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란찜은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2023년 1월에 쓴 기사의 첫 문장이다. 그 겨울, 영평천이 내려다보이는 경기 포천시의 한 캠핑장으로 ‘캠핑장에 갇힌 공익신고자’ 최홍범(53)을 만나러 갔다. 단출한 점심 밥상에 손수 만든 계란찜 뚝배기를 올려놓으며 그가 한 말. 그 말이 오늘을 위한 ‘복선’이었을까.
3년 반이 흐른 지금, 나는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역시나 그를 만나러 간다. 이번에도 그가 차려주는 밥 한 끼를 얻어먹을 생각이지만, 그를 만날 곳은 더 이상 캠핑장이 아니다.

제주공항에서 급행버스로 1시간 20분. 다시 버스를 갈아탔다. ‘효돈’이란 목적지 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어디서 들어봤더라. 아, 겨울에 먹은 감귤 상자에서 자주 본 마을 이름이다.
버스에서 내려 잠깐 걸었다. 남쪽 섬 제주도 중에서도, 남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아늑한 마을. 내리막길을 따라 곧장 걸어가면 하효항과 쇠소깍에 닿을 수 있는 곳이다.
노란색 간판과 나무 난간이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 식당. 문을 열었다. 딸랑딸랑, 종소리. 주방에서 누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머리엔 두건, 허리엔 앞치마를 두른,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의 최홍범이다. 웃는 듯 마는 듯, 그가 특유의 희미한(?) 미소를 건넨다.
테이블 다섯 개뿐인 아담한 만둣국집. 손님 두 사람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잠깐 손을 내밀어 나와 악수를 나누고, 팔팔 끓고 있는 냄비 위로 얼른 다시 시선을 옮긴다.

원래 그는 국자가 아니라 운전대를 잡던 사람이다.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에서 관용차 운전원으로 일했던 그는, 2017년 우남희 당시 소장의 관용차 사적 사용을 폭로했다. 교회, 마사지숍, 골프연습장, 여고 동창회 등, 1년간 130회가 넘었다.
감사 결과 비위는 사실로 확인됐지만, 소장은 ‘감봉 1개월’ 징계를 받았을 뿐이었다. 반대로 최홍범에게는 업무배제와 개인사찰, 징계 시도가 돌아왔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교수(현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국회의원)가 새 소장으로 취임했지만 업무배제는 계속됐다.
빈 책상 앞에 앉아 ‘버려진 사람처럼’ 보내는 날이 길어질수록 자존감은 무너졌고 모멸감이 쌓여갔다. 억울하다는 호소는 괴롭힘으로 돌아왔다. “중증의 우울에피소드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다. 나는 그때 최홍범을 처음 만났고, 2019년 그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육아정책연구소는 변하지 않았다. 공식 문서에서 최홍범을 “건전한 직장문화를 저해하는 직원”으로 표현할 정도였으니. 그의 정신건강은 계속 나빠졌다. 정신병동 입원까지 겪었고, 2020년부터는 서울을 떠나 홀로 경기 포천시의 한 캠핑장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캠핑장에 갇힌 공익신고자’로 살아온 세월이 자그마치 5년이다.

“친구들이 그래요. ‘야, 정말 니가 요리하냐?’ 안 믿죠.(웃음) 사실은 저도 못할 줄 알았어요.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칼도 잡을 줄 몰랐어요. 생으로 시작한 거죠.”
친구들이 의심(?)할 만도 하다. 처음엔 나도 선뜻 믿지 못했으니까. 제주도 만둣국집에서 일한다는 그의 전화를 받고서, 반가움과 놀라움에 어리둥절했다.
‘터닝포인트’는 지난 1월 지인의 도움으로 제주도 한달살이를 결심한 거였다. 북쪽 끝 경기도 파주의 캠핑장에서 벗어나, 남쪽 끝 제주도 서귀포의 바다를 바라보며 한 달을 살았다. 한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는 곳. 포근한 바다의 품에 마음을 빼앗겼다.
“따뜻하니까. 따뜻한 데서 뭔가 새롭게 시작하자 그래서 (캠핑장은) 싹 다 정리하고 왔죠.”
3월 새봄, 제주도 남쪽 바다가 보이는 곳에 거처를 마련했다. 6월엔 새로 문을 연 지인의 만둣국집 일을 돕기 시작했다. 지금 그와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바로 이곳. 최홍범은 제주도 한달살이부터 이사와 새 일까지 챙겨준 지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여러 번 표현했다.
그의 하루 일과는 완전히 바뀌었다. 일단 “아침에 눈만 뜨면” 식당으로 나간다. 대개는 오전 7시 전. 그날 판매할 만두를 빚고 장사 준비를 하는 데 한 시간 반쯤 걸린다. 8시 30분이 ‘공식’ 오픈 시간이다. 그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손님들도 있다.
“김치만두 만들 때 제일 포인트가 뭐냐면, (만두소에 들어가는) 김치를 직접 칼질해서 일일이 다 썰어야 돼요. (믹서로) 갈면 안 돼요. 아삭아삭하는 식감이 없어져.”
식당일은 처음. 직접 손발을 움직여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몇 년 만인가. 만두 만드는 게 쉽지 않다는 하소연 같으면서도, 동시에 묘하게 자부심(?)이 묻어 있는 목소리다.


