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땅땅. 의사봉 내리치는 소리가 국회 본회의장에 울려퍼졌다.
참관석에선 환호와 함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분홍색, 연두색 앞치마를 둘러맨 중년 여성들. 눈물도 닦지 못한 채 본회의장을 향해 연신 고개 숙여 인사했다.
“학교급식종사자 여러분,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름이 제대로 생기고 학교급식종사자의 정의가 이제 비로소 만들어졌습니다. 참 오랜 세월 걸렸습니다. 이걸 통해서 여러분들의 최소한의 노동 권리가 보장되어가는 첫 시초라고 생각합니다.”(우원식 국회의장)
‘그림자 노동’을 하던 조리사들에게 비로소 ‘학교급식종사자’라는 이름이 생겼다.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15명의 동료가 떠올랐던 걸까. 지금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동지들이 눈에 밟혔던 걸까. 쉬이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방망이(의사봉) 한 번 두드리면 됐던 걸….”
본회의장을 나온 ‘앞치마 부대’는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지난달 29일, ‘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학교급식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날 국회 본관 앞에선 학교급식 노동자들의 릴레이 발언이 이어졌다. 이들은 흰색 위생복과 위생모, 그리고 분홍색 앞치마를 갖춰 입고 기자회견장에 참여했다.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에 걸린 서호연(가명) 씨도 마이크를 잡았다. 현장에 참여한 급식노동자들 가운데 유일한 산업재해 피해자였다. 아직 몸을 회복하지 못한 호연 씨는 마스크와 두꺼운 패딩점퍼로 무장한 채 말을 이어갔다.
“지금 현장(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우리 급식 조리 종사자 분들 중에서는 더 이상 폐암 환자가 나오지 않도록 힘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투병 중에도 동료들을 위해 광주에서 서울 국회까지 직접 찾아온 단단한 여성 노동자. 기자는 학교급식 노동자 서호연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지난 4일, 서호연 씨가 살고 있는 광주로 향했다.
“지방은 취직할 데가 많이 없어요. 더군다나 1990년대면 여자들 일자리는 더 없었죠. 그때 학교 급식소에서 일하는 게 주부들 사이에서는 제일 인기 많았어요.”
호연 씨의 첫 직장은 초등학교였다. 1995년 10월부터 광주 남구의 한 초등학교로 출근했다. 당시 학교급식 종사자 자리는 “빽”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그렇다고 임금이 높은 일자리는 아니었다. 호연 씨는 당시 월급을 “많이 받아야 40만 원 수준”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마저도 방학에는 받을 수 없었다.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했던 이들에게 비교적 이른 퇴근과 방학이 보장된 근무조건 때문이었다. 심지어 학부모가 급식실에서 일할 경우 자녀가 무상으로 급식을 먹을 수도 있었다.
“아기(학생)들 즐겁게 밥 먹는 것도 좋고, 일찍 퇴근하는 것도 좋고. 근데 몸이 남아나질 않아. 진짜 힘들어.”

호연 씨는 평일 오전 여섯 시 반 눈을 뜬다. 분주하게 가족들 아침상을 준비하고 학교로 향한다. 그때부터는 천여 명이 넘는 학생들의 점심을 준비한다. 함께 근무했던 학교급식종사자는 총 여덟 명. 한 사람이 최소 125명 이상의 식판을 책임지는 셈이다.
주어진 시간은 단 세 시간. 학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위생복으로 갈아입고, 오전 8시부터 그날 사용할 식자재 상태를 확인한다. 채소를 씻고 다듬는 일로 시작해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식재료를 옮기고 써는 전처리 작업이 이어진다.
“기름 쓰는 데가 힘들죠. 연기도 나고, 기름 냄새도 나고 하니까. 그래서 국, 찌개, 반찬 돌아가면서 해.”
이후에는 대형 솥에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음식을 튀기고, 부쳐서 완성한다. 조리가 끝난 음식은 통에 담아 배식대로 옮긴다. 뜨겁고 무거운 대야를 들고 오가다 보면 수증기와 연기로 조리실이 가득 찬다. 이렇게 많은 일들을 했는데도, 시간은 아직 열한 시 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때 짬을 내서라도 끼니를 ‘해치워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단 십 분. 이때를 놓치면 배식을 다 끝내고 오후 한 시를 넘겨서야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이곳에선 학교급식 노동자보다 학생들의 입이 먼저니까.
배식이 끝나면 설거지와 청소를 해야 한다. 기름때를 지우기 위해 락스 등 여러 유해 화학물질을 사용한다. 호연 씨는 청소할 때면 역한 냄새에 속이 메스꺼워지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대청소를 하는데, 그러면 (조리실에) 광이 나야 돼요. 약품을 쓸 수밖에 없는 거죠. 주방 환기도 잘 안 되는데 독한 약을 매번 쓰고. 코가 찌릿찌릿 그랬어요.”
실제 경기 안양시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선 2020년 3월 청소 도중 락스 중독으로 쓰러진 조리실무사도 있었다.

