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입장에서 협조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요?“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소송은 검사의 말 한마디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11월 25일, 표절 의심 연구논문을 쓴 검사의 입장을 듣는 반론 취재를 할 때였다. 정식으로 취재 요청을 했지만 언론·홍보를 담당하는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공보담당 검사는 ‘협조’를 운운했다. 그동안 취재해왔던 그 어떤 기관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멘트였다. 공보담당 검사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학위논문이 아닌데 표절 여부를 심사하는가요? 제가 상식이 부족해서 여쭙는건지 모르지만 학위논문 아닌 경우에 표절을 심사한다는 걸 못봤습니다. 학술지에 해당 표절 의심 검사의 논문이 공개되고 게재되었나요?”
검사의 표절 여부보다 심사 유무에 초점을 맞춘 답변. 비유하자면,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지 않는다면, 숙제를 안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 심지어 법무연수원은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을 묶어 매년 연구논문집으로 발행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다녀온 국외훈련 연구논문에서 심각한 표절이 의심된다는 기자의 설명에도, 공보담당 검사는 단호했다. 책임 기관인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에 물어보라고. 그러고 나면 ‘검토는 해보겠다‘고. 이후 공보검사는 기자의 어떤 연락에도 더 이상 응대하지 않았다.
그대로 굴할 수는 없었다. 기자는 지난해 11월 29일 직접 서울남부지검을 찾아갔다. 용건은 간단했다. 서면질의서를 공보담당 검사에게 전달하는 것. 서울남부지검 안내데스크를 찾아갔다. 담당 직원은 눈도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공보담당 검사님과 약속 잡고 오세요.“
기자 명함을 내밀고, 사정을 설명해도 끄떡없었다. 질의서 종이만 전달해달라는 부탁에 ‘너 같은 악성 민원인은 많이 상대해봤다’는 눈빛만 돌아왔다. 철옹성 같은 검찰청 입구를 넘지 못했다. 결국 표절 의심 검사도, 공보담당 검사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가재는 게 편이고 초록은 한 빛이라 했나. 국민의 혈세로 국외훈련을 떠난 뒤 표절이 의심되는 부정·부실 연구논문을 작성한 검사와, 이들을 관리하는 검찰은 한편이었다. 조직은 비위가 의심되는 개인을 보호하는 데 오히려 앞장섰다. 사법 정의를 실현해야 할 검찰이지만, 오히려 본인들의 문제엔 눈 감았다.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이날의 경험은 도리어 취재를 추진하는 원동력이 됐다. 끝까지 가보고 싶었고, 그래야만 했다.
셜록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프로젝트 ‘표절 검사의 공짜 유학’을 보도했다. 국외훈련을 다녀와 표절로 의심되는 부정·부실 논문을 쓴 비위 검사들의 문제를 기사 9편을 통해 보도했다.(관련기사 : <유학은 공짜, 논문은 표절… ‘검사’를 고발한다>)
법무연수원 홈페이지(www.ioj.go.kr)에 공개된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발행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84건에서 부정·부실 의심 논문 5건을 확인했다. 셜록은 해당 검사들이 쓴 연구논문과 국외훈련비를 하나씩 분석했다.
‘표절률 1위’는 박건영 검사(사법연수원 37기)의 논문이다. 표절률이 무려 93%에 달했다. 박 검사는 미국으로 1년 동안 국외훈련을 떠났다. 박 검사의 연구논문은 타인의 논문을 무단으로 인용한 문장으로 거의 전체를 채웠다. 박 검사의 논문과 원자료를 비교했을 때, 박 검사가 새로 작성한 문장의 수는 전체 563개 문장 중 39개(7%)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선배 검사의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검사도 있다. 김형걸 검사(사법연수원 37기)는 중국에 위치한 같은 대학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온 선배 검사의 논문을 베낀 걸로 보인다. 셜록이 두 논문을 비교한 결과, 김 검사의 논문 총 61쪽 중 26쪽, 약 42%에 해당하는 페이지에서 표절 정황이 발견됐다.
표절로 의심되는 연구논문을 써놓고, 대형로펌으로 이직한 부장검사도 있다. 진현일 전 검사(사법연수원 32기)는 연구논문 총 92쪽 중 73쪽, 약 80%의 페이지를 표절로 의심되는 문장으로 채웠다. 진 전 검사는 6개월 동안 미국 캘리포니아로 국외훈련을 다녀왔다.