“(만둣국에 들어갈) 사골 국물을 이틀 동안 끓여요. 한 번 끓여. 그럼 첫 번째 국물이 나와. 그러면 다른 통에 쫙 넣고, 또 끓여. 그리고 다시 섞어가지고 팍팍 끓여. 그러면서 기름기를 계속 걷어내거든요. 그럼 이렇게 진하게 나오는 거예요.”
평생 들을 만두 이야기를 그날 하루 동안 최홍범에게서 다 들은 것 같다. 사골 국물 우려내는 과정을 한참 설명하는 그의 표정이 진지하면서도 신나 보인다. 제보자와 기자로 그를 만난 지 벌써 7년. 그동안 그에게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이다.
그는 크게 웃는 법이 없다. 입을 반도 벌리지 않고, 소리 없이 빙긋이 웃을 뿐이다. 그가 언제부터 ‘웃음 없는 사람’이었는지는 모른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때부터 그는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니, 웃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2023. 1. 17. 기사 <공익신고 이후 5년… 나는 ‘캠핑장’에 갇혔습니다> 중)
“미래가 없었으니까.”
용서하지 못한 과거가 미래를 집어삼킨 날들이었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도 용서를 구하지 않아서, 그만 용서하고 싶어도 끝내 용서할 수 없었던 과거.
국무조정실이 공익신고 사실을 인정해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직장 내 괴롭힘과 인권침해를 인정해 기관경고를 결정해도, 근로복지공단이 정신질병 산재를 인정해도, 그 긴 세월 동안 아무도 최홍범에게 사과하는 사람이 없었다. 최홍범에게 용서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최홍범은 캠핑장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2024년 육아정책연구소는 더 이상의 병가 연장을 거부하고, 그에게 ‘해고장’을 보냈다.


저녁 어스름이 깔려왔다. 조금 일찍 식당 문을 닫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옥상에 서면 바다가 보이는 집. 바닷가 산책로를 걸으며 작은 항구를 구경했다.
마을 입구 오래된 통닭집에 자리를 잡았다. 갓 튀긴 반반통닭에 한라산 소주를 앞에 놓고, 둘이서 ‘별 볼 일 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학창 시절 얘기, 좋아했던 가수 얘기, 말썽 부리던 친구들 얘기…. 그와 이렇게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평범하지 않은 일이다.
“해봐야죠. 할 줄 알아서 하는 게 아니라, 안 할 수 없으니까 하는 거예요.”
새로운 일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담담했다. 미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엔 여전히 기대보다 불안이 먼저 비쳤다. 그의 앞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들뿐. 출발선에 다시 서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다시 출발선에 설 힘을 얻기까지, 너무 오래 멈춰 있었다.

‘가해자들’ 이야기도 나왔다. 공익신고자인 그를 “건전한 직장문화를 저해하는 직원”으로 매도했던 자들. 국회의원 금배지를 단 뒤로도 끝끝내 침묵 뒤에 숨은 ‘그 사람’도.
“그게 현실인 거예요. 안 바뀌어요. 세상 안 바뀝니다.”
여전히 그의 마음 곳곳에 이끼처럼 체념이 끼어 있는 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일상에서 마음의 볕을 찾으려는 노력을 저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래요. 다 지난 과거고.”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 듯, ‘가해자들’을 향해 하는 말인 듯 한마디 덧붙였다.
“원래 세상 이치가 되게 단순한 거잖아요.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더 그래요. 다 내가 뿌린 만큼 걷는 거예요.”
그는 지금 새로운 삶이란 곡식을 거두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의 땀을 씨앗처럼 뿌릴 뿐이다.

