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했다고 한 마디라도 해야 되는 거 아냐!”

법정에서 터져나온 외침. 주인공은 박소원(가명, 34) 씨였다. 남동생 박준원(가명, 32)을 살해한 가해자 면전에 내뱉은 처음이자 마지막 말이었다.

지난 17일 오후 3시 30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A의 첫 공판이 열렸다. 30분 전부터 법정 출입문 앞에 6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법정 안에 앉을 자리가 부족한 나머지, 일부 방청객들은 서서 재판을 지켜봤다. 법정 안은 애써 분노를 삼키는 무거운 침묵과 긴장된 숨소리만이 흘렀다.

지난 17일 준원 씨를 살해한 가해자 A의 형사재판이 시작됐다 ⓒ셜록

재판이 시작됐다. 검사는 공소사실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피고인은 2025년 8월 6일경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시며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칼로 피해자의….”

방청석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대부분 준원을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방청석 맨 앞자리에는 준원의 가족들이 앉아있었다. 소원 씨는 두 손에 손수건을 꼭 움켜쥐었다. 준원의 아버지와 배우자 이은지(가명, 34) 씨는 엄벌을 호소하는 진술을 했다.

“제가 같이 무기징역을 살아야 한대도 상관없으니, 제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해주십시오.”

소원 씨는 진술을 묵묵히 듣다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의 시선은 피고인석을 향했다. 사건 이후 처음 보는 A의 모습. 그는 머리를 짧게 깎고 하늘색 줄무늬 수의를 입고 있었다. 유가족의 진술을 듣는 내내 입을 삐죽거리고, 의자를 좌우로 빙글빙글 돌리기도 했다.

유가족 진술을 마지막으로 첫 공판도 끝났다. A가 걸어 나가는 순간, 소원은 지난 두 달간 쌓아온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준원이 떠나고 3개월이 지났다. A와 그 가족들은 아직도 준원을 잃은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셜록

지난 8월 6일 밤, 준원은 삼겹살집에서 ‘20년 지기’ A를 만났다. 최근 창업한 A의 고민을 들어주고 격려하기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그날, 준원은 친구의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경찰 조사 결과, A는 2017년부터 조현병 치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사건 발생 3개월 전부터 약 복용을 마음대로 중단했다. 가게 운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A는 준원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미리 준비한 흉기로 준원을 살해했다.

A도, 그의 가족도, 아무도 유족에게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 사건 이후 3개월이 흐르도록.

준원의 49재날, 소원 씨는 우연히 A가 가게를 처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직접 찾아가보니 가게 출입문에도 ‘급매’ 공고가 붙어 있었다. 사유는 ‘사고로 인한 장기 입원’.

거짓말로 공고문 올릴 시간에, 저희한테 사과부터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준원의 장례가 끝난 지 12일 만에 A의 가족들은 가게 처분을 시도했다. ‘사고와 입원’이라는 거짓말과 함께. ⓒ셜록

소원 씨는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사건 발생 초기에는 복수하겠다는 생각에 매몰됐다.

“복수를 상상하는 날이 많아졌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어요.”

소원 씨는 인터넷 검색창에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수없이 입력해봤다. 구치소 생활, 탄원서 잘 쓰는 법, 형량 그리고 사건을 보도한 언론의 수많은 기사들.

언론이 처음 보도한 시점은 사건 바로 다음 날 아침. 언론은 ‘대흥동 흉기난동 사건’, ‘마포구 흉기살해 사건’ 등의 이름으로 사건을 불렀다. 일부 기사 속에는 준원의 ‘마지막’ 모습이 공개됐다. 흉기를 든 A를 피해 도망치는 CCTV 영상이었다.

방송사들이 CCTV 영상을 보도한 이후, 여러 언론들이 그 영상과 캡처 사진 등을 활용해 기사를 썼다. 유족은 장례를 준비하던 중, 언론 보도를 확인했다.

일부러 다 찾아봤어요. 믿기지 않았거든요. 처음에는 현실감이 없어서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괴로워졌어요. 이게 사실이라는 걸 느끼면서 더 힘들어진 것 같아요.”

