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기자)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저한테 이로운 것이 뭣이 있다고 전화를 했습니까? 당사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저한테 전화해서 물어봐야죠.”(가나의료재단 실운영자 안○○)

“그게 기자하고 뭔 상관 있어요? 국세청이나 건보공단이 알아서 (해결)하지. 기자하고 뭔 상관있어?”(승은의료재단 초대 공동이사장 구○○)

사무장(브로커)들은 하나같이 당당(?)했다. 부인과 함께 불법 요양병원을 운영하며 법인 돈 약 13억 원을 횡령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갚아야 하는 빚이 약 27억 원 남아 있는 안 씨. 윤석열 대통령 장모 최은순 씨와 함께 의료재단 초대 공동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건보공단에 갚아야 하는 빚이 약 33억 원 남아 있는 구 씨.

의료인의 면허를 이용해 불법으로 ‘사무장병원’을 차리고 건보재정을 갉아먹은 사무장들은 요양급여비 환수 문제를 묻는 기자에게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다.

당연히 상관이 있다. 기자뿐만 아니라, 5000만 국민 모두가 큰 상관이 있다. 사무장병원은 건보재정의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 적립금이 2028년 고갈될 것으로 전망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5월부터 불법 사무장병원의 천태만상과, 그들로부터 환수되지 않은 요양급여비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관련기사 : <윤석열 장모 연루 ‘불법’병원, 부당이득 1%도 환수 못해>)

셜록이 보도한 사무장병원은 모두 7곳. 건보공단 직원과 결탁한 병원부터, 전직 경찰 및 지역 정치인 가족이 운영한 병원, 목사가 만들고 교회 장로가 인수한 병원까지 사례는 다양했다. 이들 사무장병원 7곳이 2023년 5월 현재까지 납부하지 않은 요양급여비는 각각 적게는 5억 원에서 많게는 100억 원에 달한다.

윤석열 대통령 장모 최은순 씨와 함께 승은의료재단 초대 공동이사장을 역임한 구아무개 씨. 현재 건보공단에 갚아야 하는 빚이 약 33억 원 남아 있는 그는, 뒤로 보이는 별장에서 요양 중이라고 밝혔다. ⓒ셜록

사실 ‘환수결정 요양급여비 미징수’ 문제는 셜록이 보도한 사무장병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무장병원은 개설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추후 적발되면 건보공단이 요양급여비 명목으로 지급한 건강보험료를 환수 조치하는데, 약 15년 동안 불법 개설기관에 인정된 환수결정 요양급여비 규모는 3조 450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징수율은 6.44%(2223억 원)에 그친다. 사실상 대부분 회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외에도 사무장병원 문제는 이미 유서 깊다. 과잉진료, 환자유인, 진료비 부당청구 등은 대표적인 부작용.

보건복지부가 2018년 발표한 ‘사무장병원 근절 종합대책’에 따르면, 의원급 병실당 병상 수는 사무장병원이 일반 의원 대비 약 2배 많지만, 의료인 고용 비율은 18.2%로 일반 의원 전체 직원(27.5%) 대비 9.3%나 낮다.

의료서비스 질 저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사무장병원은 주사제 처방률, 감기 항생제 처방, 1인당 입원비 및 입원 일수, 건당 진료비, 병실당 병상수 모두 일반 의료기관에 비해 높았다. 하지만 동일 연령, 중증도, 상병으로 100명이 입원했을 때 사무장병원에서 일반 의료기관 대비 환자 11.4명이 더 사망했다.

결국 사무장병원은 사무장 개인의 수익 추구를 위해 시설 안전 투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적정 의료서비스 질을 담보할 수 없어 환자 안전과 감염관리 등에 취약한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는 문제로 연결된다.

건강보험공단 선임전문연구위원으로 16년 동안 근무한 김준래 변호사 ⓒ셜록

이 난해한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셜록은 사무장병원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해결책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먼저, 건보공단 특별사법경찰권(특사경) 도입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특사경은 경찰은 아니지만 통신사실 조회와 압수수색, 출국금지 등 경찰과 같은 강제수사권을 지니고 수사할 수 있는 행정공무원을 말한다.

