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산불 당시 사망한 산불감시원 신응국(향년 69세) 씨가 순직을 인정받았다. 지난 3월 경북 지역을 집어삼킨 최악의 ‘괴물’ 산불. 영덕군 소속 산불감시원이었던 신 씨는 이웃한 의성군 산불진화 작업에 투입됐다가 화마에 휩쓸려 숨졌다. 그의 사망으로부터 224일 만에 이뤄진 순직 결정이다.

신 씨의 유가족은 지난 14일, 인사혁신처가 보낸 ‘공무수행사망(비공무원) 승인결정서’를 받았다. 인사혁신처는 결정서를 통해 “화재사로 사망(추정)한 신응국 씨에 대한 순직을 승인한다”고 밝혔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버지가 순직으로 인정받아서 다행입니다. 손녀들이 할아버지를 자랑스럽게 기억할 수 있게 됐습니다.“(첫째 아들 신정우)

지난 3월 경북 산불 당시에 사망한 산불감시원 신응국(향년 69세) 씨가 순직을 인정받았다 ⓒ셜록

산불감시원은 지역 산림보호 업무를 위해 산불이 많이 나는 봄철·가을철 시기에 지자체와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기간제 근로자다. 신응국 씨는 2011년부터 14년간 영덕군 소속 산불감시원으로 일했다.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공무수행사망자’로 순직이 인정될 수 있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가 공무수행 중 사망한 경우, 공무원과 동일하게 순직 인정 및 예우 등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신응국 씨의 경우 순직이 인정됨에 따라,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로 등록 신청이 가능해졌다. 국가보훈처의 심사를 거쳐 국가유공자, 보훈보상자로 인정될 경우 교육-취업-의료-주택대부 지원이 가능하다. 다만, 유족보상금(순직유족급여)은 지급되지 않는다.

앞서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6월 산불감시원 신 씨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관련기사 : <[해결] 영덕 산불감시원 산재 인정… 군수는 유족 방문>)

산불감시원 신응국 씨는 7번 국도 옆 산길에서 불에 타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트럭은 전소됐다. ⓒ셜록

유가족은 인사혁신처의 순직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인사혁신처는 순직은 인정했지만 ‘위험직무순직’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 유가족의 입장에선 ‘반쪽짜리’ 결과다.

산불진화라는 직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 것이 아니고, 퇴근하고 산불에 의해 사망한 것이기에 위험직무를 수행하다가 그 내재된 위험이 실현되어 생긴 직접적인 결과로 사망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법률적 판단에 따라 위험직무순직공무원 요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의 판단입니다.”(인사혁신처 통보서 중)

‘위험직무순직’은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가 재해를 입고 ▲그 재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한 (비)공무원에 대해 경제적 예우를 해주는 제도다.

조승규 노무사(노무사사무소 씨앗)는 인사혁신처의 결정을 두고 이렇게 비판했다.

“산불감시원 신 씨가 (자신이 소속된 영해면사무소로 향한 건) 사명의식을 갖고 산불감시원 업무를 하기 위해 사실상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간 것과 다름 없잖아요. 관할 지역으로 돌아가야 그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신 씨가 위험직무순직이 아니라면, 이런 메시지가 되는 거죠. ‘불나면 복귀 명령 떨어져도 도망가도 된다.’ 말이 안 되는 결정인 겁니다.“

 

숨진 신 씨가 발견된 곳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의 무전기와 핸드폰이 불에 탄 채 발견됐다 ⓒ셜록

인사혁신처는 잘못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신 씨의 위험직무순직을 인정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인사혁신처는 “자택 귀가한 뒤 실종”, “퇴근 중 사고” 등 사실과 다른 내용을 통지서에 적었다. 이는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취재한 내용과도 완전히 다르다.

 

첫 번째, “신 씨가 영덕으로 복귀하여 자택 귀가한 뒤 실종됐다”는 부분이다. 이는 아예 사실과 다르다. 신 씨는 그날 집으로 귀가를 한 적이 없다. 신 씨의 아내 원순희 씨는 남편이 실종되기 전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아들이 영해면(소재지) 아파트 사니까 거기로 가서 오후 8시 40분쯤 (남편한테) 전화를 했거든요. ‘절대로 (영해면 대리에 있는) 집으로 오지 마라. 우리도 대피 왔으니까 당신 (집으로) 오면 큰일 난다. 지금 난리가 났으니까 영덕(읍내)에서 자고 온나’ 내가 이 소리까지 했다니까. 본인(신응국 씨)이 ‘알았다’ 캤어요.”