“그래도 초등학교가 제일 좋다 그랬어. 중학교, 고등학교는 더 힘들고, 그때는 학생 수가 지금보다 더 많았으니까.”
그래봤자 조리실 환경은 비슷한 수준으로 열악했다. 호연 씨는 1995년에 처음 출근한 초등학교 조리실을 지금도 기억했다.
“처음에는 학교 건물 밑에 가건물로 식당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방학 보내고 오면 곰팡이 냄새도 많이 나고, 환풍기도 제대로 안 돌아가고.”
호연 씨는 악조건 속에서도 묵묵하게 일을 해냈다. 조리 과정에서 화상을 입는 건 ‘기본’이고, 어깨며 팔이며 손가락이며 골병으로 정형외과를 다니는 건 ‘필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리실은 말 그대로 ‘전쟁통’ 같아서 바로 옆에 있는 동료가 말을 걸어도 잘 들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런 곳에 장기간 노출돼 있다 보니 귀가 먹먹해 평소에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대체인력도 없고, 내가 빠져버리면 다른 사람이 고생하잖아요. 그런 생각에 너무 바보처럼 일했어.”
급식실에는 ‘예비인력’이 따로 없었다. 여덟 명이 근무하다가 한 사람이 병가를 내면, 일곱 명이 천여 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식이다. 호연 씨는 학기 중에는 웬만한 통증을 참고 넘겼다. 아프다고 일을 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2018년 초여름, 이전과는 다른 복통이 찾아왔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반복됐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학기를 마칠 때까지 병원에 갈 여유는 없었다.
그해 8월, 여름방학을 맞고 나서야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서울병원(이하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해를 넘긴 2019년 1월,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그는 혹독한 항암치료를 견뎌야 했다. 일주일 중 방사선 치료를 다섯 차례, 항암치료를 한 차례 받는 주간도 있었다. 한 번 치료를 받으면 온몸에 힘이 빠져서 몸을 가누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 과정에서 몸무게는 약 10㎏이나 줄었다.
“처음에는 (산재인 줄) 몰랐죠. 그냥 내가 운이 나쁜가 보다 했어요. 애기 아빠(남편)도 저도 담배 안 피우고, 가족들 중에도 폐암 걸린 사람이 없으니까. 근데 나중에 TV에 나오는 거야. 급식실에서 폐암 환자들 나온다고.”
급식실에서 일한 세월만 24년. 청춘을 바쳐 헌신한 대가가 암이라니. 허무했다. 매년 보건증을 갱신하며 건강검진을 받아왔고, 특별한 이상소견을 들은 적도 없었다. 나름 건강하다고 믿고 살았다. 몸속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우리 딸은 늘상 이야기했어요. ‘엄마, (급식실) 가스가 몸에 안 좋으니까 일 적당히 해.’ 근데 뭐 어쩐대. 다들 열심히 일하는데.”

