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이 열리자, 고소한 음식 냄새가 풍겼다. 이은지(가명, 34) 씨는 음식을 하고 있었다. 바질페스토 파스타. 애인 박준원(가명, 32) 씨가 직접 키운 바질을 따서 만들었다. 두 사람은 13년 동안 만난 장기연애 커플이다. 1년 6개월 전부터 동거를 시작했다. 내년에는 결혼식을 올리려고 준비 중이었다. 

 “11월 31일, 저희가 사귄 날짜에 맞춰서 프로포즈를 하려고 했어요.”

프로포즈는 할 수 없게 됐다. 준원은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은지 씨는 파스타를 다회용기에 담아 가방에 챙겼다. 준원을 만나러 갈 때에는 꼭 그 가방을 챙겨야 한다. 가방 속에는 돗자리, 빈 그릇, 수저세트, 종이컵, 그리고 향이 들었다. 은지 씨는 ‘그날’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준원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은지 씨는 돌아오지 않는 애인 준원을 위해 파스타를 요리했다. ⓒ셜록

2025년 8월 6일. 무더위가 한창이었다. 준원은 퇴근하고 20년 지기 A(32)와 만나 삼겹살을 먹었다. 전날 새벽 준원의 휴대전화에 친구 A로부터 부재중 전화 7통과 “준원아, 낼 함 보자”는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준원은 창업 이후 고민이 많은 A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흔쾌히 저녁 약속에 나갔다.

두 사람은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다. 어릴 적부터 서로 집에 놀러가고, 가족과도 아는 사이였다. 은지 씨도 A를 함께 사는 집으로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저희가 만난 13년 동안, 한결같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친구라고 말해왔어요.”(이은지 탄원서)

술 한 잔 마시지 않으면서 A의 술친구가 돼준 그날 밤은, 준원의 마지막이 됐다. 잠시 식당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이, A는 미리 준비한 흉기를 꺼내들었다. 준원은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결국 무참히 살해당했다.

그날은 준원의 생일 이틀 전. 준원의 SNS 마지막 게시물은 A의 사업을 홍보하는 글이었다. 준원은 지난 8월 언론에 ‘마포구 대흥동 흉기난동 사건’, ‘마포구 흉기 살해 사건’이라고 보도된 비극적인 사건의 피해자다.

A는 사건 현장 인근에서 체포됐다. 경찰은 수사 결과, A가 평소 앓고 있던 조현병 증상 때문에 일어난 사건으로 결론지었다. A는 2017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사건 당시 A는 가게 운영에 방해가 된다며 약 복용을 마음대로 중단한 상태였다.

은지 씨는 침대 머리맡에 준원의 영정사진을 올려놨다. 침대에 누워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늘 준원이 있다. ⓒ셜록 

A가 그런 상태인 걸 알았다면 제가 못 가게 막았을 거에요. 준원이는 너무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었어요. 어쩌다 알게 된 독거노인 댁에도 종종 혼자 가서 냉장고나 집 정리를 해주곤 했거든요. 친구가 보자고 하니 고민이 있는 줄 알고 간 걸 거예요.

3개월 내내 야근해서 매일 피곤해 했었는데…. 그날도 하루 종일 회의를 하고 피곤한데도 친구라고 생각한 A가 보자고 하니 만나러 가준 거예요. 그게 너무 슬프고 화가 나다가도, 저를 탓하게 돼요.”

은지 씨는 이제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 ‘만약 그날 그 친구를 못 만나게 막았더라면’, ‘만약 내가 그 친구를 멀리하라고 했더라면’…. ‘만약’으로 시작하는 후회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날 제가 너무 피곤해서 출근길에 인사를 못했어요. 그게 마지막 모습이 될 줄 몰랐죠…. 아직도 살아있는 것만 같아요. 제가 밖에 나와 있으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고, 그냥 내 눈에만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된 거예요.”

