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타강사’에게 시험문제를 만들어 판 교사가 있다. 교사는 ‘돈벌이’에 이용한 문제를 다른 곳에도 써먹었다. 학원에 판매한 문제를 학교 내신 시험에 ‘재탕’한 것이다.
과연 공정한 시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1타강사’의 수업을 듣고 내신 시험에서도 유리한 성적을 받았다면…. 서울 송파구 보성고에서 벌어진 일이다.
보성고 B 교사는 당시 스카이에듀 조은정 강사(현재 시대인재)에게 영어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만들어 판매했다. 감사원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B 교사가 조은정 강사와 문항을 거래하고 약 7억 5000만 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현직 교사가 학원용 교재 또는 모의고사 시험 문제를 만들어 파는, 이른바 ‘문항거래’는 국가공무원법과 청탁금지법에 저촉되는 행위다. 2016년 교육부는 이를 엄격히 금지하며, 최대 파면 또는 해임 조치까지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B 교사는 문항거래로 억대의 큰돈을 벌고, 조은정 강사는 명성을 쌓았다.

지난 2월 감사원은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실태 점검 공개문(이하 감사원 보고서)’을 발표했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학원과 학원강사에게 문항을 만들어 판매한 교사는 249명. 이 교사들이 5년간 얻은 수익은 총 212억 9000만 원이다.
하지만 감사원 보고서는 적발된 교사들이 어느 학교 누구인지, 그들에게 거액의 돈을 주고 문항을 산 학원강사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셜록은 지난 두 달간 ‘감사원 보고서’에 등장한 교사들을 추적해, 일부 교사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B 교사는 조은정 강사와 2013년부터 알고 지냈다. 조은정 강사가 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대상으로 영어 수업을 할 때부터 모의고사 문제를 만들어 판매했던 ‘단골 거래처’였다.
조은정 강사가 대학입시 강사로 전향한 2015년, 그들의 ‘금지된 거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B 교사는 EBS 수능 연계교재 집필진이었다. 2015부터 2023년까지 수능특강 영어, 수능완성 영어 집필에 참여했다.
당시 스카이에듀 조은정 강사는 B 교사에게 EBS 교재 속 영어 지문을 모두 활용해 수능 출제 경향에 맞는 문항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EBS 교재의 수능 직접연계율은 70%에 달했다. 영어 지문 일부가 수능 시험에 그대로 나왔던 때였다.
B 교사는 조은정 강사로부터 휴대폰이나 이메일로 필요한 문항 개수와 형태, 가격 등 ‘납품’ 요청을 받을 때마다 문항을 제작해서 판매했다.

B 교사의 영업비밀은 ‘정보력’이었다. 바로 ‘출간 전’ EBS 교재를 구하는 것. B 교사는 EBS 교재가 출간되기 5~26일 전에 변형문항을 만들어 조은정 강사에게 팔았다.
“(B 교사는) 학생들이 빨리 구입하기 원하는 EBS 수능특강과 수능완성 변형 문항을 신속히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점과 교재 출간 이후 EBS에서 공개하는 파일은 편집할 수 없다는 생각에 (…) 파일을 빼돌려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감사원 보고서 337쪽)
EBS는 출간 전 교재 유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집필진들에게 ‘보안서약서’도 받는다.
하지만 B 교사는 조은정 강사에게 문항을 만들어 팔기 위해 거짓말까지 했다. B 교사는 동문, 선후배 등 친분이 있는 집필위원들에게 학교 수업 참고용, 연구용으로 사용하겠다고 속여 교재 파일을 손에 넣었다.
2019년 12월 B 교사는 조은정 강사에게 문항당 거래 단가를 10만 원에서 14만 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문항 제작량이 많고, 보안이 강화돼 EBS 교재 파일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두 사람의 ‘금지된 거래’는 계속됐다. 조은정 강사는 ‘EBS 쪽집게’ 강사로 유명세를 탔다. 인터넷 강의 후기 사이트 ‘별별선생’에는 “최고의 EBS 적중률”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2015년 조은정 강사는 한 종편 입시 토크쇼에 입시 전문가로 출연한 바 있다.
“문항 제작 자체에서 느끼는 재미도 목적이었다.”(감사원 보고서 335쪽)
B 교사의 감사원 조사 답변이다. 그는 조은정 강사 외에도 다수의 사교육업체와 문항 거래를 했다. B 교사가 조은정 강사를 포함한 사교육업체에 문항을 판매하고 받은 금액은 총 11억 2100만 원. 2015년부터 2021년까지 6년간 벌어들인 액수다.
더 심각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문항 제작에 재미를 느꼈다던 B 교사. 하지만 학교 내신 시험 문제를 내는 데는 흥미를 못 느꼈던 걸까. B 교사는 조은정 강사에게 판매한 문항을 거의 그대로 학교 내신 시험에 출제했다.
2019년 보성고 3학년 1학기 중간·기말고사에, 이미 조은정 강사에게 판매한 문항 13개 중 11개를 그대로 냈다. 2개 문항은 일부 변형했다. 조은정 강사의 강의를 듣던 학생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 누군가는 덕분에 아주 좋은 성적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B 교사는) 교원들이 겸직허가를 받지 않고 문항을 출제하거나 검토하는 행위가 관행처럼 굳어진 상황에서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문항거래를 하였고”(감사원 보고서 344쪽)

