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영상을 그대로 보도한 것이 공익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8월 한 남성이 칼을 든 살인범을 피해 도망치는 장면이 그대로 보도됐다. 박준원(가명, 32)이 사망하기 직전 모습이다. 언론이 CCTV 영상을 공개해 남긴 건 ‘상처’뿐이었다. 유족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훼손”당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달부터 ‘비극이 유출됐다’ 프로젝트를 통해, 무분별한 CCTV 영상 보도로 인해 고통받는 범죄 피해자 유족의 사연을 보도했다. 바로 ‘마포구 흉기피습 살인사건’ 피해자 준원의 가족 이야기다.(관련기사 : <범인의 칼에 가족을 잃고, ‘언론’의 칼에 삶을 잃었다>)
권순택 언론시민개혁연대 사무처장은 ‘마포구 흉기피습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도망치는 모습을 공개한 언론에 묻고 싶다고 했다. 그 장면을 공개한 이유가 ‘공익’ 때문이냐고.

“언론은 CCTV를 합법적으로 획득했더라도, 보도할 때 윤리적 정당성을 갖춰야 합니다. 범죄보도와 관련해서는 ‘특히’ 피해자와 가족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합니다.”
언론의 무분별한 CCTV 영상 보도가 문제로 지적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5년 인천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아동을 폭행하는 CCTV 영상이 공개됐다. 당시 아동을 때리는 장면이 고스란히 보도되면서,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사건을 계기로 CCTV 영상 보도의 양면성을 지적하는 기사가 나왔다. KBS는 방송사가 폭력적인 장면을 반복 재생하거나, 과도한 영상 공개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보도했다.
“CCTV 화면은 기자들이 촬영하기 어려운 생생한 장면까지 포착할 수 있지만, 그 생생함 때문에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할 땐 기자 개인의 판단과 책임이 아닌, 언론사 차원의 고민과 기준이 필요할 것입니다.“(KBS <‘CCTV 보도’의 양면> 2015. 2. 8.)
하지만 언론의 무분별한 CCTV 영상 보도는 멈추지 않았다. 범행 장면만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보여주거나, ‘결정적인’ 찰나의 순간만 삭제하고 영상을 공개하는 식으로 편집기술을 이용해 아슬아슬 줄타기를 했다.
“(CCTV 영상에서) 모자이크나 블러(흐림) 처리를 한 경우에도 얼굴만 인식이 불가능할 뿐 상황과 행위가 인식가능하고, 반복 노출하는 것은 폭행 피해자들에게 트라우마 등 2차 피해의 소지가 있어 많은 주의가 필요합니다.”(한상희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 ‘방송보도의 인권보호 실천, 어떻게 되고 있나?’ 토론회, 2022. 10. 19.)

무분별한 CCTV 영상 보도는 피해자 인권 문제뿐 아니라 ‘오보’를 낳기도 한다. 2022년 배우 A 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언론은 A 씨 실명을 공개하면서, 그가 길거리를 걷는 CCTV 영상을 입수해 보도했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우울증 약을 복용했을 뿐 마약은 검출되지 않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당시 SBS가 CCTV를 입수해 “뭔가에 발이 걸린 듯 넘어질 뻔하다가도 휘청거리며 계속 걸어갑니다”라는 CCTV 영상 속 상황을 설명하는 리포트를 배치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나요? 마약 투약이 아니었고, SBS는 해당 영상을 삭제했습니다.“(권순택 사무처장)
건설노동자 고 양회동 씨 분신 사건에서도 언론의 CCTV 영상 공개는 큰 비판을 받았다. 2023년 5월 1일 양회동 건설노조 강릉지부 3지대장은 당시 윤석열 정부의 ‘건폭몰이’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주차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월 17일 조선일보는 인근의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민원실 건물 CCTV에 찍힌 양 씨의 분신 장면을 기사에 실었다. 이번에도 유족의 동의는 구하지 않았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사건 당시 양 씨 옆에 있던 건설노조 간부가 분신을 방조했다고 ‘허위보도’를 냈다. 해당 간부는 ‘자살방조죄’로 경찰의 수사까지 받았지만 결국 무혐의로 끝났다. 조선일보의 악의적인 보도로, 유족과 동료는 크나큰 2차 피해를 입었다. 아직까지 검찰청 CCTV 영상이 조선일보 기자에게 유출된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다.

CCTV 영상 보도의 윤리적 문제가 계속해서 지적돼온 만큼, 관련한 가이드라인도 이미 존재한다. 한국영상기자협회가 발간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에는 살인사건 관련 CCTV 영상 자료를 제공받은 경우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자세히 적혀 있다.
“가급적 영상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만약 필요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희생자의 존엄성, 피해자의 유족이 당하는 물리적・정신적 고통을 고려하여 해당 영상 활용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영상보도 가이드라인> 한국영상기자협회, 2025년)
해외 언론 BBC는 자체적인 CCTV 영상 활용 기준도 마련했다. BBC는 편집 정책 가이드라인을 통해 ‘공공·응급 서비스·일반인의 바디캠·드론·CCTV 등으로 촬영된 영상’ 사용은 “피해 및 불쾌감 유발 가능성과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고려해야”한다고 밝혔다.
“BBC는 범죄 장면 CCTV 영상을 사용할 때 피해자·유족 프라이버시 보호가 이루어져야 하며, 방송을 하더라도 치명적인 순간은 회피해야 한다는 것, 사전 경고와 맥락 제공을 동시에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은 “(BBC 가이드라인의 취지는) CCTV 영상 보도는 사생활 침해 소지가 크므로, 피해자·유족 등 관련 당사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범죄 사건 보도는 범행 직전까지 보여주는 CCTV 영상 보도는 자제가 필요합니다. 범죄, 사고, 재난의 순간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경우도 피해야 합니다. 사고와 재난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지만, 희생자가 등장하는 장면은 사용하지 않는 게 현실적인 CCTV 영상 사용 기준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허찬행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CCTV 영상 보도 문제는 왜 ‘논란’에서 그치고 말까. 권순택 사무처장은 “언론은 쉽게 CCTV 영상을 활용하지만,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책임은 진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언론은 CCTV 영상을 쉽게 ‘따서’ 보도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2차 피해에 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당사자가 항의하면 영상을 삭제하는 식으로 대응할 뿐이다. ‘마포구 흉기피습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은 CCTV 영상을 보도한 언론사에 일일이 직접 연락해 삭제를 요청했다. 일부 언론은 영상을 삭제했다.
언론의 책임도 거기까지였다. SNS에 퍼진 영상을 찾아내고 삭제 요청하는 일은 오롯이 유족에게 돌아갔다. 3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유족은 어디선가 “독버섯처럼” 자라는 영상의 흔적을 찾아 지우고 있었다.(관련기사 : <반성 없는 살인자와 언론… 유족은 사과받지 못했다>)
권순택 사무처장은 “CCTV 영상 보도의 2차 피해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은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진행하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불법영상 삭제 제도와 같은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언론의 책무는 미디어 환경이 디지털로 변화한 것에 발맞춰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으나, 한국 사회는 미디어 환경을 변명 삼아 거꾸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