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렷, 경례!”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지한구 교사는 사제 간에 나누는 인사 한마디로 청중들의 마음을 ‘그 시절’ 추억 속의 교실로 돌려보냈다.

지 교사는 공업고등학교에서 15년째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공고와 공고생 이야기를 풀어낸 책 <공고 선생, 지한구>의 저자다.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진실탐사그룹 셜록 지면에 인기리에 연재된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지난 3일 ‘<공고 선생, 지한구> 출간 기념 저자 특강’이 서울 한강로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렸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지한구 교사 특강과 북토크, 그리고 사인회까지 약 90분간 이어졌다.

지한구 교사의 글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를 엮은 책 <공고 선생, 지한구>을 소개하는 특강이 지난 3일 열렸다. ⓒ셜록

객석에는 셜록의 친구(정기유료독자) ‘왓슨’들을 비롯해 50여 명의 청중들이 자리했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 자녀들부터, 수험 생활을 마치고 엄마와 함께 온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진로를 아직 정하지 못한 고등학생 자녀를 걱정하는 아버지까지 다양한 세대가 참여했다.

본격 강의에 앞서, 지 교사는 강단 앞에 서서 가방부터 풀어헤쳤다. 손수 만들어온 ‘간식 박스’가 가방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지 교사는 평소 학생들을 수업에 집중하게 만드는 특별한 ‘비법’을 이날 강연에서도 선보였다. 간식 상자에는 이런 메시지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항상 너를 응원해.’

지 교사는 별별 이유를 다 갖다대며 청중들에게 간식 박스를 나눠줬다. 간식 박스가 건네질 때마다 관중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우리 미성년 학생들은 여기 (강연에) 와줬으니까 선생님이 바로 간식 줄게요. 앞에 계신 분은 박수를 잘 치시니까 간식 드릴게요. 이 분은 목소리가 크시니까 또 드릴게요.”

지한구 교사는 별별 이유를 다 갖다 대며 청중들에게 간식 박스를 나눠줬다. ⓒ셜록
지한구 교사가 나눠준 간식 상자에는 ‘항상 너를 응원해’라는 메시지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셜록

지 교사가 이날 들고 온 ‘학습주제'(강연주제)는 이것이다. 책의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는 주제.

“우리 모두 오랜 이웃이 될 수 있다.”

지 교수는 칠판 글씨를 못 읽던 학생 명호(가명)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방과후에 ‘기초학력반’을 가르쳐야 하는데, (학생들이) 아무도 안 왔습니다. 교실에 아무도 없는데, 명호가 앉아있더라고요.

까만 옷에 까만 얼굴. 머리는 기름기가 흐르고 동글동글한 모습의 명호는 졸린 눈을 비비기 바쁘더군요. 말수가 적은 명호는 아버지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청소일을 하는 엄마만 5일에 한 번 정도 집에 온다고 하더라고요.”

이날 강연 주제는”우리 모두 오랜 이웃이 될 수 있다”였다. 책의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는 주제다. ⓒ셜록

처음에 지 교사도 명호의 비밀을 알지 못했다. 졸음을 못 이기고, 눈을 비비는 줄로만 알았을 뿐.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명호의 사연을 알게 됐다.(관련기사 : <칠판 글씨 못읽던 명호의 비밀… 학교가 학교다워졌다>)

“수업을 계속 하다보니까 어느 순간, 명호가 눈을 왜 비비는지 알게 됐습니다. 글자가 안 보여서 그런 거였습니다. 칠판 글씨를 못 읽더라고요. 결국, 저랑 같이 안경을 맞추러 갔습니다.

이 사연이 셜록 기사로 알려지면서 명호를 후원해주는 ‘키다리 할머니’도 등장하셨습니다. 그 덕에 명호는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명호가 밥이라도 편하게 먹으면 좋겠다”며 나타난 ‘키다리 할머니’. 키다리 할머니는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매달 20만 원의 장학금을 명호에게 주고 있다. 이날 강연에도 키다리 할머니가 ‘아무도 모르게’ 참석했다.(관련기사 : <키다리 할머니가 공고에 보낸 ‘꼴찌를 위한 장학금’>)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지한구 교사도 명호의 사연을 알게 됐다. ⓒ셜록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공고를 두고 “꼴등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폄훼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 험한 세상에 꼴등을 위한 학교가 있다는 것이, 그 학교에서 나머지 공부를 묵묵히 완주한 학생이 있다는 것이, 교실 밖에서 기초학력이 부족한 친구를 기다려 주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공고 선생, 지한구> p. 152)

