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만약에 (징계를 받아서) 학교에서 나가게 되면 입시 컨설팅을 해도 돼요. 쪽팔린 것도 없고.”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만난 한 ‘능력 있는 교사’의 말이다. 또 다른 교사는 말했다.
“능력 있는 소수 교사들만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들이 한 특별한 일은 바로 사교육업체에 문제를 만들어 파는 일. 일명 ‘문항거래’였다.
셜록이 찾아간 교사들은 EBS 수능연계 교재 집필진, 수능·모의평가·전국학력평가 출제 및 검토위원 경력이 있었다. 이들은 대형학원과 문항거래를 통해 많게는 수억 원씩 벌었다.
“(학교에서) 능력 좋은 선생님으로 평가받고 있었는데, 감사원 조사가 시작되면서 범죄자가 됐죠.”
2023년 6월 윤석열 정부의 ‘사교육 카르텔’ 척결 발표 이후, 자신들이 ‘능력자’에서 ‘범죄자’가 됐다는 항변. 하지만 현직 교사의 문항거래는 2016년부터 교육부가 엄격히 금지한 행위다. 감사원에 적발된 현직 교사는 무려 249명. 문항거래 수익이 5000만 원을 넘는 이들만 추린 숫자다.
지난 2월 발표된 감사원 보고서에는 교사들의 이름이나 소속 학교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셜록은 두 달간의 추적 끝에 4명의 교사를 찾아냈다.

서울 양천구 양정고 C 교사는 수학을 가르쳤다. 그는 2008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시교육청 전국연합학력평가 출제위원으로 활동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C 교사는 2017년 메가스터디교육이 출판한 수학 문제집을 집필했다. 그 문제집을 보고, 대형 사교육업체들이 C 교사에게 먼저 접근했다.
현직 교사가 서점에서 누구나 사볼 수 있는 교재를 집필하는 건 ‘겸직허가’를 얻은 경우라면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 학원 수강생들만 볼 수 있는 교재나 사설 모의고사 문항을 만들어 파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돼 있다.
C 교사는 대성학원 등과 문항거래를 했다. 그들은 수능 출제경향이 담긴 학원용 모의고사 문제를 원했다. C 교사가 만든 문항은 대성학원 전국 재수종합반에서 매주 보는 학원용 모의고사 등으로 활용됐다.
단가는 문항당 최대 33만 원. 모의고사 1회분 30개 문항을 만들고, 1000만 원을 받았다. C 교사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문항거래로 받은 대가는 총 2억 1000만 원이다.

C 교사의 문항거래는 ‘팀 플레이’로 이뤄졌다. 그는 의뢰받은 문항을 혼자 다 만들지 못하면, 아는 교사들에게 ‘물량’을 나눠줬다. 그들이 만든 문항을 C 교사가 사고, 그걸 다시 사교육업체에 팔았다. 반대로 C 교사가 자신이 만든 문항을 다른 교사를 통해 사교육업체에 넘기기도 했다.
교사들은 문항거래를 위해 ‘상부상조’했다. 하지만 C 교사는 “후배 교사들에게 출제 능력을 기르는 기회를 준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C 교사는 ‘문항거래’는 교장도, 동료 교사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숨길 필요도 없는 ‘관행’이라는 것. 감사원 감사가 시작된 2023년, 그해 C 교사는 승진도 했다. 감사 이후에도 또 다시 승진심사 대상에 올랐다. 그는 지난 2월 청탁금지법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지난 4월 24일 양정고에서 C 교사를 만났다. 그는 “취재에 응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2시간 가까이 문항거래는 관행이었고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C 교사는 감사원 조사에서도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C 교사는 고의나 과실이 없으면 책임을 면책해주는 ‘적극행정면책’을 신청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 양천구 목동고 국어교사 D 역시 능력 있고 존경받는 교사였다. 그는 2009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EBS 수능연계 교재 등을 집필했고, 서울시교육청 주관 전국연합학력평가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경력도 있다.
D 교사의 문항거래는 2014년 시작됐다. 메가스터디, 이투스 등 대형학원에서 제작하는 모의고사 교재, 사설 전국모의고사 문항을 제작해 판매했다. 일부 문항은 학원 재수종합반 수업에 사용됐다.
단가는 문항당 10~20만 원. 감사원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D 교사가 총 110회에 걸쳐 수능 등의 출제 경향을 담은 문항을 판매해 약 2억 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더 심각한 문제는, D 교사가 학원에 판매한 문항을 학교 내신시험에도 출제했다는 점이다. D 교사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 4회에 걸쳐 학원에 판매한 문항 중 14개를 일부 변형해 학교 내신시험에 출제했다.

