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이다. 농지 불법 소유가 의심되는 고위공직자들을 열심히 쫓아다닌 적이 있다. 특히 한 판사와 그 가족을 집중취재했다. 당시 한 고등법원장의 아내는 약 4억 원을 주고 매입한 농지 300여 평에 매실나무를 심었다. 매실을 수확해서 어디다 쓰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법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음식용 효소로 만들거나 한약재와 혼합하여 건강음료로 만들어 자가소비하거나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약 4억 원이나 주고 산 농지에서 매실 농사를 짓고는, 그 매실은 팔지 않고 지인들과 다 나눠 먹었다는 말. 연간 순이익을 어림잡아 100만 원으로 계산해도,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농지 매입비 약 4억 원을 충당하려면 대략 400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농사를 제대로 지을 것도 아니면서 이 땅을 도대체 왜 산 걸까.

사실 이는 ‘농지 투기꾼’들의 전형적인 수법과 닮아 있다. 2021년 LH 임직원들이 소유 농지에 묘묙을 빼곡히 심어놓고 ‘농사짓는 척’ 눈속임을 해 논란이 된 적 있다. 현행 농지법 제6조 1항에는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자경(自耕) 의무. 농지는 농사지을 사람만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농사는 짓지 않지만 땅은 갖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망 때문에, ‘땅은 없지만 농사는 짓고 싶다’는 사람들이 애꿎은 피해를 겪고 있다. 대표적으로 친환경 임차농들이다.
배경에는 앞서 언급한 LH 임직원들의 농지 투기 사건이 있다. 사건이 알려진 2021년 이후 정부의 직불금 부정수급 단속이 강화됐다. 그 과정에서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농지를 소유하고 직불금까지 부정하게 타먹은 지주들이 단속에 걸렸다.
특히 농지에 지주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친환경인증을 받은 경우, 직불금 부정수급의 증거가 됐다. 본인을 대신해 실경작하는 임차농이 있다는 사실이 들통난 지주들. 그들은 오히려 친환경 임차농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주들이 임차농들에게 제시한 선택지는 두 가지. 친환경인증을 취소하거나, 아니면 빌린 땅을 포기하거나. 임차농 입장에선 두 개 모두 생계를 위협하는 협박에 가까운 조건들이다.
잘못은 지주가 하고, 피해는 임차농들에게만 돌아가는 꼴. 원칙대로라면 직불금 역시 임차농에게 가는 게 맞다. 하지만 친환경 임차농들을 직불금은 직불금대로 못 받고, 그걸 빌미로 농사 자체를 포기해야 할 위기에 놓인다. 사단법인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에 따르면, 친환경 농업인의 약 80%가 임차농이다.
결국, 농사도 짓지 않는 지주들이 ▲직불금 부정수급 ▲세금 혜택 혹은 ▲개발이익 등을 노리고 땅을 팔지 않고 있다가 엉뚱하게 임차농들한테 불통이 튀는 상황이다.(관련기사 : <땅 없는 게 죄… ‘부정수급’ 지주 위해 친환경 포기>)

