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문에 뚫린 큰 구멍을 보며 내 인생 첫 사업을 시작할 줄이야.
목금토 식탁이 첫 손님을 맞이하기 전날 밤, ‘비공식적으로’ 방문한 어린아이가 화장실에 갇혀 버렸다. 숨바꼭질 놀이를 하던 아이가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는데, 다시 여는 방법은 몰랐던 것이다.
아이는 패닉에 빠져 울부짖고, 엄마는 너무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밤늦은 시각이라 수리하는 분을 찾기는 어려워 119 구조대에 신고했다.
“문손잡이를 드릴로 뚫고 뜯어내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자마자 구조대는 문손잡이를 뜯어냈다. 아이는 구조되었고, 개업 전날의 비공식 모임은 그렇게 끝났다.
다음 날 아침, 구멍 뻥 뚫린 화장실 문과 함께 음식 재료를 준비했다. 나의 다급한 요청으로 인테리어 사장님이 급한 대로 화장실 문에 임시 손잡이를 달아주셨다. 철제문이 찌그러지긴 했지만 큰 구멍을 막은 게 어딘가.
‘사업이 얼마나 잘 되려고, 첫날부터 이런 걸까.’
바닥부터 긍정 마인드를 끌어올리며 목금토 식탁의 첫 영업을 시작했다. 요리를 하자 주방에 맛있는 향기가 차오르면서 내 마음도 즐거움으로 원점 조절이 되었다.
한국의 증권회사 리서치팀 신입사원으로 DRAM(메모리 반도체) 시세를 정리할 때도, 뉴욕에서 MBA를 졸업하고 월가 은행에서 파생상품 위험도를 분석하던 때도, 머릿속이 가장 깨끗해지는 순간은 숫자에서 벗어나 집에서 요리를 할 때였다.
뉴욕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조리복을 입고 처음 칼을 잡던 날 느꼈던, 요리사가 되었다는 즐거움과 안도감이 고스란히 서울 합정동 뒷골목 2층의 작은 주방을 가득 채웠다.

뉴욕에서 돌아와 개업한 ‘목금토 식탁’의 컨셉트는 확실했다. ‘목금토 사흘만 영업, 하루에 딱 여섯 명의 손님만 받는다. 손님들은 내가 준비해 놓은 재료로 함께 요리하고, 한 식탁에 앉아 음식과 이야기를 나눈다.’
누가 봐도 돈과 거리가 먼 사업 모델로 보였는지, 난 두 가지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럼, 월, 화, 수요일엔 뭐 하세요?”
“돈은 버세요?”
일주일에 사흘만 일을 하기로 한 건 현실적인 결정이었다. 재료 준비부터 마지막 청소와 정리까지 모두 혼자 하겠다고 생각하니, 나의 체력으로는 일주일에 닷새 이상 운영은 어렵겠다 싶었다.
많은 사람은 목금토에 저녁 약속을 잡는다. 그렇다면 장사 안 되는 월화수에 문 열어 놓고 텅 빈 자리를 보며 속상해하느니, 맘 편하게 딱 사흘만 오픈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나머지 요일엔 걱정 없이(?) 푹 쉬고, 하고 싶은 일도 하는 거다!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업장 이름도 ‘목금토 식탁’으로 박아버렸다. ‘월화수에도 문을 열까?’ 하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말이다.

