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 서울 중구 장충고 정문 앞. ‘한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던 날이었다. 교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세 번째 통화에서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렸다.
“네, A입니다.”
“조정식 강사와 문항거래 하셨던 선생님 맞으시죠?”
“잘 모르겠습니다.”
A 교사는 전화를 급히 끊었다. 그는 ‘1타강사’로 잘 알려진 메가스터디 영어 조정식 강사에게 학원용 모의고사 문제를 팔고 5800만 원을 받았다. A 교사는 조정식 강사 포함 11개 학원에 문항을 판매해 약 2억 3800만 원을 벌었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약 5년간 챙긴 돈이다.

‘금지된 거래’로 교사는 돈을 벌고, 강사는 명성을 얻었다. 현직 교사가 학원 시험용 문제를 만들어 파는 행위는 법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다. 국가공무원법과 청탁금지법 위반. 2016년 교육부는 ‘최대 파면 또는 해임’ 징계로 엄히 벌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A 교사는 여전히 학교에 있었다. 공교육에 종사하는 학교 선생님이, 사교육업체에 돈을 받고 문제를 파는 ‘금지된 거래’로 억대 수익을 올렸는데도.
A 교사는 ‘능력 있는’ 교사였다. 2009년부터 EBS 수능 연계교재 등을 집필했고, 2005년부터 서울시교육청 주관 전국연합학력평가 출제위원으로 활동했다. A 교사에게 ‘금지된 거래’를 위해 먼저 접근한 건 학원 쪽이었다.
지난 2월 공개된 감사원의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실태 점검 공개문(이하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1월 A 교사는 메가스터디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수강생들이 보는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출제할 생각이 있냐고 묻는 직원의 말에, A 교사는 승낙했다.

“다른 사람이 조만간 연락할 겁니다. 판매 문항은 조정식 월간지 모의고사에 사용됩니다.”
이후 A 교사에게 연락한 사람은 조정식 강사에게 문항을 판매하는 업체 E 대표였다. 해당 업체는 조정식 강사가 자신의 연구소 직원이던 사람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A 교사는 매월 말일 고등학교 3학년 수능 모의고사용 영어 문항을 만들어 판매하기로 했다. 판매 금액은 문항당 15~20만 원. A 교사가 맨 처음 판매한 문항은 10개. 첫 판매 대금 200만 원은 조정식 강사가 직접 A 교사의 계좌로 보냈다.
“(A 교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장충고 학생들이 조정식 문제지를 푸는 것을 보았고 그 중 자신이 판매한 문항을 보았다고 진술”(감사원 보고서)
2016년부터 교육부는 현직 교사가 학원 교재용 문항을 만들어주는 거래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최대 파면 또는 해임 조치를 받을 수 있다. 학교장이 겸직 허가도 내줘서는 안 되는 ‘위법’행위다.(관련기사 : <학원과 ‘금지된 거래’ 한 교사들… 셜록이 찾았다>)

조정식 강사와 거래한 교사는 더 있었다. 조정식 강사의 ‘문제 거래처’가 된 현직 교사는 모두 21명. EBS 수능 연계교재 집필, 서울시교육청 주관 전국연합학력평가 문항 출제 등 경력을 가진 ‘에이스’들이었다.
“조정식 강사가 이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수능 영어문항의 난이도, 출제방향 등 수능 관련 정보를 얻을 기회를 가질 수 있으므로 다른 사교육업체보다 높은 단가를 지급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감사원 보고서 중 문항공급업체 E 대표 진술)
EBS 교재 집필진이던 A 교사는 서점에 진열되지도 않은 EBS 수능연계 교재 두 권을 무단 유출하기도 했다. 그 파일은 조정식 강사에게 전달됐다. A 교사는 ‘교재 집필 중 알게 된 모든 사실을 EBS 허락 없이 유출할 수 없다’는 보안서약서를 위반했다.
“꼭 비밀을 유지하고 책이 나올 때까지 프린트해서 사용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위 EBS 교재 파일을 E 대표에게 제공”(감사원 보고서)

