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교육 카르텔’이라며 굉장히 불법적인 일을 돈 때문에 한 것처럼 언론에서 보도하면서….”
능력 있는 교사들이 관행처럼 물려주던 ‘고액 알바’. 그 알바는 ‘금지된 거래’였다. 그런데 당사자는 사뭇 억울한 목소리였다. 윤석열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사교육 카르텔’을 조준하면서 범죄자가 됐다는 항변. 과연 사실일까.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문제의 교사들을 찾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학원용 시험 문항을 제작해 거래한 교사들이다. 당연히 불법이다. 이렇게 ‘금지된 거래’로 2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번 교사도 있다.
일부는 학원에 판매한 문제를 약간 변형해 다시 학교 내신 시험에 내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해당 학원을 다니는 학생이 내신 시험에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된다.
지난 2월 18일 감사원은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실태 점검 공개문(이하 감사원 보고서)’을 발표했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학원과 학원강사에게 문항을 만들어 판매한 교사는 249명. 적발된 249명의 교사들이 5년간 얻은 수익은 총 212억 9000만 원이다.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교사는 18억 9000만 원을 벌었다.

‘금지된 거래’를 한 교사들은 누구일까. 감사원 보고서에도, 그동안 보도된 기사에도 적발된 교사들이 어느 학교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들이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도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학원용 교재 또는 모의고사 시험 문제를 만들어 파는, 이른바 ‘문항거래’는 엄격히 금지된 행위다. 2016년 교육부는 현직 교사가 학원 교재용 문제를 만들어주는 행위를 하면 최대 파면 또는 해임 조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원 249명이 ‘국가공무원법’ 제64조에 따른 영리업무 금지 의무를 위반하여 (…) 이들이 금품을 받은 행위는 정당한 권원 없는 금품수수를 금지한 청탁금지법 제8조에 위반되는 것으로 판단된다.”(감사원 보고서)
교사가 외부활동으로 돈을 벌 경우, 사전에 학교장으로부터 겸직허가를 받아야 한다. ‘문항거래’는 그 자체로 불법이라 겸직허가가 나와서는 안 되는 일. 하지만 학교장으로부터 떡하니 겸직허가를 받아 문항거래를 한 교사도 있었다.
셜록은 지난 두 달간 ‘감사원 보고서’에 등장한 교사들을 추적했다. 꼭꼭 숨겨진 단서들을 모아 4명의 교사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지난 1월 감사원은, 적발된 교사들의 비위를 교육부에 통보하며 ‘징계’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 뒤로 5개월째. 셜록이 찾아낸 4명의 교사들은 징계를 받았을까. 정답은 ‘아직’이다. 셜록이 찾아낸 교사 4명은 그대로 학교에 있었다.
4명의 교사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EBS 수능연계 교재 집필진이었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모의평가・교육청 주관 전국학력연합평가 등 시험의 출제・검토위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능력 있는’ 교사들이다.
서울 장충고 A 교사도 마찬가지로 실력을 인정받는 교사였다. 하지만 그는 학원용 모의고사 문항도 만들어 팔았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문항거래로 벌어들인 돈은 약 2억 3800만 원. 총 11개 사교육업체와 거래해 얻은 수익이었다.
A 교사는 ‘스타강사’에게도 문항을 팔았다. 바로 메가스터디 영어 조정식 강사다. ‘1타강사’로 이름을 알린 그는 현재 한 종편 채널의 입시 상담 프로그램에도 출연 중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조정식 강사는 현직 교사들이 제작한 사설 모의고사 등 교재에 필요한 문항을 구매해왔다. A 교사도 조정식 강사의 ‘거래처’ 중 한 명이었다. 2021년 1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A 교사는 조정식 강사와 문항거래 대금으로 5800만 원을 받았다.
“(A 교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장충고 학생들이 조정식 문제지를 푸는 것을 보았고 그 중 자신이 판매한 문항을 보았다고 진술”(감사원 보고서)

