 씨) ▲환경 및 동물권(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장애인 인권(권재현 한국장애인총연맹 사무국장) ▲정보공개 청구(최용문 변호사·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실행위원) 등 분야별로 네 명이 나섰다.

네 명의 증언자는 모두 “패소자 부담주의로 인해 공익소송이 제약되고, 위축된다”고 입을 모았다. 

의료법인 백제병원의 불법 행위를 알린 공익제보자 김인규 씨 ⓒ셜록

첫 번째로 증언에 나선 김인규 씨는 의료법인 백제병원의 불법행위를 공익신고했다. 김 씨의 공익신고로 백제병원이 그동안 ▲무자격자 수술 ▲주치의 조작 ▲가짜 현금계산서 발행 등의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자 백제병원이 김 씨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걸어왔다.(관련기사 : <돈 없으면 덤비지 마! ‘올인’ 소송법이 한국을 망친다>)

“소송 과정에서 백제병원 측 변호사는 ‘SNS에 제보받지 마라’, ‘권익위 등 기관에 신고도 하지 말라’고 회유하는 ‘협의 조정 조건문’을 보냈습니다. 스스로 ‘입막음식 소송’이라는 걸 인증한 셈입니다. (…) 7년 동안 백제병원과 싸우면서 건강이 악화했고 허리협착증, 공황장애 등을 겪고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과연 저처럼 할 수 있겠습니까? 저 역시 정말 많이 힘듭니다. 공익소송, 공익신고와 함께 인생이 송두리째 뽑힐 수도 있습니다.”

이후로도 김 씨는 공익신고 활동을 멈추지 않고 현재 백제병원을 ‘사기’ 등의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또 앞으로도 백제병원이 저지른 불법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민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도 공익소송에 나서고 싶다’는 그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섰다는 이유로 또다시 백제병원으로부터 명예훼손 및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6년 전에도, 보건복지부 행사 자리에서 발언에 나섰다가 백제병원으로부터 소송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도 이 자리에 섰습니다.(…) 법이 바뀌어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누구든지 공익을 위해 소송에 나설 수 있도록 말입니다.”

발언하는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셜록

두 번째로는 김산하 생명다양성 사무국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산양 28마리와 함께 2015년 공익소송에 뛰어들었다. 강원도와 양양군이 추진하는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 사업’이 산양의 서식지를 포함해 설악산 생태를 망가뜨린다는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였다.(관련기사 : <나는 설악산 ‘산양’… 대한민국 법원은 내가 안 보입니까>)

김 사무국장은 지난 4월, 셜록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어쩌면 질 걸 알면서도 시작한 싸움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도 모든 역사는 변화를 위해 쌓은 디딤돌이 축적된 결과잖아요. 어쨌든 시도함으로써 돌다리가 하나 쌓이는 거라고 생각했죠.”

재판부는 동물을 소송 당사자로 인정한 적이 없다. 즉, 산양 28마리를 원고로 내세운 이 소송도 패소 확률이 높았다. 김 사무국장은 패배를 감수하면서도 법원에 ‘설악산과 산양의 입장에서,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검토해달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냉혹했다. 원고 측에게 ‘법원에 미리 소송비용 930만 원을 담보로 맡겨둬야 한다’는 소송비용 담보 제공 명령을 내린 것. 이 돈을 내지 않으면 소는 그대로 각하(패소)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승소 확률이 적은 환경소송의 특성상, 패소자 부담 원칙은 소송에 나서는 데 아주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연구원들은 대부분 공공기관에 속해 있어서 국가 정책을 비판하기 힘듭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동물권을 위한 소송에 나서는 사람이 안 그래도 없는 상황에서 ‘패소자 부담주의’는 또 하나의 아주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소송에서 이겨도 개인적으로 이득을 볼 게 없습니다. 설악산이 있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한 사람의 국민, 그리고 자연인으로서 얻는 이익만 있을 뿐이지요. 이런 소송을 시작하는 데 일정 수준의 사유재산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부당합니다. 사실상 동물권에 관한 목소리는 버려지는 상황이 됩니다.”

권재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처장이 토론회에서 증언하는 모습 ⓒ셜록

다음으로 권재현 한국장애인총연맹 대표가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서울교통공사 측에 제기한 소송을 소개했다.

한국장애인총연맹에 소속된 두 활동가는 각각 다른 지하철역에서 열차와 승강장 사이 간격에 전동휠체어 바퀴가 끼는 사고를 겪었다. 두 활동가는 2019년 서울교통공사가 장애인 승객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등 차별행위를 했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패소였고, 원고 측은 서울교통공사에게 약 천만 원의 소송비용을 내야 했다.(관련기사 : <차별은 맞지만 1000만원도 내라니… 인정 못하겠습니다>)

권재현 대표는 공익소송이 장애인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주요한 통로라고 말했다.

