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같은 화려한 얼굴에 지적장애인 여성은 홀딱 넘어갔다. 돈 좀 벌기 위해 결혼까지 불사하는 ‘사기꾼’의 설계를 여성은 사랑으로 믿었다. 이 답답한 사랑 앞에서 경찰과 검찰마저 헛발질을 할 줄이야.

알면 알수록 속 뒤집어지는 이야기, 검사님이 편지 한 통만 제대로 읽었어도 그나마 덜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사기 전과 9범의 윤지훈(36세, 가명)은 구치소에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으로 편지 한통을 보냈다.

“강서구 전세사기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유나비(가명)와 같이 공범입니다.”

편지를 보낸 시점은 2024년 11월경. 그는 기다렸다. 검찰이 본인을 강서구 전세사기 혐의로 추가 기소하기를.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검찰은 응답하지 않았다. 전세사기 주범이 검찰에 ‘자백 투서’를 보낸 지 1년이 넘도록.

검찰은 지적장애인 유나비(가명)를 전세사기 사건의 주범으로 단독 기소했다 ⓒ주용성

검찰이 주범의 ‘자백 투서’를 사실상 묵살하는 동안, 지적장애인 여성 유나비(29세, 가명)는 홀로 재판을 받았다.

“처음 법정에 들어서는데… 자기소개를 제대로 못 해서 버벅거리다가… 천천히 자기소개 하고 (법정을) 나왔는데요, 눈물이 확 나는 거예요… 첫 재판 날은 그렇게 울었던… 기억밖에 안 나요.

유나비와 윤지훈은 법적 부부다. 지적장애인 유나비는 윤 씨에게 사기결혼을 당했다. 유나비는 혼인신고 이후 빚더미에 앉았다. 윤 씨는 아내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갚지 않고, ‘렌탈깡'(가전 렌탈 후 중고거래로 되파는 행위) 등을 저질렀다.

윤지훈은 전세사기까지 설계했다. 이번에도 모든 책임은 아내 유나비에게 돌아가도록 판을 짰다. 2023년 8월경 유나비의 이름으로 집 두 채를 계약했다. 서울 강서구 오피스텔과 충남 천안시 아파트.

강서구 오피스텔 새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금은 그대로 윤지훈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전 세입자는 전세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윤 씨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약 1억 원을 벌었다.

천안 아파트의 경우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전세금을 편취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전 세입자는 강서구 오피스텔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전 세입자들이 돌려받지 못한 전세금은 총 3억 8400만 원. 범죄수익은 모두 윤지훈이 가져갔지만, 채무는 고스란히 ‘서류상 집주인’ 유나비 앞으로 남았다.(관련기사 : <“그 남자를 사랑했어요” 전세사기범이 된 지적장애인>)

경찰은 유나비가 지적장애인이란 사실을 놓쳤다. ⓒ주용성

윤지훈의 계략대로 검찰은 2024년 6월 유나비를 전세사기 사건의 ‘주범’으로 ‘단독’ 기소했다. 유나비는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의 지적장애인이다. 검찰은 2025년 8월 첫 재판에서야 유나비가 지적장애인이란 사실을 알았다.

대개 전세사기 범죄의 경우 이른바 ‘바지사장’을 앞세우고 주범은 뒤로 숨는 수법이 많다. 실례로 628채의 빌라를 소유해 ‘빌라왕’으로 불렸던 전세사기 사건 역시 몸통은 따로 있었다. 그렇기에 수사기관은 범인을 잡아도, 그 배후를 의심하고 주범을 알아내는 노력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잘못됐다. 경찰이 유나비가 지적장애인이란 사실을 놓쳐버린 것. 2024년 4월 4일, 유나비는 서울강서경찰서에 출석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발달장애인이냐” 묻는 경찰의 질문에, 유나비는 “아니오”라고 답했다. 왜 그랬을까.

“저는 지적장애인인데, 경찰이 ‘발달장애인이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대답했어요.”

