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봄으로 기억합니다. 육아정책연구소 관용차 운전원이자 ‘공익신고자’인 최홍범 씨 이야기를 보도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어느 주말, 홍범 씨가 당시 보육교사 노조 지부장님을 만나 조언을 듣는다 하더군요. 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가족과 나들이 중이던 저도, 두 사람이 만난다는 카페에 잠깐 들렀습니다.

저희 가족들을 인사 시키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제가 전화를 받느라 그랬는지 잠깐 자리를 비웠나 봅니다. 그때 홍범 씨가 저희 큰아이한테 물었다더군요.

“너희 아빠가 뭐하는 분인지 알아?”

아이는 유치원생이었습니다. 아마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엄마 뒤에 숨었겠죠.

너희 아빠는 사람을 살리는 분이야. 의사만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고, 너희 아빠 같은 분들도 사람을 살리는 거야.”

최홍범 씨는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의 관용차 운전원이었습니다. 그가 공익신고 이후 업무배제를 당하는 동안 ‘대리기사’가 기관장 차량을 대신 운전했습니다.(사진) © 최대성 베이비뉴스 기자

카페를 먼저 떠나려는데, 홍범 씨가 자꾸 제 차를 청소해주겠다 하더군요. 자기가 잘하는 게 운전이랑 세차밖에 없다고, 그거라도 해주고 싶다고. ‘혼돈의 카오스’인 차 안 상태(미취학 아동들을 키우는 집 차라면 으레 그럴 겁니다)를 들키기 창피해서, 한사코 사양하고 도망치듯(?) 헤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홍범 씨는 2017년 기관장의 관용차 사적 사용을 폭로한 뒤, 해가 바뀌고 기관장까지 바뀐 뒤로도 지속적인 보복성 업무배제와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2019년 초 “평범하게 살기 위해 너무나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소개와 함께 그의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기자는 누군가를 기사로 조지고, 날리고, 죽이는 일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걸 잘해야 좋은 기자, 유능한 기자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자가 해야 하는 일은 그것만이 아니라는 걸, 홍범 씨가 저한테 알려줬습니다.

2023년에 홍범 씨 이야기를 또 기사로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당시 홍범 씨는 지속적인 괴롭힘에 우울증 등 정신질병 산재까지 겪고, 포천의 한 캠핑장에서 홀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고통을 피해 혼자만의 ‘동굴’ 속으로 몸을 숨긴 겁니다.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우울증 등을 얻은 최홍범 씨는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없어 캠핑장에서 홀로 지냈습니다. 그의 정신질병은 산재로 인정받았습니다. ⓒ셜록

솔직히 언론의 관점에서 볼 때, ‘오늘도 어제처럼 고통 속에 살고 있다’라는 건 뉴스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의 고통은 어제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제와 같은 고통을 오늘도 겪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고통 위에 매일 새로운 고통이 더해져가는 거였습니다.

저는 기사에 “나는 최홍범을 살리고 싶어서 이 기사를 썼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뒤로도 기사를 쓰든 안 쓰든 1년에 한 번쯤은 홍범 씨의 캠핑장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는 늘 ‘죽고 싶다’, ‘죽겠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 말이 저는 ‘살고 싶다’, ‘살려달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기자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라 믿고 있던 그를 실망시킬 수 없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할퀴고 찌르고 등 돌려도, 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올 여름엔 제주도로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5년이 넘는 캠핑장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일상을 찾기 위해 제주도로 떠난 홍범 씨. 남쪽 바다 제주도, 그곳에서도 제일 따뜻한 남쪽 바닷가 서귀포 효돈마을에 있는 작은 만둣국집이 그의 새로운 일터입니다.

5년 만에 캠핑장을 나와 새로운 일상을 찾아가는 최홍범 씨. 제주도 서귀포시 효돈마을의 작은 만둣국집이 그의 새로운 일터입니다. ⓒ셜록

아침부터 만두를 빚고 사골 국물을 우려내며 일한 지 한 달 남짓. 그가 끓여주는 만둣국을 두 그릇이나 먹고 와서 지난주에 또 기사를 썼습니다.(관련기사 : <‘캠핑장에 갇힌 공익신고자’가 제주도 바다로 떠난 이유>)

지난 주말(1일) 오후, 홍범 씨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들뜬 목소리였습니다. 예약도 없이 단체손님이 열한 명이나 왔답니다. 홍범 씨 혼자 음식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죠.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야 그분들이 웃으면서 정체(?)를 실토하더랍니다.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공익활동가들인데,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사를 보고 최홍범 씨를 응원하러 일부러 찾아와주신 겁니다. 한껏 신난 최홍범 씨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저도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투쟁’의 관점에서 보면, 홍범 씨는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캠핑장에 갇힌 공익신고자’로 사는 동안 가해자들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결국 ‘해고장’을 받을 때, 전임 기관장은 ‘금배지’를 받고 국회의원이 됐습니다.(관련기사 : <백선희의 금배지와 최홍범의 ‘해고장’>)

하지만 이기고 지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삶’을 지키는 겁니다. 기사를 보고 바로 만둣국집으로 찾아와준 분들, 제주도 여행 가면 꼭 먹으러 가겠다고 댓글을 남기는 분들 모두 같은 마음일 겁니다. 홍범 씨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삶’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 ‘서로를 살리는 마음’으로 우리는 연결됐습니다.

최홍범 씨의 새로운 일상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에게 가 닿고 있습니다. ‘서로를 살리는 마음’으로 우리는 연결됐습니다. ⓒ셜록

한 지인은 이번 기사를 공유한 제 페이스북 게시물에 이렇게 댓글을 달아줬습니다.

“다른 매체의 다른 기자가 최홍범 님을 인터뷰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기사는 선배만 쓸 수 있을 거 같네요. 두 사람이 쌓아온 시간과 관계와 마음이 담겨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또 다른 (되바라진?) 대학 후배는 이번 기사를 보고 그러더군요.

“규바(별명입니다), 휴머니스트야. 대학생 땐 아니었던 것 같은데.ㅋㅋㅋㅋ”

저는 유능한 기자도, 유명한 기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퓰리처상도 좋고 유튜브 스타가 되는 것도 좋지만, 오늘만큼은 ‘무능한 휴머니스트’로 남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서로를 살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게 이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보람 아닐까 싶습니다.

최홍범 씨가 일하는 ‘노란 간판’의 만둣국집 문에 달린 장식물. “매일 행복하게.” ⓒ셜록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셜록 이야기 시리즈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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