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뜬다. 매일 같은 시간, 유나비(29세, 가명)는 새벽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하루빨리 갚아야 하니까.
두 명의 세입자들에게 돌려주지 못한 전세보증금 약 3억 8000만 원. 여기에 덧붙여진 약 2년치 이자(지연손해금)만 약 2300만 원이다. 빚은 또 있다. 유나비 이름으로 잡힌 통신사 빚 143만 원과 대출 빚 1700만 원.
4억 원이 넘는 이 돈들의 공통점. 정작 유나비는 한 번도 손에 만져보지 못한 돈이라는 것.
“돌려주지 못한 전세보증금이랑 이자는… 손 쓸 수 없이 불어난 상황이에요…. 통신사 빚은… 매달 29만 원씩 천천히 갚는 중이에요… 안 그러면 휴대폰을 아예 쓸 수가 없으니까….”

유나비는 지적장애인이다. 그는 2024년 12월경부터 임시 주거지인 사회복지시설에서 혼자 살고 있다.
방 크기는 두 평 정도. 좁은 방 안은 짐으로 꽉 차 있다. 한쪽에는 이불이 펼쳐져 있고, 맞은편엔 빨래와 옷가지들이 널려 있다. 화장품과 물통, 그리고 협탁 위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것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바로 법원과 채권추심 기관으로부터 날아온 수십 장의 독촉장들.
유나비는 샴푸와 수건을 들고 공용화장실로 향한다. 머리를 감고 나선, 거울도 없는 비좁은 베란다 공간에 서서 젖은 머리칼을 말린다. 잘 말린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묶어 올리면 출근 준비는 끝. 시계는 새벽 4시 30분을 가리켰다.

유나비는 본격적으로 ‘앱테크’를 시작한다. 휴대전화로 광고를 보거나 미션을 수행하며 돈을 번다. 한 번 할 때마다 적게는 몇 원에서, 많게는 몇 백 원의 돈이 쌓인다. 이날 새벽 30분 정도 앱테크를 해서 번 돈은 200원 정도.
“매일 아침에 눈 뜨면 (앱테크를) 해줘야 해요…. 예전에 6개월 동안 영어공부 어플 해서… 70만 원 벌기도 했어요… 지금도 (영어공부 어플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새벽 5시, 유나비는 나갈 채비를 시작한다. 핸드백에 휴대전화와 보조배터리, 그리고 일터에서 쓸 손걸레를 담는다.
“일할 때 조금 더 깨끗이 청소하고 싶어서… 제 걸레를 따로 챙겨요….”


유나비가 처음부터 시설에서 살았던 건 아니다. 그에게도 가족이 있다. 뇌전증을 앓는 아빠와 지적장애인 엄마, 그리고 두 살 어린 비장애인 남동생과 함께 한 집에 살았다. 이 집에선 여자들만 돈을 벌어왔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폭력이 유나비의 일상을 옥좼다.
“집에서 저랑… 엄마만 돈을 벌어왔어요. 그래서 아빠가 술 먹고 맨날… 엄마 때리는 것도… 너무 보기 싫었고, 남동생이 돈을 뺏어가는 것도 너무 싫었고, (남동생한테) 핸드폰… 뺏기는 것도 너무 싫었고.”
스물세 살. 독립을 꿈꾸던 유나비는 2020년 한 남자를 만났다. 아이돌 같은 준수한 외모에 명품으로 치장한 화려한 행색. 윤지훈(36세, 가명)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한다. 유나비는 몰랐다. 사기 전과 9범의 윤 씨는 결혼마저 ‘사기’로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관련기사 : <“그 남자를 사랑했어요” 전세사기범이 된 지적장애인>)
유나비는 빚더미에 앉았다. 윤 씨는 지적장애인 아내 유나비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갚지 않고, ‘렌탈깡'(가전제품 렌탈 후 중고거래로 되파는 행위) 등을 저질렀다. 유나비가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돈, 그럼에도 모두 유나비가 갚아야 하는 빚들은 그렇게 생긴 거였다.