셜록이 찾아낸 교사들은 단순히 학원 시험 문제를 만들어 파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교사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알아낸 ‘고급 정보’도 학원과 학원강사에게 넘겼다.
감사원은 현직 교사 249명이 ▲사교육업체와의 문항 거래 ▲사교육업체에 판매한 문항을 학교 지필고사에 출제 ▲문항 거래 전후 수능 및 모의평가 출제위원 참여 ▲EBS 수능 연계교재 파일 유출 ▲사교육업체와 전속계약 체결 ▲원격학원에서 유료 강의 진행 등을 해왔다고 밝혔다.
EBS 수능 연계교재를 집필한 이력이 있는 서울 송파구 보성고 B 교사. 그는 문항거래를 위해 EBS 교재를 ‘무단 유출’했다. 서점 매대에 EBS 교재가 깔리기도 전에, 변형 문항을 만들어 또 다른 ‘1타강사’에게 판매했다.
B 교사는 스카이에듀 영어 조은정(현 시대인재) 강사와 문항거래를 했다. 이들의 ‘금지된 거래’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이어졌고, 그 대가로 B 교사는 약 7억 5000만 원을 받았다.
당시 조은정 강사는 EBS 연계 강의로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EBS 교재에 나온 영어 지문이 강의 자료에 그대로 나오는, 그야말로 ‘쪽집게 강사’였다. 조은정 강사는 2015년 입시 교육 프로그램에 사교육 전문가로 출연하는 등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명성 뒤에는 ‘금지된 거래’가 존재했다.
‘1타강사’들의 강의 교재에는 어떤 문제를 누가 만들었는지 밝히지 않는다. 한 마디로, 교사들은 문제를 팔아 돈을 벌고, 학원강사들은 교사들이 출제한 문제로 ‘명성’을 쌓았다.

2016년 교육부가 엄격히 금지한 이후에도, 문항거래는 ‘관행’이라는 탈을 쓰고 계속됐다. 서울 양천구 양정고 C 교사는 한 발 더 나아가, “능력 있는 소수 교사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기자에게 항변했다.
C 교사는 메가스터디에서 출판한 수학 기본서 등 출판 교재를 집필한 경력이 있다. 그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5개 사교육업체에 사설 모의고사 문제 등을 판매해 약 2억 3000만 원을 벌었다.
학교 안에서도 ‘금지된 거래’는 비밀이 아니었다. 학교장을 포함해 동료 교사들도 알면서 문제 삼지 않은 일.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일이었다.
“문항거래를 몰래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능력 좋은 선생님으로 평가받고 있었는데, 감사원 조사가 시작되면서 범죄자가 됐죠.”
서울 양천구 목동고 D 교사의 항변이다. D 교사는 30년 넘게 교직에 몸담았지만, 문항거래가 문제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2016년 교육부가 문항거래를 금지하는 공문을 낸 건 알고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관행’이기 때문이다.
D 교사는 메가스터디, 대성학원, 이투스, 시대인재 등 대형 학원에 수능 모의고사 국어 문제를 만들어 판매해 약 1억 9900만 원을 벌었다. 심지어 학원에 판매한 문항을 학교 내신시험에 내기도 했다. 약간씩 문제를 변형했으니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다.

지난 4월 22일 서울시교육청은 교사가 학원에 판매한 문제를 학교 시험에 ‘재탕’한 경우, 엄정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입장문을 통해 “특히 사교육업체에 판매한 문항을 본인의 학교 시험에 그대로 출제한 행위는 교육의 공정성과 평가 신뢰성을 매우 심각하게 훼손한 중대 사안”이라며 “서울시교육청은 이에 대해 중징계 원칙으로 엄정 조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시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교육청의 의지가 무색하게도, 셜록이 찾아낸 장충고 A 교사, 보성고 B 교사, 양정고 C 교사, 목동고 D 교사는 현재까지 아무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6월 5일 기준).
감사원에 적발된 249명 중 162명이 서울시교육청 소속이다. 셜록이 찾아낸 4명의 교사뿐 아니라, 서울시교육청 소속 교사 그 누구도 아직 징계를 받지 않았다.
공립 교원은 교육청이 직접 징계하고, 사립은 학교법인에서 징계를 내린다. 아직 서울시교육청에서 공립 교원을 상대로 징계위원회를 개최한 바 없다. 사립 교원은 일부만 6월 29일까지 징계하라고 학교법인에 통보한 상태다.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은 “교원이 징계 과정에서 구제 절차를 신청하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4월 17일, ‘문항거래’ 사건으로 입건된 126명 중 100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송치된 100명 중 현직 교사는 72명, 사교육업체 법인 3곳, 강사 11명 등이 포함됐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