유나비가 ‘발달장애’란 말의 뜻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 유나비는 이미 10년 전 보건복지부에 등록을 마친 장애인이다. 하지만 경찰은 구두 확인 외에 다른 절차를 통해 유나비의 장애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심지어 강서구 오피스텔 전세사기 피해자가 참고인 조사에서 담당 수사관에게 “유나비가 일반인에 비해 지적 능력이 좀 떨어진다고 느꼈다”고 말했는데도 말이다.(관련기사 : <“집주인이 이상해요” 피해자는 알았고 경찰은 몰랐다>)

덕분에(?) 남편 윤지훈은 경찰의 수사망을 유유히 벗어났다. 경찰은 유나비의 죄를 묻는 데만 집중했다.

검찰은 전세사기 주범의 ‘셀프 투서’를 1년이 넘도록 사실상 묵살했다. ⓒ셜록

현행법에 따르면 피의자가 발달장애인인 경우 발달장애 전담 경찰관이 조사를 하는 게 원칙이다. 또 발달장애인의 특성상 신뢰관계인의 조력을 받아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유나비는 이 두 가지 권리 모두 보장받지 못했다.

반면, 천안 아파트 전세사기 사건을 수사한 천안서북경찰서는 유나비의 지적장애 사실을 알아차렸다.

강서경찰서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기 하루 전날(2024년 4월 3일), 유나비는 천안서북경찰서에 출석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처음에 경찰이 ‘발달장애인이냐’고 물어서… ‘아니오’라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제가 의사소통이 수월하게 잘 안되잖아요… 수사 중간에 경찰이 다시 ‘지적장애인이냐’고 물어서… 그때는 ‘맞다’고 대답했어요….

천안서북경찰서는 주범이 따로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 그리고 수사를 계속해 주범 윤지훈을 잡았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전화 통화만으로도 유나비가 지적장애인이란 사실을 눈치챘다. 유나비를 조사한 천안서북경찰서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주범 윤지훈을 쫓아 검거했다. 하지만 똑같이 유나비를 직접 만난 조사한 강서경찰서는 유나비의 지적장애 사실을 알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검찰마저 주범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다. 주범 윤지훈이 직접 서울남부지검에 본인의 여죄에 대한 자백 투서를 보냈는데도, 검찰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그러는 동안 유나비는 혼자 강서구 전세사기 사건 주범으로 재판을 받게 된 것. 피고인의 장애는 수사기관과 재판부가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사유에 해당한다. 형법 제10조 제2항에 따르면, 심신장애는 감경 사정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현재 유나비는 사회복지시설에서 혼자 지내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셜록

유나비의 법률대리인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수사기관의 발달장애인 방어권 미보장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발달장애인이 ‘나는 발달장애인이 아니’라고 답했다고 해서 경찰이 그냥 넘어갔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경찰이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피의자가 발달장애인이라는 걸 몰랐을 리 없을 겁니다. 검찰도 보완수사를 통해서라도 (발달장애인 피의자를) 걸러냈어야 했습니다.

2026년 1월 16일. 서울남부지검은 뒤늦게 윤지훈에 대해 추가 기소했다. 윤 씨가 본인의 여죄에 대한 자백 투서를 검찰에 보낸 지 약 1년 2개월 만이다.

현재 유나비는 임시 주거지인 사회복지시설에서 혼자 지내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유나비 측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이 기사가 나가게 되면… 좀 더 떳떳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더 이상 피해자들도 안 생기고… 범죄도 안 하게 되는 그런 사람으로… 떳떳하게 자신 있게 살고 싶어요.”

유나비의 지적장애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서울강서경찰서의 반론은 무엇일까. 서울강서경찰서는 지난 9일 보내온 서면답변서를 통해 “제3자에게 수사 관련 내용에 대해 답변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답을 반복했다.

검찰은 윤지훈의 자백 투서를 묵살했다는 지적에 대해 “유나비 피고인을 통한 사실관계 확인 및 윤지훈에 대한 증인신문(2025. 11. 14.)이 필요하여 윤지훈에 대한 증인신문 후 공범으로 추가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윤지훈의 증인신문으로부터도 두 달이 지나서야 공소장 변경을 통해 그를 추가 기소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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