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스티로폼 아이스박스 하나가 배달됐다. 박스를 들어올리려는데, 묵직함에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허벅지와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간신히 책상 위로 들어올렸다.
아이스박스 옆면에 붙은 테이프에 커터칼을 갖다댔다. 칼날이 테이프 사이를 조금씩 벌릴 때마다, 냄새가 조금씩 스며나왔다. 구수하면서도 정겨운 냄새. 아이스박스 뚜껑을 활짝 열었다. 무언가가 김장용 비닐봉투에 곱게 담겨 있었다.
끈으로 묶인 비닐 봉투를 열자, 정체가 드러났다. 된장이었다. 진한 된장 냄새가 속절없이 사무실에 퍼져나갔다.

된장 냄새는 나를 다시 그날로 데려갔다. 지난 5월 14일, 경북 영덕군에서 산불감시원 신응국(향년 69세) 씨의 유가족을 처음 만난 그날.
신 씨의 자택은 깊은 산속에 있었다. 영덕 시내에서 차를 타고 최소 30분을 더 들어가야 했다. 양쪽이 풀숲으로 둘러싸인 비포장도로를 내달려야 간신히 도착할 수 있는 곳.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반대편에서 오는 차를 만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좁은 산길을 달렸다.
그날도 집 안에선 구수하면서도 짠내 가득한 된장 냄새가 풍겼다. 아내 원순희 씨는 외지에서 온 내게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된장 냄새가 너무 심하지요? 원래 밖에서 불을 피워놓고 해야 하는데, (신응국 씨 사건 이후로) 내가 불이 무서워가 집 안에서 하느라… 냄새가 좀 나지예?“

지난 3월 경북 지역을 집어삼킨 최악의 ‘괴물’ 산불. 산불은 산과 들만 삼킨 게 아니다. 사람도 삼켰다.
영덕군청 영해면사무소 소속 산불감시원 신응국 씨는 지난 3월 25일 이웃한 의성군 지역의 산불진화 작업에 투입됐다가 복귀 도중 숨졌다. 신 씨는 2011년부터 약 14년 동안 산불감시원으로 일했다.
사건 당일은 의성군에서 시작한 불이 영덕군으로 넘어온 날이다. 의성 파견을 나갔다가 영덕으로 돌아온 신 씨는 그날 집으로는 돌아오지 못했다. 이틀 뒤인 3월 27일 영덕군 7번 국도 인근 산속에서 불에 탄 모습으로 발견됐다. 차 밖으로 나왔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한 채 풀숲에 쓰러져 숨졌다.
신 씨의 마지막 이동 경로를 살펴보면, 영해면사무소 방향 7번 국도를 달리다 불길을 피해 바다 쪽 길로 접어들었지만 결국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걸로 보인다.(관련기사 : <‘불탄 숲’에서 사라진 남자… 그의 마지막을 추적한다>)
“왜 (철수) 시간을 그리 늦추냐고. 자기네들이 무슨 불을 다 잡겠다고. 말이 안 된다 이거지, 저는 그러니까. 내가, 여자가 어디 군수를 찾아갈 수도 없고 그래….
이런 말을 꼭 하고 싶은데, 할 데가 없잖아요. 내가 혼자서 앓기만 하고, 계속 혼자서 그냥 상상만 하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그 시간에 갔으면(일찍 철수했으면) 사고는 났더라도 죽지는 않았을 거 아이가, 이 생각이 자꾸 드는 거야.”
사실 사건 직후, 가족들을 찾아온 방송사도 있었다. 가족들은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에 응했지만, 방송에 그들의 이야기는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 내가 가족들의 집을 찾아간 거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최근 산불감시원 신 씨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산불로부터 지역사회를 지키러 나갔다가 목숨을 잃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아내 원 씨는 지난 9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유족급여 및 장례비 지급에 대한 승인 통지를 받았다.
핸드폰 사용이 미숙한 그녀는 근로복지공단이 보낸 문자 내용을 직접 메모지에 옮겨 적어 내게 전달했다. 신 씨의 산재가 인정됐다는 소식이 기쁘면서도, 비뚤배뚤 써내려간 글씨를 보니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졌다.
매일 얼굴 보며 같이 늙어가던 남편을 이렇게 하루아침에 잃을 줄 상상이나 해봤을까. 산업재해, 근로복지공단, 유족급여… 이런 말은 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도 아내 원 씨는 통화를 나눌 때마다 오히려 내 안부부터 살폈다. 본인 역시 아직 남편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도.
“우리 때문에 애를 많이 써줘서 너무 고마워요. 촌 할머니가 뭘 알겠습니까. 이런 일을 (갑작스럽게) 당해노이께 아무것도 모르지….”

신응국 씨의 죽음을 둘러싸고 아직 남은 과제가 있다. 순직 인정이다. 유가족은 신 씨의 죽음이 공동체를 위한 가치 있는 죽음이었다는 걸 지역사회와 국가가 함께 기억해주길 바란다. 산재로 인정됨에 따라, 공무수행사망자로 순직을 신청할 자격이 생겼다.
비록 공무원이 아니지만, ‘공무수행사망자’로 순직이 인정될 수 있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가 공무수행 중 사망한 경우, 공무원과 동일하게 순직 인정 및 예우 등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가 2018년 9월부터 시행됐다.
인사혁신처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0월부터 2024년까지 총 33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공무수행사망자 순직으로 인정받았다.(2018년 2명/ 2019년 9명/ 2020년 4명/ 2021년 8명/ 2022년 1명/ 2023년 4명/ 2024년 5명)
신 씨 역시 순직으로 인정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신 씨와 비슷하게 복귀 도중 사망해 순직으로 인정된 전례도 있다. 경북 구미시 복지환경국 소속 환경미화원 고(故) 장상길 씨(61세)는 2018년 생활쓰레기 배출 작업을 하고 복귀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순직으로 인정됐다.
산불로 남편을 잃은 지 두 달. 그동안 제대로 된 위로와 보상도 못 받은 채 유족들은 애꿎은 가슴만 치는 나날을 보내왔다. 진상규명도, 산재 인정도 이제서야 하나둘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순직이란 마지막 하나의 관문이 남았다.(관련기사 : <[해결] 영덕 산불감시원 산재 인정… 군수는 유족 방문>)

아내 원 씨가 만든 된장을 들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에게 된장을 건넸다. ‘엄마’의 마음은 ‘엄마’가 아는 걸까? 딱히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엄마는 그녀의 마음을 단번에 알아챘다.
“누가 이렇게 귀한 걸 줬어? 내 전부를 주는 건데?”
마트에서 사먹는 시판용 제품과는 차원이 다른 된장. 황금빛 메주콩이 알알이 살아 있었고, 고추와 다시마도 들어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을 잃고도, 자신의 또 다른 귀한 것을 나누려는 사람. 만든 사람의 정성이 그대로 느껴졌다. 고마움을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었던 그 마음도.
소분용 플라스틱통에 된장을 꾹꾹 눌러 담았다. 정겹고도 애잔한 된장 냄새가 집 안에, 또 내 마음에 퍼졌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