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하늘을 집어삼킬 듯 쏟아 내린 지난달 17일. 기자는 경기 안성시를 찾았다. 친환경 농업인 양철훈 씨(가명, 50대)의 1톤 트럭을 타고 함께 식당으로 가는 길. 창문 밖으로 펼쳐진 시골길에 차림새가 깔끔한 중장년 무리가 꽤 보였다. 평일인데도 식당 곳곳엔 여러 대의 고급 승용차가 주차돼 있었다.
“여기 골프장이 있으니까 외지인들이 많이 와요. 대부분 식당에도 백숙, 닭볶음탕같이 골프 치러 온 사람들을 위한 메뉴가 따로 있죠.”

양 씨는 2016년 고향 안성으로 귀농했다. 그는 그때부터 약 10년 동안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해온 ‘친환경 농업인’이다. 현재 1만 평 규모의 밭에서 감자, 마늘, 양파, 무 등을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 생산하고 있다. 이 농지는 모두 다른 사람에게 빌린 땅이다.
“직장 다니다가 귀농해갖고 농사 지으려고 하는데, 후발주자는 땅 구하기 되게 힘들어요. 처음에 쪼가리 땅 500평을 겨우 구해서 친환경 농사를 시작한 거죠. 초창기엔 농사를 실패했어요. 양파를 키웠는데, 땅에 영양분이 없으니까 안 크는 거죠. 한 2년을 (유기) 토양을 만든다 생각하고 투자만 했죠.”
2021년엔 지인 땅 1400평을 빌려 친환경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서면으로 농지 임대차계약서를 쓰지 못했다. 지주의 요청 때문이었다.
그는 빌린 땅으로 ‘친환경인증’부터 받았다.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을 최소화한 환경에서 생산한 친환경농축산물에 인증표시를 하는 제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에서 주관한다.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무농약에서 유기토양으로 전환되는 시점(3년차)인 2024년, 양 씨는 농관원의 연락을 받았다. 지주가 직불금 부정수급 단속에 걸린 것.
“농관원에서 지주가 직불금 부정수급으로 걸렸다면서, (저한테) 그 땅에서 몇 년째 농사짓고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농관원에선 현장점검도 나왔다. 양 씨는 농지 임대기간에 대한 사실확인서를 적어 제출해야 했다.
“언제부터 농지를 임대했고, 무슨 작물을 농사지었고, 그런 내용을 자필로 적어서 사실확인서를 (농관원 쪽에) 냈죠. 농관원은 직불금 부정수급에 대한 근거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농가소득 안정화를 위해 농업인에게 지원하는 직불금. 원칙적으로 직불금은 지주가 아니라 실경작자가 수령하는 게 맞다. 실제 농지를 경작하지 않으면서 직불금을 신청하거나 수령하면 부정수급으로 간주된다. 농지법에는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는 자경(自耕) 의무를 명시해놨다.
양 씨가 두려움에 떤 이유는 따로 있다. 친환경인증 취소다. 임차농이 친환경인증을 받으면, 그 땅의 실제 경작자가 지주와 다른 사람이란 게 들통난다. 농사는 짓지도 않으면서 직불금을 부정수급 해온 지주들은, 그 때문에 임차농에게 친환경인증을 포기하라고 압박하는 것.
“다행히 친환경인증 취소는 안 했어요. 근데 아주 불안해요. 또 지주가 직불금 부정수급으로 걸릴까봐요. 그래서 저는 농작물재해보험도 제대로 가입을 못해요. 실경작자가 있다는 게 탄로나면, 지주가 땅을 안 빌려줄 수 있잖아요. 올해 1200평 땅에 심은 양파가 병이 났는데, 재해보험을 못 들어서 보상을 못 받았죠.”
사실 지주들이 땅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직불금 때문만은 아니다. 기본공익직불금의 경우 매년 소규모 농가에 지원되는 금액은 130만 원 정도. 농지의 면적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연간 몇 백만 원 수준을 넘지 않는다. 그보다 언젠가 골프장이 들어서거나 고속도로가 뚫릴 수도 있다는 ‘개발 기대심리’가 더 큰 요인이라 보는 게 합리적이다.
실례로 안성시의 경우 전체 농지의 평균 실거래가는 2025년 9월 기준 1평당 약 51만 원이다.(농지은행 농지실거래가격 현황) 전국 농지 평균 실거래가(1평당 17만 2893원, 2025년 7월 기준)와 비교할 때 약 세 배나 비싸다.
사단법인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 자체 조사에 따르면, 친환경농업 생산자의 약 80%가 임차농. 이중 서면으로 농지 임대차계약서조차 쓰지 못하는 임차농도 10명 중 3명 꼴이다. 사실상 땅 있는 사람은 살고, 없는 사람은 쫓겨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지주들이 농지 임대차계약서를 안 써주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 지주 대신 실경작자가 농사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기 위한 것. 그 경우 직불금을 못 받을 뿐만 아니라 세금 혜택에도 영향을 받는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에는 농지를 소유한 사람이 8년 이상 자경할 경우 양도소득세를 감면해주는 혜택을 주고 있다.
혜택은 지주에게 돌아가고, 피해는 임차농에게 남는다. 지주의 뜻에 따라 농지 임대차계약서를 쓰지 못한 임차농들은 ‘농업경영체’조차 등록하기 어렵다. 농업경영체(농업인, 농업법인)는 관련 보조금 등을 받기 위해 꼭 필요한데, 땅이 없는 임차농들은 지주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셈이다.
친환경인증을 받은 농업인을 위한 보조금이 존재하지만, 꿈도 못 꾼다. 실제 친환경인증을 받은 농업인들에게 지원해주는 ‘친환경농업직불금’의 경우 절반 이상이 수령하지 못하고 있다.
이원택 국회의원실(군산시김제시부안군을, 더불어민주당) 자료에 따르면, 친환경농업 인증면적 대비 친환경 농업 직불금을 수령하는 면적은 2023년 기준 전체 인증면적(6만 9412ha)중 절반도 안되는 47%(3만 2602ha)에 불과하다. 임차농들이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주요한 원인이다.
이렇듯 이미 정부 지원 혜택에서 친환경농업 임차농들은 충분히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 그럼에도 지주의 직불금 부정수급으로 인한 불이익마저 임차농들이 감수하고 있는 상황.