나에게 쉼을 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뉴욕에서 보낸 10년 남짓은, 내 꿈을 펼치는 신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뉴욕의 금융업계와 레스토랑에서 살아 남으려면 세 가지 강박이 필요했다.
‘누구보다 빨라야 한다’
‘누구보다 정확해야 한다.’
‘누구보다 뛰어나야 한다’
미국에서의 첫 직장, 메릴린치에서 배운 건 ‘언제나 나는 가장 바빠야 한다’였다. 회사에서 마주치는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 별 생각 없이 “How are you?”라고 물으면, 모두 한결같이 “I am so busy”라고 대답했다.
뛰어난 능력으로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성과는 매일 나오는 것도 아니니 나는 그저 매일 그 누구보다 바빠야 했다. 말뿐이더라도 말이다. 레스토랑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셰프와 마주 서서 손님에게 나가는 최종 플레이팅을 하는 날, 셰프가 내게 넌지시 물었다.
“지금 이 주방에서 누가 가장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줄 알아?”
딱히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셰프님이겠죠?”라고 했더니, 이런 말이 돌아왔다.
“넌 그 생각이 틀렸어.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요리사에게 내가 같은 질문을 하면 다들 ‘저요!’ 라고 대답할 거야. 주방에서는 모두가 자기가 가장 열심히 일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언제나 이런 자기 확신이 필요했다. 누구보다 가장 바쁘고, 가장 열심히 일하는 중이고, 가장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바로 나여야 했다.
뉴욕 맨해튼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경적과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고,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길을 걸을 때도 모두의 속도에 맞춰 빨리 걸어야 했다. 다리가 짧은 나에겐 특히나 어려운 일이다.
도시는 내가 숨 쉬는 것까지 서두르게 몰아갔다. 직장 내에서의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야 정도의 차이로 어느 곳에나 있는 것 아닌가 싶지만, 도시 자체의 밀도와 속도에 쓸려 다니는 그 스트레스는 뉴욕이 둘째 가라면 서러운 도시가 아닐까 싶다.
메릴린치에 첫 출근을 하던 날, 같은 팀 동료가 내게 말했다.
“뉴욕에서 살아남으면, 넌 어디에서나 살아남을 수 있어.(If you can survive here in New York city, you can survive anywhere.)”
나는 뉴욕에서 살아남았다. 그것도 즐겁고 유쾌하게. 그러나 그 긴장감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끝없는 경쟁이 그립지는 않다. 한국에 돌아와 내가 좋아하는 요리로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가장 먼저 생각한 건 ‘경쟁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내가 경영학을 공부하며 배운 ‘돈 버는 사업의 기본’은 간단하다.
우선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탁월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후, 진입장벽을 높게 쌓고, 시장 점유율을 마구 넓혀 경쟁자들이 판에 뛰어들기 벅차게 만들면 된다. 안타깝게도 나에겐 그렇게 특별한 아이디어도, 높은 진입장벽과 넓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자금도 없었다.
나는 누구도 따라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 단지 경쟁이 최고로 적은 사업을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내가 학교와 기업에서 배운 질문을 뒤집어야 했다.
사업하려는 사람은 어떤 곳으로 뛰어들까? 당연히 ‘돈’이 보이는 곳이다. 높은 수익성이 보이거나, 계속 성장할 잠재력이 보이거나. 둘 다 있으면 누구에게나 매력 있는 사업 모델이다.
해법은 단순했다. 매력이 없어서 뛰어드는 사람이 없는 사업 모델을 만들면 어떨까? 돈이 안 보이는 사업 모델, ‘높은 수익성‘과 ‘성장 가능성‘을 제거해버리는 방식 말이다.
하루에 손님 여섯 명씩, 일주일에 사흘 영업. 곱해 봐야 열여덟이다. 돈을 많이 벌 수도, 커질 수도 없는 구조. 가장 바쁠 필요가 없고, 스스로를 과장할 필요도 없는 목금토 식탁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월가에서 십조 원의 자금 흐름이 적힌 화이트보드 앞에 앉아 있던 내가, 일주일에 손님 열여덟 명만 받는 자영업자가 된 것이다.

목금토 식탁을 운영하면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마음은 여유로웠다. 내 특이한 경력 때문인지 여기저기 인터뷰, 강의 등의 기회가 생겨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었다. 매주 어디선가 요리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왔고, 덕분에 5년여 시간 동안 신나게 일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요리를 질리도록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사람들이 생존에 필요한 수준을 초과해 여분의 돈을 버는 이유는 즐거움이나 의미를 사기 위한 것일 터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여행이고, 좋은 집이며, 멋진 자동차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 자체가 바로 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어떨까? 여분의 돈을 좀 적게 벌어도 되지 않을까? 다행히 나에겐 그 즐거움과 의미가 요리였고, ‘일 → 돈 → 재화 → 즐거움/의미’라는 긴 과정에서 ‘돈 → 재화’라는 과정을 건너뛰고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 걸 택할 수 있었다.

아무리 즐거운 일도 끝내야 할 시점이란 게 있다. 목금토 식탁의 그날은 2023년 12월 29일 금요일이었다. 5년 차에 접어들던 그해, 연말까지만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왜 5년이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은 시간이 나에겐 5년이었다. 딱히 설득할 논리는 없다.
문을 닫기 석달 전, SNS에 지난 5년이라는 시간을 채워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글을 남기며, 12월 모임이 마지막이라는 공지를 올렸다. 여러 사람이 아쉽다는 연락을 해왔다.
목금토 식탁에 애정을 가진 분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임신한 몸으로 모임에 참여한 분은 세 살이 된 아이를 데리고 다시 방문했다. 길 가다가 우연히 목금토 식탁을 발견해 단골이 되신 노부부도, 여기서 남으로 만나 이젠 친구가 되어 매달 모인다는 다섯 분도 다시 찾아주셨다.
요리는 오직 여기서만 한다며 두세 달에 한 번씩은 꼭 오시던 분은 “이젠 요리를 어디서 하느냐”며 아쉬워 하셨다. 그렇게 마지막 석 달은, 지난 5년의 여러 시점으로부터 모인 아쉬운 마음으로 채워졌다.
마지막 날, 자주 오시던 단골 몇 분과 목금토 식탁이 그날이 마지막인지도 모르고 처음으로 방문하신 분들이 함께 모였다. 그날 메인 메뉴는 겨자–크림 소스에 익힌 닭고기 (Poulet à la Moutarde)였다.
수수한 프랑스 가정식이라 특별할 것도 없는 요리인데, 맛있다며 집에서 꼭 다시 해보시겠다는 분이 여럿 계셨다. 별다른 감정의 울림 없이, 그냥 담담하게 모임이 끝나고 생각했다.
‘아, 끝났다! 큰 사고 없이 감사히… 시작 전, 아이가 화장실에 갇혔던 것이 가장 큰 사고였네.’