특사경 제도는 이미 많은 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다. 최근 연예기획사 직원들이 BTS 활동 중단 발표 직전에 주식을 매도해 손실을 회피한 사건(자본시장법 위반) 역시 금융감독원 특사경들이 밝혀낸 사실이다.

건보공단 선임전문연구위원으로 16년 동안 근무한 김준래 변호사는 지난 16일 기자를 만나, “사무장병원을 관리 감독하는 책임자인 건보공단은 현재 특사경 권한이 없어 환수결정 요양급여비를 회수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건보공단의 수사의뢰 사건을 수사하는 사이 사무장들은 재산을 다른 사람들 앞으로 빼돌린다“면서, “건보공단은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 통보 이후에야 요양급여비 환수 처분을 내릴 수 있어 실질적으로 이미 (건보공단을) 빠져나간 요양급여비를 회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수사 기간 단축은 특사경 도입의 핵심 근거다. 건보공단은 특사경 제도가 도입되면 수사 기간이 3개월 이내로 단축될 걸로 전망한다. 현재 수사기관에서 진행하는 사무장병원 사건의 평균 수사 기간은 11개월이다. 2020년 기준 3개월 이내에 수사 종결한 비율은 5.37%에 불과하다. 건보공단은 특사경 제도 도입으로 수사 기간이 3개월 이내로 단축될 경우, 약 2000억 원 상당의 재정 누수를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의료관련 전문 법률가인 신현호 변호사(법률사무소 해울)도 지난 13일 기자를 만나, “요양급여 심사·평가를 담당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역할이 비대해지면서, 사실상 건보공단의 역할은 요양급여비 지급만 하는 ‘금고지기’로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두 변호사의 지적대로, 건보공단 내 ‘자체 수사권’이 없는 상황은 그동안 사무장병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로 꼽혀왔다. 수사권 없는 행정 조사만으로는 압수·수색, 강제 계좌추적 등이 불가해 결정적 증거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도 이미 특사경 법안은 발의됐다. 김종민, 서영석, 정춘숙(이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부터 ‘사법경찰직무법’ 개정 입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법안에는 건보공단 임직원에게 사무장병원(불법 개설기관)에 한해 특별사법경찰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발의안은 2020년부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계류 중이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의료관련 전문 법률가인 신현호 변호사(법률사무소 해울) ⓒ셜록

형사처벌 강화도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김 변호사는 “실질적으로 수익을 가져가고, 사무장병원 개설 의지가 있던 사무장에 대한 형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은 사무장의 질주를 막기 역부족이다. 현행 의료법은 비의료인 등이 의료인의 명의를 빌려 불법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낮은 형량은 재범의 길을 터줬다. 실제 사무장병원 개설로 형사처벌 당한 가담자가 사무장병원을 재개설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건보공단은 지난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미 불법으로 적발된 가담자가 형사처벌을 받은 이후에도 신규개설 기관을 설립해 의료업에 재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무장병원 개설로 형사처벌을 받은 가담자 2255명 중 72명은 처벌 후에도 신규개설 병원급 이상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중 의료인은 41명으로 10명은 신규개설 기관 개설자로, 31명은 봉직의 등으로 재진입했다. 셜록이 취재한 사무장병원 7곳의 사례 중 2곳도, 형사처벌 당한 사무장이 또 다시 사무장병원을 재개설한 사례였다.

사무장도 사무장이지만, 면허를 빌려준 의료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행 의료법은 면허를 대여한 의료인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신 변호사는 “면허를 대여해준 의료인을 강력하게 처벌해야 사무장병원 개설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 병원을 개설할 수 있는 의료인부터 엄하게 처벌해야 사무장병원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처음엔 사무장병원인 줄 모르고 의료인이 채용이 됐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일하다 보면 정상적인 병원과 다르게 이상하게 운영된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거든요. 먼저 의료인이 가담하지 않게 만들면, 사무장병원을 막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장모 최은순 씨가 초대 공동이사장을 역임했던 승은의료재단이 운영한 사무장병원. 해당 병원은 2017년 직권 폐업됐고, 현재는 다른 요양병원이 운영 중이다. ⓒ셜록

애초 사무장병원의 설립 자체를 막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후적 접근보다 사전적 차단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김 변호사는 “건보공단이 자체 수사권도 없는 현 상황에서, 이미 공단에서 사무장병원에 지급한 요양급여비를 회수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척 어렵다”고 꼬집었다.