최홍범이 일을 돕는 식당은 개업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육지에서 온 관광객들도 오고, 외국인들도 오고. 마을 사람들 중엔 이미 얼굴과 식성(?)까지 익힌 단골도 생겼다.
매일 저녁 같은 시간에 와서 만둣국과 소주 한 병을 맛있게 먹고 가는 손님, 혼자 먹고 가서는 다음에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온 손님, ‘만두러버’라면서 40분 거리를 마다않고 일부러 찾아와준 손님. 정말 맛있는데 배가 불러서 만두 한 알 남겼다고 미안해하는 손님.
“맛있게 잘 먹었다고 얘기해주실 때, 잘 될 거라고, 오래오래 장사해달라고 좋은 얘기해주실 때 되게 기분 좋아요. 이제 한 달 됐는데 공친 날은 없으니까, 그게 제일 고마운 거죠.”
3년 전 기사에 “최홍범을 살리고 싶어서 이 기사를 썼다”고 쓴 적이 있다. 그만큼 그는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최홍범을 살리고 싶어서 이 기사를 썼다. 이 기사 하나로 대단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그에게 이것 하나는 알려주고 싶었다. 아직도 당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 그러니 아직은 아무것도 놓아버리지 말라는 것.(2023. 1. 31. 기사 <문제는 사과 않는 당신들이다… 용서 못한 내가 아니라> 중)
기사를 읽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응원했다. 하지만 누구도, 무작정 끝장을 볼 때까지, 최홍범의 마음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싸우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최홍범의 싸움은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싸움이 아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느냐, 아니면 하나씩 되찾아가느냐 하는 싸움. 어제에 잡아먹히느냐, 아니면 내일을 보고 나아가느냐 하는 싸움이 된 지 오래다.

“솔직히 안 힘들지 않아요. 그래도 어떻게든 해봐야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일단 최선을 다해서 해야 되는 거죠. 세상에 쉬운 건 없으니까. 근데 또 하다 보면 다 되는 거니까.”
그럼 이번 기사는 무엇을 위해 쓰는 걸까. 아마도 최홍범에게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아닐까.
“고맙습니다.”
분노와 체념의 늪에서 한 발 한 발 걸어나온 그의 용기가. ‘혼자만의 감옥’을 스스로 열고 나온 그의 의지가. 성실한 땀으로 평범한 일상을 되찾아가는 그의 노력이 고맙다.
“가을 깍두기, 기가 막히죠. (만둣국) 사골 국물에다가 딱 먹으면 어마어마하지.”
제주도에서 먹은 세 끼 중 두 끼를 그가 끓인 만둣국으로 먹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11월에 다시 와야 할 것 같다. 햇무 깍두기와 만둣국의 ‘케미’를 자랑하던 최홍범의 표정이 잊히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때는 꼭 취재가 아니라 휴가로 와야겠다고 생각 중이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 9화 ‘캠핑장에 갇힌 공익신고자’가 제주도 바다로 떠난 이유 2026.07.29
- 8화 백선희의 금배지와 최홍범의 ‘해고장’ 2025.07.08
- 7화 [영상] 캠핑장에 갇힌 공익신고자, 최홍범의 겨울 2023.02.07
- 6화 문제는 사과 않는 당신들이다… 용서 못한 내가 아니라 2023.01.31
- 5화 법원도 인권위도 인정했는데… ‘사과’받지 못한 2000일 2023.01.19
- 4화 공익신고 이후 5년… 나는 ‘캠핑장’에 갇혔습니다 2023.01.17
- 3화 정유라 잊었나.. 학사비리 교수가 국책연구소장에 2019.03.08
- 2화 공익신고자 집에 검은 차, 경찰은 신변보호 2019.02.21
- 1화 ‘문캠프’ 출신에 기대했지만.. ‘일’ 잃었다 2019.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