지 교사는 공고에서 헬스부를 운영하고 있다. 헬스부에 오는 학생들의 사연은 저마다 각각 다르다. 누구는 1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살을 빼기 위해, 누구는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 무대 위에 서보기 위해. 그중에서 형준(가명)이는 학교폭력을 벗어나기 위해 헬스부에 들어온 학생이었다.(관련기사 : <공고에 걸린 웅장한 현수막… 최고 장면은 따로 있다>)

“몰랐는데, 형준이는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 피해자였습니다. 학교폭력에서 벗어나려고 헬스를 시작한 거였더라고요. 그런데 형준이는 엄마랑 사이가 좋지 않아요. 녹록지 않은 형편에도 (아이를) 학원도 보내고 했는데, 형준이가 공고에 입학하면서 엄마의 기대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거죠.

그런데 결국 형준이가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서 1등을 했습니다. 이 모습을 엄마가 관중석에서 몰래 보시고 계셨고요. 그래서 같이 관중석에 있던 저도 더 크게 소리쳤습니다.

‘형준아, 엄마한테 잘해래이!’”

“공고 애들은 안돼.”라는 노골적인 괄시 속에서 우리는 함께 노력했고 무대에서 같이 박수를 받았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다”는 옛말은 교육열 뜨거운 한국에선 언제나 무기력했다. 그 한복판에서 우린 어쨌든 몸으로 무언가를 해냈다. (<공고 선생, 지한구> p. 100)

지 교사는 공고에서 헬스부를 운영하고 있다. 무언가를 완주했다는 경험이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으니까. ⓒ셜록

지 교사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위기를 겪은 적도 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공고 학생들이 있기 때문. 지 교사는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번 명절에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장학금 300만 원이 나왔는데, 성적과 상관없으니 필요한 사람은 제게 언제든 말하라’고요. 장학금을 다 나눠줬는데, 아무도 고맙다는 인사를 안 하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한 아이가 교무실 가는 저를 붙잡고 ‘선생님 저 이번에 장학금 받았어요’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더라고요. 가난을 들키고 싶지 않은 아이들 마음을 한 번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늘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지만,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사는 기쁨이 있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은 굉장히 행복하고 좋은 직업입니다.”

지 교사는 강연을 마치기 직전 청중들에게 이런 당부를 남겼다.

“직업계고에도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직업계고 학생’들이 아니라 건강한 청소년으로 봐주세요. 우리 직업계고 아이들이 사회에서 동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지한구 교사는 “‘직업계고 학생’들을 건강한 청소년으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셜록

마지막으로 지한구 교사의 꿈은 뭘까?

“교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도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10대의 어린 학생들과 사실 소통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도 일부러 틱톡,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합니다. 애들이랑 같이 어울려야 하니까요. 그래서 열심히 아이들과 더 눈 맞추고 사는 교사가 되는 게 꿈입니다.

박수영(가명) 학생은 윤동주의 <자화상>을 바탕으로 <어스름>이라는 모방 시를 써서 전시했다. 전문은 이렇다.

학교 복도 끝에 있는 우리 반에 들어가
벽에 붙어 있는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거울 속에는 밝게 웃고 있는 우리 반 친구들과
예쁜 비가 내리는 창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소녀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소녀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해 보니 그 소녀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그 소녀는 서럽게 울고 있습니다.

그 소녀가 많이 슬퍼 보이지만 너무 미워서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소녀가 그리워집니다.

거울 속에는 밝게 웃고 있는 우리 반 친구들과 예쁜 비가 내리는 창문이 있고 추억처럼 소녀가 있습니다.

나는 시를 읽으며, 수영이가 ‘거울 속의 소녀와, 친구들과, 예쁜 비가 내리는 창문’이 있는 공고의 교실을 오래도록 기억해 주길 바랐다. (<공고 선생, 지한구> p. 195~197)

지한구 교사가 책에 직접 써준 사인 문구는 “오랜 이웃”이었다 ⓒ셜록

취재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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