수능·모의평가 ‘정답 풀이’도 유출됐다. 그 정보도 조정식 강사에게 향했다. ‘1타강사’로 불리는 학원강사들은 수능·모의평가 시험이 끝나고 해설 강의를 한다. 성적표가 나오기 전, 학생들이 자신의 풀이가 맞았는지 점검하기 위해 듣는 강의다.
정답풀이 정보는 수능·모의평가 검토위원 출신 서울 공립고 F 교사로부터 나왔다. 수능·모의평가 검토위원은 자신이 참여한 경력을 비밀로 해야 한다. 검토위원 참여 과정에서 알게 된 모든 내용도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에도 서명한다.
하지만 조정식 강사가 문항공급업체 E 대표에게 2022학년도 9월 모의평가 영어 37번 문제와, 같은 해 시행된 수능 영어 34번 문항에 대한 정답도출논리를 알아봐달라고 지시하자, 서약서는 의미 없는 종이쪼가리가 됐다.
문항공급업체 E 대표 : “혹시 평가원 박사님하고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F 교사 : “문자로만 얘기를 나누었어요. 37번에 한정해서요.” (감사원 보고서 인용)

조정식 강사는 메가스터디 영어 대표 강사로 자리매김한 ‘스타강사’다. 그는 유명 방송 프로그램 게스트 출연뿐만 아니라, 2023년부터 채널A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사교육업계에서 명성을 떨친 조정식 강사는 △문항거래 △수능·모의평가 정답도출논리 입수 △출간 전 EBS 교재 유출 파일을 전달받은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됐다.
감사원은 조정식 강사가 문항거래 사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감사원 문답조사에서 “EBS 교재 집필경력이 있다는 것은 수능에 가까운 양질의 문항을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며 현직 교사들에게 문항제작을 의뢰한 이유를 진술했다.
또한 “교원들이 문항당 단가가 높은 업체에 질 좋은 문항을 공급할 것으로 생각해 주변 시세보다 높게 대가를 지급했다”고 덧붙였다.

조정식 강사와 거래한 교사들은 어떤 처분을 받았을까. 지난 1월 감사원은 A 교사의 비위를 서울시교육청에 통보했다. 공립고에 재직 중인 F 교사에게는 경징계 이상 징계 처분을 요구했다.
그 뒤로 5개월째인 지금. 아직 징계는 받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아직 징계 절차는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A 교사가 아직도 ‘교무실에서’ 기자의 전화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달 17일, 학원과 문항 거래를 한 현직 교사 72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126명을 입건해 100명을 검찰에 송치했는데, 사교육업체 법인 3곳, 학원강사 11명 등도 포함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문항거래한 교원과 학원강사는 청탁금지법 위반을 문제 삼았다”며, “출간 전 EBS 교재 무단 유출은 업무방해와 업무상 배임 등 혐의를 적용했고, 무단 유출한 교재를 건네받은 학원강사도 업무방해 공범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셜록은 지난 4월 28일과 30일, 그리고 5월 2일 사흘에 걸쳐 A 교사의 반론을 듣기 위해 장충고를 직접 찾아갔다. 정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며 열두 차례 전화를 걸었다.
A 교사는 단 한 차례 연결된 통화에서 “잘 모르겠다”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추가 입장을 묻기 위해 장충고 이사장, 교장, A 교사 앞으로 각각 서면질의서를 등기우편으로 발송했지만, 회신은 없었다.
지난 5월 13일 조정식 강사의 수업 교재를 제작하는 한 업체를 방문해 반론을 요청했다. 조정식 강사의 아내가 대표자로 있는 업체였다.
자신을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라고 소개한 직원은 “장충고 교사와 조정식 강사의 문항거래 사건은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다. 업체 이메일 주소 등 연락처를 요청하자, “기자에게 직접 연락하겠다”고 말하며 연락처 제공을 피했다. 현재까지 업체 측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지난 5월 20일 조정식 강사와 메가스터디교육에 각각 서면질의서와, 취재 요청 이메일을 보냈다. 메가스터디교육 본사에 우편으로도 서면질의서를 보냈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10일 보도 이후, 조정식 강사는 자신의 법률대리인을 통해 입장을 전했다. 조 강사의 법률대리인은 감사원 보고서 내용과 달리 “문항거래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재 조 강사는 문항거래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수능·모의평가 ‘정답풀이’ 유출에 관해서는 “해설 영상을 촬영한 이후 정답도출 논리를 입수한 것”이라며 “선후관계가 다르다”고 해명했다.
한편, 조 강사의 법률대리인은 ▲조 강사와 문항공급업체 E 대표의 관계 ▲조 강사가 E 대표에게 장충고 A 교사 연락처를 직접 전달했다는 감사원 보고서 내용 등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