다섯 해 동안,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내 인생의 대차대조표에는 뜻밖의 자산이 채워졌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하고 싶어서 만든 공간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분들의 인생에 어떤 추억과 아련함을 남겼다는 것. 별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겠으나 말이나 글로 참 표현하기 어려운,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무형자산을 쌓았다.
벌써 목금토 식탁이 문을 닫은 지 3년이 되어간다. 지난 2년은 경기가 너무 어려워 새로운 일을 시작할 시기는 아니라는 생각에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올해 말부터는 뭔가를 계획해 볼 생각이다.
이번엔, 무형자산 말고 유형자산을 좀 쌓아보는 것이 목표다. 그렇다고 내 성격에 재미도 없는 일을 하지는 못할 것 같고, 재미도 있고 유형자산도 쌓을 수 있는 일이라… 참 고민이 되는 요즘이다. 이 고민이 연말에는 해피엔딩이 되길.
겨자–크림 소스에 익힌 닭고기

재료
정육 닭다리 살 4 덩어리
중간 사이즈 샬롯 1개 혹은 작은 양파 ¼ 개
마늘 1 쪽
양송이 버섯 4~6 개
케이퍼 1 Tbsp
화이트 와인 ¼ cup
생크림 1/2 컵
홀그레인 머스타드 1 Tbsp
파슬리 조금
식용유 소금/후추
(옵션) 샐러드 채소,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조리법
양송이 버섯은 너무 얇지 않게 3~5mm 굵기로 잘라 놓습니다. 양파도 작은 다이스로 잘라 놓습니다. 마늘은 편으로 잘라 놓거나 굵게 다져 놓습니다. 완성된 요리에 뿌릴 파슬리도 잎만 굵게 다져 놓습니다. 팬에 식용유를 살짝 두르고 달궈 줍니다.
닭고기의 껍질 쪽에 소금을 충분히 뿌려준 후, 달궈진 팬에 껍질 쪽이 먼저 닿도록 놓아줍니다. 후추로 미리 양념을 하면 조리할 때 연기가 많이 나서, 조리 후에 뿌려 줍니다. 그래야 후추의 향도 더 살아요. 너무 세지 않은 팬에서 껍질 쪽을 서서히 익혀야 닭고기의 살과 껍질 사이의 지방이 충분히 녹아 나오면서 껍질이 노릇, 바삭하게 익어요.
팬의 불은 중간 불 정도로 유지를 해주세요. 닭고기 껍질이 노릇노릇하게 잘 익으면 닭고기 살 쪽에도 소금으로 간을 한 후 뒤집어 살쪽도 노릇노릇한 색이 날 때까지 익혀주세요. 이때, 닭고기를 완전히 익힐 필요는 없습니다. (뒤에 크림과 함께 조리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익히는 과정이 있습니다.)
닭고기는 팬에서 꺼내 잠시 그릇에 올려 보관해 둡니다. 팬에 남아있는 식용유와 닭고기 기름에 양파와 마늘을 볶기 시작합니다. 양파와 마늘이 매운 향이 더이상 나지 않고 살짝 투명해지기 시작하면, 버섯을 넣고 계속 볶아주세요.
버섯이 기름기를 충분히 빨아들이면 소금/후추로 간을 해줍니다. 버섯의 부피가 반으로 줄 때까지 익혀준 후, 마지막으로 케이퍼를 넣고 조금 볶습니다. 화이트 와인을 부어 팬 바닥에 붙어 있는 것들을 잘 긁어서 떼어내며 섞어주세요.
화이트 와인이 반 정도 날라갔다 싶을 때, 생크림과 홀그레인 머스타드를 넣으세요. 머스타드를 생크림과 함께 잘 섞이도록 풀고, 닭고기를 소스에 넣고 함께 졸이듯이 익혀주세요. 그릇에 닭고기를 담고, 팬에 남아있는 겨자-크림소스에 파슬리를 넣고 잘 섞은 후, 닭고기 위에 올려주세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와 소금으로만 간을 살짝 한 샐러드 채소를 곁들여 함께 드시면 더욱 맛있습니다.

이선용 작가 vera.lee@mokum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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