유나비의 새벽 출근길을 동행한 날(1월 30일), 영하 13도의 매서운 추위에 거리도 얼어붙은 듯했다. 유나비는 얇은 솜 패딩 점퍼 하나만 입고 집을 나섰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유나비는 지하철 역까지 걸어갔다. 좁은 골목 비탈길을 내려가는 유나비 옆으로 연두색 마을버스가 지나갔다.
지하철 역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 유나비는 비나 눈이 오는 날이 아니면, 날마다 걸어서 역으로 간다. 버스비 한 푼도 아쉬운 처지니까.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유나비가 걷는 길을 형광색 옷의 환경공무관이 쓸고 닦았다.
“(시설에서) 역까지 매일 걸어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멀게 안 느껴져요… (시설 근처) 골목길만 벗어나면 (역까지) 금방 가는 것 같아요…“

새벽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이 이리 많았나. 지하철은 이미 만석이다. 유나비가 일터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6시경. 지난해 9월부터 강남에 있는 백화점 내 명품 매장에서 청소 일을 한다. 오전 6시부터 오전 10시까지, 하루 4시간 일하고 유나비가 받는 월급은 120만 원이다.
“명품 매장이 커서… 두 명이서 구역을 나눠서 청소해요…. 제가 처음에 일을 서툴게 해갖고… 많이 혼났어요. 한 7개월 정도 일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많이 안 힘들어요…. 제가 느릿느릿 일해도 열심히 하니까… 매장 관리자 분도 저를 이해해주는 것 같아요….”
유나비에게 명품 브랜드는 낯설지 않다. 결혼 전 윤 씨가 과시하듯 보여준 명품들 중에도, 지금 유나비가 청소 일을 하는 매장의 브랜드가 있었다. 남편은 명품을 사랑했지만, 막상 돈은 유나비에게 벌어오라고 지시했다. 유나비는 택배 상하차부터 식품·화장품 공장 생산직까지 물불 가리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유나비는 일을 오래하지 못하고 자꾸만 ‘짤렸다’. 당시 유나비가 매달 버는 돈은 약 50만 원뿐. 생활비 10만 원을 제외한 모든 돈을 남편 윤 씨가 가져갔다.
“윤지훈이 제게 너무 다정한 사람이라서…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윤지훈이 ‘돈을 벌어오라’고 구박해도… 나중에는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제게 말했으니까요.”

‘가스라이팅’으로 유나비의 돈을 갈취하던 윤지훈은 전세사기까지 설계했다. 모든 책임은 서류상 아내 유나비에게 돌아가도록 판을 짰다. 2023년 8월경 유나비의 이름으로 집 두 채를 계약했다. 서울 강서구 오피스텔과 충남 천안시 아파트.
윤 씨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약 1억 원을 벌었다. 반면 세입자들은 전세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윤지훈이 주도한 범행이지만 채무도, 형사처벌도 그가 책임질 필요는 없었다. 서류상 집주인은 유나비니까.
윤지훈의 계략대로 검찰은 2024년 6월 유나비를 전세사기 사건의 ‘주범’으로 단독 기소했다. 유나비의 지적 능력은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 이미 10년 전 보건복지부에 등록을 마친 장애인이다. 하지만 검찰은 2025년 8월 첫 재판에서야 유나비가 지적장애인이란 사실을 알았다.
전세사기 피해자 역시 담당 수사관에게 “유나비가 일반인에 비해 지적 능력이 좀 떨어진다고 느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유나비의 장애 여부를 파악하지 못했다.(관련기사 : <“집주인이 이상해요” 피해자는 알았고 경찰은 몰랐다>)
현행법에 따르면 피의자가 발달장애인의 경우 발달장애 전담 경찰관이 조사하는 게 원칙이다. 또 ‘신뢰관계인’의 조력을 받아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유나비는 이 두 가지 권리 모두 보장받지 못했다.
발달장애인 피의자에 대한 절차적 지원은 수사기관이 장애를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장애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수사 조력 절차는 모두 막혀버리고 만다. 아무런 권리를 지원받지 못한 유나비처럼.
유나비 사건을 보면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2015년 세상에 알려진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 경찰의 강압적 수사에 의해 지적장애인들이 범죄자로 몰린 사건이다.