이 난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친환경농업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 자문을 구했다.
먼저, ‘직불금 제도 확립’이다. 애초 직불금은 농사짓지 않는 지주들이 받을 수 없는 돈이라는 걸 확립해야 한다. 농사는 짓지 않으면서 직불금을 노리고 농지를 소유만 하려는 욕심 자체를 아예 못 갖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농가소득의 안정화를 위한 직불금이 ‘진짜 농민’에게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홍안나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처장은 현재 변질된 직불금 제도의 문제를 지적했다.
“농업인의 소득이 도시근로자의 60%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농업이라는 공공적 가치나 국가 안보적 가치를 인정하고 농업인에게 소득을 보전해줌으로써 농업을 계속하게 만드는 성격으로 직불금은 도입된 거예요. 그런데 땅 주인들은 ‘땅이 없으면 어떻게 농사를 짓냐 그러니까 직불금을 땅 주인이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펼쳐요. ‘땅이 곧 농사’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거죠.“
‘부재지주’가 큰 문제다. ‘부재지주’는 농지 소재지에 살고 있지 않으면서 땅을 소유하고 있는 외지인을 말한다. 2021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경지면적 168만㏊(2015년 기준) 가운데 비농업인이 소유한 농지는 약 44%로 집계된다. 이중 대다수가 부재지주로 추정된다.
직불금 제도가 확립되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부정수급 단속’과 ‘세금 환수’가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농촌사회 전반에 ‘농사짓지 않는 지주들이 임차농을 대신해서 직불금 받으면 큰일난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지주들을 대상으로 보상적 접근도 필요하다. 지주와 임차농의 ‘상생’을 위해서다. 지주들이 자경을 눈속임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세금 혜택’이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에는 농지를 소유한 사람이 8년 이상 자경할 경우 양도소득세를 감면하는 혜택을 주고 있다.
이에 두 가지 법을 함께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바로 ‘농지법’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다.
첫 번째는 친환경인증을 받은 농민에 대한 농지 임대차를 법적으로 인정해주는 것. 현행 농지법상 사인 간의 농지 임대차는 불법이다. 징집, 질병, 선거에 따른 공직 취임 등 한정된 사유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친환경농업의 경우 예외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법을 바꿔서, 친환경농업을 이유로 농지를 임대차하는 것을 합법화해주자는 말이다.
“지주만 때려잡을 게 아니라 오히려 농지를 농업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끔 양성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농지를 농업용도로 쓸 수 있게끔 제대로 양성화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은 어렵다고 봐요.”(김진아 한살림 정책기획본부 정책기획1팀 팀장)
두 번째는 친환경 농업인에 농지를 빌려줄 경우 양도세를 감면해주는 내용이다. 이는 위에서 살펴본 농지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걸 전제로 한다. 친환경 농업인들에게 농지를 빌려준 지주들에게 일정 정도 혜택을 줘서 적극적으로 임대차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다.
최동근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은 “임차농과 지주들 사이에 친환경농업에 대한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땅을 갖고 있는 사람도 친환경 농업인에게 땅을 빌려주는 걸 가치 있게 생각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만들어야 해요. 지주도 ‘내가 환경에 기여하고 있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껴야 그 가치를 제대로 알죠. 그래야 자연스럽게 지주와 임차농의 관계가 대등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마치 지주라고 하면 엄청난 ‘악덕 지주’처럼 생각이 들고, 거꾸로 농민들은 피해자로만 보이잖아요. 땅을 둘러싸고 지주와 임차농이 같이 기여하고 있다는 측면으로 변화돼야 서로 공감대를 형성해서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미 법안은 발의됐다.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김선교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농지법 개정 입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두 법안 모두 친환경인증을 받은 자에 대한 농지 임대를 예외조항에 넣자는 내용이다.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친환경인증을 받은 사람에게 농지를 10년 이상 임대할 경우 양도세 100%를 감면해준다는 내용이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김선교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올해 각각 발의했다.
하지만 이들 개정안이 모두 국회를 통과할지 아직은 미지수다.
그렇다면 행정기관으로서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는 현재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농림부 친환경농업과는 지난달 15일 셜록에 서면 답변서를 보내왔다.
농림부는 “친환경농가 피해 최소화를 위해 금년 8월부터 TF를 구성하여 다각적으로 논의 중”이라면서“농지, 직불, 조세제도 등이 얽힌 복합적인 문제로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나,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 등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설명했다.
친환경농업을 지키는 건 전 지구적 과제다. 친환경농업의 가치와 의미가 나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현재 친환경농업은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꼽힌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친환경농업은 탄소배출을 감량하고, 생물다양성을 복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농민들이 농약과 화학비료를 안 쓰고, 친환경 농사를 더 많이 지을수록 땅은 살아날 수 있다.
“친환경 농산물로 만든 한 끼를 먹는 게 소나무 최대 2000만 그루가 탄소를 흡수하는 효과와 동일하다는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의 연구자료도 있고, 유기토양이 산림의 5배나 많은 탄소저장능력이 있다는 영국토양협회 발표도 있어요. 에코백이나 텀블러를 늘 가지고 다니려고 하는 노력만큼 친환경 농산물을 소비하려는 노력을 하면 지구를 지킬 수 있는 겁니다.”(홍안나 사무처장)
이효희 경기지속가능농정연구소 소장은 “친환경 농산물 생산만큼 소비 확대를 위한 정책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전국의 유명한 카페나 식당에서 친환경 식자재를 원재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주는 정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 구내식당에서 직장인들 점심을 유기농(농산물)으로만 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단돈 천 원으로 학생들 아침밥을 먹게 했던 ‘천원의 밥상’처럼 만들면 됩니다.
만약 국가산업단지에서 유기농 급식이 정책으로 자리 잡으면, 오히려 (현재 생산하는) 유기농 농산물 양만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친환경 농지 면적을 늘리는 방법을 고민하겠죠. 이런 식으로 생산과 소비를 연계해서 고민하는 게 필요합니다.”(이효희 경기지속가능농정연구소 소장)

해외에서도 친환경농업에서 답을 찾고 있다. EU는 2030년까지 EU 전역의 유기농지를 전체 농지의 25%로 늘리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은행(WB)은 지난해 5월 ‘살기 적합한 지구를 위한 레시피(Recipe for a Livable Planet)’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친환경농업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6Gt(기가톤)이 농업 분야에서 나온다.
이 보고서는 농업 분야에서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감축해야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기에 친환경농업을 통해 건강한 토양을 만들어 탄소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친환경인증 농가 수는 매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2020년 기준 전체 농지 면적 대비 친환경인증 농가의 비율은 약 5.2% 정도. 2024년에는 이마저도 약 4.5%로 떨어졌다. 고령화와 임차농 비율 등을 고려하면, 친환경인증 농가는 앞으로 더 줄어들 걸로 예상되는 상황.
기자는 지난달 26일 충북 청주에서 친환경농업을 하는 임차농 최갑골(가명, 50대) 씨를 만났다. 그는 1톤 트럭을 운전하며 창밖에 펼쳐진 농지들을 가리켰다. 그가 엑셀을 밟는 약 10분 동안 차창 밖으로 논밭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주말 되면 사돈에 8촌에 가족들 다 끌고 와갖고 (농작물) 심고 나서 그 다음에 이제 내팽개치고. (농민들과는) 목적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진짜 농업경영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농촌을 지키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분들이 아닌 거죠. 이런 외지 분들은 가격만 맞으면 언제든 (농지를) 팔고 갈 거예요.“
사실상 ‘가짜 농부’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가짜 농지’라는 지적. 정부의 직불금 단속에 걸리지 않게끔만 농작물을 심어놓고 눈속임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는 친환경 임차농들은 스스로를 ‘유령농부’라 부른다. 내 땅이 아닌 남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니까. 실제 농사를 짓고도 ‘농민’은 될 수 없는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이들을 유령으로 떠돌게만 할 것인가.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