실제로, 숨진 신 씨가 발견된 장소가 이 증언을 뒷받침한다. 그는 집 근처로 가지도 못한 채 길 위에서 사망했다. 그는 경북 영덕군 7번 국도 옆 산길에서 쓰러진 채, 불에 타 숨진 모습으로 발견됐다. 그가 몰고 온 트럭은 아예 전소됐다. 그곳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의 무전기와 핸드폰이 불에 탄 채 발견됐다.(관련기사 : <‘불탄 숲’에서 사라진 남자… 그의 마지막을 추적한다>)

두 번째, “퇴근 중 사고”라고 표현한 점이다. 신 씨의 마지막 이동경로와 동료들의 증언을 미루어볼 때, 퇴근길이 아닌, 또 다른 임무 수행을 위해 소속 면사무소로 이동 도중 발생한 사고로 볼 수 있다.

사건이 일어난 3월 25일. 영덕군청 소속 산불예방전문진화대와 산불감시원 총 13명은 이웃한 의성군 산불 진화 현장에 투입됐다. 파견 업무를 다한 이들은 간신히 불지옥을 건너 당일 오후 8시 56분께 영덕문화원에 도착했다.

파견 이후에는 소속 읍면으로 복귀하는 게 통상적인 절차다. 특히 그날은 영덕군청의 지시로 군내 모든 산불감시원이 소속 읍면에서 주민 대피를 도와야 했다.

“(영덕문화원에서) 해산을 해가지고 각 읍면으로 복귀를 했죠. 각 읍면에서 우리 산불 담당자 지시를 받아가 주민 대피 활동을 했죠.”(파견 산불감시원 A)

신응국 씨의 마지막 이동경로를 보면, 그 역시 본인이 소속된 영해면사무소로 복귀하려던 걸로 보인다. 그가 진입한 7번 국도는 영해면 대리에 위치한 그의 집과 완전히 반대 방향.

이 같은 상황은 영덕군청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사실확인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출처 정혜경 진보당 국회의원실). 사실확인서에도 “영덕군 산림보호팀장은 대피 지시를 내렸는 상황이므로 고인은 근무를 위해 영해면과 대리 산불담당구역근무지로 복귀하였다고 판단된다”고 적혀 있다.

영덕군청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사실확인서 ⓒ정혜경 국회의원실 제공

그럼에도 인사혁신처는 퇴근길에 발생한 사고라고 판단한 것. 인사혁신처는 지난 8월 유족과 동료들을 대면조사 하기도 했다. 아내 원 씨는 대면조사 상황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남편이랑 같이 근무했던 (산불감시원) 둘이랑 영해면사무소 직원이랑 저랑 같이 (인사혁신처) 조사를 받았습니다. (인사혁신처 조사관이) 저한테는 별로 묻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주로 대답을 했는데, 다들 남편이 ‘영해면사무소로 복귀하러 오다가 그렇게(화재사) 됐다’고 설명을 했거든요. 근데도 통지서엔 그래 (사실과 다르게) 적혀가….”

잘못된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위험직무순직’을 인정받는 건 유가족에겐 중요한 문제다. 산불로부터 지역사회를 지키러 나갔다 숨진 신 씨의 명예와 연관돼 있기 때문.

임자운 변호사(법률사무소 지담)는 “(인사혁신처가) 퇴근길 사고라는 잘못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는 게 문제“라면서, “(신 씨가) 불 끄러 가다가 돌아가셨다는 게 인정이 되면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는 (위험직무순직 인정) 조건은 충분히 충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고 당일 신응국 씨의 이동 경로 인포그래픽. 영덕문화원에서 출발해 7번 국도를 거쳐 가다 영덕읍 매정리로 빠졌다. 불길을 피해 도망가다 인근 산길에서 숨진 걸로 추정된다.ⓒ셜록

셜록은 19일 인사혁신처에 어떤 조사 과정을 거쳐 신 씨 죽음을 퇴근길 사고라고 판단했는지 물었다. 그리고 자택 귀가 등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인사혁신처 대변인실은 “개인정보에 관한 사항으로 공식적인 답변을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인사혁신처의 결정에 이의가 있으면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에 심사청구를 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한편, ‘공무수행사망자’ 제도는 2018년 9월부터 시행됐다. 인사혁신처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0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7년간 총 41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공무수행사망자 순직으로 인정받았다.

가장 적은 해(2022년)는 1명, 가장 많은 해(2019년)는 9명이 순직을 인정받았다.(2018년 2명/ 2019년 9명/ 2020년 4명/ 2021년 8명/ 2022년 1명/ 2023년 4명/ 2024년 5명/2025년 10월까지 8명)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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