언론은 준원의 사건 현장 인근 건물에서 CCTV 영상을 입수해 준원의 마지막 모습을 공개했다 ⓒ채널A 갈무리

CCTV 영상이 보도된 후, 인터넷에는 2차가해성 게시물이 무차별적으로 유포됐다. 피해자인 준원에게서 죽음의 원인을 찾는 내용이었다. 언론이, 두 사람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다고 보도한 탓이 컸다. 유족이 직접 삼겹살집 사장에게 물어보니, 말다툼은 없었다. 가게 내부 소음 때문에 목소리가 커진 것뿐이었다.

“언론이 보도한 CCTV 영상과 함께, 한 게시물이 올라왔어요. ‘두 사람은 지인 사이인데 왜 죽였을까요? A. 돈 관계 B. 이성관계’ 이런 식이었어요. 유족이라고 밝히고 (게시물을) 내려달라고 했는데, 무시당했어요. 나중에 재우 씨 도움을 받아 내렸죠.”

사건 이후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는 유족이 수많은 언론 기사와 인터넷 게시물을 전부 찾아내 대응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유족은 준원을 오래 알고 지낸 김재우(가명, 38) 씨에게 영상 삭제 요청을 부탁했다. 재우 씨는 15년간 준원을 알고 지냈다.

재우 씨는 유족을 대신해 언론사와 각종 인터넷 게시물 작성자에게 요청했다. 준원의 장례가 시작된 8월 7일부터 약 일주일간 하루 4~8시간 동안 게시물을 찾고, 또 찾았다.

준원이 살해당한 다음날 오전부터 언론의 보도가 쏟아졌다. ⓒ셜록

재우 씨는 주변 인맥을 동원해 언론사와 연이 닿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누구에게 몇 번이나 전화했는지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

“당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전화를 열 번은 넘게 돌렸어요. 지인들에게 연락하고 나서, 유튜브에서 CCTV 영상을 찾아내기 시작했죠.”

이후, 언론사 제보 채널에 직접 기사 링크와 영상 삭제를 요청했다. 제보 채널을 통해 연락한 곳만 6곳. 기자 연락처를 수소문해 직접 통화하기도 했다.

기자 한두 명은 유감의 말을 남겼다. 하루 만에 영상을 비공개 처리한 언론사도 있지만, 담당자에게 전달하는 데만 3~4일이 걸린 곳도 있었다. 한 언론사는 삭제 요청을 받고도 9월 26일까지 유튜브에 CCTV 영상을 버젓이 올려두고 있었다.

“기자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제보 채널을 통해서 연락했을 때 바로 피드백이 오는 곳도 있지만, 담당자가 출근하지 않았다고 며칠 뒤에 연락을 주는 곳도 있었어요.”

재우 씨는 유족 대신 사건 CCTV 영상과 캡처 사진 유포를 막기 위해 나섰다 ⓒ셜록

한 언론사당 하나의 기사만 처리해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같은 언론사에서 발행한 기사, 유튜브 콘텐츠, 숏츠 등 여러 보도물 속에서 CCTV 영상과 캡처 사진은 계속 발견됐다.

“기사 하나를 내린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기사가 내려간 곳도, 오늘의 뉴스를 종합해서 올린 긴 영상 안에 CCTV 보도가 들어가 있는 걸 뒤늦게 발견하고 다시 연락하는 작업을 했어요.”

언론의 CCTV 영상 유포로 재생산된 유튜브 영상과 인터넷 게시물도 하나씩 전부 대응해야 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은 신고하고, 인스타그램 등 SNS 게시물은 작성자에게 일일이 메시지를 보냈다. 삭제 과정에서 소원 씨도 힘을 보탰다. CCTV 영상 보도의 흔적을 찾아서 재우 씨에게 링크를 넘겼다.

“수십 건은 될 거예요. 게시물 하나씩 전부 대응하는 게 어려웠어요. 유튜브는 영상을 신고할 때마다 유족임을 증명해야 하고, SNS는 직접 메시지를 보낼 수 있으니까 하나씩 다 연락하고 확인했어요.”

언론이 공개한 CCTV 영상과 캡쳐본은 각종 인터넷 게시물로 2차 가공됐다.  ⓒ셜록

이번 사건을 겪고 나서, 재우 씨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궁금했어요. 대체 이런 식의 보도를 누가 처음 시작했을까. 어디까지 ‘시청자의 알 권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CCTV 영상과 캡처 사진을 보도한 언론사 중 유족의 허락을 받은 매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사건 장소 인근 건물에서 CCTV를 ‘따서’ 일부 모자이크만 한 채 보도했을 뿐이다.