1999년 2월 6일 새벽 삼례 나라슈퍼 할머니를 사망하게 한 ‘3인조 강도치사범‘은 이렇게 탄생했다. 경찰은 미성년 지적장애인 최대열과 강인구, 그의 친구 임명선을 엮어 누명을 씌웠다. 셋은 경찰한테 두들겨 맞고, 친구가 구타당하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들이 범인이라고 허위자백했다. 경찰이 만든 ‘가짜 범인 3인조‘는 억울한 옥살이까지 했다.
결국, 2016년 10월 ’가짜 범인 3인조‘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연된 정의가 바로 잡히는 데까지 약 17년이 걸렸다.(관련기사 : <가짜 살인범 강인구, 그를 보고 운 진범>)
유나비와 ‘가짜 범인 3인조’에겐 공통점이 있다. 본인이나 부모가 장애인이란 사실. 이들 모두 가족이나 ‘신뢰관계인’의 도움 없이 경찰, 검찰 수사를 받았다. 사법체계상 절대 약자인 장애인이지만, 수사기관으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다.
잇따른 논란에 경찰청은 2022년 수사대상자가 발달장애인에 해당하는지 의무적으로 묻는 제도를 도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모든 진술조서에서 수사대상자에게 ‘발달장애인법에서 규정하는 발달장애인에 해당하는지’를 묻도록” 하는 의무 조치를 같은 해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
하지만 구두확인 제도마저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나비와 같이 ‘발달장애’란 용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기 때문.
피의자 조사 당시 경찰이 “발달장애인이냐” 물었지만, 유나비는 “아니오”라고 답했다. 왜 그랬을까.
“저는 지적장애인인데, 경찰이 ‘발달장애인이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대답했어요.”
인권위가 지난 1월 13일 발표한 수사기관의 발달장애인 방어권 미보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교정시설에 수감된 발달장애인 127명 중 스스로 발달장애인에 해당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39명에 불과했다. 비율로 따지면, 발달장애인 수감자(응답자)의 약 70%가 발달장애의 뜻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해당 조사를 담당한 최은숙 인권위 장애차별조사1과 조사관은 제도 개선 필요성을 지적했다.
“사실 발달장애인에게 ‘발달장애인이냐’고 묻는 것 자체가 어려운 용어를 써서 묻는 겁니다. 실제로는 장애가 있지만 장애인으로 등록이 안 된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방법 갖고는 한계가 있는 겁니다. 수사기관에서 조사 전에 조사대상자가 발달장애인인지 판별하는 식별 지표가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후 2시. 일을 마치고 시설에 도착한 유나비는 가방에서 걸레부터 꺼냈다. 곧바로 공용화장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비누로 걸레를 문댔다. 그가 걸레를 움켜쥘 때마다 검은 구정물이 흘러나왔다. 유나비는 찬물을 틀고 걸레를 헹궜다.
“(기자에게 걸레를 보여주며) 이렇게 손빨래를 하면… (더러웠던 부분이) 감쪽같이 지워져요… 아고 손 시려….”
하얗던 그의 손이 금세 빨갛게 변했다. 유나비는 화장실 바닥에 흐르는 구정물을 손으로 쓸어 하수구로 흘려보냈다.
그는 매일 이런 하루를 반복하며 홀로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불구속 상태로 진행 중인 재판. 그는 ‘전세사기 사건 주범’이란 혐의로 법정에 서야 하는 피고인이다.
“매일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전세사기) 피해자 분들한테 용서받고 싶어서요…. 피해자 분들이 용서해주신다면… 용서받고 싶어요.”
사기결혼의 피해자이자, 남편의 가스라이팅으로 전세사기 범죄에까지 이용당한 그가 정말 감옥으로 가야 하는 걸까. 현재 유나비 측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다음 재판은 3월 24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