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식장 조명이 어두워지자 통로 끝에서 두 남자가 걸어나왔다. 신랑의 아버지와 신부의 아버지였다. 이날 화촉을 밝힌 건 아버지들이었다.
두 개의 작은 불꽃이 일었다. 객석 맨 앞줄에 있던 민은주 씨가 박수를 보냈다. 예식대로라면 화촉 점화는 그의 몫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설 수 없었다.
투병 중이던 은주 씨는 휠체어에 앉아 예식장에 들어왔다. 방사선 치료도 이날을 위해 잠시 멈췄다.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첫째 아들의 결혼식이었다.

“언니, 푹 쉬고 2학기에 만나.”
지난 7월 은주 씨의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그의 일터는 고등학교 급식 조리실. 내년 9월 퇴직을 앞둔 베테랑 조리사였다.
은주 씨가 학교급식 노동자가 된 건 2002년 6월이었다. 충북 충주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17년 6개월 보내고, 이후 인근 다른 고등학교로 전보를 가 5년이 넘도록 근무하고 있었다. 약 24년 동안 그는 식자재 검수부터 음식 조리, 배식, 식기 세척, 주방 청소와 소독까지 전체 조리 과정을 책임졌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동료들과 헤어지던 날, 동료들 눈에 그는 여느 때처럼 건강한 ‘반장’이었다. 하지만 은주 씨에게는 방학 동안 해결해야 할 숙제가 하나 있었다. 몸에 있는 ‘이상’을 제대로 확인하고 치료하는 일이었다.
은주 씨는 매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건강검진을 받았다. 지난 6월에도 집 근처 내과를 방문했다. 그때 의사는 이상이 있으니 ‘큰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다음으로 찾아간 2차 병원에서도 검사를 하더니 ‘더 큰 병원’에 가 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강원 원주시에 있는 3차 병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비로소 몸 상태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폐암 4기입니다.”
당시 은주 씨 몸속에서 발견된 종양은 솜털구름 같은 모습이었다. 가운데에 어떤 형태가 보이면서 사방으로 희미한 실이 퍼져 있는 모습. 1년 전만 해도 보이지 않던 게 은주 씨 폐와 머리에서 발견됐다.

“올 여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지난 13일 남편 강종현 씨 인터뷰, 가명)
그때부터 주된 간병인 역할은 남편인 종현 씨가 맡았다. 그는 연차를 쓰며 일주일에 서너 번, 차로 왕복 두 시간 거리 병원을 오갔다.
아내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아이를 출산했을 때를 제외하면 병원에 입원한 적도 없었고, 저녁 먹은 뒤에는 집 근처 있는 호숫가를 한 시간 반씩 걸으며 운동을 하곤 했다. 전이성이 빠른 종양이라고 해도 치료만 잘 받으면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됐다. 종현 씨는 간병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는 8월 말 회사까지 그만뒀다.
투병생활은 예측 불가능한 날의 연속이었다. 약은 잘 듣지 않았고, 며칠 뒤 함께 본 두 번째 CT 사진은 충격적이었다. 공격성이 강하다던 암세포가 온몸 곳곳에서 발견됐다.
“근데 이미 벌써 전이가 다 된 거야. 근데 다 뼈로만.”

뼈에 문제가 생기자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피가 응고되면서 혈전이 생기더니 다리 쪽 혈관을 막았다. 그때부터는 통증과의 사투였다. 병원에 가는 날이 늘어나고 결국 8월 25일 입원했다.
발은 검게 변하고, 손은 붓기 시작했다. 은주 씨는 발가락부터 썩어 들어가는 통증을 견뎌야 했다. 하루 6번 투여할 수 있는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한 번 투여할 때 4시간은 견뎌야 하는 셈. 하지만 약효는 길어야 한 시간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엄마 보러 빨리 와야겠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아들 내외가 곧장 병원으로 찾아왔다. 은주 씨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문제는 이튿날부터였다. 은주 씨가 눈을 잘 뜨지 못하더니 의식이 없어졌다.
결국 은주 씨는 9월 22일 영면에 들었다. 폐암 진단을 받은 지 47일째 되는 날이었다.
“결혼식 간다고 휠체어를 한 달 대여했었거든요. 그때(아들 결혼식 날) 한 번 딱 쓰고 돌려보냈어요. (아내가) 계속 살아 있었으면 휠체어를 하나 사려고 했는데.”

