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역주행… 다시 ‘제주여행 청년’을 찾습니다

‘역주행’ 외에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 이규식을 목포항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제주도 여행을 한 청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이 내용을 다룬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기사 <‘휠체어’ 제주여행의 운명 같은 동행… 그 청년을 찾습니다>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화제다.

기사 발행 5개월이 지난 뒤에 또 주목을 받는 셈이다. 그만큼 시민들 역시 이규식과 청년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셜록에도 “그 쳥년을 찾았느냐?”, “꼭 찾았으면 좋겠다” 등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아쉽게도 셜록의 답변은 “아직…”이다. 좋은 일이 하나 있긴 하다.

장애인권활동가 이규식은 자신의 오래된 사진 앨범을 뒤져 ‘제주여행 청년’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하나 더 찾아냈다. 이전 사진보다 청년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왔다. 짧은 머리에 군청색 조끼를 입은 청년은 20대 이규식의 휠체어를 뒤에서 잡은 채 작게 미소 짓고 있다.

두 사람의 동행에 감동 받아 운행을 책임진 택시기사 얼굴이 담긴 사진도 찾았다. 새로운 발견은 여기까지다. 사진 속 청년과 택시기사의 이름, 소속 등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규식은 두 사람을 계속 찾고 있다.

“1995년 즈음 목포항에서 그 청년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약 10년간 장애인시설에서 살았다. 죄인처럼 갇혀 사는 삶, 당시 장애인에겐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 청년과 3박 4일 여행 후, 시설 밖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지금쯤 50세를 훌쩍 넘겼을 텐데, 그 ‘제주여행 청년’을 다시 한 번 꼭 만나고 싶다.”

사진 발견과 더불어 충북 청주에서도 좋은 일이 생겼다. 청주에 있는 충북직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이규식을 초대해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북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경북 예천에 이은 두 번째 시민 초청 행사다.

충북직직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이름 그대로, 장애인의 시설 밖 생활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조직이다. 조연희 기획실장은 이규식을 초대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규식 님은 서울에서 장애인 집회를 할 때 종종 본 적 있습니다. 거침없이 거리를 누비는 모습에 투지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거리감도 느껴졌고 따로 인사를 나눌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본 사진 한 장이 그에 대한 인상을 모두 바꿨습니다. 그 사진은 이규식님이 바다에 혼자 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넓은 바다에 떠 있는 사진 한 장을 보고,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저희 2023 직지인권학교에 모시게 됐습니다.”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전국 북콘서트 다섯 번째 행사는 이렇게 청주에서 열리게 됐다. 이규식은 서울-광주-부산-경북 예천 북콘서트에서, 중증 장애인도 책을 집필하고 강연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 많은 시민은 그의 이야기에 웃고, 울었다.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청주 북콘서트 행사에 많은 시민이 참여하면 좋겠다. 셜록의 친구 왓슨(유료독자)는 물론 일반 시민 모두 참여를 신청할 수 있다.

제주도 여행이 불러온 시설 밖 삶, 장애인권활동가 인생, 서른 즈음까지 학교 근처에도 못 갔으나 독학으로 고교 졸업장 취득,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집필, 전국 북콘서트…. 이 모든 일의 출발선에는 목포항에서 이규식의 휠체어를 밀어주고 3박 4일을 함께 여행한 그 청년이 있다.

심지어, 내륙의 청주 시민이 제주 바다에 떠 있는 자유로운 이규식을 보고 감화받은 그 시작점에도 역시 그 청년이 있다. 그 청년이 이규식의 북콘서트 행사장 무대에 오르는 일이 일어날까?

힘들겠지만 그래도 꿈을 꿔본다. 이규식이 홀로 제주도 여행을 감행한, 그때처럼 무모하게 말이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