급식 노동자들의 폐암 문제가 알려지기 시작한 건 불과 5년밖에 안 됐다. 2021년 경기 수원시의 한 중학교에서 일하던 급식 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한 사건이 출발이 됐다. 이때부터 급식 노동자들의 폐암 산재 인정이 본격화됐다. 2023년 교육청의 폐암 전수조사 이후부터는 ‘조리흄’의 위험성도 대두되기 시작했다.
‘조리흄’은 고온의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 때 발생하는 발암물질. 조리흄의 구성성분 중에는 호흡기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포름알데히드, 아크롤레인, 미세먼지 등이 포함돼 있다.
“급식실에는 환기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창문을 열어 놓을 경우, 운동장 등 외부 먼지 등의 유입문제로 닫아 놓고 있으며, 환풍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 조리 시마다 생선이나 고기, 기름 등이 타면서 발생하는 각종 조리흄이 자욱한 상태에서 일하게 됩니다.”(서호연 씨의 재해발생경위서 내용 일부)
호연 씨는 2021년 9월 근로복지공단 광주지역본부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이듬해 4월 산재 승인 결과를 통보받았다. 폐암 선고 날로부터 약 3년 3개월 만이었다.
“같이 일했던 동료 중에 아직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종종 고맙다고 연락이 오기도 해. 학교가 공사를 해준 모양이더라고. 가스레인지도 전기 인덕션으로 바꿔주고, 튀김하는 것도 방식을 바꾸고, 환풍기도 천장으로 연기 쏙쏙 빠지게끔.”
근로복지공단이 제출한 ‘학교급식 종사자 폐암 산재신청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6월까지 급식 노동자 213명이 폐암으로 산재를 신청했고, 이 가운데 178명이 승인됐다. 같은 기간 폐암으로 숨진 노동자는 14명이었다.
최근 사망자는 15명으로 늘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지난해 11월 보도한 고(故) 민은주 씨다. 그는 약 24년간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 4기 진단을 받았고, 지난해 9월 숨졌다.(관련기사 : <연기가 집어삼킨 ’15번째’ 이름… 은주씨의 마지막 방학>)

이 때문에 급식 노동자들은 학교급식법 통과를 수년간 목놓아 주장했다. 이번 학교급식법 개정안 통과로, ‘조리사’, ‘조리실무사’ 등으로 불리던 이들은 ‘학교급식종사자’라는 법적 지위를 얻었다. 초등학교 급식이 전면 도입된 1998년으로부터 약 18년 만의 일. 이들에게 ‘학교급식종사자’라는 법적 지위는 누군가 죽고 다치는 희생 끝에 겨우 얻어낸 결과다.
법적인 지위를 얻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이번에 통과된 학교급식법에 여러 차례 검토의견을 작성했던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종사자들의 권리를 논의할 근거가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학교급식법은 ‘먹거리 안전’과 ‘아이들의 건강’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조리실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존재는 했는데,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면이 있죠. 그런데 이번에 법안이 통과되면서 이분들의 안전과 건강에 대해서도 법이 다룰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죠.”(오민애 변호사 전화 인터뷰)
교육부는 2023년에 전국 학교급식실 환기시설을 2027년까지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교 급식실의 환기 설비는 아직도 현저히 미흡한 수준이다.
2025년 상반기까지 환기시설 개선 작업이 완료된 학교는 전국 1만 395개 중 약 42%.(4327곳). 절반도 개선이 안 이뤄졌다는 의미다. 심지어 환기 설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학교는 82%(8688곳)에 달한다. 개선 공사를 했음에도 대다수가 여전히 고용노동부가 정한 환기시설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학교급식실 환기시설 개선 및 예산 집행 현황’ 자료, 정혜경 진보당 국회의원 제공)

“당시에는 그래도 괜찮은 직업이라고 했어. 어차피 집에서도 음식 만드니까 어려운 기술도 아니고…. 근데 시간을 되돌리면 다시 안 할 것 같아.”
호연 씨의 몸에서 암세포가 발견된 것은 은퇴를 약 3년 앞둔 시점이었다. 은퇴 이후엔 여유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고, 틈틈이 여행을 다니는 일상을 꿈꿨다. ‘남들이 다 하는 그 정도만’ 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폐암 진단 이후, 평범한 일상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다.
“(급식 노동자들이)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 할 때 CT도 같이 찍도록 해야 돼. 지금 하는 엑스레이만으로는 (폐암을) 확인하기 어려우니까.”
2022년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학교급식 노동자들의 폐 건강 상태를 조사했다. 10년 이상 근무한 55세 이상 급식 종사자 등 4만 2000명을 대상으로 폐 CT 검사를 진행한 결과, 약 32.4%에서 이상소견이 나왔다. ‘폐암 의심’ 판정을 받은 경우도 388명에 달했다.
급식실은 천천히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 변화를 이끌어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아팠고, 또 세상을 떠났다. 학교급식법이 통과되던 날, 호연 씨가 남몰래 눈물을 흘린 이유다.
“미안하고 뭉클하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아프고 죽었잖아. 더 빨리 해결됐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김연정 기자 opne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