“앞으로 나갈 건보료를 사전에 막는 게 실효성이 있습니다. 이미 나가버린 건보료를 다시 거둬들이는 건 무척 힘듭니다. 애초 사무장병원을 개설할 때부터 재산을 빼돌리거나, 수사가 끝나기 전에 다른 사람 명의로 재산을 돌려놓는 등 사무장병원 운영의 수법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사무장병원을 사전 차단하는 데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의료법인 제도’는 비의료인이 불법 사무장병원을 설립·운영할 수 있는 핵심 경로가 되고 있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법인 설립 시 특수관계인 비율을 제한하지 않거나, 이사 중 1인 이상을 의사 등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임원 지위 매매를 금지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사무장이 의료법인 제도를 악용하는 수법은 다양화되고 있다. 사무장이 의료법인 대표 이사직을 매수하거나, 지인들로 형식적 이사회를 구성하기도 한다. 또 이사회 회의록을 거짓으로 작성하고, 감사보고서는 아예 작성조차 하지 않는 사례도 많다. 법적으로 의료법인, 의료생협 등의 설립요건을 강화해 사무장병원으로 변질될 가능성 자체를 막아야 하는 것이다.

사무장병원 문제의 제도적 해결책은? ⓒ셜록

그렇다면 사무장병원 문제의 구조적 해결책은 무엇일까. 바로 의료 공공성 강화다. 김 변호사와 신 변호사 모두 “의료업을 통한 이익 창출을 구조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뜻을 같이했다.

이익이 있는 곳에 브로커(사무장)가 있다. 의료업이 ‘최소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는 시장경제원리가 작동되면서 사무장병원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가 됐다. 이익이 없다면 사무장병원은 없어질 것이다.”(신현호 변호사, 2018. 4. 19. ‘사무장병원 등 불법개설기관의 병폐와 근절방안은?’ 국회토론회 발표문 중)

“생명권과 건강권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제1의 가치입니다. 사람의 생명이나 건강은 한 번 해치게 되면 회복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기관은 영리 즉, 돈의 계산이 작용돼서 진료가 이뤄져선 안 되는 분야입니다.”(김준래 변호사 인터뷰)

이미 법에서도 ‘공공성 강화’를 못 박고 있다. 현행 의료법 시행령에선 “의료법인 등은 영리추구를 하지 않는 게 사명”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의료법 시행령 제20조(의료법인 등의 사명) 의료법인과 법 제33조제2항제4호에 따라 의료기관을 개설한 비영리법인은 의료업(법 제49조에 따라 의료법인이 하는 부대사업을 포함한다)을 할 때 공중위생에 이바지하여야 하며, 영리를 추구하여서는 아니 된다.

신 변호사는 의료업이 영리 추구를 하지 않도록 의료 공공성을 강화히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인프라 확보, 혼합진료 금지, 총액계약제 도입, 의대 정원 증가 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2018년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불이 나 159명이 죽거나 다쳤다 ⓒ연합뉴스

2018년 47명이 죽고 112명이 다친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건. 당시 병원엔 스프링클러나 옥내소화전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경찰 조사 결과, 밀양 세종병원은 사무장병원으로 밝혀졌다. 당시 경찰은 “병원 관계자들이 과밀 병상, 병원 증설 등으로 수익을 얻은 반면, 건축·소방·의료 등 환자 안전과 관련한 부분은 부실하게 관리해 대형 인명피해가 났다”고 설명했다.

의료기관이 멋대로 이익을 추구하게끔 내버려두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재난을 초래한다는 걸 일깨워준 대표적인 사건. 그리고 건강보험 재정을 좀먹고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사무장병원은 이미 그 존재 자체로 국민들에게 재난적 존재다.

“일반 국민들도 사무장병원 문제에 꼭 관심을 가져주어야 합니다. 사무장병원이 우후죽순 생겨나면, 결국 내가 안 먹어도 되는 약을 먹어야 하고,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수술할 수도 있어 본인에게 손해가 생깁니다. 백번 양보해서 돈은 손해 보고 말면 된다 쳐도, 사람의 생명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김준래 변호사)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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