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웠습니다.”
지난달 13일 부천 제일시장 골목에서 트럭이 돌진해 4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다쳤다. 사고 이후 언론은 ‘이번에도’ CCTV 영상을 앞다퉈 보도했다.
시장 골목 안 구석구석에 설치된 CCTV에서 나온 영상은, 끔찍한 참사의 순간을 여러 각도로 보여줬다. 일부 영상에는 사망자도 등장했다. 당시 영상을 보도한 한 기자는 자신의 결정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언론은 사고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도했다. 트럭이 사람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사람이 치이는 아주 짧은 순간만 편집했다. 그리고 사람을 치고 나서 쏜살같이 멀어지는 트럭의 모습을 연결해 보여줬다. 일부 영상은 사고 직전 장면이 반복적으로 재생됐다.
언제 어디서 왜 사고가 났는지,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정도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참사 당일 속보뿐만 아니라 운전자의 수사과정을 전달하는 후속보도에도 CCTV 영상은 계속해서 사용됐다. 참사 사망자의 마지막 모습을 온 국민에게 공개하겠다는 결정을 하면서, 과연 고인의 명예는, 유족의 고통은 얼마나 고려됐는지 의문이 들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달 26일, 부천 시장 참사 피해자의 CCTV 영상을 공개한 언론사에 직접 질의서를 보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연합뉴스TV, 채널A, JTBC, KBS, MBC, SBS, YTN까지 열 곳이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메일과, 해당 언론사의 제보 이메일로 ▲부천 시장 참사 CCTV 영상을 공개한 이유 ▲공개 이후 유족이나 피해자 및 독자의 편집 요청이 있었는지 ▲CCTV 영상을 비공개 또는 편집 처리할 계획이 있는지 ▲CCTV 영상을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라면 어떤 이유인지 물었다.
20일이 지난 12월 16일 현재, 공식 답변을 준 언론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질의서을 보내고 일주일 뒤 다시 답변을 요청했지만 ‘무응답’ 상태다.
질의 내용 확인 차 연락을 준 언론사는 한 곳 있었다.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 독자센터 담당자는 “제주항공 참사 때도 사고 영상을 보도하고 내부에서 고민이 많았다”며, “가치 판단의 문제라고 본다, 담당자에게 질의 내용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에 질의에 대한 공식 답변은 오지 않았다.

질의서를 보낸 열 곳의 언론사 외에도, 셜록은 영상 댓글과 문자메시지 등으로 질의를 남겼다. 그 결과, 셜록의 문제제기에 응답해 영상을 삭제한 언론사가 딱 한 곳 있었다. 바로 부천 지역신문 ‘부천뉴스’다.
부천뉴스 정재현 기자는 참사 발생 직후,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미 시장은 기자들로 붐볐다. 그들은 소방당국의 브리핑을 듣고, 현장 CCTV 영상을 ‘따는’ 등 경쟁적인 취재를 진행하고 있었다. 정 기자는 “모두 다 그런 취재를 하고 있어서 부천뉴스도 자세한 취재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 고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상을 올릴 때도 고민이 많았어요. 진하게 블러(흐림) 처리를 할 바에는 영상은 안 올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미 다른 언론사도 많이 보도했더라고요. 고민하다가 결국 공개했습니다.”
언론이 보도한 CCTV 영상 중에는 사망자 모습도 있었다. 정 기자는 자신이 보도한 영상에 사망자의 ‘마지막 모습’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독자들의 항의 댓글도 달렸다. 정 기자가 고민과 맞닿아 있는 지적이었다.
“영상을 보도하고 나서 ‘부천뉴스는 이런 영상으로 ‘클릭 수 장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댓글이 달리더군요. 독자들의 항의가 있어서 유튜브, 릴스를 모두 지웠습니다.”
현재 부천뉴스 기사에는 비공개된 영상 링크가 남아 있다. 영상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영상을 올린 흔적은 확인된다. 정 기자는 일부러 영상의 흔적을 남겼다. 뒤늦게 내린 영상이지만 “기념”으로 뒀다.
“영상을 지운 흔적을 보고, 누군가 그 이유를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셜록은 지난달부터 ‘비극이 유출됐다’ 프로젝트를 통해, 무분별한 CCTV 영상 보도로 인해 고통받는 범죄 피해자 유족의 사연을 보도했다.(관련기사 : <범인의 칼에 가족을 잃고, ‘언론’의 칼에 삶을 잃었다>)
언론은 지난 8월 ‘마포구 흉기피습 살인사건’ 피해자 박준원(가명, 32)이 살인범으로부터 도망치는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유족들은 장례를 준비하던 도중, 해당 보도를 확인하고 사랑하는 이에 관한 마지막 기억이 “훼손”된 것만 같다고 말했다.
“(영상을) 딱 한 번 봤는데, 가끔 그 장면이 저를 때리듯이 눈앞에 떠올라요. 그 영상을 안 봤으면 준원이의 생전 기억을 갖고 살아갈 텐데, 흉기를 든 가해자로부터 도망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게 된 거죠.”