진 전 검사는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10부장 직을 마지막으로 검사 옷을 벗었다. 그는 ‘빅6’에 속하는 대형로펌인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로 이직했다. ‘법무법인 세종’ 홈페이지에 공개된 진 검사의 프로필에는 표절로 의심되는 연구논문이 아직도 홍보되고 있다.
본인의 학위논문을 ‘재탕’ 작성한 사례도 있다. 최지현 전 검사(사법연수원 36기)는 본인의 석사학위 논문을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가져와 연구논문의 약 80%를 채웠다. 최 전 검사 역시 6개월 동안 미국 캘리포니아로 국외훈련을 다녀왔다. 최 전 검사 역시 현재는 검사 옷을 벗고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부정까지는 아니지만, 부실에 가까운 논문도 함께 지적했다. 오○○ 검사는 과거 학술대회에서 자신이 작성한 발표문을 국외훈련 연구논문에 ‘재활용’했다. 미국으로 1년 동안 국외훈련을 다녀온 오 검사는 연구논문 전체 50쪽 중 29쪽만 새로 작성했다. 하지만 연구논문 그 어디에도 과거 발표문에 대한 출처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5건의 부정·부실 의심 논문에 사용된 세금만 총 1억 9040만 원에 달한다. 저소득 어르신 4만 7600명에게 한 끼 식사를 지원할 수 있는 금액(서울시 저소득 어르신 급식지원사업 4000원 기준)이자, 결식아동 2만 7200명에게 한 끼 식사를 지원할 수 있는 돈이다(보건복지부 권고 기준 7000원).
▲”남의 지적 재산을 출처 제시 없이 무단 도용하는 게 표절이고, 표절은 다른 말로 ‘지적 도둑질’이라고 하지.”(sanl****)
▲”6개월 ~ 1년을 가서 공부하고 논문을 쓴다고? 지금 장난하냐? 유람이라고 써야 맞지. ‘세금으로 유람하고 왔다’가 맞지, 무슨 개소리 지껄이는겨.”(lugi****)
▲”저런 제도 없애는 게 낫지, 왜 내가 낸 세금으로 공짜유학을 보내주는 거냐? 1인당 6천? 웬만한 사람 연봉이다.”(musa****)
– 기자가 ‘시사in’에 기고한 기사 <세금으로 유학 다녀온 검사들, 제출한 논문은 표절?>(2023. 1. 24.)에 달린 댓글 일부
서울서부지방검찰청 ⓒ남궁현
셜록은 취재 과정에서 숨겨진 진실을 발견했다. 법무연수원 사이트에 올라온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이 원본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법무연수원은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중 일부만 공개하고 있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 사이 국외훈련을 떠난 검사들의 연구논문은 449건이다. 하지만 법무연수원 사이트에 공개된 연구논문 개수는 같은 기간 184건밖에 되지 않는다. 절반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공개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3년 치 84건 중에서만 부정·부실 의심 논문이 5건이나 확인됐다. 해당 국외훈련에 지원된 비용은 2억 원에 육박한다. 모든 논문을 대상으로 검증을 진행한다면, 부정·부실 논문으로 낭비된 세금의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는 상황. 공개되지 않은 연구논문에는 얼마나 더 많은 문제가 숨어 있을지 현재로선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셜록은 지난 3월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을 상대로 아래와 같은 내용의 정보공개를 청구한 바 있다. 하지만 두 기관 모두 공개를 거부했다.
▲ 2016년~2022년 국외훈련을 다녀온 검사가 작성한 연구논문 중 법무연수원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논문을 제외한 나머지 논문 전체
▲해당기간 동안 국외훈련을 다녀온 검사들의 학위취득 현황
▲검사국외훈련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성명, 소속 등
법무부는 전체 국외훈련 연구논문이 모두 공개될 경우 “연구논문이 재판에 관련된 정보로 공개될 경우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거부 사유를 설명했다. 학위취득 현황과 검사국외훈련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관련 정보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로서,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법무부의 논리는 사실상 검사만의 특권을 주장하는 셈이다. 일반 공무원(중앙 정부부처)의 경우 국외훈련 연구논문 전체와 학위취득 현황을 전부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 공무원의 경우에도 ‘지방공무원 교육훈련 운영지침’에 따라, 국외훈련 연구보고서를 기관 홈페이지 등에 게시하여 정책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실제 셜록이 지난해 10월 17개 시도 지자체에 소속 공무원의 장기 국외교육훈련 결과보고서 원본과 지원 액수 등을 정보공개 청구했을 때 17개 지자체 모두 결과보고서 원본을 전체 공개했다.
