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영옥 씨는 19년 7개월간 학교 급식 노동자로 일했다. 20년차 베테랑 급식 조리사에게 통증 참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도 대수롭지 않은 가슴 통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병원에 갔다. 의사는 영옥 씨에게 ‘폐암 4기’ 진단을 했다.
급식 노동자들의 폐암 문제가 가시화된 건 2021년 2월이었다. 수원의 한 중학교에서 일하던 급식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한 사건이 산재로 인정되면서, ‘조리흄’이라는 발암물질의 위험성이 사회적으로 알려졌다.
‘조리흄’은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 특히 고온에서 기름을 사용할 때 생기는 유해물질을 의미한다.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암연구소가 폐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1급 발암물질’이기도 하다. 이때가 학교 급식 노동자의 폐암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최초의 사례였다.
그로부터 석 달 뒤인 5월 영옥 씨는 폐암을 진단받았다. 처음에는 병원에서도 산재로 보기 어렵다며 소견서 작성을 거부했다. 이때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가 영옥 씨를 도와 산재 신청에 나섰다.
“신청인(허영옥)은 1999년 8월부터 약 20년간 초·중·고등학교 및 유치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업무를 수행하였다. (…) 업무와 신청 상병간의 상당인과 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 출석한 위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단 및 결론 일부 2021. 11. 22.)
그리고 반년 만인 그해 11월, 산재 승인 통보를 받았다. 약 20년의 장기 근무가 산재 인정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 때문에 병이 자란 셈이기도 했다.

그때 영옥 씨의 병세는 악화되고 있었다. 그는 2021년 6월부터 서울대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았다. 초기에는 약이 잘 들었다. 주치의도 “석 달 뒤에 만나자”고 기약할 정도였다. 영옥 씨는 산책도 자주 다니고, 운동도 더 열심히 했다. 언제나처럼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극복할 수 있는 어려움으로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약에 내성이 생겼다. 여러 번 약을 바꿨지만 기적이 일어나진 않았다. 급속도로 병색이 짙어졌다.
“방사선 치료가 너무 힘들었어요. 머리에 막 상처가 나고 제대로 누울 수 없으니까 불편하고. 가족들도 매일 울고, 신랑도 매일 울고. (그걸 지켜보는 마음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힘들었죠.” (허영옥 씨 생전 인터뷰 영상,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작, 2024. 12. 6.)
병원에 입원해도 할 수 있는 치료가 없었다. 의사는 “집에서 편하게 생활하면서 먹고 싶은 것들 다 드시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때부터 세탁기에는 영옥 씨의 양말로 가득 찼다. 약의 부작용으로 퉁퉁 부은 발에서 진물이 나왔다. 성준 씨는 그 시기를 이렇게 기억했다.
“항암약 부작용인지 발이 퉁퉁 부어서 잘 못 걸었어요. 매일 운동했던 사람인데…. 양말 안 신으면 엄마가 지나간 자리 바닥에 발자국이 남았어요.” (아들 구성준 씨 인터뷰 25. 10. 23.)

영옥 씨는 점점 음식도 잘 넘기지 못했다. 속이 메스껍다며 게워내기 일쑤였다. 자연스레 몸무게도 줄었다. 가만히 있어도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통증에 시달렸다.
“엄마가 새벽까지 끙끙대는 소리가 들려요. 진통제도 잘 안 들어서 잠도 잘 못 주무시고 하더라고요. 그때 의사 선생님 말이 생각나는 거예요. ‘엄마 진짜 1년을 못 넘길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구성준 씨)
영옥 씨 간병은 두 남자의 몫이었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과 아들 성준 씨. 영옥 씨는 그제야 아들에게 “병원 가자”는 소리를 했다. 모자가 함께 병원으로 나서면 성준 씨는 차에서 세 시간씩 기다리곤 했다. 통증에 못 이겨 겨우 찾는 병원. 돌아오는 길이면 엄마는 훨씬 더 수척해져 있었다.
“마지막에 엄마 컨디션이 많이 나빠졌어요. 마지막에는 했던 말 계속 또 하고 그러셨거든요. 뇌까지 암이 전이되는 바람에. 중환자실까지 갔다가 조금 나아져서 일반 병실로 옮기고 한 이틀 같이 있었다가 아빠랑 교대하고 집에 왔어요.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 아빠한테 엄마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연락이 왔어요.” (구성준 씨)
성준 씨는 강원 철원군에서 경기 의정부에 위치한 성모병원까지 차로 약 1시간을 운전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엄마를 보니 지난 1년간 준비했던 엄마와의 이별이 성큼 다가온 듯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워 있던 영옥 씨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멈췄다. 그리고 다시 거칠게 내쉬었다. 불규칙한 호흡을 몰아쉬었다. 의사는 “십 분 뒤면 돌아가실 것 같다”고 말했다. 성준 씨는 엄마의 손을 붙잡았다. 피가 저민 손톱 끝. 단단한 손에는 세월이 묻어났다.
십 분이 훨씬 지나도록 엄마는 가족들 곁에 머물렀다. 그날 하루종일 굶은 가족들은 돌아가면서 차례로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엄마가 내일까지 더 있고 싶은가 보다. 성준이 먼저 밥 먹고 와.”
첫 순서가 성준 씨였다. 그는 병원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때 누나로부터 전화가 왔다.
성준 씨는 병실로 달려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간 병실에는 이미 숨을 거둔 엄마 영옥 씨가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그래도 청력은 남아 있으니 마지막 인사라도 나누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때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감정이 너무 복잡했어요. 미안하고, 서럽고, 당황스럽고, 쑥스럽고…. 그래서 아무말도 안 하고 손만 잡고 있었어요. 지금도 그게 마음에 남아요. 마지막 인사를 끝내 못한 게.” (구성준 씨 인터뷰)
영옥 씨는 2022년 4월 29일 눈을 감았다. 의사의 말처럼 폐암 선고로부터 약 11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한 사람의 생애가 이렇게 저물었다.

