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고연서(가명, 25) 씨 어머니와의 첫 통화는 약 1시간이 걸렸다. 억울한 사정을 막힘 없이 말하던 어머니는 순간 말을 멈추고 내게 물었다.

“기자님, 제 말이 믿어지세요?”

처음 듣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 한마디에, 외로운 싸움을 이어온 모녀의 처절함과 고단함이 느껴졌다.

연서 씨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대구빙상경기연맹 소속 피겨스케이팅 코치로부터 지속적인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피해자들은 초등학생에 불과했다.

가해자는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피겨 코치다. 그는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에서 2년 연속 메달을 딴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하며 유명세를 얻었다. 2023년에는 대구시장상을 받기도 했다.

2024년 12월, 성인이 된 연서 씨는 가해 코치를 아동학대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같은 시기 대구빙상연맹에도 징계요구서를 제출했다. 이후, 8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징계 절차는 진행되지 않았다.

고연서 씨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피겨 코치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했다. ⓒ셜록

13년 전 작은 몸으로 코치의 학대를 견딘 아이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자신의 고통을 세상에 알렸다. 긴 세월 동안 가해 코치는 징계는 물론 처벌도 받지 않았다. 연서 씨는 이제라도 과거의 아픔을 털어내기 위해, 가해 코치를 고소하기로 결정했다. 잘못한 사람이 제대로 벌을 받아야 자신과 같은 또 다른 피해 아동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2016년부터 연서 씨 어머니가 모은 약 423분 분량의 녹음파일에서, 가해 코치가 가혹행위를 스스로 인정하는 음성이 여러 차례 확인됐다. 또 다른 피해자 두 명도 유사한 학대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가해 코치와 대구빙상연맹은 진심 어린 사과 대신, 책임 회피와 회유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연서 씨가 거짓말쟁이라거나, 다른 목적이 있어서 코치를 협박한다는 악의적인 소문이 모녀를 괴롭혔다. 연서 씨 어머니가 내게 자신의 말을 믿냐고 물은 이유는, 그런 2차가해를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보도는 지난해 8월 시작됐다. 프로젝트명은 ‘칼날 위의 아이들’.(관련기사 : <‘김연아의 꿈’은 사라지고… 학대의 악몽만 남았다>) 13년 전 피겨스케이팅 코치에 의해 아동학대를 당한 피해자들의 증언과 빙상계의 반복적인 사건 은폐 의혹을 보도했다.

누군가는 ‘너무 옛날 일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피해자에게는 현재 진행 중인 고통이다. 일종의 ‘미투’이자, 사건을 무마하려고 시도한 빙상계의 부정을 고발하는 ‘공익제보’다.

고연서 씨가 어릴적 신던 피겨스케이트화. 빙판 위에 첫발을 디딘 건 아홉 살 때였다. ⓒ셜록

보도 이후, 가해 코치는 법원에 기사삭제 가처분을 신청하고,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했다. 기자를 고소하기도 했다. 대구빙상연맹 김상윤 회장도 기자를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다.

가해 코치의 고소장에서 가장 악의적인 주장은 오히려 기자인 내가 ‘아동학대처벌법을 위반했다’는 부분이다. 아동학대처벌법 제35조2항에 따르면, 아동보호 사건에 관련된 아동학대 행위자를 포함해 피해 아동과 주변인의 인적사항 등을 보도하면 안 된다. 피해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아동학대처벌법이 ‘가해자 보호법’이 된 기이한 상황. 지난해 11월 19일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아동학대처벌법을 대표발의한 안홍준 당시 새누리당 의원도 “입법 당시 생각하지 못한 일”이라고 밝혔다.

신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영)도 같은 기사에서 “학대 수위가 경미해 원가정 회복을 목표로 하는 보호처분이 내려진 사건을 대상으로 한다”며, “이 경우 행위자인 부모가 알려지짐으로써 피해아동이 공개 피해를 받는 일을 막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조항은 입법 취지와 반대로, 가해자의 ‘무기’가 됐다. 아동학대 가해자인 코치가 자신의 인적사항을 보도한 기자를 공격했다.