재우 씨가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영상과 캡처 사진을 내려달라고 연락한 뒤 대부분의 기사는 수정됐다. 언론의 책임도 거기까지였다. 인터넷에는 2차 유포된 영상과 캡처 사진이 넘쳐났다.(관련기사 : <범인의 칼에 가족을 잃고, ‘언론’의 칼에 삶을 잃었다>)

“2차 유포된 영상이나 캡처 사진에 대해서도 방송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론사가 보도하지 않았으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잖아요. 보도 영상만 내리고 넘어가는데, 솔직한 심정으로 ‘당신들이 책임져야지, 왜 내가 인터넷을 뒤져서 하나씩 내려달라 하고 있나’ 싶었어요. 왜 피해자 쪽이 직접 나서야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대체 이런 식의 보도를 누가 처음 시작했을까. 어디까지 ‘시청자의 알 권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셜록

유족들이 언론 때문에 겪은 괴로움은 CCTV 영상 보도만이 아니었다. 사건 직후, 유족들이 준원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을 때. 한 방송 프로그램은 준원의 사건에 대한 제보를 바란다는 공지를 올렸다. 지역 맘카페에서도 제보 공지글을 발견했다. 재우 씨는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유족이 힘들어하니까 (제보 공지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죠. 답변이 인상적이었어요. ‘논의해보겠다.’ 저도 직장인이니까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충격적이었어요.”

해당 방송사는 또 다시 유족에게 접근했다. 소원 씨는 가해자 A에 대한 엄벌 탄원서를 모으기 위해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유족임을 밝히고 글을 쓴 적 있다. 방송사는 소원 씨의 게시물에 또 제보를 바란다는 댓글을 달았다.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아니고 살인사건 희생자의 유족이잖아요. 취재하지 말아달라고 이미 부탁했는데도 계속 접근하는 건, 권력이고 폭력이죠.”

유족은 가해자 형사재판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소원 씨는 불안감이 높아졌다. ⓒ셜록

가해자 A의 첫 재판이 열린 날. 대여섯 명의 기자들이 법정에 보였다. 소원 씨는 법원 안에서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어머니와 은지 씨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기자들의 카메라가 자신들을 향할까봐. 재판 시작 전 유족 측은, 사진 촬영과 취재 요청은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기자들에게 전했다.

소원 씨가 법정 밖으로 나왔다. A에게 고함을 치고 나오는 소원 씨의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미리 청심환과 정신과 약을 먹었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최소한 사과라도 할 줄 알았어요. 재판에 다녀온 뒤로 손이 떨리고 심박수가 계속 높아요.”

유족은 사랑하는 준원을 잃은 슬픔에도 버거웠지만, 언론은 그들을 더욱 힘들게했다. ⓒ셜록

법정을 나온 유족들을 향해 ‘역시나’ 기자들이 다가왔다. 재판 시작 전에 했던 ‘취재 자제’ 부탁은 모두 잊은 듯했다. 유족들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그들을 막아서며, 질문은 유족에게 직접 하지 말고 변호사에게 해달라고 다시 한번 요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기자는 준원의 아버지에게 직접 다가가, 피해자, 즉 죽은 아들의 본명을 알려달라고 했다. 본명을 왜 알고 싶냐는 유족들의 반문에 그 기자가 대답했다.

“기억하고 싶어서요.”

정말 개인적으로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서 본명을 물었을까. 그 말을 믿으란 건가. 유족들은 말문이 막혔다.

재판이 열리기 열흘 전에도 소원 씨는 말했다. 아직 준원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3개월 전부터 누나의 문자메시지에 답장하지 않고, 전화를 받지 않는 동생. 영영 만날 수 없는 동생은 멀리서 잘 지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법정에서 가해자를 본 후, 감정을 가까스로 가둬둔 마음속의 둑이 무너지는 듯했다.

법정 바깥 복도에서 60여 명의 방청객들이 유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은지 씨는 잠시 부모님을 다독이곤 법원을 나섰다. 사람들은 역시나 무거운 침묵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