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영남공업고등학교를 다시 찾았다. ‘나쁜 교사’들을 쫓으러만 찾아갔던 학교를, 이번엔 ‘좋은 소식’으로 방문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교사 연애금지, 임신-출산 방해, 교사 노래방 동원, 프라이팬 강매 등 기이한 사학비리로 이름을 알렸던 대구 영남공업고등학교.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2019년 7월부터 총 43편의 기사로 영남공고 사학비리를 집중보도했다. 셜록 보도 이후, 여교사에게 술시중 등을 지시한 이사장과, 이사장 아들을 위해 성적조작을 지시했던 교장은 학교를 떠나야 했다.(관련기사 : <“죄질 불량” 허선윤… 징역 8월 법정 구속>)
그리고 남겨진 교사들은 학교를 다시 정상화하기 위해 애써왔다. 그 중 한 명이 책 <공고 선생, 지한구>(후마니타스)를 발간한 지한구 교사다.
지난해 10월 출간된 <공고선생, 지한구>는 우리 사회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공고와 공고생 이야기를 풀어낸 책으로,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셜록 지면에 인기리에 연재된 글을 모아 엮었다.(연재 첫 글 : <마지막 천원 양보하고 걸어서 등교… 이 학생 지키고 싶다>)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려 대구 만촌동에 있는 영남공고로 가는 길. 5년 전 기억과는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교문 앞 허름한 가게들은 거의 사라지고, 신축 아파트가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교문 역시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무채색을 띠었던 학교 정문은 주황, 초록, 파랑 등 밝은 색감의 페인트칠로 새 단장을 했다. 박물관에나 있을법한 ‘문짝 떨어진 사물함’을 썼던 예전의 영남공고가 아니었다.
마침 이날 영남공고의 새 간판이 달리고 있었다. ‘협약형특성화고’로 거듭나면서 학교 간판에도 이를 새롭게 표기한 것. 기자들도 새 간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기자님들,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귀에 익은 쾌활한 목소리. 교문 앞까지 나와 기자들을 반겨준 사람은 지한구 교사였다.

지 교사가 가장 먼저 이끌고 간 곳은 헬스장. 헬스부 담당 교사인 지 교사에겐 마치 학교 안 ‘아지트’와도 같은 곳이다.
헬스장은 학교 건물 지하에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부터, 헬스부 학생들의 보디프로필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 수련처럼 몸을 만든 과정도 일일이 사진으로 담아 게시판에 걸어뒀다. 공고답게 헬스장 이름도 ‘머슬팩토리(Muscle Factory)’였다.
지 교사는 체육교사가 아니다. 그의 담당 과목은 국어. 국어교사가 왜 헬스부 담당교사가 됐을까.
“시작은 심플했어요. ‘애들이 뭘 좋아할까?’ 저희가 자기성장 프로젝트라는 교과목이 있는데요. 그 과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재미를 느끼고 학교를 오게 만드는 거예요. 애들도 저도 같이 즐거울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헬스부를 시작한 겁니다.”
영남공고에 헬스부가 만들어진 지도 벌써 3년. 2023년, 지 교사는 헬스반(헬스부 승격 이전)을 만들었다. 학생과 교사 간의 소통을 위해 10명 남짓으로 작게 꾸렸다. 헬스반의 목표는 세 가지. 보디프로필 촬영, 보디빌딩 대회 출전, 트레이너 자격증 취득. 지 교사도 학생들과 함께하는 목표였다.


영남공고 헬스반은 첫 대회에서, 학생과 교사 모두 입상했다. 헬스부 부장 동연이는 보디빌딩 고등부 1위를 차지했다. 지 교사는 마스터즈 스포츠모델 3위를 했다. 첫해부터 교사와 학생이 함께 힘을 합쳐 목표 하나를 이룬 것이다.
“헬스부를 처음 만들 때, 목표를 못 이룰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해냈잖아요. 거기까지 가본 사람만 알고 있는 엄청난 성취감이 있습니다. 건강해지고요, 씩씩해지고, 열정이 생기고. 그리고 저는 인생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이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주최 측은 “교사와 학생의 도전이 아름답다”며 우리를 무대 위로 불러 큰 박수를 유도했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우리 공고생들을 향한 박수였다. “공고 애들은 안 돼”라는 노골적인 괄시 속에서 우리는 함께 노력했고 무대에서 같이 박수를 받았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다”는 옛말은 교육열 뜨거운 한국에선 언제나 무기력했다. 그 한복판에서 우린 어쨌든 몸으로 무언가를 해냈다.(<공고 선생, 지한구> p.100)