학위취득 현황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인재개발법 시행령 제39조에는 “계획한 학업 과정의 이수나 학위 취득 등 국외훈련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지급한 훈련비의 100분의 20을 환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일반 공무원의 경우 학위 취득 여부를 확인하고, 만약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국외훈련비를 실제로 환수까지 하고 있다. 2020년 김영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성북구갑)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국외위탁훈련 환수내역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14명의 공무원이 ’학위미취득‘ 사유로 체재비 일부를 반납했다.
반면, 지난 12년 동안 국외훈련 논문 부정을 이유로 환수된 검사 국외훈련비는 ‘0원’이다. 공무원 인재개발법 시행령 제39조(국외훈련비의 지급)에 따르면, 다른 연구보고서와 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 지급받은 훈련비의 100분의 20을 환수할 수 있다.
하지만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5일, 셜록이 제기한 국민신문고 민원 답변을 통해 “(검사의 경우) 현재까지 연구보고서, 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 해당하여 훈련비를 환수한 사례는 없다”고 답했다.
논문은 숨기고 의혹은 감추기 바쁜 법무부. 결국 셜록은 ‘소송’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셜록은 지난 1일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을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했다.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의 도움을 받았다. 정보공개센터 운영위원 박지환 변호사(법무법인 혁신)가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대리했다.
셜록이 소송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다. 국민 혈세를 써서 다녀온 검사들의 ’공짜유학‘ 결과물인 국외훈련 연구논문을 제대로 쓰라는 것. 그리고 검사도 다른 일반 공무원들처럼 같은 기준으로 관리·감독 받으라는 것.
박지환 변호사는 “검사 국외훈련제도 운영의 투명성 제고에 행정소송이 좋은 수단이 될 것으로 본다”며, “좋은 결과가 나와 최근 개인정보보호 등을 이유로 공공기관의 주요 정보가 무분별하게 비공개되는 현실에 일대 변화가 왔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셜록의 소송 제기에 따라, ‘피고’인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은 답변서를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첫 재판기일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한편, 셜록은 지난 5년간 세금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와서 표절로 의심되는 연구논문을 작성한 검사 5명(박건영, 김형걸, 진현일, 최지현, 오○○)에 대한 부패행위 및 공익침해행위 신고서를 지난 1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했다. (관련기사 : ‘공짜유학’ 다녀온 검사 5명, 부패행위로 신고했습니다)
권익위는 최근 표절 의심 검사 5명에 대한 ‘부패행위’ 건을 법무부로 송부해 자체 조사하도록 처리했다. 향후 법무부는 자체 조사 후 그 결과를 신고자인 셜록에게 통보해야 한다. 또한 그중 3명(박건영, 김형걸, 진현일)이 해당되는 ‘공익침해행위’ 건은 한국저작권보호원으로 송부됐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이 이들의 저작권법 위반 여부를 가릴 예정이다.
셜록은 조사기관을 통해 표절 의심 검사들의 비위를 밝히고, 최초의 검사 국외훈련비 환수 사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번 정보공개 소송으로 검사들의 국외훈련 연구논문 전체 공개까지 이끌어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표절 검사’들을 추적할 예정이다.
“협조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요?”라고 묻던 공보검사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세금 수천만 원씩을 들여 다녀온 검사들의 국외훈련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게 ‘협조’의 대상일까. 아니다. 국민들에게는 공개를 요구할 권리가 있고, 국민을 섬기는 공직자들은 그것을 밝힐 ‘의무’가 있다.
국민들은 모두 알지만 검찰만 모르고 있는 그 ‘이유’를, 셜록은 소송을 통해서라도 꼭 알려줄 생각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