8월 7일 새벽. 은지 씨는 정신없이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말 준원이 죽었다는 감각을 느낄 새도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경황이 없는 와중에, 준원의 가족이 스마트폰으로 기사 하나를 보여줬다. 거기엔 CCTV 영상이 담겨 있었다. 준원이 가해자를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모습.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됐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언론 때문에 제 삶이 더욱 파괴됐어요. 자극적으로 죽음을 소비하는 행태를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건은 수많은 언론에 보도됐다. 일부 기사에는 준원의 ‘마지막’이 담긴 CCTV가 공개됐다. ⓒ셜록

기자들은 현장 취재 과정에서 주변 건물 CCTV나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해 보도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도 사건 장소 근처 건물 CCTV를 ‘따서’ 일부 모자이크만 한 채 공개했다. 유족들이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는 사이.

언론이 보도한 사건 내용도 실제와는 차이가 있었다. 언론은 두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말다툼을 했고, 이후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은지 씨가 사건이 발생한 식당으로 찾아가 사장에게 직접 물어보니, 말다툼은 없었다. 그저 시끄러운 가게 손님들의 대화 소리 때문에 목소리가 커진 것뿐이었다.

“이 일을 겪고 유서를 썼어요. 언론사에 불 지르고 저도 죽고 싶었어요. 언론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알리고 싶었어요. 별로 살고 싶지도 않고, 생각이 극단으로 치달았죠. 언론이 (범죄 희생자) 유족을 거기까지 내몰았다는 거예요. 장례를 치르고 8월 한 달 동안은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CCTV 영상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영상 캡처 사진을 활용한 후속 기사들도 쏟아졌다. 영상을 삭제하라고 요청해야 했다. 은지 씨는 차마 영상을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지인에게 대신해달라고 부탁했다. 대리인은 인맥을 총동원해 기자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직접 연락하거나, 각 언론사의 제보 채널로 삭제 요청을 보냈다.

유튜브, SNS,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기사를 인용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말다툼’을 했다는 언론 보도를 인용하며,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2차가해성 게시물과 댓글도 작성됐다.

대리인은 인터넷상에 영상이 남아 있는지 약 일주일간 밤낮 없이 살펴봤다. 발견 즉시 게시물 작성자에게 유족의 뜻임을 밝히고 글을 삭제해달라고 일일이 연락했다. 그럼에도 “독버섯처럼” 영상과 캡처 사진 게시물은 다시 올라왔다.

언론은 사건 발생 장소 인근 건물에서 CCTV 영상을 입수해 보도했다. 영상은 걷잡을 수 없이 인터넷에 퍼졌다. ⓒ셜록

지난 8월 7일 하룻동안 보도된 사건 관련 기사는 총 69건. 현재 일부 기사에 실렸던 CCTV 영상과 캡처 사진은 삭제된 상태다. 해당 영상과 사진을 보도한 언론 중 유족의 동의를 얻은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영상을) 딱 한 번 봤는데, 가끔 그 장면이 저를 때리듯이 눈앞에 떠올라요. 그 영상을 안 봤으면 준원이의 생전 기억을 갖고 살아갈 텐데, 흉기를 든 가해자로부터 도망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게 된 거죠.”

은지 씨가 CCTV 영상 보도를 직접 본 건, 딱 한 번이었다. 하지만 그 기억은 3개월이 지난 지금도 눈 앞에 생생하다. 사랑하는 이에 관한 마지막 기억이 “훼손”당한 기분이 들었다.

은지 씨 어머니도 집에서 TV로 뉴스를 보다가 그 영상을 우연히 봤다. 영상 속 피해자의 얼굴은 가려졌지만, 단번에 딸의 애인, 준원임을 알았다. 영상에는 은지 씨가 그에게 선물한 가방이 보였다.

“저희 엄마도, 준원이와 가까운 친구들도 뉴스를 보고 바로 알아봤대요.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기억도 훼손당한 기분이에요. 준원이는 그렇게 기억되고 싶었을까요? 언론은 피해자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어요.