“(D 교사는 학교 내신시험에) 출제한 문항에 오류가 있을 경우 재시험을 치르는 등 문항 오류에 대한 부담이 있으므로, 사교육업체의 수정・검토를 거쳐 제작・공급한 문항을 학교 시험에 출제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감사원 보고서 479쪽)
지난달 8일 셜록은 D 교사와 20분가량 통화했다. D 교사는 “교육부에서 문항거래를 금지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후 문제 삼지 않아 관행적으로 문항거래를 해왔다”고 시인했다.
D 교사는 자신이 판매한 문항이 “고3이나 재수생을 대상으로 학원 안에서 치르는 모의고사에 활용됐기 때문에 (자신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이 접근할 기회가 거의 없을 걸로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D 교사는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은 D 교사에게 ‘강등’ 징계를 내리라고 학교법인 측에 요구했다. D 교사는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문항거래가 금지된 배경에는 한 사건이 있다. 2016년 당시 국어 ‘1타강사’로 유명했던 스카이에듀 이근갑 강사 사건이다.
현직 교사가 2017학년도 6월 모의평가 출제 정보를 사전에 유출해 이근갑 강사에게 전달했다. 이근갑 강사는 문항거래를 통해 얻은 출제 정보를 강의에 활용했다. 이근갑 강사는 징역 10개월 형을 받았고, 교사들에겐 각각 징역 1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이 선고됐다.
이후 교육부는 현직 교사와 사교육업체 간 문항거래를 엄격히 금지했다. 파면 또는 해임의 중징계를 내리겠다는 경고와 함께. 하지만 8년 지난 뒤, 감사원이 적발한 문항거래 교사는 무려 249명. 이들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얻은 수익은 모두 212억 9000만 원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4월 17일, 현직 교사는 72명, 사교육업체 법인 3곳, 강사 11명 등 100명을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6년 이후 문항거래를 막기 위한 교육 당국의 노력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지난 16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이소라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은 “(교육청의) 실질적 제재나 점검이 느슨했다”며, “문항거래와 관련해 징계된 사례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오래된 관행이었고, 이제 관행을 바꾸는 것”이라며 2023년 교육부가 발표한 겸직허가 가이드라인을 교사들에게 고지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감사원에 적발된 교사 249명 중 162명이 서울시교육청 관할 교사다. 그 중 아직까지 징계 처분이 완료된 교사는 한 명도 없다. 지난 1월 감사원은 서울시교육청에 적발된 교사 일부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징계 양정을 정해 각 학교법인에 통보한 상태다.
‘반민심 사교육카르텔 척결 특별조사 시민위원회'(이하 반민특위) 위원장인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적발된 교사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며, “먼저 직위해제 또는 파면을 한 뒤 나머지 절차를 통해 소명하도록 조치했어야 된다”고 늑장 징계를 비판했다.

취재 도중 한 목동고 졸업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가난한 아이들은 학원에 다닐 수 없다,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교사가 사교육 시장에 돈을 받고 문항을 팔았다는 것 자체가 교육 불평등 문제에 일조한 것”이라며 문항거래 교사들을 비판했다.
그는 목동고 D 교사를 “존경받는 선생님”으로 기억했다. “D 교사를 본받아 현재 교직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학생들이 따랐던 선생님이 (문항거래로) 감사에 적발된 것에 배신감을 느낀다”며 큰 실망감을 표했다.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낀 사람이 어디 한 사람뿐일까. 하지만 셜록이 찾아낸 4명의 교사 중, 사과나 반성의 말을 입에 올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적극적으로 ‘억울함’을 주장하거나, 아니면 침묵하고 회피했다.
메가스터디 ‘1타강사’ 조정식과 문항거래를 한 장충고 A 교사는 연락을 회피했다.(관련기사 : <‘1타강사’ 조정식에게 문제 팔고 수천만원 받은 교사>) 시대인재 조은정 강사(전 스카이에듀)에게 판매한 문항을 학교 내신시험에 ‘재탕’한 보성고 B 교사 역시 “무례하게 전화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관련기사 : <학원에 판 시험문제, 학교 시험에 ‘재탕’한 교사>)
음주운전도, 아이를 때리는 것도, 여성을 성적 농담거리로 삼는 것도 한때는 다 ‘관행’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로 책임을 피해가려 해도, 그때도 범죄였고 지금도 범죄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직 교사와 ‘1타강사’들의 문항거래 역시 마찬가지다.
배신감을 느낀 제자들 앞에, 실망감에 느낀 국민들 앞에, 덩달아 명예가 실추된 교사 집단 앞에 고개 숙일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는 걸까.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