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9일을 기다렸다. 1992년 대법원이 비의료인의 타투(문신) 시술을 불법으로 판단한 날로부터, 2025년 국회에서 ‘문신사법’이 제정되기까지. 지난 33년 동안 타투이스트(문신사)들은 문신 시술을 의료행위로 판단한 판례 때문에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아왔다.

결국 타투이스트는 ‘있지만 없는’ 존재처럼 살아왔다. 한국표준직업분류상 직업코드는 ‘42299’. 국세청 업종분류코드엔 ‘문신업’이 있어 사업자등록과 세금 납부도 가능하다. 하지만 문신을 업(業)으로 삼는 순간부터, 타투이스트는 실형을 감수해야 했다.

김도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타투유니온 지회장이 류호정 당시 정의당 국회의원의 팔에 타투시술을 하고 있는 모습.ⓒ주용성

2025년 9월 25일. 타투이스트들에겐 해방의 날이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면허를 소지한 ‘문신사’가 하는 문신 시술을 허용하는 문신사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대한민국은 “문신 시술을 의료행위로 규정하여 규제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에서 벗어났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2023년 2월부터 ‘42299 : 차별을 새기다’ 프로젝트를 통해 문신사법 제정 필요성을 보도했다.(관련기사 : <내 몸은 ‘불법’이 아니다… 30년 전 판결에 갇힌 한국>) 셜록은 이달 ‘문신사법’ 통과를 앞두고, 김도윤(활동명 ‘도이’)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타투유니온 지회장과 여러 날에 걸쳐 동행했다.

책상 가장자리 비좁은 공간에, 김도윤 지회장은 노트북을 펼쳐놓고 있었다. ⓒ셜록

지난 10일, 김 지회장한테서 온 한 통의 전화.

“기자님, 이번에 진짜로 문신사법이 만들어질 것 같아요.”

수화기 너머로도 그의 감정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특유의 저음에 웃음이 묻어 있었다. “이번엔 진짜”를 강조하는 그의 목소리는 한껏 상기돼 있었다. 문신사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날이었다.

이튿날인 11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김 지회장의 타투 작업실을 찾았다. 이날 오후 2시 국회 본회의가 잡혔다. 문신사법도 상정될 예정으로 알려져 있었다.

작업실에 도착하자, 파란색 바탕에 흰 글자가 쓰인 투박한 피켓이 기자를 반겼다.

“33년을 돌아, 상식을 상식이라 말할 수 있도록. 오늘부터, 문신사법”

다용도실 책상 위엔 카메라, 전선, 앰프 등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책상 가장자리 비좁은 공간에, 김 지회장이 노트북을 펼쳐놓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마우스 패드 위를 바쁘게 움직이고, 동시에 왼손은 키보드를 눌러댔다. 문신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즉시 ‘환영’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었다. 그는 기자회견 홍보물을 만들고 있었다.

김도윤 지회장은 ‘전태일의료센터 건립기금’ 후원 독려 기자회견 홍보물을 만들었다. ⓒ셜록
타투유니온 회원이 ‘전태일의료센터 건립기금’ 후원 독려 기자회견 홍보물을 자르는 모습 ⓒ셜록

홍보물에 흰색 가운을 입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대체로 의료계는 타투 합법화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김 지회장은 왜 홍보물에 의료인을 등장시킨 걸까?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어요. 이분들 중에 한 분이라도 여기서 빠지셨다면 문신사법이 여기까지 왔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사실 누가 제일 고마운지 생각하면, 녹색병원 임상혁 원장님이거든요. 그래서 오늘 문신사법이 본회의까지 통과되면 타투유니온 조합원들에게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기금’을 후원하라고 독려하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오늘 국회에 올 타투이스트들이 ‘모여야 해결된다’는 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동안 몰랐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노동조합으로 연대를 하니까 그 사실 하나만 갖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연대들이 연결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어요. ‘아무 조건 없이 다들 왜 이렇게 도와주시지?’ 싶었어요.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연대의 힘을 만들어가는지 알려주고 싶어요. 가장 좋은 방법이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기금을 후원하는 방법 같았어요.”

오전 11시 15분, 김 지회장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통화와 동시에 김 지회장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어떡하죠?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 앞두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하겠다고 하는데요.”

김도윤 지회장은 이날(11일) 문신사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기 어렵다는 전화를 받고 상심했다. ⓒ셜록

작업실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선 국회의원 권성동(국민의힘, 강원강릉시) 체포동의안이 상정됐다. 문신사법이 함께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될지는 미지수. 김 지회장이 더 바빠졌다. 여러 사람들과 휴대폰에 불이 나게 통화를 주고받았다.

결국 문신사법 ‘통과 환영’ 기자회견은 ‘통과 촉구’ 기자회견으로 바뀌었다.

낮 12시, 김 지회장은 점심 식사를 하러 가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미역국을 앞에 두고도 SNS에 지금 상황을 알리기 바빴다.

김도윤 지회장은 점심 식사를 하러 가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셜록

“오늘 아침에 출근했을 때 도이(김도윤 지회장) 님이 ‘우리 내일부터 합법이야’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정말 좋아하셨는데, 한 시간 사이에 상황이 이렇게 달라질 줄이야….”(타투유니온 소속 타투이스트 A)

오후 1시 30분, 김 지회장은 타투유니온 집행부와 함께 무작정 국회로 향했다. 국회 본관에 도착해 출입 신청서를 쓰는 도중, 소식이 전해졌다.

