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세금으로 국외훈련을 가서 학위를 딴 검사들’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 소송의 결과다.

서울행정법원 제8부(재판장 이정희)는 지난 5일, “‘국외훈련 검사 학위취득’ 정보공개 거부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학위정보는)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공개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국외훈련 운영성과의 투명성 제고, 국가 예산의 재정 건선성 확보 등의 공익이 보다 크고 중하다“고 봤다.

그 이유는 바로 국민들의 ‘세금’이 쓰이기 때문. 국외훈련 대상자로 선발된 검사에겐 체재비와 학자금을 포함한 ‘국외훈련비’가 세금으로 지원된다. 올해의 경우 검사 국외훈련비 예산은 약 49억 원이다.

그런 이유로 국외훈련비 환수 규정이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됐다. 공무원인재개발법 시행령 제39조에는 “당초 계획한 학업 과정의 이수나 학위의 취득 등을 달성하지 못한 경우엔 지급한 훈련비의 100분의 20 범위에서 환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국외훈련 검사 학위취득’ 정보공개 거부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셜록

셜록은 2022년 12월부터 프로젝트 ‘표절 검사의 공짜 유학’을 보도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와 표절로 의심되는 부정·부실 논문을 쓴 검사들의 문제를 기사 17편을 통해 집중 보도했다.(첫 기사 : <유학은 공짜, 논문은 표절… ‘검사’를 고발한다>)

법무연수원은 국외훈련 연구결과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우수논문을 선정해 ‘국외훈련검사 연구논문집’을 발간한다. 이 연구논문집은 1977년 창간호 이후 매년 발간되고 있다.

법무연수원 홈페이지(www.ioj.go.kr)에는 연구논문집에 실린 검사 연구논문이 공개되고 있다. 셜록은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발행된 연구논문 중 공개된 84건에서 부정·부실 의심 논문 5건을 확인했다. 표절률은 최소 42%에서 최대 93%에 달했다. 만약 학위논문이었다면, 정상적인 연구결과로 인정받지 못할 수치.

이렇게 5건의 부정·부실 의심 논문에 사용된 세금만 총 1억 9040만 원. 국외훈련 기간 중에도 검사들에겐 급여가 지급된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검사직을 그만두고 대형로펌으로 이직한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 이 둘 모두 변호사로 전직한 후 표절로 의심되는 연구논문을 ‘개인 스펙’으로 홍보했다.

법무부는 최근 국외훈련 연구논문을 표절한 검사의 국외훈련비를 환수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1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외훈련 논문 표절 검사들이 지원받은 훈련비를 “일부 회수한 걸로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아직 국외훈련비를 회수하지 않은 사례에 대해서도 환수 이행을 약속했다.

또 법무부는 지난해 6월, ‘검사 국외훈련 운영규정’을 개정했다. 표절로 밝혀졌을 경우 국외훈련비를 환수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직접적으로 명시했다. 모두 셜록 보도 이후 일어난 변화다.

표절 의심 논문을 쓴 한 전직 검사의 국외훈련 ‘스펙’은 현재 변호사로 근무 중인 로펌 사이트에 소개돼 있다 ⓒ법무법인 세종 사이트 캡쳐

셜록은 법무부 측이 공개하지 않은 내용들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지난해 3월,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을 상대로 크게 세 가지 내용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① 2016년~2022년 국외훈련을 다녀온 검사(총 497명 추정)의 학위취득 현황
② 해당 기간 동안 국외훈련을 다녀온 검사가 작성한 연구논문 중 법무연수원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논문을 제외한 나머지 논문 전체
③ 검사국외훈련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성명, 소속 등

셜록의 정보공개 청구 기간(2016년 1월~2022년 10월)에 해당하는 논문 전체 수는 약 500편에 이른다. 법무부 측은 이중 절반 이상을 비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두 기관 모두 공개를 거부했다. 결국 셜록은 지난해 6월 1일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을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했다.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 소속 운영위원 박지환 변호사(법무법인 혁신)가 소송을 대리했다.

그리고 지난 5일, 국외훈련 검사들의 학위 취득 현황을 공개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과거 법무부는 국외훈련 검사의 학위취득 현황이 “개인정보로서,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공개를 통해 얻을 공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원고 셜록을 대리한 박지환 변호사는 “(국외훈련 검사들의) 학위 정보는 일반 연수에 비해 고액이 들어가는 해외연수의 결과로써, 검사 개인의 사생활 영역이 아니라고 본 상식적이고 타당한 판결“이라 평가했다.