준원의 애인 이은지(가명, 34) 씨는 “언론사에 불 지르고 죽고 싶었다”며 언론이 피해자인 준원과 남겨진 유족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준원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를 타고 일파만파 퍼졌다. 유족 측은 준원의 명예를 지키고자 언론사와 각종 SNS 채널에 CCTV 영상과 캡처 사진을 삭제해달라고 직접 요청했다.
“2차 유포된 영상이나 캡처 사진에 대해서도 방송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론사가 보도하지 않았으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잖아요. 왜 피해자 쪽이 직접 나서야만 하는지 모르겠어요.”(유족 대리인 김재우(가명))
한번 인터넷에 게시된 영상은 완전히 삭제하기 어렵다. 언론이 준원의 CCTV 영상을 보도한 지 3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유족들은 어디선가 “독버섯처럼” 자라는 영상의 흔적을 찾아 지우고 있었다.

셜록이 질의서를 보낸 열 곳의 언론들은 한결같이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공익성을 내세우며 당당하게 반박하지도 않고,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변명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부답.
침묵의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달 8일, CCTV 영상 보도에 관한 기자들의 ‘솔직한’ 심경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CCTV 영상 보도의 명암 : 취재 과열 양상과 윤리적 문제점’ 세미나.
참석한 기자들 대부분 CCTV 영상 보도의 윤리적 문제를 알고 있었다. A 기자는 “누구보다 빠르게 보도해야 기사 조회수가 높아지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 CCTV 영상 보도가 과열되고 있다”며, “보도 영상 속 피해자 측의 항의를 받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B 기자는 “폭행, 교통사고 등 사건 보도를 특별히 공익적인 목적으로 보도한 적 없다”며, “뉴스룸 큐시트를 채우고 있는 여러 사건사고 보도 중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보도가 있었는지, 꼭 CCTV 영상을 구해서 보도해야만 했을까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사건 현장에서 CCTV 영상을 확보하지 못하면 불안을 느낀다고 했다. 혹시 다른 언론사에서 내가 확보하지 못한 영상을 보도해 ‘물을 먹지 않을까’ 걱정했다.
또, 보도 책임자인 ‘데스크’에게 CCTV 영상을 보도하지 말자고 제안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언론사가 보도 방향을 정할 때 조직 차원에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에 “사망자와 유가족의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그림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사망자의 마지막 모습을 공개한 언론은 피해자의 존엄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족들의 고통도 헤아리지 않았다.
칼을 든 살인범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어떤 ‘알 권리’를 충족할 수 있었나. 시장 골목을 달리는 트럭이 사람을 향해 돌진하는 영상에서 우리는 어떤 ‘공익성’을 느꼈나.
언론은 어쩌면 한 가지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경쟁적으로 보도한 CCTV 영상 ‘그림’ 속에는 끔찍한 비극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다는 것.
언론 보도와 SNS 게시물을 뒤져서 준원의 마지막 모습을 지우고 또 지운 김재우 씨는 내게 말했다.
“궁금했어요. 대체 이런 식의 보도를 누가 처음 시작했을까. 어디까지 ‘시청자의 알 권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