2021년 경기 수원시의 한 중학교에서 일하던 급식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한 사건이 산재로 인정됐다. 그때부터 급식 노동자들의 폐암 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흄’이라는 발암물질의 위험성도 주목받았다.
‘조리흄’은 고온의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 때 발생하는 화학물질이다. 조리흄의 구성성분 중에는 호흡기 건강 문제와 관련이 있는 포름알데히드, 아크롤레인, 미세먼지 등이 포함된다. 특히 포름알데히드는 국제암연구소(IARC)와 우리나라 고용노동부가 ‘발암물질’로 구분하고 있다.
종현 씨는 ‘설마 우리 아내가 일하는 곳은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내의 출근길을 지켜봤다. 급식실의 근무 환경이 열악한 건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 아내의 이야기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은주 씨가 24년간 근무했던 두 학교 모두 20년 이상 된 건물로, 환풍시설 노후화 문제가 있었다. 환풍기, 가스관, 밸브 등은 고장이 잦았고, 그로 인해 조리실 내 공기 순환이 원활하지 않았다. 조리실은 늘 희뿌연 연기와 가스로 가득 찼다.
급식 식단표에는 날마다 최소 한 가지 이상의 튀김이나 구이, 볶음 요리가 포함돼 있었고, 은주 씨는 하루 3시간 이상 불 앞에서 수백 인분의 음식 조리를 담당했다. 특히 그가 일했던 학교에서는 조식·중식·석식 3식을 했다. 그만큼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화학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배식 후 청소 시에는 애벌세제, 세탁세제 등 다량의 세제를 사용하였습니다. 환기가 되지 않는 조리실의 바닥 청소나 소독 시 숨이 막힐 듯한 독한 냄새와 화학세제로 인한 유해요인을 과다 흡입하여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종현 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재해발생경위서 내용 일부)
주치의도 급식 조리실을 의심했다. 그는 소견서에 “직업력상 23년간의 조리실 경력이 폐암 발생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 명시했다. 종현 씨는 지난 10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하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산재 인정이 되면 교육청에 순직 신청을 한번 해보려고요. 인정받는 데까지 1년 정도 걸렸다고 하던데, 충북교육청에서 한 분 순직 인정됐다고 하더라고요.”
인사혁신처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는 지난 9월 폐암으로 사망한 학교급식 노동자를 공무수행사망자로 인정했다. 최초의 순직 인정 사례였다.
학교급식 노동자는 교육청과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이들처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아닌 근로자’가 공무수행 중 사망한 경우, ‘공무수행사망자 제도’를 통해 공무원과 동일하게 순직으로 인정하고 예우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아내와 갑작스럽게 이별한 종현 씨도 국가 차원의 문제 인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개인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기억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국가가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근로복지공단이 제출한 ‘학교급식 종사자 폐암 산재신청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6월 사이 급식 노동자 213명이 폐암으로 산재를 신청했고, 이중 178명이 승인됐다. 폐암으로 숨진 노동자는 당시 기준으로 14명에 달했다.
그리고 지난 9월 사망자는 15명으로 늘었다. 15번째 희생자가 바로 고(故) 민은주 씨다. 이는 현재까지 확인된 수치일 뿐, ‘통계 밖’에서 병들거나 숨진 이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2022년,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학교급식 노동자들의 폐 건강 상태를 조사했다. 10년 이상 근무한 55세 이상 학교급식 종사자 등 4만 2000명을 대상으로 폐 CT를 검진했다. 이때 1만 3000여 명(32.4%)이 이상 소견을 보였다. 이중 ‘폐암 의심’ 소견을 받은 급식 종사자는 388명에 달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도 조리실은 노동자들에게 ‘위험한 일터’다. 지난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정혜경 국회의원(비례대표, 진보당)으로부터 ‘학교급식실 환기시설 개선 및 예산 집행 현황’ 자료를 제공받아 분석했다.
그 결과 학교 급식실의 환기시설은 아직도 미흡한 상황임이 확인됐다. 2025년 상반기까지 환기설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학교가 전국 1만 395개 중 8527개(82%)에 달했다.
학교급식 노동자들은 지난 20일과 21일에 걸쳐 총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이들은 “더 이상 동료의 장례식에 가고 싶지 않다”며, “학교 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에 관한 범정부 차원의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라이(대야)에 아이를 눕혀놓고 밭일을 하던 여성 농민이 (전남) 구례에 학교급식이 시작되면서 학교급식 현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퇴직을 불과 2~3년 앞두고 있는데요. 최근 들어서 거의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급식실에서 미끄러져서 다리에 깁스를 하고, 암 수술을 하고, 학교급식 일과가 끝나면 가는 곳은 병원입니다.” (지난 26일 학교급식법 전면개정 촉구 기자회견,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1998년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1999년에는 고등학교, 2002년에는 중학교로 학교급식이 전면 도입됐다. 그때부터 수십 년간 급식실에서 성실하게 일해온 노동자들이 병원으로 향한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지난 10일 보도한 고(故) 허영옥 씨도 20년간 급식실에서 일하다가 퇴직을 2년 앞두고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관련기사 : <아프면 ‘죄인’ 되는 급식실… 엄마가 머문 20년>)

“여권 만들어놓고 여권에 도장 한 번도 못 찍어봤어요. 정년퇴직 하고 가자, 이런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거지.”
집에는 은주 씨의 새 여권이 남았다. 그는 평생 남편과 해외여행 한번 가지 못했다. 그래도 내년에 은퇴하면 11월에 부부끼리 뉴질랜드에 가보자고 계획을 세웠다. 경치가 아름다운 곳. 그 계절이면 여행하기 딱 좋은 날씨라 들었다. 두 사람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고 여권까지 발급받았다. 은주 씨 몸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남편 종현 씨에게 은주 씨는 그런 사람이었다. 눈 오는 날 미끄러운 집앞 길을 쓸어야 한다고 이른 아침 남편을 깨우던 사람. 겨울방학이면 전국 이곳저곳 ‘새로운 곳’으로 함께 여행 가던 사람. 매년 시누이에게 지역 특산물인 사과 두 박스와 찰옥수수 100개를 보내던 사람.
조식 작업을 하는 날이면 새벽 4시 반에 남편과 등교하고, 석식으로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밤 9시에 남편과 하교하던 사람. 집안일을 나누고, 주말이면 하루는 꼭 외식을 하던 사람. 종현 씨는 그런 ‘식구’를 잃었다.
“사실 우리 ‘식구’는 죽는지도 모르고 죽은 거예요. 한번은 나한테 그러더라고. 왜 의사가 당신(남편)하고만 얘기하냐고. 그때 (가벼운 병은 아닐 거라고) 눈치 챘겠지만, 끝까지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겠지.”
약 한 달. 암을 진단받고 은주 씨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급식실에서 일하는 아내가 걱정은 됐어도 ‘설마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여기던 종현 씨. 인터뷰 끝에 그는 이 한마디를 남겼다.
“(아내처럼) 성실하게 일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죽는 일이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돼요.”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