장애인 분들에게 안전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권리가 없어서 시작한 소송입니다. 장애인이 차별받는 현실을 개선하고 권리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서 공익소송을 많이 제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요. 그런데, 패소자 부담주의 때문에 부담을 느낍니다. 이제는, 이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 순서는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진행한 최용문 변호사였다.

참여연대는 2018년 인사혁신처에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일했던 퇴직 공직자의 취업 심사자료를 달라고 정보공개 청구했다. 공무원 퇴직 후 유관기업으로 손쉽게 재취업하는 ‘관피아’ 관행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인사혁신처는 관련 자료를 비공개 처분하고 참여연대의 이의신청도 기각했다.

이에 참여연대는 2018년 인사혁신처에 “정보 비공개 처분을 취소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대법원규칙 ‘민사소송 등 인지규칙’에서는 정보공개 청구 관련 소송의 소가를 일률적으로 5000만 원으로 규정했다. 대법원규칙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소가가 5000만 ~ 1억 원대인 소송의 변호사 비용은 440만 원이다.

“소송은 두 개로 나눠서 제기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소송 모두 참여연대가 패소해 소송비용이 각각 440만 원씩, 총 880만 원 정도 청구됐습니다. 인사혁신처가 소송 비용 독촉장을 40여 차례 보내왔고, 아마 지금도 보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패소자 부담 원칙으로 인해 정보공개 청구 소송, 나아가 시민단체 활동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간접적인 방식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우려됩니다.”

최용문 변호사는 “패소 확률이 높고 공익성이 짙은 정보공개 소송에도 패소자 부담주의를 적용하는 건 가혹하다”고 말했다 ⓒ셜록

2부가 시작되기 전,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이번 토론회를 열게 된 취지에 관해 설명했다. 한 공동대표는 시민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창구로 법원을 찾는다는 점을, 패소자 부담주의가 개선돼야 하는 이유로 들었다.

“국회나 대통령의 행정부를 통해서 어떠한 자기의 문제를 공적인 이슈로 만들려면 상당히 많은 품이 필요합니다. 국회 같은 경우 일단 국회의원을 알아야 하고요, 행정부도 마찬가지죠. 하급 공무원만 통해서는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기 어려워요. 그래서 사람들이 법원으로 향합니다. 법원의 역할이 대의제 체제에서 대표를 강화하는, 또는 대표를 보완하는 그런 또 다른 방식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한 대표는 사회운동의 한 방식으로서 공익소송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법원에 제기된 소송이 알려지면, 국가기관이 관심 있게 바라보는 공적 의제가 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자신들의 요구사항들 의제들을 공적인 의제로 만들고 아주 실질적인 내용을 가지고 토론을 하고 다툴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장으로 법원을 이용했던 거죠. 사회운동의 한 방식으로서 법원을 이용하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문제는 법원에 대한 접근성을 제약하는 가장 큰 요인이 재판 비용의 패소자 부담주의라는 점입니다.

공익소송 제기하는 사람들이 보통 돈 없고 힘없고 빽(배경)없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사람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준다는 것은 사법 접근권, 재판 접근권에 대한 또 하나의 제약이자 진입장벽인 것입니다.”

‘정의 비용 : 법원의 이상한 계산법’ 프로젝트를 통해 패소자 부담 원칙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주보배 기자도 이날 토론자로 참여했다 ⓒ셜록

토론회 2부에서는 전문가들이 구체적으로 패소자 부담 원칙을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발표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그간 ▲민사소송법 일부 개정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 개정 등 관련법 개정을 통해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컸다.

첫 번째로 발표에 나선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는 민사소송법 개정 방향에 대한 의견을 구체적으로 논했다. 더불어 패소자가 상대편 변호사 보수까지 내는 ‘패소자 부담주의’가 아니라, ‘각자 부담주의’로 가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개진했다.  

이어서 조미연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가 ‘외국 입법례를 통해 본 공익소송 인정 기준’을 제목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공익소송은 ‘패소자 부담주의’의 예외로 두자”라는 의견에 대표적으로 제기되는 반박은 ‘공익’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조 변호사는 공익소송 인정기준을 규정한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캐나다 사례를 들어 “해당 사례들을 참고해서 우리도 충분히 공익소송을 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익소송 인포그래픽 해외사례 비교
각국의 공익소송 비용 부담 완화 제도 비교 ⓒ셜록

다음으로는 유형웅 판사(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가 판사의 시선에서 본 개정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다. 끝으로 기자가 ‘현장에서 본 공익소송 패소 비용의 문제’를 발언하는 것으로 토론회가 마무리됐다.

이번 토론회는 진실탐사그룹 셜록,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박주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양정숙 국회의원(무소속), 정보인권연구소, 전국언론노조, 진보네트워크센터,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참여연대가 공동 주최했다.

 

취재 주보배 기자 treausre@sherlockpress.com
사진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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