언론의 무책임한 CCTV 영상 보도 때문에, 은지 씨는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기억을 훼손당했다 ⓒ셜록

유족은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경찰도 유족에겐 사건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애초에 유족이 확인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경찰이 제게 그 장면을 보고 싶냐고 묻지도 않았어요. 수사기관에서 확인하면 될 일이었는데, 언론은 유족에게 동의를 구하는 절차 없이 실시간 보도하기에 바빴던 거죠. 이미 사람이 죽었는데, 왜 실시간 보도를 해야 하는 거죠? 그냥 먼저 보도하고 싶은 거잖아요.”

은지 씨는 CCTV 영상 보도가 무조건 잘못됐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른 경우, 또 다른 피해가 예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유족이 영상 공개를 원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유족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

“사건이 더욱 공론화되고 피해가 예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상 공개를 원하는 유족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잖아요. 의사 확인을 해야 알 수 있는 거죠. 최소한 공익을 목적으로 보도했다면.

한국영상기자협회가 발간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에는 살인사건 관련 CCTV 영상 자료를 제공받은 경우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자세히 적혀 있다.

가급적 영상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만약 필요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희생자의 존엄성, 피해자의 유족이 당하는 물리적・정신적 고통을 고려하여 해당 영상 활용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영상보도 가이드라인> 한국영상기자협회, 2025년)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에도 “사망자와 유가족의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언론은 준원의 존엄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족들의 고통도 헤아리지 않았다.

은지 씨는 준원의 묘소를 물티슈로 닦고 또 닦았다 ⓒ셜록

유족 측이 언론사에 영상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유감’의 말을 남긴 기자도 ‘한두 명’ 있었다.

“이제 와서 (언론이) 사죄해봤자 의미는 없겠죠. 이미 언론에서 보도한 영상이 인터넷에 2차로 퍼졌으니까요. 이런 일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않길 바라는 것 말고 제가 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사건 이후, 은지 씨는 30kg대까지 살이 빠졌다. 음식을 씹어 넘기기 어려워 마시는 것으로 식사를 대체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 불안. 정신과에서 받은 진단명이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전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준원의 아버지는 환청을 듣기도 했다.

“‘아빠, 내가 그렇게 죽었는데 밥이 넘어가? 잠이 와?’ 이런 말을 할 애가 아닌데도, 아버님은 죄책감 때문에 환청을 들으세요.”

은지 씨는 좌절할 틈이 없다. 먹지 못하고, 잠들지 못해도 쓰러지면 안 된다. 오는 17일, 가해자 A를 처벌하기 위한 재판이 시작된다. 은지 씨는 A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탄원서를 썼다. 다른 유족과 주변 사람들이 쓴 탄원서도 재판부에 제출했다.

“가해자는 반성한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를 재판부에 제출했어요. 하지만 가해자와 그 가족들은 20년 지기가 죽었는데도 유족에게 연락 한 번 없었어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나오길 바라고 있어요. 또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잖아요. 가석방이 돼도 노인이어야 누군가를 다시 해치기 어렵지 않을까요.”

은지 씨는 준원이 생전에 정한 문구를 묘비에 이토록 빨리 새길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셜록

귓가를 울리던 매미 울음소리는 사라지고, 발걸음마다 낙엽 소리가 바스락거린다. 은지 씨는 준원의 묘소 앞에 돗자리를 펼쳤다. 물티슈를 꺼내들고 마른 팔로 묘소를 깨끗이 닦았다. 은지 씨 목에 걸린 준원의 반지가 흔들렸다. 반질반질해진 상석 위에 파스타 한 그릇이 놓였다.

“너무 단촐한가? 그래도 준원이는 파스타를 참 좋아하니까 괜찮을 거예요.”

준원이 떠나고 3개월 지났다. 준원은 아직 8월 6일 한여름 밤에 멈춰 서 있다. 은지 씨가 살아서 버텨내야 하는 시간은, 잔인하게도 흘렀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듯, ‘그 없이’ 맞이해야 할 무수한 계절들이 은지 씨를 기다리고 있다.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묘비가 보였다. 그곳에는 생전 준원이 정해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뜨겁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다 갑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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