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적발한 ‘문항거래’ 현직교사 249명 중 눈에 띄는 교사들이 있었다. 그 중 ‘조직’을 만들어 문항거래로 수억 원의 수익을 낸 교사가 있다. 그는 TK지역 신흥 명문고로 불리는 ‘대구 경신고’ 수학 교사다.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경신고는 2011학년부터 자사고로 운영되다가, 2018년 일반고로 전환했다. 지난해 경신고 서울대 합격자는 15명으로, 그 중 4명은 서울대 의대에 붙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전국 수석도 경신고 출신이었다.
지난 2월 감사원은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실태 점검’ 보고서(이하 감사원 보고서)를 발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명문’ 경신고의 H 교사는 2019년 1월부터 2023년 5월까지 문항거래 조직을 운영했다. 현직 교사 9명이 모인 조직이었다. 이들은 약 4년 4개월간 6억 6000만 원 상당의 매출(?)을 올렸다.

문항거래는 현직 교사가 특정 학원이나 강사 수업에서 사용되는 모의고사 문항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행위를 말한다. 2016년부터 교육부가 금지한 불법행위다. 현직 교사가 서점에서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수험서를 집필하는 건 겸직허가를 받으면 불법이 아니다. 반면, 특정 학원이나 강사와의 문항거래는 겸직허가 신청조차 할 수 없는 ‘불법행위’다.
H는 실력이 뛰어난 교사였다. 2020년부터 2024학년도 수능・모의평가 검토위원으로 7회 참여한 경력이 있다. 그는 수능 검토위원 경력을 이용해 수능 출제 경향이 담긴 모의고사 문항을 만들어 특정 학원과 강사에게 판매했다. H 교사를 포함한 문항거래 ‘조직’ 내 현직 교사 9명은 모두 수능 출제・검토위원 출신이었다.
“수능과 모평 검토위원으로 쌓은 노하우가 사교육업체 등에 판매한 문항에 반영되었다는 점을 인정함”(감사원 보고서 259쪽)

H 교사는 문항거래를 시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형학원에 제안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9년 H 교사는 자신의 지인을 통해 대성학원 관계자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그는 먼저 학원 측에 전화해 문항거래를 제안했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직접 가 문항거래 계약을 따냈다. 조건은 모의고사 1회(33개 문항)당 1000만 원.
모의고사 문항을 제작하면서 ‘일손’이 필요했던 H 교사. 그는 대구의 다른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에게, 판매대금 절반을 줄 테니 함께 제작하자고 제안했다.
“모의고사 제작 요청이 들어왔는데 도와주면 판매대금 절반 주겠다”(감사원 보고서 261쪽)
H 교사의 문항거래 조직은 주변 ‘인맥’을 모으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같은 경신고 교사도 있었고, 수능 검토위원을 하며 알게 된 교사들도 끌어들였다.
문항거래 조직도 9명까지 늘었고, 거래 규모도 점차 커졌다. 처음에는 대성학원과 문항거래를 하다가, 시대인재학원 등 다른 사교육업체에도 문항을 만들어 팔았다. 이후, 각 대형학원의 ‘1타강사’들에게도 수업에 필요한 문항을 주문받았다.

거래 상대 중에는 대구 경신고 교사 출신 수학강사도 포함됐다. H 교사도 자신의 동료처럼 학원강사로 전직을 시도한 적 있었다. 2019년 11월경 시대인재학원 강사 채용 면접을 봤지만, H는 교사 생활을 계속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대신 시대인재학원 측에 문항거래를 제안한 사실이 감사원을 통해 밝혀졌다.
H 교사와 문항거래 조직이 약 4년 4개월간 벌어들인 수익은 약 6억 6000만 원. 돈은 각자 기여도에 따라 나눠가졌다. H 교사는 사교육업체와 접촉해 문항거래 일감을 가져왔다. 문항거래 대금도 대부분 H 교사가 받은 뒤 다른 교사들에게 나눠줬다.
H 교사는 자신이 문항거래를 총괄하고, 중간에 문항거래 대금을 받아 세금을 더 낸다는 이유로 약 24%의 수수료를 챙겼다. 일종의 ‘알선비’ 명목이었다. H 교사는 자신이 직접 문항을 제작한 대가 1억 600만 원과 수수료 1억 6000만 원을 가져갔다. 총 2억 6600만 원 상당이다.
“본인이 사교육업체 등과의 문항거래 총괄, 사교육업체 등과의 접촉, 세금 총괄 납부 등을 사유로 문항 제작 대가 외에 수수료를 받았으며, 그 비율은 총 수입액의 24% 정도라고 답변”(감사원 보고서 260쪽)
H 교사는 자신이 교사 9명의 문항거래 대금을 직접 받으면서 세금 부담이 커졌다. 감사원은 H 교사의 ‘탈세’도 의심했다. 문항거래 대금을 자신의 아내와 처남, 문항거래 조직에 속한 교사들의 배우자나 가족 명의 계좌 등 12개 계좌로 대금을 쪼개서 받았다.세금을 피해 받은 문항거래 대금은 총 3억 8700만 원.

수능 출제・검토위원 출신 현직 교사들의 ‘문항거래 조직’. 해당 교사들은 애초에 수능 관련 업무를 할 자격이 없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학수학능력시험관리규정’에 따르면, 과거 3년간 수험서 집필 실적이 있는 교원은 수능 출제・검토 업무에 참여할 수 없도록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당연히 사교육업체에 문항을 만들어 판매한 교사도 참여하면 안 된다.
하지만 수능 출제・검토위원 후보자가 평가원에 거짓말을 해도 알 길은 없었다. 평가원이 후보자의 소득자료나 개인정보를 조회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H 교사는 ▲문항거래 ▲알선비 취득 ▲탈세 등의 혐의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감사원은 H 교사에 대해 “해임 등 신분상 책임을 묻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대구시교육감에게 통보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의원실(서울 중구성동구을)에 따르면, 지난 3월 대구시교육청은 H 교사를 중징계 조치하라고 대구 경신고 측에 통보했다.
하지만 H 교사의 징계 처분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지난 11일 대구 경신고 박병주 교감은 “H 교사의 중징계는 아직 징계위 결정이 나지 않았다”며 “7월 안으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항거래에 가담한 대구 경신고의 또 다른 수학교사에게는 경징계 처분이 내려졌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4월 대구 경신고 H 교사를 포함한 현직교사 72명, 사교육업체 법인 3곳, 강사 11명 등 100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다.
지난달 셜록은 문항거래 교사 4명의 사례를 보도했다. 장충고 A, 보성고 B, 양정고 C, 목동고 D 교사다. H 교사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현직교사 신분으로 대형학원이나 학원강사 등 사교육업체와 문항을 거래한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됐다.(관련기사 : <학원과 ‘금지된 거래’ 한 교사들… 셜록이 찾았다>)
문항거래 사건에 메가스터디 조정식 강사가 연루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A 교사가 출간 전 EBS 수능연계 교재 파일을 조정식 강사 측에 건넨 정황도 적발됐다. 수능 검토위원 출신 F 교사는 수능・모평 특정 문항에 관한 평가원 정답도출 논리를 조정식 강사에게 건넸다.(관련기사 : <1타강사’ 조정식에게 문제 팔고 수천만원 받은 교사>)
장충고 A 교사와 조정식 강사도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셜록의 보도 이후, 지난달 11일 조정식 강사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무혐의를 확신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지난달 26일 조정식 강사는 직접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해당 건에 대해 도덕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짧은 입장문을 게시하기도 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