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간의 악몽이 끝났다. 남한으로 납치된 북한 민간인 김주삼(86). 그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전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재판장 성지용)는 지난 6일 북한 민간인 납치 피해자 김주삼에게 국가가 13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1심에서 책정한 10억 원보다 3억 원 많은 위자료가 인정됐다. 피고 ‘대한민국’이 상고 기한인 지난 21일까지 상고하지 않으면서,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남한으로 납치된 북한 중학생 김주삼. 철조망을 붙잡고 서럽게 우는 밤이 많았다. ⓒ셜록

현재까지 세상에 알려진 바로는 ‘이런 이유’로 남한에 온 북한 민간인은 김주삼이 유일하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2월부터 ‘나는 대한민국에 납치됐다’ 프로젝트를 통해 그의 사연을 보도했다.(첫 기사 : <남한이 납치한 북한 소년… 대한민국은 그를 지워버렸다>)

중학교를 다니고 있던 소년 김주삼은 1956년 10월 10일 밤 황해도 용연군 용연읍 바닷가 외딴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부모님은 멀리 일을 나가 집을 비운 상태였고, 김주삼 옆에 누운 어린 동생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때 불청객이 찾아왔다. 군인 복장을 한 남자 3명이 총을 들고 집 안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김주삼을 깨워 서해 해변에 정박해 있던 배에 태웠다. 영문도 모른 채 목선에 오른 그는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위치한 공군 첩보부대 기지로 끌려갔다.

김주삼은 한국군과 미군에게 수시로 불려다녔다. 그들은 북한 군사시설에 대한 정보를 캐물었지만, 당시 민간인 중학생이었던 그가 답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주삼은 부대 안에 머물며 보수도 없이 잡일을 맡아 했다. 그에게 제공된 건 음식과 잠자리뿐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변변치 않은 수준. 잡일을 하다가 식사 시간을 놓치면 군인들이 먹다 남긴 잔반을 주워 먹어야 했다.

“내가 수송부 소속이거든. 잡일 할 때 좀 힘들었지. 연장 가져오라고 하면 가져오고, 기름 묻은 거 닦으라면 닦고. 속상할 적에는 도망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 어렸을 적의 생각이지.”(김주삼 인터뷰 2023. 1. 31.)

김주삼은 억류된 지 4년 만인 1961년 부대 밖으로 쫓겨난다. 그사이 주소지는 황해도가 아닌 오류동으로 변경됐다. 그는 가족도,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남한 사회에 홀로 내던져졌다.

인터뷰를 마친 김주삼 씨가 생각에 잠겼다 ⓒ셜록

납치 당시 어린 중학생이었던 김주삼은 어느덧 백발 노인이 되었다. 가난과 싸우고,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약 70년의 세월. 그는 여든을 넘긴 나이가 돼서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2020년 시작한 소송은 3년 만에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2월 정부가 김주삼에게 10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한민국이 김주삼의 기본권(▲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인정됐고, 이에 따른 정신적 손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봤다.

납치 사건 이후 67년 만에 대한민국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1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해, 재판을 2심으로 끌고 갔다.(관련기사 : <86세 국가폭력 피해자 상대로 ‘버티기’ 소송 들어간 정부>)

2심 재판의 주요 쟁점은 김주삼을 납치한 오◯◯의 소속이었다. 피고(대한민국)는 오◯◯이 당시 미 제6006부대 소속이었기 때문에 그 책임이 대한민국이 아닌 미군에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따라서 “김주삼에 대한 납치 및 억류 행위에 대해 (대한민국이) 배상책임을 부담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오◯◯이 피고(대한민국)의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김주삼을 납치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결국 김주삼을 납치하고 억류한 행위의 주체가 대한민국이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 역시 ‘납남’ 피해자 김주삼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셜록

원고는 피고의 납치행위로 인해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이로써 형언할 수 없는 극심한 외로움 등 정신적 고통을 겼었을 것으로 보인다(임◯◯은 원고가 밤마다 철조망 울타리를 붙들고 서럽게 울었다고 진술하였다).(임◯◯은 김주삼이 공군 첩보부대에 억류돼 있을 때 그를 돌봐준 남한 병사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 기자 주)

원고는 67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가족들의 생사도 알지 못하고, 본인의 생사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바, 이와 같은 고통은 평생 치유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2023나2012508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 판결문)

2심 법원은 1심 판결이 결정한 위자료 10억 원보다 3억 원 많은 13억 원을 위자료로 책정했다.

재판부는 “원고 김주삼은 조사가 끝난 후에도 석방되지 않고 해당 부대에서 보수도 받지 못한 채 기약없이 강제 노동을 하며 소중한 청춘을 희생당했다“며, “약 4년간 억류된 과정에서 입은 소극적 손해, 즉 일실수입은 현재 구체적인 증명이 어려워 이와 관련된 부분도 위자료 반영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원고 김주삼은 군사분계선 이북 출신으로서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 과정에서 유무형의 차별 내지 사회적 냉대를 겪으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왔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가인 피고(대한민국)는 이러한(개인의 인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를 정면으로 저버리고, 오히려 납치 및 억류 행위라는 중대하고도 명백한 불법행위를 통해 개인인 원고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고 일생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피고 대한민국 측 소송 수행자인 법무부가 상고 기한인 지난 21일까지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으면서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통일부는 지난 1월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취재를 시작한 뒤에야 김주삼을 찾아가 ‘이산가족 찾기 신청서’를 접수했다 ⓒ셜록

소송을 대리한 이강혁 변호사는 “이번 2심 판결은 앞선 판결에 있었던 위자료 과소 문제에서도 진일보한 결론이 나왔다는 점에서 매우 전향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내용적으로 다툴 쟁점이 없는데도 국가 측이 의례적으로 항소를 제기해 연로한 원고에 대한 피해 구제가 늦어진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또한, 원고의 피해 사실 증명 과정에서 각 국가 기관 공무원들의 대처가 대부분 너무 소극적이고, 관료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았다고 전했다. 그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면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자료를 신청할 때도 형식적인 확인 절차만 거친 뒤 자료 부재 답변을 보내오고는 했다”며, “훨씬 빠르게 낼 수 있었던 결론을 내리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고 말했다.

김주삼의 아들 김윤성(56)은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법적 공방이 끝난 데에 안도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배상금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재판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최종 재판이 끝났다는 소식에 부모님도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고 말했다.

임진각 ‘망향의노래비’. 김주삼에게 남은 그리움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셜록

김주삼의 ‘잃어버린 시간’을 이로써 되찾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는 무연고자로 남한 사회에 내던져진 채, 가난과 싸우며 일용노동으로 불안정한 생계를 이어갔다. 가족과 어린 나이에 생이별하고, 생사조차 모르고 살아내야 했던 시간이 벌써 67년이다.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다. 지난 1월 만난 김주삼은 과거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밤을 꼬박 새우게 된다며, 북한에 남은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동생들을) 만날 수가 없는 거야, 지금은. 그렇지?”

인터뷰 끝에 김주삼이 기자에게 한 유일한 질문이었다.

한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해 8월 김주삼 납치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대한민국 정부에 ▲공식 사과 ▲피해 및 명예 회복 조치 ▲가족 상봉 기회 제공 등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약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권고 이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관련기사 : <납치할 때는 ‘법도 없이’ 사과할 때는 ‘법대로만’>)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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