근로복지공단이 제출한 ‘학교급식 종사자 페암 산재신청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6월 사이 급식 노동자 213명이 폐암으로 산재를 신청했고, 이중 178명이 승인됐다. 폐암으로 숨진 노동자는 14명에 달했다. 이중 한 사람이 허영옥 씨다.
그리고 지난 9월 충북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24년차 조리사가 사망하면서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15명에 이른다.
다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통계 밖에서’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영옥 씨가 근무했던 급식실에서 십여 년 전 근무하던 조리사가 폐암으로 사망했던 것처럼 말이다.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2022년 1월부터 학교 급식실에서 최소 10년 이상 근무한 55세 이상 학교 급식 종사자 등 4만 2000명을 대상으로 폐 CT를 검진했다. 이때 1만 3000여 명이 이상 소견을 보였다. 32.4%가 이상 소견을 받은 것이다. 이중 ‘폐암 의심’을 받은 급식 종사자는 388명에 달했다.

업무관련성 전문조사 필요성에 관한 자문 결과: 20년 이상 학교 급식업무에 종사하며, 조리흄에 장기간 노출됨. 학교 급식에 튀김, 볶음 요리 등이 많고, 적절한 환기가 부족한 것이 확인됨. 여러 역학연구에서 일관되게 조리 종사자에서 폐암 발생의 위험이 확인됨. 전문조사 없이 판단 가능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업무상질병판정서 일부 2021. 11. 22.)
영옥 씨는 장기간 조리흄에 노출되었다는 이유 등으로 전문조사 없이 ‘산재 승인’ 판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조리흄’은 아직도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물질로 공식 지정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조리흄’과 질병의 상관관계 등이 학술적으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유해물질로 지정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는 치명적이다. 조리흄이 ‘건강관리카드’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건강관리카드는 산업안전보건법 137조에 따라, 작업환경에서 발암물질에 노출되거나 과거 노출됐던 노동자에게 매년 1회 특수건강진단을 무료로 지원하고, 직업성 암을 조기에 발견한 노동자에게 치료와 보상을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즉, 작업장과의 인과관계는 인정하면서 노동자들이 암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거나 지원은 하지 않는 격이다.
2021년 2월 이후 학교 급식 노동자 폐암에 대한 산재 승인이 잇따르면서 그해 12월 고용노동부는 55세 이상이거나 급식 업무를 10년 이상 한 현직 급식 종사자들이 폐 CT 촬영을 할 수 있도록 건강진단 기준을 세우고, ‘학교 급식 조리실 환기설비 설치 가이드’를 마련했다. 여기에는 환기 시설의 구조와 성능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현장에서는 “실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폐 CT 검진은 시·도교육청별로 들쭉날쭉한 상황이고, 환기시설 역시 개선이 미비하다.
지난달 학비노조는 정혜경 국회의원(비례대표, 진보당)으로부터 ‘학교급식실 환기시설 개선 및 예산 집행 현황’ 자료를 제공받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학교급식실의 환기시설 개선 사업이 2023년부터 3년째 제자리걸음이라는 것.
2025년 상반기까지 환기 설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학교가 전국 1만 395개 중 8527개(몇 퍼센트)에 달했으며, 시설을 개선한 곳은 4285개(41%)에 불과했다. 전국에서 개선율이 가장 낮은 지역은 서울(19%), 경북(25%), 인천(31%) 순이고, 가장 개선이 많이 된 지역은 제주(80%), 충북(75%), 대구(59%) 순이었다.

“엄마가 동료분들을 많이 챙겼어요. 다치지 않고 일해야 된다고. 그래서 아마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기자님이랑 만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 게 엄마의 마음일 테니까 제가 인터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구성준 씨)
영옥 씨는 학비노조 조합원이었다. 그는 대규모 집회나 총파업 투쟁이 있는 날이면 빠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 안 간다 그러면 혼났어. 그 언니가 앞장서서 솔선수범해서 참여하고 그랬지. 다 이끌고 가셨어.” (동료 A)
영옥 씨가 노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건 딱 하나. 동료들이 안전한 일터에서 일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동료들이 얼마나 어렵게 일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늘 마음이 아팠다.
“우리 조합원들이 아프지 않고, 수월하게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학비노조 힘내자. 파이팅!” (허영옥 씨 생전 인터뷰)
지금도 급식실에는 영옥 씨의 동료들이 있다. 구성준 씨와 동료들이 지난 10월 진실탐사그룹 셜록을 만난 것도 현장에 있는 동료들을 위한 일이었다.

“더 이상 동료의 장례식장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 4일부터 학비노조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학교 급식실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폐암 산재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들은 “학교 급식실 산재문제를 사회적 과제로 규정해야 한다”며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언젠가는 개선되겠지 하며 버티다가 저는 폐암 환자가 되었고, 동료들은 근골격계 질환자가 되었습니다. 아이들 생명을 키우는 학교 급식실에서 정작 일하는 사람은 죽어가고 병들고 있는 현실이 비참합니다.” (김◯◯ 조리실무사 지난 4일 기자회견 발언)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