헬스장에는 헬스부 학생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지 교사는 학생들 칭찬에, 입에 침이 마를 정도였다.
“애들이 정말 대견해요. 보디프로필 찍고,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는 거 정말 쉽지 않거든요. 규빈이가 살을 정말 많이 뺐어요. 그 성실함을 제가 다 알잖아요. 하다가 힘들면 좀 쉴 수도 있고 그런데, 얘는 (안 그래요). 진짜 대단한 거예요.
밖에선 헬스부 애들이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는데, 우리 헬스부 3학년 ○○이도 전교 1등이고, 2학년에 ○○이도 전교 1등이에요. 규빈이도 선생님들한테 칭찬이 자자합니다. 이 자신감 있는 표정도 얼마나 좋습니까.“
헬스부 학생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헬스부 들어온 거) 완전 만족해요. 후배들도 들어왔으면 좋겠어요.”(김도혁, 2학년)
“친구들이랑 다 같이 운동할 수 있으니까, 그게 제일 좋습니다.”(손규빈, 1학년)

일종의 다짐과 약속 차원에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사실 일반고와 직업계고로 나눈 것은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이잖아요.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이거든요. 순수하고 착하고 꿈 많고 열정적이에요. 이 아이들이 제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 교사들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공고 선생, 지한구> p.113)
지한구 교사는 이런 사람이다. 쉽게 바꿀 수 없는 사회구조와 주변 환경을 탓하기보다, 오늘 당장 학생들을 위해 선생님으로서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하는 교사.
국어교사인 그는 공고생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헬스부를 만들었고,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손바닥만 한 ‘빤쓰’ 한 장만 입고 보디빌딩 무대에 올랐다. 영남공고가 사학비리로 휘청거렸을 때도, 그리고 교육청의 관선이사 파견으로 정상화가 된 지금도,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분투했다.

“사학비리 문제가 크게 이슈화 됐을 당시에는, 보통 사람들이 절대 겪기 힘든 영화 같은 이야기 속에 살았던 것 같아요. 학교 정상화를 위해 애썼던 선생님들도, 문제로 지목됐던 선생님들도 현재 같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서로서로 더 다가가서 화해하고,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거든요.
저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저의 태도나 방향, 그리고 교사로서 제 철학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학교 정상화를 위해 애쓰던 그 순간순간들이 증명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 교사는 수업 방식도 남다르다. 이목을 집중시키는 큰 목소리와 학생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과장된 리액션. 비장의 무기인 간식 바구니까지. 모두 공고생들이 수업에 더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 애쓴 결과다.
“우리 공고 애들은 순수해서 뭐 하나 코드가 탁 맞으면 애들이 눈을 뜨거든요. 어떻게든 얘랑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야 돼요. 기술이 필요하거든요. 헬스도 하나의 무기가 됐던 거고요.
사탕 하나일지라도 학생들에게 교사가 주는 건 특별하거든요. 거기에 의미가 부여되고 학생과 교사 사이에 관계가 맺어지고요. 그런 걸 찾으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해요.
그러면 우리 애들도 알아요. ‘저 선생님이 나를 위해 애쓰네.’ 걔들이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선생님이 그래도 우리를 생각하는 선생님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당당해지고 싶어요.”

책 <공고 선생, 지한구>에도 지 교사의 마음가짐이 그대로 녹아 있다. 특히, 이 한 문장.
“이 험한 세상에 꼴등을 위한 학교가 있다는 것이, 그 학교에서 나머지 공부를 묵묵히 완주한 학생이 있다는 것이, 교실 밖에서 기초학력이 부족한 친구를 기다려주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공고 선생, 지한구> p.152)
“초·중학생 때만 해도 학생들이 서로를 서열화하지 않아요. 성격이나 취미가 맞으면 같이 놀죠.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갈 때 인문계와 직업계로 나누면서 학생들을 성적으로 잘라요.
그때 애들이 엄청 큰 좌절감을 느끼거든요. 직업계고에 간다는 거에 대해 아이들의 자존감도 낮아지고, 스스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음 아팠습니다.
아이들이 원해서 직업계고에 오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교사들은 너희들을 위해 준비돼 있고, 너희들은 존중받을 만한 아이들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공부 못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어떻게 다 잘할 수 있습니까. 그건 사회가 만들어놓은 잣대죠. 학교는 정말 학생들을 위한 곳이니까, 학생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공고에 다니는 아이들을 ‘문제아’, ‘낙오자’라고 부르곤 한다. 이런 가혹한 차별과는 상관없이 나는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처음부터 수업을 시작한다. 모범생이 있으면 사고뭉치가 있고, 1등이 있으면 꼴등이 있으며, 비장애인이 있으면 장애인이 있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니까. 이들이 한데 섞여 공부하고, 놀고, 웃고, 떠들고, 때로는 다투고, 갈등하고 또 화해하는 곳, 그게 바로 학교니까.(<공고 선생, 지한구> p.122)