“오늘 문신사법, 상정되지 못했답니다.”

합법화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꿈이 또 한 번 무너졌다. 국회 앞에 모인 타투이스트 사이에선 아쉬움의 탄식이 이어졌다.

합법화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꿈이 또 한 번 무너졌다. ⓒ셜록
김도윤 지회장이 타투유니온 회원들 앞에서 문신사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사정을 설명하고 있다. ⓒ셜록

문신사법 국회 본회의 상정이 기약 없이 밀린 사이, 지난 19일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선 김 지회장의 형사재판이 열렸다. 그는 2021년 12월 1심에서 의료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지만,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2023년 3월 열린 항소심 첫 번째 재판 이후 약 2년 6개월 만에 재판이 열렸다.

이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의 변호인단은 문신사법이 곧 제정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재판부에 알렸다. 비의료인의 타투시술 합법화에 대한 찬성 여론과 법제화 분위기를 참고해달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재판부(재판장 강영훈)는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국회에서) 문신사법 통과 안 될 것 같은데요? 공론화가 안 됐잖아요. 기사도 못 봤는데요. 그리고 의사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김 지회장은 최후발언으로 응수했다.

제가 앞장서서 (타투이스트)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는 지금 저와 같이 재판이나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삶을 내려놓는 동료들을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1992년 대법원의 타투 불법화 판례 이후) 33년이 지난 2025년, 사법부에서 올바른 판결로 그 매듭을 풀어주시기를 간절히 요청드립니다. 사법부의 존엄한 판결 없이는 입법도 행정도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산업의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재판입니다. 업계 종사자 30만 명의 삶과 소비자 1300만 명의 안전을 위해 존경하는 판사님의 판결이 필요합니다.”

타투이스들에겐 ‘불법 딱지’는 죽고 사는 문제다. 이들에겐 타투 시술이 생존권과 다름없기 때문. 이들은 정당하게 돈을 받고 시술해도, 손님에게 “합의금을 달라”,”경찰에 신고한다”는 괴롭힘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런 고통을 못 견디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도 있었다.(관련기사 : <“타투 고발하고 유관순 되겠다”… 황당한 갑질의 이유>)

김도윤 지회장이 2023년 항소심 첫 재판을 받고 나오는 모습. ⓒ셜록

지난 25일 오후 2시경 타투유니온 집행부는 국회를 찾았다. 국회 본희의가 열릴 시각. 본회의를 참관하면서 침묵시위를 진행할 참이었다.

오후 3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갑자기 국회 본회의 안건으로 문신사법이 상정됐다. 필리버스터를 예고했던 국민의힘이 돌연 ‘문신사법 등 소수 법안에 대해 찬성한다’며 필리버스터를 취소한 것. 소식을 전해 들은 김 지회장의 말이 빨라졌다.

“기존에 본회의에 상정되기로 한 37개 법안 중에, 오늘은 경북산불피해(지원대책 특별위원회 활동기간) 연장법이랑 문신사법만 안건으로 상정됐다고 해요. 딱 두 개 올라갔는데, 그중 하나가 저희 법이래요!

김도윤 지회장이 문신사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는 소식을 타투유니온 회원에게 전하고 있다. ⓒ셜록
김도윤 지회장은 기자의 휴대폰을 빌려 아내에게 문자를 남겼다. ⓒ셜록

김 지회장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가장 먼저 기자의 휴대폰을 빌려 아내에게 문자를 남겼다. 국회 본회의 참관인은 휴대폰을 갖고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 법안 올라갔어. 기적적으로 우리 법만 올라갔어!”

오후 6시가 넘은 시각. 약 세 시간에 가까운 기다림 끝에, 국회 본회의장 모니터에는 ‘문신사법안(대안)’이란 글자가 떴다. 김 지회장은 두 눈을 꼭 감았다. 두 손도 깍지를 끼고 고개 숙여 기도했다.

김도윤 지회장은 국회 본회의장 모니터에 ‘문신사법안(대안)’이 뜨자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했다.ⓒ셜록
김도윤 지회장은 문신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눈물을 흘렸다 ⓒ셜록

재석 202명 중 찬성 195명, 기권 7명.

“문신사법(대안)에 대한 수정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국회의장의 그 한마디를 듣기까지 33년이 걸렸다. 김 지회장은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아 있던 타투유니온 집행부들도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일어서서 본회의장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타투유니온 집행부가 국회의장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 ⓒ셜록

타투유니온 집행부는 국회 본관 앞에 모여 오늘을 기념했다. 서로의 손을 맞잡고 기뻐하기도,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안아주기도 했다. 문신사법 입법화를 위해 애썼던 국회의원, 의원실 비서진들과 한데 모여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했다. 한 의원실 비서진은 김 지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사(士)자 직업’된 걸 축하해요.”

이제 문신‘사’ 자격을 얻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법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그동안 타투이스트는 ‘있지만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누구 말처럼 이젠 엄연하게 ‘사’자 직업이 됐다. 이제는 손님들에게 신고 협박을 받지도, 형사 사건에 휘말리지도 않을 거라 기대한다. 이들을 보호해주는 법이 있으니까.

타투유니온 집행부는 국회 본관 계단 앞에 섰다. 문신사법을 대표발의한 박주민 국회의원과 함께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이들은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부터 문신사법!”

이들은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부터 문신사법!” ⓒ셜록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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