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표절 의심 검사에 대한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조사 결과는 과거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을 했던 한 연예인의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권익위는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베낀 걸로 보이는 표절 의심 검사 3명에 대해 “공익신고 검토 결과 표절로 볼 수 있다”면서도, 검사의 연구부정행위 검증 책임주체는 법무부라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도 결정하지 않았다.
권익위는 저작권법 위반이 의심되는 검사 3명에 대해 “행정상, 형사상, 신분상 조치사항에 해당없다”는 결론을 지난 7일 통보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권익위에 직접 공익신고를 한 지 약 6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다.(관련기사 : <‘공짜유학’ 다녀온 검사 5명, 부패행위로 신고했습니다>)
셜록은 지난 5년간 국민 세금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와서 표절로 의심되는 연구논문을 작성한 비위 의혹 검사 5명(박건영, 김형걸, 진현일, 최지현, 오○○)에 대한 부패행위 및 공익침해행위 신고서를 올해 1월 권익위에 접수한 바 있다.
이중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베낀 검사 3명(박건영, 김형걸, 진현일)은 저작권법 위반에 대한 공익침해행위로 신고했다.
셜록은 지난해 12월 13일부터 올해 1월 25일까지 기사 8편을 통해, 세금 수천만 원을 지원받아 ‘공짜 유학’을 다녀오고선 표절로 의심되는 부정·부실 논문을 쓴 검사들의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박건영 검사(사법연수원 37기)는 타인의 논문을 무단으로 인용한 문장으로 거의 논문 전체를 채워 ‘표절률 1위(93%)’를 기록했다. 박 검사가 해당 논문을 쓰기 위해 1년간 미국에 머물면서 쓴 국외훈련비(체재비+학자금)는 약 4894만 원이다.
김형걸 검사(사법연수원 37기)는 같은 대학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온 선배 검사의 논문을 베낀 걸로 보인다. 김 검사의 논문 총 61쪽(논문요약, 참고문헌 제외) 중 26쪽, 약 42%에 해당하는 페이지에서 표절 정황이 발견됐다. 김 검사가 해당 논문을 쓰기 위해 중국에 6개월 동안 체류하며 사용한 국외훈련비는 3132만 원이다.
진현일 전 검사(사법연수원 32기)는 연구논문 총 92쪽 중 73쪽, 약 80%의 페이지를 표절로 의심되는 문장으로 채웠다. 진 전 검사가 해당 논문을 쓰기 위해 미국에서 6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사용한 국외훈련비는 3092만 원이다.
진 전 검사는 ‘빅6’에 속하는 대형로펌인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로 이직했다. 법무법인 세종 홈페이지 내 진 전 검사의 프로필에는 해당 연구논문의 제목이 버젓이 적혀 있다.
공무원인재개발법 시행령 제39조5항에 따르면, 국외훈련을 받은 공무원이 연구보고서의 내용이 부여된 훈련과제와 관련이 없거나 다른 연구보고서·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 지급한 훈련비의 100분의 20 범위에서 환수할 수 있다.
권익위는 셜록이 공익침해행위로 신고한 표절 의심 검사 3명에 대한 사건을 한국저작권보호원으로 송부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은 저작권법에 따라 저작권 침해실태조사 및 통계 작성에 관한 업무를 하는 기관이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은 “구체적인 신고내용과 ‘카피킬러’ 표절검사 결과 등 증거자료에 대한 검토 결과, 해당 행위는 기본적으로 연구부정행위 중 표절로 볼 수 있다”면서도,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6조를 근거로 “표절 여부에 관한 사항은 사적규제의 형태로 소속기관에 맡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훈령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6조 1항은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검증 책임은 해당 연구가 수행될 당시 연구자의 소속 기관에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검사 국외훈련 연구논문에 대한 검증 및 규제 책임은 해당 제도를 관할하고 있는 법무부에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은 저작권법 위반 여부 판단에 대해서도 소극적 입장을 보였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은 “대상 표절 행위 중 부적절한 인용과 출처 미표시 등은 저작권법에 저촉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저작권법에 정당하고 공정한 범위나 관행, 출처표시방법 등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아 사법부의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며, 출처명시 위반은 친고죄로 권리자의 고소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법원이 판단해야 하나, 표절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 판단이 어렵다는 논리. 저작권법상 출처명시 위반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할 수 있는 친고죄에 해당한다.
조사를 담당한 한국저작권보호원 과학수사지원부 소속 담당자는 지난 1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국저작권보호원은 근본적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면서, “행정적 조치 사항의 권한은 법무부 훈령에 따라서 (검사 국외훈련 제도를 관할하는) 법무부에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권익위의 소극적 행정에 대해 비판이 나온다.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신고자가 권익위에 공익신고를 한 건 법적 판단이 아니라 공익침해행위 여부를 결정해주길 기대한 것”이라며 “하지만 권익위의 답변은 행정처분이 아니라 결과 안내 통지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 변호사는 “권익위에서 (공익신고당한) 검사들의 연구논문이 표절이라는 걸 인정한 이상 법무부에 환수조치, 징계 등 이행지시를 요청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셜록은 이번 조사결과에 대한 이의신청을 진행했다. 19일, 서면으로 작성한 이의신청서를 우편을 통해 권익위에 제출했다. 이의신청 취지는 권익위가 ▲공익침해행위 여부에 대한 판단(행정처분)을 내리지 않은 점 ▲사적규제 책임이 있는 소속기관(법무부)에 ‘표절 검사’들에 대한 징계 등을 요청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셜록은 “증거자료에 대한 검토 결과, ‘표절 검사’들의 행위는 연구부정행위 중 표절로 볼 수 있다”는 권익위의 판단을 근거로 법무부에 민원도 제기할 예정이다.
권익위는 표절 의심 검사 5명에 대한 ‘부패행위’ 공익신고 건은 지난 5월 9일 법무부로 송부해 자체 조사하도록 처리했다. 권익위는 법무부 조사 결과를 전달받으면 신고자인 셜록에게 통지해야 한다.
한편, 셜록은 지난 6월 1일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을 상대로 검사 국외훈련 연구논문 전체 공개 행정소송도 제기했다.(관련기사 : <[액션] 셜록이 소송을 시작한다… 검사들 ‘표절논문’ 잡으러>) 현재 일부만 공개되고 있는 검사들의 국외훈련 연구논문을 모두 공개하도록 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표절 의심 검사들을 추적하고자 한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