책 <공고 선생, 지한구>의 챕터 제목 그대로, ‘대기업 보냈더니 회칼 들고 등장한 아이’가 나오는 곳이 바로 공고다. 사회와 어른들의 기준에 맞춰 ‘좋은 회사’에 보내놓아도, 결국 제 발로 걸어나와 자기 길을 찾아가는 줏대 있는 아이들.
그럴 때도 지 교사는 ‘아직 어려서 모른다’며 핀잔 주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들의 편에 서서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일단은 내려놔야 할 게 있어요. 나는 교사고 또 어른이라 내 결정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아이들도 답을 다 알고 있습니다.
설사 답을 모른다 하더라도 애들이 던지는 질문 속에 애들이 가고 싶은 방향이 담겨 있어요. ‘선생님 저 어떡할까요? 이 회사를 계속 다닐까요, 말까요?’ 그렇게 이야기할 때, 답을 내려달라는 게 절대 아니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또는 내가 의지하고 있는 어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탐색하고 있는 거예요.
교사를 비롯해서 어른들이 해야 되는 역할은, 이 아이가 궁금해하고 가고 싶어하는 길에 대해 다양하게 인식시켜주고, 결국에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게 해줘야 되는 겁니다.
지금 대기업 다닌다고 해서 다 성공한 건가요? 그렇지 않잖아요. 아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끔 옆에서 지지해주고 같이 손 잡아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그것만 해도 돼요. 그것만 해도 대성공이에요.“

아프리카 속담 중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공고생들이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는 데는 교사 말고 주변 어른들의 관심과 응원도 중요할 터. 지 교사는 우리 사회에서 공고생들이 어떤 대우를 받기를 바랄까.
“예를 들어 전기가 나가면 전기 고쳐줄 사람이 우리 애들일 수 있고요. 물이 안 나온다고 생각해보세요. 하지만 이 아이들이 나타나면 정말 해결사가 될 거란 말이에요. 이들로 인해서 사회가 돌아가는 게 맞아요.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존재고요.
그래서 같은 시각으로 동등하게 우리 아이들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고생, 직업계고 학생, 이렇게 말고 ‘우리 고등학생’ 이렇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 교사는 책 <공고선생, 지한구>에서 공고생들을 “오래도록 우리 이웃으로 살아가는 학생들”이라 말한다. 지 교사의 표현을 보고, 영화 <어른 김장하>에서 김장하 선생이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라고 말한 대목이 떠올랐다.
“우리 공고 아이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부분들이 약간 있거든요. 애들이 스무 살, 서른 살 되면, 우리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그 시간까지 사회가 어떤 잣대와 편견으로 공고생들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는 겁니다.
학생들도 상처 받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사람들과 함께 잘 섞여 살아가야 하니까요.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이나 편견으로 그들의 길을 제한한다는 건 너무한 일인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 공고생들을 평범한 이웃으로 잘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내를 걷다 보면, 건장한 청년들이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일 때가 많다. 나를 알아보는 왕년의 내 제자들이다.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하거나, 고깃집에서 숯불을 피우거나, 택배를 나르고 있거나…. 공부를 잘한 학생들은 서울로, 대도시로, 외국으로 떠난다지만 공고를 졸업한 나의 제자들은 내 주변에서 이웃으로 살고 있다. 부끄럽거나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못난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공고 선생, 지한구> p.47)

인터뷰를 하면서, 지 교사는 교사라는 직업을 사랑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어떤 교사로 기억되고 싶을까.
“예전에는 애들이 말 안 듣고 하면 좀 밉기도 했습니다. 저도 인간이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몰라도, 늘 미소를 장착하고 아이들을 보게 됩니다.
‘내가 저 아이에게 뭘 해주면 좋을까’, ‘쟤는 오늘은 왜 저렇게 우울할까’. 꼭 저 아이의 인생을 바꾸지 않더라도, ‘오늘 집에 가기 전까지 한번 웃게 만들 수는 없을까’ 생각합니다. 교사란 직업은 그런 생각만으로 제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직업이라 정말 좋아요.“
올해도 그랬듯이 나는 내년에도 아이들과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정희성이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서 표현한, 날 저물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의 이미지를 떠올려볼 것이다. 누군가는 책상에 엎드릴 테고, 나는 다시 깨우고, 반항하고, 달래고, 답답해하고, 화해하고… 그러면서 또 어떻게든 내일로 나아갈 것이다. 성수와 내가 그랬듯이.(<공고 선생, 지한구> p.122)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