B 교사에게 직접 묻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출간 전 EBS 교재를 몰래 빼돌리고, 11억 2100만 원이나 벌었으면서 정말 ‘문제의식’이 없었느냐고. 6년간 학원가에 판매할 9242개 문항을 성실히 만들고, 심지어 그것을 학교 내신 시험에 ‘재탕’했으면서도 잘못인지 몰랐느냐고.
지난 5월 9일과 13일 보성고로 찾아갔다. B 교사를 만나기 위해 학교 정문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B 교사는 지난 3월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보성고 교장과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드릴 말씀이 없다”는 입장만 전달받았다.
지난 18일 B 교사와 통화가 연결됐다. 그는 기자에게 “(질문에) 대답할 의무가 없다, 감사원 쪽에 (문항거래 관련) 이야기를 했다”며, “앞으로 무례하게 전화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셜록은 B 교사와 문항을 거래한 조은정 강사도 만났다. 지난달 29일 서울 양천구 목동 시대인재 학원에 찾아갔다. 조은정 강사는 문항거래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조은정 강사는 “2021년 B 교사와 문항거래를 끝내고, 2년 뒤에 갑자기 감사원에서 연락을 받았다”며 “검찰에 사건이 넘어간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항거래를 끝낸 이후에 B 교사와 따로 연락하고 지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셜록은 조은정 강사에게 ▲현직 교사와 문항거래는 불법이란 사실을 알았는지 ▲B 교사가 출간 전 EBS 교재를 활용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출간 전 EBS 교재를 변형한 문항을 판매하라고 먼저 요구했는지 ▲지금도 현직 교사와 문항거래를 하고 있는지 등의 내용으로 서면질의서를 직접 전달했다. 하지만 조은정 강사의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지난 1월 감사원은 ‘문항거래’ 교사들을 교육부에 통보하며 ‘징계’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지난 4월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현직 교사가 학원에 판매한 문항을 학교 시험에 또 출제하는 행위에 대해 “중징계 원칙으로 엄정 조치”하겠다고 강조한 바도 있다.
하지만, 셜록이 찾아낸 문항거래 교사 4명 모두 징계를 받지 않았다. 지난 16일 정근식 교육감은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셜록이 보도한 4명의 교사 중 3명은 지난 4월 31일자로 학교법인에 각각 중징계 정직, 해임, 강등 처분을 통보했다”며 “나머지 한 명은 감사원 재심의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립학교 교사는 교육청에서 직접 징계 처분을 하지 않는다. 교육청이 각 학교법인에 징계 양정을 심의해 통보하면, 학교법인이 징계위원회를 개최하고 최종 징계 처분을 내리게 된다.
B 교사는 징계 중이 아니라 휴직 중이었다. 육아휴직 중인 교원도 예외 없이 징계 절차는 진행된다. 다만 해임이나 파면 등 교직을 박탈하는 수준의 징계가 아니라면, 징계 시작일은 복직 이후로 유예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달 17일 문항거래 사건에 연루된 교사와 강사 등 100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B 교사도 조은정 강사와 함께 송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은정 강사는 기자에게 “사건이 검찰로 넘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문항을 판매한 교원과 학원강사는 청탁금지법 위반을 적용했다”며 “사교육업체에 판매한 문항을 학교 시험에 출제한 경우 업무방해 혐의를 받는다”고 말헀다. 그러면서 “출간 전 EBS 교재를 무단 유출한 교원은 업무방해, 업무상 배임으로 보고, 교재를 건네받은 사교육업체는 업무방해 공범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