지난해 10월 대구수성경찰서에서 가해 코치가 고소한 사건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 ⓒ셜록

법원, 언론중재위원회, 경찰서를 오가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가해 코치는 본인이 아동학대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걸까, 부인하는 걸까.

법원과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만난 가해 코치의 소송 대리인은 ‘학대는 없었고 훈육은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자를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으로 고소할 때는 ‘아동학대 행위자’인 자신의 인적사항을 공개한 것을 문제 삼았다.

아직까지 가해 코치가 셜록과 기자를 상대로 한 법적 대응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가해 코치는 벌써 ‘소정의 목표’를 이뤘는지도 모른다. 고소장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지만, 사실은 내가 아니라 ‘피해자’들의 입을 막고 싶었던 건 아닐까.

“기자님, 저희 때문에 고생하시네요. 죄송해서 어떡해요.”

연서 씨 어머니는 내게 연락할 때마다 미안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사과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아동학대처벌법 개정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양문석 의원실

연서 씨 모녀의 용기는 작은 변화를 낳았다. 지난해 12월 26일 국회에서는 양문석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안산시갑) 주최로 ‘아동학대처벌특례법 독소조항 개정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 자리에는 ‘아동학대처벌법 제35조2항’ 개정과 가해자들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법적 대응 문제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토론회 이후, 양문석 의원은 ‘아동학대처벌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인적 사항이나 사진 등을 신문 등 출판물에 게재하거나 방송매체를 통해 보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리고 지난해 연말, 가해 코치는 상습 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고소 1년 만에 나온 경찰 수사 결과. 경찰은 피해자 연서 씨의 주요 주장을 대부분 사실로 인정했다.

지난 10일 ‘칼날 위의 아이들’ 프로젝트로 제8회 이문옥밝은사회상(보도상)을 받았다. ⓒ셜록

지난 10일에는 ‘칼날 위의 아이들’ 프로젝트로 제8회 이문옥밝은사회상(보도상)을 받았다. 내부제보실천운동(상임대표 박헌영)이 ‘시대의 양심’이라 불린 공익제보자, 이문옥 감사관의 이름을 따서 만든 상. 보도상은 공익제보 관련 보도를 한 언론인에게 주는 상이다.

‘공익제보자 1호’ 이문옥 감사관처럼, 연서 씨 모녀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아동학대 사실과 빙상계의 은폐 의혹을 폭로했다. 연서 씨 모녀가 아니었다면, 빙상계 아동학대 문제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또 다른 피해자들도 그들 덕분에 용기를 얻고, 자신들도 학대를 당했다고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관련기사 : <“스케이트 날집으로 300대” 피겨 학대 피해자 더 있다>)

이번 수상의 의미는 연서 씨 모녀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 그들의 용기가 세상을 ‘정의의 방향으로’ 한 발짝 더 움직이게 했다는 데 있다. ‘보도상’이란 성격상 상패에는 기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만, 사실은 온갖 2차가해와 압력에도 진실을 말하기를 포기하지 않은 피해자 모녀가 받는 상이나 다름없다.

화려한 은반 뒤에 감춰진 어린 선수들의 고통과 가혹행위를 심층적으로 조명하며 체육계의 고질적인 성과 지상주의와 폐쇄적인 폭력 문화를 비판했습니다. 이 보도는 체육계 인권 보호 시스템의 부재를 알리고 관련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강력한 사회적 울림을 주었습니다.(이문옥밝은보도상 선정 이유 중)

이 상은 상패에 적힌 이름과 무관하게, 아동학대 피해자들의 용기에 주는 상이나 다름없다 ⓒ셜록

‘칼날 위의 아이들’ 프로젝트는 내게도 용기가 필요한 보도였다. 특히 고소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실명 보도를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셜록의 친구(정기유료독자) ‘왓슨’의 든든한 지지가 언제나 함께할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칼날 위의 아이들’ 첫 기사를 내고 5개월째 접어들었다. 가해 코치와 체육계가 마땅한 책임을 질 때까지, 지금까지 작은 변화가 생겨난 것처럼, 체육계에 더 큰 변화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려고 한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