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대학생 언론지망생 때였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언론사 입사용 논술 쓰기를 연습하고 있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박상규 진실탐사그룹 셜록 대표였습니다.
“보경 씨, 잘 지냈어요? 삼겹살 먹을래요?”
박 대표는 대뜸 고기로 저를 유인(?)했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정기적으로 안부를 물을 만큼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언론지망생을 위한 저널리즘 강의 때 한두 번 얼굴만 본 사이였습니다. 약 1년 만에 온 전화였습니다.
선배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약속한 삼겹살집으로 갔습니다. 민머리에 ‘동글뱅이’ 안경을 쓰고 반바지를 입은 남성. 뒷모습만 봐도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박 대표는 오랜만의 만남에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습니다.

불판 위의 삼겹살처럼 분위기도 무르익었습니다. 박 대표는 ‘대안언론’ 셜록의 목표를 설파했습니다.
“나는 셜록을 ‘한국의 뉴욕타임즈’로 만들 거예요. 100% 광고 없이 독자 후원만으로 서울에 빌딩도 세울 겁니다.”
그의 눈빛이 그의 머리만큼이나 반짝거렸습니다. 당시 언론계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100% 독자후원 모델. 박 대표는 제게 제안했습니다.
“보경 씨, 우리 회사에서 ‘왓슨’ 관리 알바 한번 해볼래요?”
‘왓슨’이라는 말조차 생소했습니다. 셜록을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구독자를 셜록의 친구, 왓슨이라고 부르더군요.
광고 없이 좋은 기사만으로 서울에 빌딩을 세우겠다니. 터무니없는 말로 들리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그 무모함이 좋았습니다. “진실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겠다.” 저널리즘의 본질에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언론사로 보였습니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셜록에 들어갔습니다. 기자도 아닌 왓슨 관리 아르바이트생으로요.(관련기사 : <그 코맹맹이 소리.. 언제나 김보경이 있었다>)

사실 그동안 남모르게 셜록을 흠모했습니다. 레거시 미디어에 반기를 든 퇴직 기자들이 모여 만든 대안언론. 거기에 전문가들까지 붙어 문제해결을 지향한다니. 언론계를 뒤흔들 이단아가 등장했다 생각했습니다.
실제 셜록은 기사로 ‘존재의 이유’를 입증했습니다. ‘재심 3부작’(익산 택시기사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무기수 김신혜 사건)을 시작으로,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과 인혁당 피해자들의 국정원 ‘빚고문 소송’까지. 레거시 미디어에서 눈여겨보지 않는 아이템들을 셜록은 긴 호흡으로 끝까지 다뤘습니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보탬도 되고 싶었습니다. 운 좋게 기사 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의 불법 안락사 문제를 직접 발굴해냈습니다. 첫 기획부터 특종을 터트렸습니다.(관련기사 : <“박소연 지시로 개, 고양이 230마리 죽였다”>) 그렇게 셜록에서 기자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셜록에 들어온 지도 벌써 7년.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비리를 저지른 지방의 사립 공업고등학교 이사장과, 채용비리로 입사한 은행권 부정입사자들을 쫓았습니다. ‘반도체 아이들’을 위한 태아산재법 제정에 힘쓰기도 했습니다.
국외훈련 연구논문을 표절한 검사들을 상대로 세금도 환수시켰습니다.(관련기사 : <[해결] 표절 검사 5명 훈련비 환수… 셜록이 만든 ‘최초’>) 올해 경북 의성 산불로 사망한 산불감시원의 마지막 행적을 추적하기도 했습니다.
별의별 일도 다 겪었습니다. 눈앞에서 제 명함을 박박 찢는 취재원도, 제가 찾아왔다고 대뜸 경찰을 부르는 사람도 만나봤습니다. 양육비 안 주는 ‘배드파더’를 직접 찾아갔다가 폭행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힘으로 덤비는 상대에게 핸드폰을 빼앗긴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아, 한 가지를 빠트렸습니다. 12.3 불법계엄 이후 윤석열 장모를 쫓다가, 영부인 김건희 씨의 언니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지난 이야기는 왜 주절주절 늘어놓느냐고요? 잠시 셜록을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 지난 7년의 시간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8월 한 달간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셜록은 근속 5년차 기자에게 한 달의 안식월을 줍니다. 2017년 셜록 창간 이래 안식월을 갖는 최초의 기자가 됐습니다.
한 달 동안 제 자신을 되돌아볼 계획입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주변을 잘 챙기지 못한 건 아닌지 살펴보려 합니다.
가족들과 같이 자주 밥도 먹고, 여행도 가보려 합니다. 반려묘와도 함께 시간을 보낼 겁니다. 수련처럼 직접 집을 치우고, 요리도 해보려 합니다. 틈틈이 책도 읽으며 스토리텔링 공부도 할 겁니다.
한 달이면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짧은 시간이죠. 셜록이 그리울 듯합니다. 특히, 왓슨 여러분들이 주시는 애정이 많이 그리울 겁니다. 기사 잘 보고 있다는 인사가, 잘하고 있다는 격려가, 힘내라는 응원이, 흔들리지 말라는 조언이 지난 7년을 버티게 해준 힘이었으니까요.
더 크게 채우기 위해 더 많이 비우고 오겠습니다. 좋은 기사와 함께 돌아올게요. 잠시만 안녕—.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