셜록은 지난해 6월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을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은 김보경 기자. ⓒ셜록

하지만 법원은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와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정보에 대한 공개 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25일 첫 재판에서 “비공개 처리한 검사 국외훈련 연구논문 전체를 열람ㆍ심사하겠다“고 결정했다. 법무부는 재판부의 요청에 따라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를 법원에 제출했다.

재판부는 “(검사 국외훈련 논문이) 통상 공개를 전제하지 않은 채 수사·공판 실무 등에서 활용할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고,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수사·공판 관련 내용은 수사·공판 실무에 반영되거나 검찰 정책 수립에 활용될 여지가 높다”고 봤다.

셜록의 검증만으로도 5건의 표절 의심 논문이 확인됐고, 법무부가 그에 대해 일부 국외훈련비를 환수했다. 심지어 셜록이 검증 대상으로 삼은 논문들은 검찰의 자체 심사를 거쳐 논문집에 실린 것. ‘표절률 30%’라는 관대한(?) 기준으로도 84건 중 5건의 부정·부실 의심 논문이 확인됐다.

이런 ‘팩트’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검사 국외훈련 논문을 ‘비공개’ 해야 한다는 재판부의 판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돈은 국민들이 내고 혜택은 검사들이 누리는 국외훈련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직접 검증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는 의미다.

검사가 아닌 일반 공무원(중앙 정부부처)들은 국외교육훈련 결과보고서 전체를 이미 공개하고 있다. 인재개발정보센터 사이트(https://training.go.kr)에 들어가면 누구나 훈련결과보고서를 볼 수 있다. 지자체 공무원의 경우에도 규정에 따라 국외훈련 결과보고서를 기관 홈페이지 등에 게시하여 정책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실제 셜록이 2022년 10월 17개 시도 지자체에 소속 공무원의 장기 국외교육훈련 결과보고서 원본과 지원 액수 등을 정보공개 청구했을 때, 모든 지자체가 결과보고서 원본을 전체 공개했다.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 공개를 거부한 법원의 논리는 사실상 검사의 특권을 인정하는 꼴이다 ⓒ셜록

법무부가 법원에 제출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수백 편을 일일이 살펴봤을지도 의문이다. 그랬다면 각각의 논문별로 공개 여부를 판단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연구논문 수백 편을 하나로 뭉뚱그려 공개 여부를 판단했다.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중 아주 일부는 수사와 관련되어 기밀일 수 있겠지만, 연구논문 수백 편 전체가 이에 해당이 된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면서, “논문을 하나씩 보고 수사와 연관이 있는지 따져 논문별로 ‘부분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 변호사는 “실례로 국회의원들이 의정활동에 참고한다는 명목으로 정책연구용역 발주한 자료를 (정보공개 소송으로) 받아냈을 때도 (국회 측에선) 공개되면 의정활동의 비밀이 노출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에선 받아들이지 않고 모두 공개하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김예찬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도 검사 국외훈련 논문 전체 비공개 판결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보공개법에서 ‘수사 및 공소의 제시 및 유지’에 관한 정보를 비공개할 수 있게 한 것은 ‘공개될 경우에 직무수행이 현저히 곤란’해질 정도로 수사 기법 등이 유출되는 경우에 한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정말로 구체적인 수사 기법이 드러날 우려가 있다면, 해당 내용만 비공개하고 나머지는 공개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지금 공개된 연구논문 중 표절 등 연구윤리가 의심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국회에서도 논란이 되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검사 국외훈련 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연구논문을 공개해야 할 것입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오른쪽)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외훈련비를) 일부 회수한 걸로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국회방송

재판부는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비공개에 대해서는 “출제의도, 채점기준, 그에 따른 평가 결과 등에 관한 시시비비가 이어질 우려가 매우 크며 평가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고 봤다. 또한 “(심사위원들이 공개되면) 외부로부터 부당한 압력 또는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김예찬 활동가는 “굳이 외부위원까지 위촉해 검사 국외훈련 연구결과 심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대내외적으로 국외훈련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라면서, “각 위원들의 평가 내용을 공개하라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성명과 소속 등 명단을 공개하라는 것인데 ‘부당한 압력과 비난’을 비공개 사유로 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활동가는 “대한민국 검사들이 자기 연구결과 평가 점수가 낮다고 평가위원들을 협박이라도 한다는 것이냐“고 되물으며, “이미 심사가 끝난 지 수년이 지난 시점에서, 위원 명단을 공개한다고 해서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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