홍안나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처장은 문제의 원인으로 ‘부재지주'(농지 소재지에 실제로 거주하지 않으면서 해당 농지를 소유한 사람)를 꼽았다.
“친환경 농업인들 중에 임차농 비율은 경기도가 높은 편이에요. 경기도는 ‘언제든지 이 땅은 개발될 수 있다’, ‘나의 자산을 엄청나게 튀겨줄 수 있다’ 이런 기대심리가 큰 지역이잖아요. 농지를 소유하면 언젠가는 개발될 수 있다는 심리가 있어서 (농사를 안 지으면서도) 농지를 소유하려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봅니다.
곧 개발돼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팔아먹을 수가 없다는 거죠. 대표적인 사례가 윤석열 장모 최은순 일가의 경기도 양평 농지죠. 농지를 소유해도 실제 농사를 지었는지는 엄격하게 검증이 안 되잖아요.”
부재지주는 이미 한계치를 넘어섰다. 2015년 기준 전체 경지면적 168만㏊ 가운데 비농업인이 소유한 농지는 약 44%로 집계된다.(출처 : <‘농지법’상 예외적 농지소유 및 이용 실태와 개선과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채광석 연구위원, 2019년)
고령화와 영농 승계 상황을 고려할 때 약 10년 뒤 우리나라 전체 농지 소유주의 84%가 비농업인이 될 거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즉, 농사를 위해 쓰여야 하는 농지가 비농업인들에 의해 제 역할을 못하게 되는 셈.
“농민들의 평균 나이가 69세예요. 농민들은 늙어가고 점점 더 많은 농지는 부재지주에게 넘어가는 상황이 필연적입니다. 직불금 지급 집행 방식과 농지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이 이뤄지지 않으면, 10년 후 대다수가 될 수밖에 없는 임차농을 보호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결국 한국에서 농업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는 겁니다. 식량위기가 가속화돼가는 것을 지켜 보고만 있는 꼴 같습니다.”(홍안나 사무처장)

이날 기자는 양 씨의 1톤 트럭을 타고 인근 밭으로 같이 이동했다. 그가 임대해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는 밭은 산과 인접해 조금 가팔랐다. 필지별로 무, 양파, 생강 등이 심어져 있었다. 그는 지금은 농사짓지 않는 필지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유일하게 지주가 직불금 받게 해줬던 농지예요. 지주가 교장 선생님이었는데, 양심적으로 농지 임대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돌아가셔서 제가 더 이상 농사를 못 지어요.”
800평 무 밭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작물과 잡초가 잘 구분되지 않았다. 사람이 오가는 밭고랑에도 풀이 한가득 자랐다.
“친환경농업을 하기 때문에 제초제를 쓸 수 없어서 풀이 많이 자랐어요. 풀 깎은 지 열흘밖에 안 됐는데 온통 풀이네요. 다 사람 써서 직접 풀을 뽑아야 합니다. 한 번 풀 뽑는 데 20명 정도 들어가야 해요. 솔직히 인건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픕니다.”
양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친환경 농업은 관행농과 비교할 때 고행처럼 느껴졌다. 살충제와 농약을 뿌리면서 좀 더 수월하게 농작물을 키울 수도 없고, 정부 지원금을 더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도 그는 왜 친환경농업을 하고 있는 걸까?
“어차피 우리 농토, 우리 지구는 우리 세대에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내 자식도 있고 내 손자도 있고 후손들이 있잖아요. 후손들한테 땅을 온전하게 넘겨줘야죠. 6.25전쟁 때 썼던 독성물질(DDT, 독성살충제 종류)이 아직도 땅에서 나오는데, 그런 땅을 그대로 후손한테 넘겨주면 안 될 거 아닙니까.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서, 그리고 환경을 위해서도. 우리가 친환경 농사를 지으면서 지구를 지킨다는 그런 자부심으로 농사짓고 있습니다.”

어기구 국회의원실(충남 당진시, 더불어민주당)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친환경인증 농가는 20%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재명 정부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을 발표하며 친환경유기농업의 확대를 약속했다. 지금보다 친환경유기농업의 면적을 2배 더 확대하겠다는 목표.
대한민국 헌법에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명시돼 있다. ‘농지는 농사 지을 사람만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친환경농업의 현실에서 이 원칙은 무너진 지 오래다. 실제로 농사를 짓는 ‘농민’이지만 땅을 가진 ‘지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독박 쓰는 현실. 사회 곳곳에 자란 ‘욕망의 잡초’를 언제쯤 뿌리 뽑을 수 있을까.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